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64) 사랑을 구걸하지 마십시오 (요 10:7-10)
< 선한 목자 > 지도력의 가장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가 인내입니다. 인내는 수동적으로 따르거나 미래의 좌절을 전제로 한 현재의 복종이 아닙니다. 인내는 자제하며 천천히 배우기를 기꺼워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목자는 양떼들을 너무 앞서지 않고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인내해야 합니다. 약자에 대해 성급한 것은 지도력에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약한 양떼를 생각하지 않고 너무 앞서 달린다면 그 목자는 영향력을 잃습니다. 저는 목사 안수 받기 직전인 1992년 여름에 신학교에서 강의할 ‘목자의 정신’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같이 살던 형수님이 외출하면서 초등학교 1학년인 조카를 맡겼습니다. 조카를 안방에서 공부시키고 계속 제 방에서 목자의 정신에 대해 묵상할 때 성령님이 어떤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때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비탄의 감정과 주님의 은혜에 대한 환희의 감정이 동시에 섞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그때 인기척이 나서 뒤를 보자 다름 아닌 조카였습니다. 조카는 문을 빠끔히 열고 두려움에 젖은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앗차!” 했습니다. 조카는 겁이 많았는데 삼촌의 이해하기 힘든 모습에 얼마나 떨었겠습니까? 저는 겁에 질린 조카를 데리고 들어와 꼭 껴안아 주고 쉬운 아이 말로 조카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때야 조카의 얼굴에 평안이 깃들었습니다. 영적인 삼촌은 영적인 조카를 생각해야 합니다. 양떼의 수준은 저 낮은 곳에 있는데 그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목자만 저 높은 곳을 향해 나가면 안 됩니다. 목자는 저 낮은 곳을 향해 내려가 그곳에 있는 양떼의 손을 붙잡고 저 높은 곳을 향해 같이 보조를 맞추며 이끌어야 합니다. 개인의 영적 생활은 깊이 들어갈수록 좋지만 공동체가 모인 자리에서는 공동체와 연약한 자를 위해 자신을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주일 낮 예배 때는 지나친 은사의 표현을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까? 처음 믿는 자, 처음 나오는 자, 연약한 자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왜 전도 집회와 같은 때는 방언기도를 절제하고 방언기도를 해도 조용히 합니까? 처음 기독교를 접하는 사람에게 지나친 괴리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선한 목자는 저 높은 곳을 향하면서도 저 낮은 곳으로 내려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구걸하지 마십시오 > 주님이 선한 목자로서 ‘양의 문’입니다(7절). 특별히 두 가지 문입니다. 첫째는 구원의 문이고, 둘째는 축복의 문입니다(9절). 또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10절). 첫째 목적은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뜻합니다. 둘째 목적은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축복을 말합니다. 주님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은 풍성한 축복과 영광스런 부활의 삶입니다. 지금 조금 고생하는 것도 축복으로 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성도는 승리가 이미 예약된 자입니다. 결국 선한 목자가 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풍성함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어려움에 처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믿음과 평안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갑싼 동정을 구걸하지 마십시오. 목자가 흔들리면 양떼는 더욱 불안해집니다. 어떤 개척목회자는 기도할 때마다 우는 소리를 내고 설교 때 슬픈 표정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동정은 얻었으나 점점 그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모두 그의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어떤 목사는 부자를 찾아 목회의 어려움을 말하며 구걸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멸시와 천대만이 기다리고 있었고 문전 박대를 받고 쫓겨나는 치욕만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는 자기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값싼 동정을 졸라대는 가증한 모습에 이미 진력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구걸하지 마십시오. 특히 목자는 양떼들 앞에서 구걸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됩니다. 양떼들이 목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문제는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양떼는 어려움 속에서도 당당하게 사는 목자의 모습을 가장 보고 싶어 합니다. 그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죽기까지 거룩한 자존심을 잃지 말고 하늘의 미소를 잃지 마십시오. 어려움 속에서도 당당하게 목자의 모습은 양떼들에게 깊은 감동과 안정감을 선사합니다. 결국 하나님도 그 모습을 보시고 필요한 것을 멋지게 채워주십니다. 모든 구원받은 성도는 작은 목자입니다. 이제 작의 목자로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걷고, 말도 행복이 넘치게 하십시오. 그런 모습으로 가정과 교회와 사회로 들어가십시오. 사랑을 구걸하지 마십시오. 이미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는 존재로서 당당하게 사십시오. 그래서 자신을 보고 믿음의 능력을 느끼고 주님을 믿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십시오. 그처럼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풍성함을 몸과 마음으로 나타냄으로 진짜 주님의 풍성함을 맛보는 행복한 작은 목자들이 되십시오.ⓒ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로그인 유지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