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덕유산 백련사 (사진:네이버)
[느릿느릿 291】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온 가족이 덕유산 등산을 하면서 무주구천동 계곡을 걸었습니다. 매서운 찬바람 쌩쌩 부는 것이 어른들은 참을 수 있다지만, 좋은이 밝은이에게는 만만치 않은 바람이었습니다.
"조금만 참아. 저 위에 절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가면 취사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있을꺼야. 얼른 가서 물 팔팔 끓여 컵라면 먹자!"
무주구천동 계곡에는 백련사라는 오래된 절이 하나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취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습니다. 마침 마당에 나와 있는 스님에게 물을 끓일 장소가 있냐고 물었더니 요사채에 가면 절에서 일을 하는 할머니들이 있는데 가서 도움을 받으라 하였습니다.
꼭 그렇게 도움까지 받아야 될 급한 일은 아니어서, 좀 더 올라가 계곡의 얼음장깨고 물 떠서 끓이자~ 하고 그냥 절 모퉁이를 돌아 올라가려 하는데 아까 그 스님이 불렀습니다.
"그냥 가실 줄 알았어요. 이리 오세요. 제가 물을 끓여 드릴테니~"
일반 사람들은 금지구역인 스님방에 초대되어 얼덜결에 모두 들어가 빙 둘러 앉게 되었습니다.
"야~ 스님 방 처음 구경한다..."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고 차도 대접받으면서 이 특별한 인연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스님께서 기회다 싶었는지 몇 마디 했습니다. 젊은 스님이어서 인지 아니면 아직 도통하지 못한 분인지 대화 중에 다른 종교에 대해 좀 경솔하게 말한다 싶었습니다. 그분 앞에 있는 사람들이 목사, 전도사 신분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영적인 감각이 있었다면 그렇게 다른 종교를 얕보는 말은 안 했겠지요? (눈치채고 일부러 그런건가?)
스님이 그냥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빙그레 웃으면서 호의만 베플었다면 추운 겨울 산사에서의 참 따뜻한 추억 하나를 마음속에 간직할 뻔했는데 조금 아쉽습니다. 2004.1.6 ⓒ최용우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