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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가벼운 입술로,.......
많은 사람들은, 가벼운 입술로 믿음을 고백하면 누구나 다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거운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까?
눈에 힘을 꽉 주고 고백해야 합니까?
손을 아래위로 해병대 전투 박수 치듯이 치면서 고백해야 합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성도들은 자신의 믿음이 어떤 상태인가를 안다는 것입니다.
저의 후배나 제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자신이 날라리 성도인지 진짜 성도인지를 스스로 고백합니다.
“사실 나는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지만 나는 날라리야” 라고 말합니다.
얼마 전에 만난 처사촌 오빠도 장로인데, 자기가 장로이지만 날라리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겉보기 말할 수 없이 착하고, 믿음 생활에 충실한 사람도 자기 이익과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는 무섭도록 그 모습이 변모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두 경우를 비교해 보면 전자가 후자 보다 훨씬 더 믿는 사람 같은 면모가 느껴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가벼운 입술로 믿음을 고백하기만 하면 누구나 다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말에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요?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무거운 입술로 믿음을 고백했습니까?
물론 믿는다는 사람도 여러 종류를 봅니다.
교회를 들락거리면서 믿는 척 하지만 사업과 관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위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은 신앙생활이 생활화 되어있어서 어떻게 보면 늘 한결 같게 느껴져서, 저분은 참으로 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사람 중에는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분도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룸 싸롱에서 여자들과 술을 먹는다든지, 교회 와서는 전혀 피우는 것 같이 행동하지 않으면서 담배를 피운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 저도 믿는 것은 무엇이고 믿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를 구분하기도 힘이 듭니다.
제가 전에 다니든 직장에서 신우회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만들자는 사람도 있고, 회사에서 싫어하니 만들지 말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의 오디오에 CD성경을 틀어놓고 출퇴근 시간에 운전하면서 성경을 듣는 한 직원은 겉보기에 참으로 신실하고 온유한 사람 같은데,.......다시 말해서 예수 향기가 폴폴나는 사람 같은데도 호불호로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만들어 놓으니 주인공 행세를 합니다. 주인공 할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당시에는 반가웠습니다.
교회에서 안수집사이고 참으로 온유하게 보이고, 늘 조용하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던 나이든 직원은 끝까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짤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가벼운 입술로 믿음을 고백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무거운 입술로 고백했지만 눈앞에 아물거리는 토끼 같은 마누라와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자식새끼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호불호를 말하지 않던 그 직원 보다는 이 분을 더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쉬킨의 시를 다 외우지는 못하지만, 이 시를 무척 좋아합니다.
집 발코니 창가에서 문득 이 시가 생각나면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 시를 외웁니다.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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