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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

출애굽기 이주향 자매............... 조회 수 1726 추천 수 0 2010.12.11 13: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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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3:1-2 
설교자 : 이주향 자매 
참고 : 새길교회 2010년 11월 7일 주일예배 

sgsermon.jpg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

출애굽기 3:1-2

이주향 자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말에 기대 세상사에 대해 불현듯 용기를 내본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성취감도 잠시,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매듭이 생겨 숨이 막혔던 적, 또 있으셨는지요? 문득 세상이 두려워지고, 세상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적은…? 세상에 나와 다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속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그렇게 막막해졌을 때 제가 위로 받았던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성서의 인물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를 읽을 때면 모세의 영혼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한 민족의 지도자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긍정하기까지 성급했고, 상처 입었고, 무력했고, 고독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모세입니다.

 

그는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었으니 남 보기에는 호사스럽게 성장했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아마도 그가 이집트인이 아니란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아들로서 그를 아꼈을 화려한 공주엄마의 얼굴 이전에, 할 수 없이 그를 버리고 그의 유모로 만족해야 했던 진짜 엄마의 얼굴을 배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기억에도 없는 그 학습효과로 이집트관원이 이스라엘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정의감이 일어나고 의협심이 불탔는지도.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의 편을 들어 이집트 관원을 살해합니다. 원래 노예는 주인의 기분에 따라 맞기도 하고 대접받기도 하는 존재 아닌가요? 노예라는 이유로 이스라엘 사람이 맞는 것을 부당한 대접으로,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이집트 관원을 왜 살해했겠습니까?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본능적인 친밀감을 느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니까 중재하려 했었던 거겠지요. 핍박받는 동족들끼리 싸움이나 하면 되겠냐고. 그러나 싸움이 극에 달해 있을 때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모세를 살인범으로 고발합니다. 이집트 관원을 살해했다고 말입니다. 세상에, 도우려다 뒤집어 쓴 것이지요.

 

하루아침에 왕자에서 살인범으로 신분이 추락한 모세는 이집트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사막으로 도망칩니다. 도망자 모세는 미디안이란 사막지역에서 오랫동안 자신을 유폐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거기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고향도 잃어버리고 일가친척도 잃어버린 모세의 삶은 얼마나 적막한 것이었을까요. 1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고 자그만치 40년이었습니다. 40년을 모세는 장인의 양이나 치며 외롭고 황폐하고 무력하게 산 것이었습니다. 기대도 없이, 희망도 없이, 눈물도 없이 그저 살아낸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체념하며 죽지 못해 살고 있을 때 그는 신의 천사를 본 것입니다. 호렙 산에서 양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을 때였지요. 신의 천사가 떨기나무에 불꽃으로 임한 것이었습니다. 떨기나무는 불붙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타들어 가지는 않았던 거지요. 모세가 의아하게 여길 즈음에 거기서 모세는 여호와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있는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떨기나무, 아십니까? 우리에게 떨기나무는 진달래, 개나리처럼 땅속에서부터 줄기가 갈라져 올라오는 작은 나무의 통칭이지만,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 자라는 떨기나무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가시나무입니다. 느티나무처럼 휴식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진달래처럼 화사하지가 않습니다. 그저 덤불로 엉켜 사는, 메마르고 거친 광야의 증거일 뿐입니다. 제 눈물을 먹고 겨우 사는 그 떨기나무에 신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 떨기나무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스스로도 주목하지 못한, 보잘 것 없는 모세의 삶의 상징은 아니었을까요? 나는 떨기나무가 그 당시 모세의 마음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모세의 힘은 체념과 절망으로 황폐해져 존재감이라는 전혀 없는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다 거기서 자신의 신을 만난 것이었다고.

 

마음은 쉽게 왜곡됩니다. 마음은 많은 것을 얻었을 때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도 정직할 때 스스로 움직여 세상을 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에서는 자기기만이 없는 정직이 제일 중요합니다. 거기서 그는 “내 민족, 내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도 몰랐으나 뼛속 깊이 새겨져 있던 신의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민족이란 확대된 자아의 상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모세의 임무는 분명해졌습니다.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광야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화두는 자유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돈의 노예고, 권력의 노예고, 시선의 노예고, 체면의 노예고, 시간의 노예고, 탐욕의 노예고, 하다못해 다이어트의 노예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먹고, 놀고, 편하게 자지 못합니다. 많이 벌어도 언제나 2% 부족하고, 한 목숨 살리기 위해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지만 나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나는, 모세의 이집트 탈출기와 기나긴 광야 생활은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은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그렇게 열심히 읽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해방의 의지가 생기고, 해방의 발걸음이 시작됐어도 해방의 과정은 녹녹치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파라오의 공격에는 두려워 떨고, 고달픈 광야생활에선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렇듯 우리도 문득문득 노예의 때를 그리워합니다. 지지부진했으나 위험하지는 않았던 그 때, 혹은 자기가 일군 것을 잃어버릴까 전전긍긍,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으나 잘 먹고, 잘 입고, 잘 차려놓고, 잘 적응하며 살았던 그 때를.

 

해방 혹은 자유가 당신의 화두입니까? 자유롭기 위해서는 사르트르 혹은 까뮈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지만, 책임감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라는, 교장선생님의 훈시 같은 말을 새길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자유는 자기 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고, 자기 생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문제에 예민해지는 지, 어떨 때 ‘나’는 앓아눕는 지, ‘나’는 언제 화를 내는 지, 내가 참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 지,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지, 찬찬히 자기를 응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언제 예민해지고 언제 화를 내는 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는 용케 알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가 많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했을 정도로 신의 사람이었던 그가 말입니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을 의심한 적이 있어서 들어가지 못했다고 쓰고 있지만, 세상에, 멀고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어찌 늘 확신 속에서만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의혹 속에서만 사는 사람의 생은 늘 왜곡의 연속이지만, 의혹을 모르는 확신은 독재자처럼 우리를 억압하는 것일 텐데 말입니다.

 

그러면 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신학자들은 종종 신은 궁극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체념해버리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어둡고 무거워진 마음속에 임재하신 신을 보고, 그 신과 함께 노예생활을 청산하는 과정 속에서의 신성체험이 바로 가나안이었던 것이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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