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참으로 오랜 세월 동거동락한 나의 허리띠(사진 최용우)
【느릿느릿 317】허리띠여 안녕
"징허네 징해!"
가운데 툭 터져버린 허리띠를 바늘로 꿰맨다음 청테이프로 둘둘 감고 있는 나를 보고 아내가 혀를 찹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이 허리띠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 이 허리띠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을 때 부터 내 허리에 붙어 지금까지 무려 25년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내 몸의 일부 같은 허리띠입니다.
아내는 허리띠 하나를 25년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더 신기하다고 놀립니다. 다 낡은 허리띠를 보고 어떤분이 새 허리띠를 사 줬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양복을 입을때만 찹니다. 그런데 양복을 일년에 몇 번 안 입으니...
1.처음 허리띠를 할 고등학교때는 다섯개의 구멍 중 가장 안쪽의 구멍에 맞춰 사용해도 헐렁헐렁 할 정도로 날씬한 몸매를 자랑했었습니다. (와~ 이게 사람 허리야?)
2.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때 커다란 배를 타고 세상 좁은 줄 모르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다니다가 말라카 해협에서 해적을 만나 혼쭐이 난 이후로 네번째 구멍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3.선원생활을 그만 두고 신학교에 가서 괴짜 교수님들 만나 레포트 쓰느라 밤에 라면을 주식 삼았더니 허리가 자꾸 비명을 질러대서 세번째 구멍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4.요리 맛있게 잘하는 예쁜 아내를 만나고 나서 날마다 행복한 식사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한달만에 네번째 구멍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5.영양가 높고 보기 좋고 향기 좋은 음식으로 남편의 배에 군살을 붙인 자신의 죄는 나몰라라 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남편의 배를 구박하는 아내의 등살에 못이겨서 열심히 허리운동도 해보고 윗몸 일으키기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 주여! 마지막 마지노선인 다섯번째 구멍이옵니다.
그렇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절벽에 서 있었던 허리끈이 어느 날 그만 가운데가 툭 끊어져버렸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허리띠와 헤어져야 겠습니다. 다섯개의 구멍이 모두 타원형으로 가로로 길게 늘어나 있는 허리끈을 앞에 두고 보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2005. 2.20ⓒ최용우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