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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시편 복음............... 조회 수 3350 추천 수 0 2010.12.20 07: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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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20:1-7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본문: 시편 120:1-7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 할꼬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평화를 주시려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적이며 계속적인 뜻입니다. 평화의 교란자나 파괴자는 인간의 욕심이고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평화의 임금이라고 예언자들은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우리들 중간에 가로 막힌 담들을 헐어버리는 평화 자체이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엡2: 14,17). 중국의 만리장성은 인간 역사의 불가사의라고 불리워집니다.

이천 이백년 전에 높이 30피트, 폭 23 피트의 돌성벽을 천오백 마일이나 되게 건축한 것입니다. 그것은 외적의 침략을 두려워한 안전보장을 위한방안이었습니다. 만리장성 뿐아니라 아마도 인간의 대부분의 노력과시간이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소비될 것입니다.

오늘도 만리장성 대신 핵무기, 레이저 무기 등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셨으나 인간들은 열심히 세금 내어 이 세상을 6분 동안에 재로 만들 수 있는 파괴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를 age of MAD 이라고 부릅니다. 영어의 MAD는 미쳤다는 뜻이지만 이것을 Mutual Assured Destruction 즉 '상호 확인된 파괴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만리장성 건축에 전념합니다. 그러나 담을 쌓음으로써 안전보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담을 허시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이 세계의 희망인 것입니다. 이 시는 성전을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평화와 기쁨을 누리기 위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갑시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시편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이들 15개의 시편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집으로 함께 순례 여행을 할 때 불렀던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유대 전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일 년에 세 번 연례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를 지키기 위해 여행할 때 쓰인 것입니다.

이 노래들이 올라가는 노래로 명명된 것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이 지형적으로 위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2,700 피트 높이의 시온산에 지어졌기 때문에 여행자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이 순례객들은 북쪽으로는 메섹과 남쪽으로는 게달처럼 먼 곳에서 거룩한 성으로 여행했습니다. 그들은 여행을 하면서 성전에 도착할 때까지 이 시편들을 불렀습니다(시 134:1,2.) 이 예배자들은 고향에서 불신자들의 비난 속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큰 기대를 갖고 하나님의 집의 이 정기 절기를 위해 다른 신자들과 함께 여행했습니다.

한 예배자가 과거에 성전에서 환난 중에 부르짖었을 때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 부르짖은 시인의 간구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는 타향에서 겪었던 환난의 상황으로부터 떠나 현실에서 구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되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에 대한 감사를 올립니다. 동료 예배자들을 격려할 목적으로 그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신 여호와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을 증언합니다. 그의 문제는 사회적 영역에 있었고 그 공동체 내에서의 그의 용납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거짓말과 제사의 희생제물이었습니다. 그는 제사로 인해 특별히 한 개인의 궤사로 인해 고난을 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분명히 이러한 공격에 위협을 느끼고 기가 죽어서 성소로 찾아왔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으로 담대하게 됩니다. 그는 의심하지 않고 그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그 공동체에 복귀하게 되리리라는 것을 기대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고통 가운데서의 부르짖음입니다.

시편 기자는 인신공격과 영혼의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여호와를 부릅니다. 이 창자를 쥐어짜는 듯한 시련은 악인들의 거짓 고소와 부당한 비방을 포함합니다. 이 시련 속에서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를 고통에서 건져주시거나 그것을 감당할 은혜를 주심으로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어떤 식이든 하나님이 그에게 응답해 주신 것은 분명합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시18:6)

본문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구원을 위한 부르짖음입니다.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에게 힘과 용기와 위로를 주고 화평케 하는 혀도 있지만 반대로 악한 혀로 남을 공격하고 비난하고 상처를 주고 화평을 깨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평화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왕이 두 신하를 불러 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또 한 사람에게는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온 세상을 돌아다닌 후 돌아온 두 신하는 상자를 풀어 왕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신하의 상자를 열어 보니 거기에는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습니다.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신하의 상자를 열어 보니 그곳에도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혀야말로 좋은 것이라고, 아니 가장 악한 것이라고 열띤 논쟁을 벌였습니다.

사람의 혀야말로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도 가장 악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욕설과 음담패설, 비방하고 헐뜯는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웃을 세워 주며 격려하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언행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심성을 주변 사람들에게 잔잔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잠13:2)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잠15:28)

시인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이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로 시비를 걸고 괴롭히므로 하나님 앞에 ‘내 생명을 건지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나를 내 어려움에서 건지소서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위급함은 아니더라도 그의 명성과 심적 평안이 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의 공격으로 고통당하는 그를 비방하고자 온갖 기회를 엿보는 불의한 자들에게 그는 인격적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말과 혀로 이웃을 살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손으로 맞는 것보다 혀로 맞는 것이 더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본문 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도전의 부르짖음입니다.

그는 원수들의 면전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내게 더할꼬? 라고 묻습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시편 기자는 문제를 자기 손으로 해결하거나 스스로 보복하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깁니다. 그는 그의 원수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처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더하다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어느 정도 보복하셨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이 불경건한 자들은 완악하여 그를 공격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그는 하나님께서 날카로운 살로 그의 대적들을 벌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의로운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그분을 대한 것처럼 그들을 대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무서운 심판을 행하시며 유사한 방법으로 반응하실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그들을 로뎀나무의 숯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로뎀나무는 약 15피트 길이로 자라는 사막의 관목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맹렬한 심판으로 시편 기자의 원수들을 불살라 버리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시인의 대적들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는 징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5-7절을 읽겠습니다.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낙담 가운데서의 부르짖음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을 심판하실 때까지 시편 기자는 괴로운 고통을 당합니다. 그는 이 언어적 공격으로 심각한 심적 고통 속에서 ‘내게 화로다’라고 탄식합니다.

그가 중앙아시아의 메섹(창 10:2)과 아라비아의 게달(사 21:16)에 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화살이 그의 영혼에 깊이 박혔습니다. 두 지역은 모두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야만인들과 이방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들은 그가 불의한 악당들 속에서 사는 것처럼 그를 비방하고 무시합니다.

우리는 경건치 못한 세상 가운데서 살아야만 합니다. “내게 화로다”라고 부르짖어 봤자 소용없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당신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덧입어 어려움에 직면하여 그 속에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원수 마귀는 당신을 항상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거룩해야 합니다. 원수에게 비난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당신의 선함만이 원수들이 당신 안에서 발견할 유일한 결점이 되게 하십시오.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그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단6:5)”

언행에 일관성이 있을 뿐 아니라 유용한 사람이 되십시오. 당신이 함께 살고 있는 자들이 악하면 악할수록, 그들을 더욱더 참고 사랑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 마음이 비뚤어져 있습니까? 그럼 그들을 더욱더 바르게 세워줘야 합니다. 심술궂고 고집이 셉니까? 그럼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진리로 돌이키기 위해 더욱더 애써야 할 것입니다. 환자가 많은 곳에 의사가 필요하며, 가장 치열한 전투지에서 군인이 더욱 명예롭게 되는 법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성도들이 그와 똑같은 시련을 참고 견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솜털로 된 침대 위에 누워 편안히 천국으로 실려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옛 성도보다 더 수월하게 이 순례길을 여행하리라고는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이 전쟁터의 고지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죽기까지 싸웠습니다.

본문 6절 말씀입니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열대지방으로 이민을 간 우리 교포들이 꿀을 따기 위해 벌통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시사철 꽃이 피는 곳이었기 때문에 겨울이 있는 한국에서보다 많은 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열대지방의 벌들은 새끼를 기르기 위한 약간의 꿀 이외에는 더 이상 꿀을 모으지 않았습니다. 교포들은 우리나라의 꿀벌을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첫 해에는 많은 꿀을 땄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해에는 절반밖에 못 땄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꿀을 거의 딸 수 없었습니다. 일년 내내 꽃이 있으니 꿀벌이라 해도 꿀을 모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에 익숙해져서 살다 보면 세상 사람들의 처세술을 알게 모르게 배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평가하기를,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던 롯이 날마다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했다고 합니다. 성도들도 세상에서 잘못된 것을 배워 해를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야 하는 성도들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합당한 일을 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들 사이의 화평을 미워하는 불경건한 자들과 교제하는 것을 오래 견뎌왔습니다. 그는 최악의 인간들에게 약점이 노출되고 취약한 상태입니다. 그는 매일 이 쓰라린 현실을 맛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 가운데 거하면서 그들로부터 훼방을 받았던 시인이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극악한 자들은 전적으로 화평을 싫어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며 그들의 행위는 계속적으로 적의를 보임으로써 화평에 역행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가 화평을 원한다고 즉 자신이 사람들에게 공격당한 것처럼 다른 이들을 공격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이야기하면 그들은 그를 대적하며 싸우려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의 말은 그들의 적대감만 부추기며 그들의 부패함만을 드러낼 뿐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딤후 3:12). 이것은 신앙생활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빛과 어두움, 심지어 천국과 지옥 그 자체의 영적 전쟁에 자신이 휘말려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악한 세상에서 반대가 거셀수록 하나님의 집에 예배하러 모일 때 나누는 그들의 교제는 더 달콤할 것입니다. 세상의 박해는 형제들을 향한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합니다. 불신자들의 배척은 그리스도인들 간의 사랑이 더 풍성해지도록 합니다.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세상이 내뿜는 증오의 열기 아래 하나님의 집에서 선포되는 성경의 진리들은 상처입은 신자의 영혼에 그만큼 더 소중하게 보일 것입니다.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하자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집에 모이기를 힘쓰자. 너는 화평을 원한다는 구절은 이 순례자가 어떤 사람이며, 왜 순례를 하고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화평은 이 시편의 중심주제입니다.

시편에서 화평(샬롬)이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소망이 있고 온전한 인생의 상태입니다. 선을 생산하는 온전함이 샬롬입니다. 순례자의 고통은 샬롬이 없는 삶에서 옵니다.

샬롬이 결여된 삶을 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이웃들이 전쟁의 고통을 당하도록 인간적인저주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례자가 순례자인 이유는 그가 샬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샬롬을 구하는 자로서 예루살렘에 나아오고 있습니다. 이 시편의 뒤를 잇는 시편들에 등장하는 샬롬에 대한 내용들은 이 시편에 언급된 샬롬에 대한 관계들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 시편은 성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던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편이며 이방인들의 적대감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주시리라는 새로운 확신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순례자로서 생존 경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왔습니다. 그들은 성소를 찾음으로써 이국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새로운 소망과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시편의 이러한 적용 범위의 확대는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길을 예비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벧전3:11)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우리는 Peace Maker가 됩시다. 오늘도 화평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주님, 우리 모두가 어디서든지 서로 양보하고, 겸손하고, 용서하고, 사랑하여 화목된 가정을 이루고 이웃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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