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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요1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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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8·05·10
나는 간혹 우리의 신앙생활이 너무 피상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나름대로 맡은 일에 충성하고, 성도들과 기쁘게 교제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정말 은혜롭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주님을 섬기다가 언젠가 주님께서 부르시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전부라면 우리에게 뭔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은혜로운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자칫하면 우리는 빈껍데기와 같은 신앙생활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과연 이런 신앙생활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핵심적인 요소가 빠졌을 때 우리의 신앙은 얼마든지 비정상적이고 왜곡된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핵심적인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당신은 이 시간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시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당신의 마음속에 언제나 성령의 감화하심이 있습니까?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성령께서 함께 하고 계십니까?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까? 단지 그것뿐입니까? 당신의 봉사에 성령의 함께 하심과 도우심을 구하며 실제로 체험하고 있습니까? 기도는 어떻습니까?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소원을 일방적으로 아뢰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께서 깨닫게 하심으로 가슴이 뜨거워집니까?
만일 당신에게 이러한 성령의 감화하심이 없다면 당신은 빈껍데기만 붙잡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심지어는 형제를 미워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헛된 것에 빠져 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비정상적인 것들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러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실족하지 않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함께 하시면서 많은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당혹해하는 제자들을 위로하시면서 성령을 보내실 것과 서로 사랑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4장). 그리고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제자들이 주님과 연합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고, 그러므로 제자들은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장).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핍박을 당하게 될 것인데, 극심한 핍박을 당하면 실족하기 쉬울 것입니다. 여기서 실족이란 핍박을 이기지 못하여 넘어지거나 믿음을 버리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제자들은 3년 동안이나 주님을 따라다녔지만 믿음 때문에 극심한 환난을 당하게 되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준비시키시기 위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주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믿음을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연약한 우리를 붙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성경의 교훈과 성령의 도우심은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지키는 데 충분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1:12)
우리가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 역시 주님의 이 모든 교훈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에야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 바로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왜 이 말씀을 진즉 해주시지 않으셨을까요? 4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동안에는 이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사탄의 모든 시험과 공격은 주로 예수님께 집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공격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때로 제자들이 시험을 당하거나 공격을 받았을 때는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막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이런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게 되면 세상에는 제자들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사탄의 모든 시험이 제자들에게 집중될 것입니다. 유대인들 역시 제자들을 공격하고 핍박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이러한 예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복음전하는 사도들을 잡아다가 때리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스데반과 야고보는 이들의 핍박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이렇게 앞으로는 모든 사탄의 시험과 대적들의 공격이 제자들에게 집중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준비시키시기 위해서 이 모든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장차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될 것이며, 자기들이 당한 모든 일들이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줄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기억하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그 모든 것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제자들을 준비시키시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씀해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들처럼 극심한 핍박과 환난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평안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핍박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교회의 세속화와 영적인 나태입니다. 과거 우리 부모님들과 선배들은 많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너무나도 평안하고 쉽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세대와 우리 자신들을 비교해볼 때 누구의 신앙이 더 순수하고 뜨겁다고 보십니까? 오늘 우리의 신앙은 우리 부모세대의 신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고 미지근합니다. 마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공격하여 전과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당시 제자들 못지않게 오늘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하고 절실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타락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순전한 믿음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교훈을 굳게 붙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해져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이 세상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다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1절)
출교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제자들을 출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2절) 제자들은 유대인들에게 극심한 핍박을 받게 될 것인데, 출교가 그 중에 대표적인 한 가지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출교는 유대인들의 종교에서 추방되는 것인데,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한 사람은 종교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되고 매장됩니다. 심지어는 가족 공동체에서도 쫓겨나 이 세상에 발붙일 곳이 없게 됩니다. 지금도 회교 국가에서는 예수를 믿게 되면 이런 출교를 당합니다. 그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게 됩니다. 심지어는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기독교로 개종한 딸을 살해한 아버지에 대한 기사가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제자들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을 잔혹하게 핍박했습니다.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일을 생각해보십시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행9:1-2)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같은 하나님을 믿는 제자들을 그토록 핍박했을까요?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여 출교하며 죽이면서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핍박하는 이유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3절) 예수님께서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인격적인 교제와 체험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정해놓은 틀에 따라서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었습니다. 율법을 열심히 지켰지만 그것이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생각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해버렸습니다. 율법을 나름대로 열심히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대적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핍박했습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2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어떻게 교회를 그렇게 핍박할 수가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이 모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직 성령만이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7) 유대인들은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며,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게 되는 것도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건전하고 올바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에서 필수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제자들의 관심사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것에 대해서 한 마디도 묻지 못하고 단지 크게 두려워하며 근심했습니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함으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5-6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은 근심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시면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이 왜 그렇게 기뻐해야 할 일입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늘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정말 당황스럽고 걱정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시면 믿는 자들 마음속에 항상 함께 계시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확실할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전 세계 어디서나 함께 계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여시고 감화하셔서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알게 하실 것입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갖게 해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이렇게 소중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셔서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크게 기뻐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받아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원대한 비전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당장 자신들의 처지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이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오늘 우리도 성령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보다는 눈앞의 일들, 세상 것들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오늘 당신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까?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마음을 다해 그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도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으로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마음에 큰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까? 이런 것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은 잘못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오직 성령께서만 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더욱 사모하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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