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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7:2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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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8·08·30
엊그제가 광복절이었습니다. 금년은 광복 63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광복절 노래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떠하리
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이 노래에는 큰 감격과 기쁨, 어찌할 수 없는 아쉬움, 그리고 결연함이 담겨 있습니다. 기약 없던 일제의 악랄한 압제에서 해방되었을 때 우리 민족이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러나 조국해방을 그토록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 특히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은 그 기쁨과 감격을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떠하리’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조국이 해방되었을 때 그 기쁨과 영광을 맘껏 누리지 못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친일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동족들에게 매국노, 반역자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으로 만세를 부를 때 이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들은 조국광복의 기쁨과 영광을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최후의 영광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 우리는 지극한 영광과 축복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더 이상 고통과 슬픔과 가난과 죽음이 없을 것입니다. 죄와 갈등도 전혀 없을 것입니다. 오직 지극한 영광과 넘치는 축복만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나를 구원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될 것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극한 영광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된 사람, 그 영광을 사모하며 바라보았던 사람들만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사모하지도 않고 준비되지도 않은 사람들은 결단코 그 영광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 영광은 우리의 최종 목표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야만 하겠습니다. 이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 영광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거룩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지만,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만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절)
거룩은 죄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악하고 우리는 연약합니다. 사탄은 쉬지 않고 우리를 죄에 빠지게 하려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거룩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절)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면 거룩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순종할 때 우리의 마음은 새로워지고 죄를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범죄하고 실패한 경우에도 말씀을 기억할 수 있으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죄의 유혹을 받을 때도 말씀을 기억하면 잘 이길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련을 당할 때도 말씀을 굳게 붙들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아직은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순종하면 죄를 이기고 거룩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굳게 붙들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거룩은 이렇게 죄로부터 구별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거룩의 중요한 개념을 또 한 가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셔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9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8절)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영광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나 아직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거룩입니다. 그러나 이 거룩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영광입니다. 우리가 이 영광에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는 대제사장의 기도 끝부분에서 이 일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24절)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해주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을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이라고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들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택하신 자들임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에 매여 있을 때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1:4)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지극한 영광을 예비해놓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우리가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함께 있게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이 말씀은 구원받은 성도가 주님과 함께 영광스런 모든 축복과 특권을 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장차 주님처럼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의 그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다 이 영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그 날을 사모하며 준비하면서 기다린 사람만 이 영광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직 이 세상에 빠져 살았던 사람들은 그 영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영원한 영광을 이 세상의 썩어질 것들과 바꿔서야 되겠습니까? 그 영광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구원 받는 믿음
예수님께서는 25절에서 구원과 관련된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사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 세상은 하나님을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세상과는 다르게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단순히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본질이며, 사람들은 이 죄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셨다는 말씀 역시 단순히 아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시되 하나님과 동일하시며 완전한 일치와 연합을 이루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을 알았다는 것은 믿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믿음은 먼저 자신이 죄인이며, 스스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소망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신을 구원해주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려고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을 안다는 것은 바로 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믿음이 바로 구원을 받는 믿음입니다. 누구나 이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구원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제자들에게 알게 하셨으며, 또 알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26절)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온전히 나타내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며 경험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셨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은 예수님은 전능하시며 자기들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알고 계심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무한하신 사랑과 인내로 자기들을 대해주시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또 알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는 또 다른 면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실 것인데, 그 성령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더욱 더 풍성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오신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평안과 능력을 체험적으로 알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단순히 이론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체험적으로 알게 하십니다.
당신은 누구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든든합니까?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 그리고 인격이 훌륭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든든합니다. 하물며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는데 어떻게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고, 든든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과연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고 있습니까? 이 시간도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과 은혜를 체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되 막연히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붙드시고 위로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까? 이것은 얼마나 놀랍고 굉장한 일입니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러한 성도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의 인격과 삶이 아름답고 견고하게 성숙되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자신을 사랑하신 그 사랑이 우리 안에도 있게 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26하)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는 바로 그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단적인 증거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오늘 당신과 내가 바로 이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구원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뜨겁게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그 사랑을 깨닫고 그들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삶은 가장 복되고 영광스럽게 변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바울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잔혹하게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날도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이후 바울의 인생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남다른 열심을 가지고 있었고 탁월한 랍비였고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장래는 탄탄대로처럼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십자가의 사랑에 붙잡힌 후 그는 그의 모든 것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3:7-9)
바울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충성을 다해 복음을 전했으며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바울에게 그러한 고난은 하찮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롬8:18) 그는 주님께서 주실 면류관을 바라보며 달려간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이 영광을 바라보며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변화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거룩을 힘써 지키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충성을 다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영광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을 사모하며 그 날을 잘 준비하고 영광의 그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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