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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8:3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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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8·09·27
목회하다 보면 어려움 당한 성도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접할 때가 많습니다. 목사로서 그들의 어려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저 기도해주고 성경 말씀으로 위로해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 중에는 어려움을 당해도 목사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괜히 목사님 걱정만 끼쳐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목사로서 한계와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런 목사보다 훨씬 더 무기력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적들에게 잡혀가셨고, 대제사장들 앞에서 심문을 당하시면서 멸시와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조롱하고 욕보이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무 힘도 없이 그 모든 일들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진리는 과연 이렇게 힘없이 매장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홀로 만물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와 하나님 나라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을 사형시킬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빌라도에게 고소했습니다. 그 죄목은 ‘그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은 신성모독죄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신성 모독죄로 정죄하여 사형에 처하기로 결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소할 때는 신성 모독죄가 아닌 정치범으로 고소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이 로마에 대하여 반역죄를 범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빌라도는 단독으로 예수님과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기회는 빌라도에게 천금보다 더 귀한 기회였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거만하고 빈정대는 빌라도를 진지하고 예의바르게 대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기회를 한 영혼을 구원하는 기회로 삼기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빌라도의 만남과 거기서 오간 대화의 내용을 들어봅시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는 가장 먼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33절) 빌라도의 이 질문은 단순히 ‘그렇다’ 또는 ‘아니다’라고 대답해서 될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렇다고 대답하신다면 예수님은 스스로 정치적인 의미에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시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유대인들이 고소한대로 예수님께서 로마에 대한 정치범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만일 아니라고 대답하신다면 어떤 의미로도 왕이 아니라는 뜻이 되어,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왕이심을 부인하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한편 빌라도에게도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도 유대인들 중에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면서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로마에 대하여 독립운동을 일으킨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바로 그런 인물이라고 고소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소한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빌라도의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34절)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그렇게 고소한 것에 대해서 그럴만한 증거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 지방을 관할하는 로마의 총독이었습니다. 빌라도의 가장 큰 임무는 로마에 대해서 반항적인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동태에 대해서 끊임없이 세밀한 정보를 보고 받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그런 빌라도에게 ‘내가 어떤 정치적인 선동을 하고 다녔다는 증거가 있어서 나를 이렇게 심문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빌라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35절) 빌라도는 자신은 유대인들의 사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며, 단지 그들이 예수님을 로마에 대한 반역자라고 고소했기 때문에 심문하는 것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예수님께서는 다시 처음의 문제, 즉 예수님의 왕 되심과 관련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36절)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와 단독으로 대면하여 만나시는 이 기회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하나님 나라와 진리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말한 것처럼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로마에 대항하려 하는 그런 왕이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왕이셨습니다. 그것도 이 세상 나라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이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왕이 아니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이 세상을 진정으로 다스리는 것은 세상의 왕들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고소한 것과 같은 의미의 유대인의 왕은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 나라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온 우주를 포함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사탄의 세력들과 사탄의 지배 아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모든 세력과 존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만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핵심개념은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은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온전히 복종할 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권능 있는 나라인지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36중)
여기서 말씀하신 ‘내 종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제자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여기 나오는 종들은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가 칼을 빼들고 싸우려 할 때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26:53)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종들인 천사들을 얼마든지 동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천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아십니까? 구약에는 천사 한 명이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의 대군을 전멸시킨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19:35)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얼굴이 뜨뜻하여 그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대하32:21)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능력 있고 위대한 나라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나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여 함이니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37절)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선포하신 첫마디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7)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는 말씀은 천국이 지금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주님을 믿고 말씀을 순종하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스리심으로 그는 하나님 백성이 되어 참된 평안과 안식과 기쁨을 누립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과 축복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수록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축복과 은혜를 얼마든지 경험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으나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구원받고 죽은 성도들은 이미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은 우리를 그 영광의 나라로 영접해주실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빌라도의 태도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하나님 나라와 진리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니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37절)
빌라도는 이 말씀에 대하여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묻고는 서둘러 유대인들에게로 나갔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38절) 빌라도는 진리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는 듯 하다가 이내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빌라도가 진리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은 진리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만일 빌라도가 자신의 승진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즉시 관심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고 예수님의 말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빌라도가 진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금 당장 들려달라고 했더라면 구원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기회를 차버렸고, 결국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빌라도는 오늘 진리에 대하여 무관심한 세상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과 쾌락과 출세 같은 문제만 생각합니다. 때로 누군가 그들에게 진리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말해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와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당장 세상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더 얻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힘들고,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일을 포기할 수 없고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나를 죄와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해주신 주님께서 이 일을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라바냐 예수냐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38하)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묘안을 찾아냈습니다. 로마총독은 유월절에 죄수 한 명을 석방해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유월절 특사로 예수님을 석방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39절) 그러나 빌라도의 제안에 대해서는 유대인들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외쳤습니다.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40절)
바라바는 단순한 강도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민란을 일으키고 붙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은 죽이고 바라바는 석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자들이었으나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은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었으나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알아보지도 못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일입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아니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감화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당신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무 힘도 없이 사람들에게 정죄를 당하시고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어떤 능력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아무 힘도 없이 당하고만 계셨던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이 그분께 달려 있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천사를 보내어 이 모든 죄인들을 멸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빌라도의 모든 권세도 그분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요19:11상)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예수님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오늘 진리가 아무 힘도 없고, 믿음도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은 상황을 겪고 있습니까? 목사가 선포하며 권면하는 말씀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기도해도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까?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통치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과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이 전적으로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공은 빌라도도, 대제사장들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오직 분만이 온 인류와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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