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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4: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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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john316.or.kr |
요한복음(84) 오늘날에도 기적은 있습니다 (요 14:12-14)
<능력을 추구하십시오 >
기독교 역사상 유명한 설교가 중의 하나인 ‘템플 감독’이 어느 날 캠브리지 대학교의 예배시간 설교자로 초청받았습니다. 예배시간에서 그는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한 학생이 와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이 과학시대에 아직까지도 기도가 응답된다는 미신을 믿습니까? 기도가 응답됐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를 기도 응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때 템플 감독이 대답했습니다. “학생! 기도 응답이 우연의 일치라고? 우연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학생, 이상한 일이 하나 있네. 그것은 기도를 그치면 그 우연도 그쳐버리는 것이네.”
사람들이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는 필연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질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연히 전개되는 것 같은 일상적인 일의 배후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손길과 눈길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손길과 눈길을 의지할 때 기적적인 역사와 능력을 체험할 것입니다.
능력을 추구하는 신앙은 결코 유치한 신앙이 아닙니다. 사실상 모든 성도는 능력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탄은 성도 자신의 힘만 가지고는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4장 9절을 보면 사탄은 예수님을 산꼭대기로 데려가 세계왕국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그때 예수님은 사탄에게 “네가 모든 것을 줄 권세가 있으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단에게도 그런 유사한 권세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탄은 세상의 궁극적인 지배자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 왕 중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큰 능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탄과 비견될 자는 없다.”
< 사단을 이기는 능력 >
한 호주 침술사가 티베트에서 망명한 한 노인의 치료를 위해 침을 꽂는데 그 침술사의 바늘은 노인의 피부를 뚫지 못했습니다. 당황한 침술사가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미안함을 표하자 티베트 노인이 말했습니다. “아차, 오히려 제가 미안합니다. 제 몸의 부적을 떼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에 있었던 부적을 떼 내자 바늘이 들어갔습니다. 그때 그 티베트 노인은 말했습니다. “한 라마승이 나를 중국인들의 총알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며 이 부적을 주었습니다.”
사탄도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 능력을 꺾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사탄의 권세를 무력화 시켰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이 사탄의 권세를 무력화시켰는데 왜 사탄은 아직도 그 능력을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까? 신학적으로 ‘이미 그러나 아직’이란 과도기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미 승리했지만 아직 완전히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사탄은 탄알이 잔뜩 몸에 박혀 있지만 아직은 죽지 않은 사자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전보다 훨씬 흉포하고 파괴적이며 분노로 날뛰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이 이토록 어지러운 것은 사탄이 죽을 때가 가까이 왔다는 신호입니다. 그처럼 분노로 날뛰는 강력한 사탄을 이기려면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큰 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12절). 능력을 받을 때 악한 영이 쫓겨 나갑니다. 신유도 나타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유를 유치하게 생각하지만 신유는 유치한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큰 능력 중의 하나는 ‘기도 응답의 능력’입니다(13-14절). 물론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능력은 거룩한 뜻을 위해 자기를 죽이고, 거룩한 일을 위해 자기를 던지는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질 때 실질적인 놀라운 능력과 기적도 나타납니다.
오늘날에도 기적적인 능력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을 추구하십시오. 신앙생활의 원동력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능력에 있습니다. 그 능력을 믿어야 체험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당시의 회의론자들도 믿지 않았기에 영적인 진리를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실체’와 ‘사람이 생각하는 실재’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습니다. 그 간격을 좁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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