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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4: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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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john316.or.kr |
1보 후퇴 10보 전진의 믿음 (요 14:27-31)
<고통을 자산으로 만드십시오 >
어릴 때부터 기구한 환경에서 자란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사생아 출신으로 이웃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그가 네 살 때 같이 놀던 동생이 갑자기 안 보였습니다. 동생이 죽은 것인데 너무 어려서 그것도 몰랐습니다. 열 살 때는 신앙과 용기를 주었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열여덟 살 때는 어머니 사후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여동생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얼마 후 메리 타드(Mary Todd)란 여인과 결혼했는데 결혼생활도 고통뿐이었습니다. 아내를 사랑했지만 아내가 자주 정신이상을 일으켰고 계속해서 사랑했던 두 아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을 잊고자 군에 들어가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슬픔은 계속되어 숱한 전우들이 곁에서 죽어갔습니다. 제대 후, 그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겠다고 정치에 투신했지만 여러 선거에서 수많은 좌절을 겪었습니다.
그처럼 고통과 실패는 끝이 없었지만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죽음의 이별을 겪고 선거에 낙선할 때마다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고 소외되고 좌절하고 슬퍼하는 사람에 대한 애착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이렇게 외치고 다녔습니다. “사람은 모두 평등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노래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입니다.
링컨은 인생의 고통을 인생의 자산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처럼 고난과 역경은 인생을 살찌우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너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경제 문제와 전쟁 문제로 불안해합니다. 그래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면 어느덧 마음속에 묘한 기쁨과 평안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주시려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평안입니다.
< 사람이 평안을 느낄 때 >
평안이 없으면 행복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유언설교에서 이 평안을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본문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주님의 유언말씀은 평안의 중요성을 잘 말해줍니다. 사람은 언제 평안을 느낍니까?
1. 최선을 다해 살 때
언제 사람이 가장 아름답습니까? 최선을 다할 때 아름답습니다. 왜 주님의 삶이 아름답습니까? 최선을 다해 불꽃처럼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왜 길이 열리지 않느냐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면 길이 생깁니다.
옛날의 한 영주가 자신의 영지를 거니는데 한 젊은이가 열심히 정원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솜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정성스럽게 꽃을 가꾸며 화분 하나마다 아름다운 조각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영주가 속으로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청년! 그렇게 한다고 품삯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마치 자네 정원처럼 정성스럽게 가꾸고 아름답게 만드니 고맙네.” 그때 청년이 말했습니다. “영주님! 저는 이 일이 정말 즐겁습니다.”
영주는 그의 성실성에 감동해 그를 데려다 조각 공부를 시킵니다. 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그 영주를 기억하지 못해도 미켈란젤로는 기억합니다. 그처럼 역사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반드시 들어 사용합니다.
요새 경제가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지만 땀을 흘리고 최선을 다해 살면 살 길이 없겠습니까? 옛말에 “자리를 잃을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리에 제대로 설 것을 걱정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다 부족하기에 좋은 자리는 항상 자신에게 과분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자리를 잃는 것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맡겨진 자리를 잘 감당하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십시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때 완성품으로 그냥 안겨주지 않습니다. 진짜 축복은 일하는 보람을 느낄 기회와 함께 주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원을 품고 땀을 흘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얻는 일보다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일에 더 관심을 두십시오. 땀을 흘리지 않으면 점점 남을 찔러대는 가시나무처럼 되지만 땀을 흘리면 마음에 여백과 자신감이 생기고 심령이 넉넉해집니다.
2. 아름답게 퇴장할 때
주님이 항상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갈 데’와 ‘갈 때’를 확실히 알고 십자가의 죽음을 준비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뭇거릴 필요도 없이 항상 당당했습니다. 그처럼 갈 데를 확신하고 갈 때를 준비해야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나무는 스스로 잎을 떨어뜨리며 생명활동을 최소화함으로 겨울 준비를 합니다. 그처럼 거추장스러운 것을 떨쳐버리고 인생의 겨울을 대비해야 삶이 단순해지고 능력과 평안도 생깁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평안이 없는 사람은 김정일입니다. 심리적으로 생각하면 본인은 그 권력의 자리가 진저리칠 정도로 싫고 편안하게 존경 받고 물러날 기회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독재자들이 물러나는 즉시 ‘최고로 못된 놈’으로 격하되고 교수형 당하고 총살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물러나겠습니까? 결국 퇴장하고 싶어도 퇴장하지 못하는 가장 비극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존재는 퇴장하고 싶어도 퇴장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아름다운 퇴장은 감동을 동반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퇴장의 길조차 막혔으니 얼마나 애처로운 일입니까? 김정일은 이미 퇴장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퇴장의 기회를 놓친 권력자에게 남은 것은 ‘혁명에 의한 강제퇴장’이나 ‘죽음에 의한 강제퇴장’뿐입니다. 그것은 시기의 문제입니다. 완벽하게 세습에 성공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일 뿐입니다.
퇴장의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활용해서 아름답게 퇴장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그 기회조차 사라집니다. 그때부터 삶은 죽음보다 비참한 삶이 됩니다. 반면에 퇴장할 때 선교하는 마음을 가지고 멋지게 소유를 나누며 아름답게 퇴장하면 나머지 인생은 더욱 아름답고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인생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든지 퇴장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퇴장의 기회를 잡는 것’은 ‘축복의 기회를 잡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요새 현대건설 인수문제로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가 경쟁합니다. 급변하던 역사의 현장에서 모든 짐을 지고 죽음에 자신을 내던진 정몽헌 회장의 자발적 퇴장은 현대그룹을 지금까지 지탱한 정신적인 힘이었습니다. 그 자발적 퇴장의 의미를 현대자동차가 힘과 재력으로 누르고 남의 영역을 무리하게 넘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역효과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순리를 따라 ‘퇴장의 기회’를 잘 살려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강제퇴장’을 당하지 않습니다. 잘 경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퇴장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역사를 보면 순명을 따른 1보 후퇴는 10보 전진을 불러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근본원리였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름다운 퇴장’입니다. 이제 물질, 권력, 명예 등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승부는 이 땅의 승부로 끝나지 않습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도는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6남매를 둔 어떤 할머니는 돌아가시던 주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자식 집을 한번 둘러보고 주일 예배 후 편안히 주무시듯이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후 베개를 들춰보자 자식들에게 고마움과 격려를 적은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옷장을 열자 수의 한 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가방을 열자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다 모아 놓고 이런 편지를 남겼습니다. “이 돈으로 장례식 때 손님들을 대접해라.”
그 중에 따로 구분해 둔 봉투가 있었는데 거기에도 약간의 돈과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 봉투는 장례 예배 후에 목사님께 꼭 전달해 달라.” 그 모습을 보고 모든 자녀들이 그 아름다운 죽음에 감탄했습니다. 잘 죽는 삶은 잘 사는 삶만큼 복된 삶입니다. 그처럼 퇴장을 잘 준비하면 현재의 삶에도 놀라운 평안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살다가 갈 때 멋지게 하나님 품으로 가십시오.
3. 든든히 동료가 있을 때
살면서 좋은 믿음의 동료가 있으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가끔 비행기가 난기류에 흔들리면 승객들이 죽음의 공포를 느낍니다. 바로 그때 그런 경험을 많이 겪은 여승무원의 안심시키는 맑은 소리의 방송을 들으면 어느새 긴장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편안해집니다. 그처럼 믿음과 경험이 많은 사람의 위로는 큰 힘을 줍니다. 그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맑은 목소리로 위로를 주는 든든한 믿음의 동료가 되십시오.
가끔 믿음이 좋은 저의 옛 친구들이 저를 개인적으로 돕습니다. 어떤 친구는 말합니다. “이 목사! 나는 내 친구 목사가 남들 앞에서 기죽고 살기를 원치 않아!” 그러면서 어떤 때는 작게, 어떤 때는 크게 돕습니다. 그런 동창 친구가 몇 명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있기에 어려운 목회자 및 선교사들과 함께 어려움을 나눌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요새 교회성장이 정체되면서 목사님들이 많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들끼리 식사 후에 눈치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당에서 나올 때 어떤 목사님은 구두끈을 한참 매고 어떤 목사님은 그때 화장실에 갑니다. 낼 형편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런 상황에서 자기 친구는 그런 처지에 처하지 않고 어깨를 펴고 살도록 신경을 써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마음입니까? 든든한 믿음의 친구는 이렇게 큰 힘이 됩니다.
요새 부부관계가 어려워진 가정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서로 세워주는 사명을 잊기 때문입니다. 흔히 나이에 따라 부부의 사는 패턴이 다르다고 합니다. 20대에는 서로 신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 필요해서 살고, 70대에는 비로소 서로 고마워서 산다고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사람이 철들기가 그처럼 어렵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다 연약한 존재이기에 서로 세워주어야 합니다. 만남의 제일 목적은 서로 세워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가정과 교회에서의 만남은 더욱 그렇습니다. 가정과 교회의 위로가 얼마나 영혼에 힘이 됩니까?
어느 날, 한 사람이 직장에서 해고되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그 사실을 고하자 아내는 남편이 평소에 문학적 재질이 있었던 것을 알고 말합니다. “여보! 살림은 제게 맡기고 이번 기회에 당신이 좋아하는 문학 공부를 한번 해 보세요.” 그리고 남편 몰래 조금씩 저축한 돈을 꺼내 보여주며 남편을 위로했습니다. 그 아내의 위로로 힘을 얻고 열심히 문학공부에 정진해 생겨난 작품이 바로 나다나엘 호손의 ‘주홍글씨’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는 실패했을 때 인정이 없는 태도입니다. 실패할 때 위로하라고 동반자를 만난 것인데 그때 무시하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가까운 사람을 세워주지 못한 가인 콤플렉스에 빠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누군가와 만나게 하신 것은 그를 세워 주면서 공동체를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위로자 한 사람만 있어도 공동체의 분위기는 어느새 살아납니다.
영국에 프랭크 알렌(Frank Allen)이란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영국의 재벌가 출신 학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큰 뜻을 품고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빌 클린턴이란 학생과 한 기숙사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항상 학교에서 항상 일등만 하던 알렌은 71년 자살했고 반면에 빌 클린턴은 30대 초반에 주지사를 거쳐 92년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젊었을 때 학교 성적이나 출신 집안 등이 클린턴보다 알렌이 훨씬 좋았습니다. 그런데 알렌은 항상 비판적이고 부정적이고 환경에 따라 감정기복이 심했지만 빌 클린턴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공부는 못해도 밝은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렌은 항상 미래를 불신하고 현재를 고통 중에 지내다 결국 자살했지만 클린턴은 미래를 낙관하고 그 낙관의 힘으로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 결국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클린턴은 어렸을 때부터 희망적이고, 낙관적이고, 건설적이었습니다. 홀어머니였기에 어머니를 많이 돕고 설거지도 했습니다. 이복동생들도 잘 챙겨주고 잘 놀아주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복동생과의 의가 남다르게 좋다고 합니다. 아무리 몰락해가는 없는 집안도 감사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으면 그 집안은 곧 일어섭니다. 그처럼 감사하는 믿음의 동료 한 사람의 힘은 정말 놀랍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한 사람의 든든한 동료가 되십시오.
4. 주님을 굳게 믿을 때
본문 29절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다락방 강화를 한 목적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살다가 힘든 일을 만나면 평안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때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평안이 생깁니다. 주님을 생각만 해도 고통과 아픈 상처가 신기하게 사라집니다. 그처럼 주님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됩니까? 그 믿음이 살아가는 힘의 넉넉한 원천입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입에는 언제나 유머와 웃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진보적으로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과 기반이 없어서 힘들다고 하지만 그는 항상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최고의 자본입니다. 육신적 장애자가 장애자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모험의 발길을 내딛지 않는 사람이 장애자입니다!”
이제 자본과 배경이 없는 것을 한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최고의 자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믿고 나가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절망 중에서도 반드시 길이 열리고, 길이 열리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 깊은 평안이 임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걱정과 두려움이 있습니까? 문제는 자신이 힘과 능력과 지식이 많은 줄 알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자동차 정비사가 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시동이 꺼졌습니다. 자신만만하게 자동차 본넷트를 열고 살펴보는데 고장 난 부분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한참 씨름하는데 한 노신사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제가 차를 한번 봐드릴까요?” 정비사가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할아버지! 제가 차량 정비를 한지 20년이 넘었어요!” 그때 그 노신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의 한 부분을 툭 건드렸습니다. 그러자 차가 금방 시동이 걸렸습니다. 그 노신사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그 차를 발명한 포드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몇 십 년 동안 무엇을 했다고 너무 높아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그래서 어려움도 많이 당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가오셔서 말씀합니다. “아무개야! 내가 도와줄까?” 그 하나님의 초청에 자신을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하늘을 좌우하는 지상 최대의 힘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10분간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요새 강자를 꿈꾸는 사람이 많은데 무엇보다 기도에 강자가 되십시오. 문제가 있으면 최선을 다해 뚫고 나가고 문제가 아주 어려우면 기도하십시오. 다른 어떤 영적인 스타를 찾지 마십시오. 기도하는 자신이 최고의 영적인 스타인 줄 아십시오. 다른 것에서 실패해도 기도에서 실패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일에 실패하는 것이지 기도가 우리에게 실패하는 일은 없습니다.
< 1보 후퇴 10보 전진의 믿음 >
이제 어떤 일을 당해도 평안을 잃지 마십시오. 사자 우리에 들어가 사자가 달려들어도 끄덕도 하지 않으면 사자가 겁이 나서 앞발을 꿇을 것입니다. 또한 불길이 사르려고 해도 주님이 주신 평안이 있으면 그 불길도 사그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꼭 붙잡고 작은 일로 마음의 평안이 깨지지 않게 하십시오.
믿음 안에서 위기는 언제나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이제 기적이 생기겠구나!”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환란이 오면 “이제 축복이 오겠구나!”라고 생각하십시오. 반대로 아무런 문제도 없거든 “아하! 이제 아무 축복도 없겠구나!”라고 탄식하고, 아무런 기도제목이 없으면 “아하! 하나님이 왜 나를 이리 사랑 안하실까!”라고 탄식하며 안타까워하는 역설적인 자세를 가지십시오.
살면서 어떤 사람은 탄식합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면서 내 뜻대로 안 해주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그런 의문으로 섭섭함과 혼란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조치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서 공평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원망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은 이런 공통된 고백을 했습니다. “맞아! 거기에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을 거야.”
어느 날,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목초지 문제로 갈등이 생기자 아브라함이 조카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이제 헤어지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 그렇게 말해도 마음만은 조카 롯이 양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카가 덥석 황금벌판을 선택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의 아내 사라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보! 롯이 은혜도 모르고 어떻게 저럴 수 있어요.”
그때 아브라함이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맞아! 나쁜 자식이야!”라고 하면 믿음의 조상은커녕 다 망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보, 두고 봅시다. 여기에도 무언가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을 거요.”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그처럼 하나님 믿고 1보 후퇴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10보 전진하는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두고 보세요. 여기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을 겁니다.” 어떤 시련을 만나도 거기에 하나님의 선한 섭리에 있음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이 그 마음에 신비한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의 평안을 지키고 그 평안에서 주어지는 현실극복 능력과 지혜와 총명과 창조성을 통해 예수 믿고 인물 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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