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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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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처음 마음을 회복하자
본문: 계2:1-7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4)
옛날에 가난과 고생을 딛고, 열심히 노력하여 재상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재상이 되면서부터 날마다 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마당에 있던 무거운 기왓장을 뒤뜰로 옮겨 쌓아놓았다가, 저녁이면 다시 마당으로 옮겨놓는 것이었습니다. 우연히 그러한 광경을 보게 된 친구가 어이없어 하며 물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낮도깨비 같은 짓인가! 듣자하니 꼭두새벽에 기왓장을 뒤뜰로 옮겼다가 저녁이면 다시 마당으로 옮겨 쌓는다고 하는데 무슨 까닭인가?" 그 말에 재상은 나즈막하게 그러나 힘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힘든 일을 일부러 함으로써 내가 어려웠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위함이네. 지금의 편안한 생활에만 빠져 나태해질 정도라면, 하물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정치를 어찌 하겠는가? 파멸이 오는 것은 지식이나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어려웠던 경험이나 그때의 마음가짐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네."하고 말하며 기왓장을 계속 옮겨 쌓았습니다.
히브리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히13:7) 처음에 얼마나 좋은 말을 하고 모범적인 행동을 보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말을 봐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의 마음과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인도의 어느 왕국에 아주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비는 왕과 결혼한지 1년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왕은 너무 슬퍼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왕은 정성을 들여 왕비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왕의 눈에 비친 무덤은 너무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시켜 왕 자신을 상징하는 미남자의 조각을 새겨 무덤 동편에 세워 두었습니다. 아마도 자기는 비록 무덤가에 있지 못할지라도 자기를 닮은 동상이라도 두어 왕비의 영을 위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1년 뒤에는 무덤 앞에 재력을 상징하는 호화로운 집을 짓게 하였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다시 1년 뒤에는 무덤 북편에 권력을 상징하는 훌륭한 성곽을 세웠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뒤에 무덤이 있는 동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참으로 근사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동쪽엔 미남 조각, 호화로운 궁전에 훌륭한 성곽까지 잘 조화되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훌륭해 보였습니다. 흡족한 마음으로 좀 더 살펴볼 양으로 자세히 보니 가운데 초라하게 서 있는 무덤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명했습니다. "저 가운데 있는 무덤을 치워 버려라" 우리도 이런 과오를 범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처음엔 감격스럽게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셨는데 점차 자기가 드러나고, 전통이 드러나고, 재물, 명예, 권력이 드러나며 그로 말미암아 결국엔 하나님은 점점 사라지고, 끝내 하나님이 귀찮은 존재가 되어 "집어치워 버리자"라는 마음을 갖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의와 사랑보다 율법을 앞세웁니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신경 쓴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 돈이 필요한 건데, 돈 위해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주객이 뒤바뀌어서는 안됩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몇년 전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윈터벌’로 바꾸자고 해서 문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윈터벌’이라는 말은 겨울에 해당하는 윈터와 축제에 해당하는 페스티벌의 합성어입니다. 오늘날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과 상관없이 겨울의 한 축제가 되었으니 굳이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붙일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국 하면 감리교의 발상지로 개신교의 요람이라고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윈터벌'로 바꾸자는 것이 얼마나 세속적이고 믿음과는 아무 상관없는 잘못된 생각입니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해야 할 성탄절에 주인공이신 아기 예수님은 간곳이 없고 크리스마스를 빙자한 휴일이나 선물, 그리고 파티만 있으니 하나님 앞에 너무 죄스러울 마음 뿐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1200만 성도로, 국민의 4명 중의 1명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최근에 문화선교단체 팻머스가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서울·경기 소재 중 고등학생 377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 결과 ‘산타클로스’라는 대답이 29.9%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 다음은 크리스마스 트리로 13.4%였고, 정작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린 응답자는 7.2%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객전도가 되지 않으려면 첫째,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둘째, 시작했던 그때로 돌아갈 것. 셋째, 아무것도 아니었던 때, 신인이었던 때로 돌아갈 것.
넷째, 늘 신인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다섯째, 다른 사람을 너무 의식하여,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슬퍼할 것입니다. 운전도 초보일 때 오히려 큰 사고가 없습니다. 매사 늘 초보의 자세를 견지하면 실수가 없습니다. 언제든 초심으로 돌아가면 길이 보입니다. 시작했던 그때로 돌아가면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1:25)
어떤 농부가 입만 열면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이 농부는 소를 기르고 있었는데,하루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 송아지 쌍태를 주시면 한 마리는 꼭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기도가 응답되어 이란성 송아지 쌍태가 나왔는데 한 마리는 누런 송아지고,다른 한 마리는 얼룩 송아지였습니다. 그러자 농부의 마음에 그만 욕심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송아지 한 마리를 드리겠다는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어느 날,그만 누런 송아지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이 농부가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하필이면 하나님의 송아지가 죽다니…. 누런 송아지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는데….”
우리 성도들은 이 농부처럼 처음 마음을 접어서는 안됩니다. 처음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처음 마음을 유지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파선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어느 위험한 해안에, 한 때 볼품 없는 작은 인명 구조 본부가 있었습니다. 건물이라곤 초라한 오두막 한 개 뿐이었고 구명 보우트도 작은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헌신적인 몇 명의 구조대원이 끊임없이 바다를 지켰고 험한 파도 속에서 계속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점차 이 구조 본부는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구조된 사람들 중에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발적으로 구조 대원으로 봉사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많았고, 돈을 대주는 사람들도 늘었습니다. 그래서 이 인명구조 본부는 구명 보우트도 새로 구입하고 구조 대원들도 더 훈련시키는 등 작은 구조 본부가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지고 기구가 커지자 새로 가입한 회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볼품 없는 낡은 건물과 시설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조된 사람들의 임시 피난처가 되기 위해서도 좀 더 편안한 시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상용간이 침대를 훌륭하고 편안한 침대로 갈아치웠고, 건물도 확장 보수하고 좀 더 좋은 가구들을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구조대원들이 대기하는 동안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간단한 운동 기구들과 장기, 바둑 등 오락 시설도 갖추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 인명 구조 본부는 회원들을 위한 대중적인 회합 장소가 되어 버렸고 그곳을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그곳을 더욱 아름답게 치장했고 멋있게 꾸며 놓았습니다. 이런 변화와 함께 회원들은 인명을 구조하는 본연의 임무를 위해 위험한 바다에 나가는 일에는 점차 관심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런 일을 전담할 수 있는 구조대원들을 새로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가자 그 다음 번에 모인 회원들의 총회에서는 불화가 생겨났습니다. 많은 회원들은 클럽의 인명 구조 활동들이 별로 즐겁지도 않고 오히려 위험한 일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제부터는 인명 구조 활동은 그만 두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사교 클럽으로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회원들은 인명 구조 활동이야말로 이 조직 본연의 임무요 목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인명구조 본부가 사교 클럽으로 바꾸어져서는 않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주장은 투표 결과 패배당했고, 만일 그들이 계속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저 아래편 해안에서 그들나름의 구조본부를 새로 만들어 시작할 수 있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교 클럽에서 나와 새로이 구조 본부를 만들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새로 생긴 이 인명 구조 본부는 옛날 구조 본부가 겪었던 똑같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구조 본부는 또다시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 발전해버렸고, 그래서 또 그 아래편에 또 다른 인명 구조 본부가 새로 생기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었고 그래서 만약 우리가 오늘날 그 해안을 방문한다면 우리는 그 해안에서 수많은 클럽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바다에서는 여전히 파선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구조 당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중요한 사명은 사람을 생명을 구하는 일인데, 많은 교회가 선교를 통해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자체 유지와 교인 상호 간의 친목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인명 구조 본부의 역할보다는 사교 단체나 친목 단체의 역할만 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유해지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처음 마음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처음 믿음을 가졌을 그때로 돌아갑시다. 오직 예수만을 위해서 살기로 작정했던 그때로, 때묻지 않은 맑고 순수한 믿음을 가졌던 그때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주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드리던 그때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이제 우리 모두 새로운 각오로 처음 사랑을 가지고 주님께 충성을 다하며 살아갑시다.
*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가 처음 믿을 때의 뜨거움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과 함께 살며 주안에서 승리하는 생활하게 하여 주세요 그래서 비록 작지만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본문: 계2:1-7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4)
옛날에 가난과 고생을 딛고, 열심히 노력하여 재상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재상이 되면서부터 날마다 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마당에 있던 무거운 기왓장을 뒤뜰로 옮겨 쌓아놓았다가, 저녁이면 다시 마당으로 옮겨놓는 것이었습니다. 우연히 그러한 광경을 보게 된 친구가 어이없어 하며 물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낮도깨비 같은 짓인가! 듣자하니 꼭두새벽에 기왓장을 뒤뜰로 옮겼다가 저녁이면 다시 마당으로 옮겨 쌓는다고 하는데 무슨 까닭인가?" 그 말에 재상은 나즈막하게 그러나 힘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힘든 일을 일부러 함으로써 내가 어려웠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위함이네. 지금의 편안한 생활에만 빠져 나태해질 정도라면, 하물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정치를 어찌 하겠는가? 파멸이 오는 것은 지식이나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어려웠던 경험이나 그때의 마음가짐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네."하고 말하며 기왓장을 계속 옮겨 쌓았습니다.
히브리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히13:7) 처음에 얼마나 좋은 말을 하고 모범적인 행동을 보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말을 봐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의 마음과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인도의 어느 왕국에 아주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비는 왕과 결혼한지 1년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왕은 너무 슬퍼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왕은 정성을 들여 왕비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왕의 눈에 비친 무덤은 너무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시켜 왕 자신을 상징하는 미남자의 조각을 새겨 무덤 동편에 세워 두었습니다. 아마도 자기는 비록 무덤가에 있지 못할지라도 자기를 닮은 동상이라도 두어 왕비의 영을 위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1년 뒤에는 무덤 앞에 재력을 상징하는 호화로운 집을 짓게 하였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다시 1년 뒤에는 무덤 북편에 권력을 상징하는 훌륭한 성곽을 세웠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뒤에 무덤이 있는 동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참으로 근사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동쪽엔 미남 조각, 호화로운 궁전에 훌륭한 성곽까지 잘 조화되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훌륭해 보였습니다. 흡족한 마음으로 좀 더 살펴볼 양으로 자세히 보니 가운데 초라하게 서 있는 무덤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명했습니다. "저 가운데 있는 무덤을 치워 버려라" 우리도 이런 과오를 범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처음엔 감격스럽게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셨는데 점차 자기가 드러나고, 전통이 드러나고, 재물, 명예, 권력이 드러나며 그로 말미암아 결국엔 하나님은 점점 사라지고, 끝내 하나님이 귀찮은 존재가 되어 "집어치워 버리자"라는 마음을 갖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의와 사랑보다 율법을 앞세웁니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신경 쓴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 돈이 필요한 건데, 돈 위해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주객이 뒤바뀌어서는 안됩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몇년 전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윈터벌’로 바꾸자고 해서 문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윈터벌’이라는 말은 겨울에 해당하는 윈터와 축제에 해당하는 페스티벌의 합성어입니다. 오늘날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과 상관없이 겨울의 한 축제가 되었으니 굳이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붙일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국 하면 감리교의 발상지로 개신교의 요람이라고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윈터벌'로 바꾸자는 것이 얼마나 세속적이고 믿음과는 아무 상관없는 잘못된 생각입니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해야 할 성탄절에 주인공이신 아기 예수님은 간곳이 없고 크리스마스를 빙자한 휴일이나 선물, 그리고 파티만 있으니 하나님 앞에 너무 죄스러울 마음 뿐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1200만 성도로, 국민의 4명 중의 1명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최근에 문화선교단체 팻머스가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서울·경기 소재 중 고등학생 377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 결과 ‘산타클로스’라는 대답이 29.9%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 다음은 크리스마스 트리로 13.4%였고, 정작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린 응답자는 7.2%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객전도가 되지 않으려면 첫째,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둘째, 시작했던 그때로 돌아갈 것. 셋째, 아무것도 아니었던 때, 신인이었던 때로 돌아갈 것.
넷째, 늘 신인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다섯째, 다른 사람을 너무 의식하여,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슬퍼할 것입니다. 운전도 초보일 때 오히려 큰 사고가 없습니다. 매사 늘 초보의 자세를 견지하면 실수가 없습니다. 언제든 초심으로 돌아가면 길이 보입니다. 시작했던 그때로 돌아가면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1:25)
어떤 농부가 입만 열면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이 농부는 소를 기르고 있었는데,하루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 송아지 쌍태를 주시면 한 마리는 꼭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기도가 응답되어 이란성 송아지 쌍태가 나왔는데 한 마리는 누런 송아지고,다른 한 마리는 얼룩 송아지였습니다. 그러자 농부의 마음에 그만 욕심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송아지 한 마리를 드리겠다는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어느 날,그만 누런 송아지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이 농부가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하필이면 하나님의 송아지가 죽다니…. 누런 송아지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는데….”
우리 성도들은 이 농부처럼 처음 마음을 접어서는 안됩니다. 처음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처음 마음을 유지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파선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어느 위험한 해안에, 한 때 볼품 없는 작은 인명 구조 본부가 있었습니다. 건물이라곤 초라한 오두막 한 개 뿐이었고 구명 보우트도 작은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헌신적인 몇 명의 구조대원이 끊임없이 바다를 지켰고 험한 파도 속에서 계속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점차 이 구조 본부는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구조된 사람들 중에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발적으로 구조 대원으로 봉사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많았고, 돈을 대주는 사람들도 늘었습니다. 그래서 이 인명구조 본부는 구명 보우트도 새로 구입하고 구조 대원들도 더 훈련시키는 등 작은 구조 본부가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지고 기구가 커지자 새로 가입한 회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볼품 없는 낡은 건물과 시설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조된 사람들의 임시 피난처가 되기 위해서도 좀 더 편안한 시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상용간이 침대를 훌륭하고 편안한 침대로 갈아치웠고, 건물도 확장 보수하고 좀 더 좋은 가구들을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구조대원들이 대기하는 동안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간단한 운동 기구들과 장기, 바둑 등 오락 시설도 갖추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 인명 구조 본부는 회원들을 위한 대중적인 회합 장소가 되어 버렸고 그곳을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그곳을 더욱 아름답게 치장했고 멋있게 꾸며 놓았습니다. 이런 변화와 함께 회원들은 인명을 구조하는 본연의 임무를 위해 위험한 바다에 나가는 일에는 점차 관심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런 일을 전담할 수 있는 구조대원들을 새로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가자 그 다음 번에 모인 회원들의 총회에서는 불화가 생겨났습니다. 많은 회원들은 클럽의 인명 구조 활동들이 별로 즐겁지도 않고 오히려 위험한 일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제부터는 인명 구조 활동은 그만 두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사교 클럽으로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회원들은 인명 구조 활동이야말로 이 조직 본연의 임무요 목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인명구조 본부가 사교 클럽으로 바꾸어져서는 않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주장은 투표 결과 패배당했고, 만일 그들이 계속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저 아래편 해안에서 그들나름의 구조본부를 새로 만들어 시작할 수 있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교 클럽에서 나와 새로이 구조 본부를 만들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새로 생긴 이 인명 구조 본부는 옛날 구조 본부가 겪었던 똑같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구조 본부는 또다시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 발전해버렸고, 그래서 또 그 아래편에 또 다른 인명 구조 본부가 새로 생기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었고 그래서 만약 우리가 오늘날 그 해안을 방문한다면 우리는 그 해안에서 수많은 클럽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바다에서는 여전히 파선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구조 당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중요한 사명은 사람을 생명을 구하는 일인데, 많은 교회가 선교를 통해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자체 유지와 교인 상호 간의 친목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인명 구조 본부의 역할보다는 사교 단체나 친목 단체의 역할만 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유해지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처음 마음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처음 믿음을 가졌을 그때로 돌아갑시다. 오직 예수만을 위해서 살기로 작정했던 그때로, 때묻지 않은 맑고 순수한 믿음을 가졌던 그때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주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드리던 그때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이제 우리 모두 새로운 각오로 처음 사랑을 가지고 주님께 충성을 다하며 살아갑시다.
*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가 처음 믿을 때의 뜨거움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과 함께 살며 주안에서 승리하는 생활하게 하여 주세요 그래서 비록 작지만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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