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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32: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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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하나님을 사모하며 성전건축을 위한 간구
본문: 시편 132편 1- 18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근심한 것을 기억하소서. 저가 여호와께 맹세하여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였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은 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 내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고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영적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어떤 것보다도 천국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얼굴을 갈망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만족을 얻을 수 없어 탄식하며 그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 즉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보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주의 성전을 사모하고 주의 궤(언약, 말씀)을 사모합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시107:9)
18세기 미국의 청교도 설교가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 영혼을 만족케 하는 유일한 행복이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온전한 기쁨을 누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좋다. 아버지, 어머니, 남편과 아내, 자녀들, 또는 세상 친구들은 단지 그림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사26:9)
18세기 북미 인디언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도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742년 6월 15일 화요일, 내 생애에서 가장 간절하게 하나님에 대해 갈망했던 날이다. 정오 경에 나는 외딴 곳에서 달콤한 적막 가운데 나의 주님께 이렇게 아뢰었다. '주님, 제가 오직 당신만을 갈망하며, 오직 거룩하기를 갈망한다는 거 아시지요. 당신이 저에게 이런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제게 그런 마음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당신밖에 없습니다.'"
에드워즈, 브레이너드처럼 우리 보물이 천국에 있을 때, 우리 마음은 다른 어떤 것보다 천국을 애타게 사모할 것입니다. 성숙의 과정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천국의 거룩함에 대한 열망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42:1-2)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130:6)
감옥의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차한 살림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수군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함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진리를 갈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잠시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시편에서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즐거움을 만납니다. 하지만 시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할 이유가 우리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셨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 영원한 기쁨을 주시고자 그분이 죽음도 감수하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더욱더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시인들의 시에는 그분을 너무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최고의 상태에 있을 때에나 찾아오는 그런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성전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살고 싶어했습니다(시27:4).
"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1)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아가7:10)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나 사모함이 없다면.....
말씀이 진리요, 생명인줄 알지만 사모함이 없다면....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통해 사명을 주시고 살게 하지만 공동체의 사모함이 없다면.....
이는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참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께 대한 양정, 사모, 앙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것이요, 관념과 지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온종일 주님을 바라는 생활을 합시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사모함을 갖는 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매일 매일 말씀을 사모하는 가운데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이 순간도 제 영혼이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약속대로 제 영혼을 만족케 해주고 계십니다. 제 영혼에 좋은 것으로 채워 주고 계십니다.
유머 작가인 루코크가 현대판 사도행전을 엮었습니다. 그는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 강림은 불가능했다는 것을 풍자를 통해 재미있게 말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린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120명은 모여야 할 이 예배에 참석한 자는 40명뿐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직장에서 시간외 근무를 하느라, 요한은 골프 약속 때문에, 야고보는 시험공부 때문에 부득이 교회에 나올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길 같은 성령도 이 다락방에 내려오는 것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며 간절히 바라는 심령에게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사람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고 있는 대상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즐겨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중하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한 영혼을 얻기 위해 때로는 우리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약속하신 좋을 것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영이 주를 사모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본 시편은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되어 언약궤를 안치하는 기쁨속에서 성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다윗에게 베푸신 언약과 은혜에 대한 감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본서는 내용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먼저 전반부 1- 5절은 옛날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성전을 짓겠다고 한 서원을 회상하는 부분으로, 여기에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다윗의 열심히 어떠했는가를 잘 나타납니다. 실로 다윗은 비록 하나님에 의해 성전 건축의 뜻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성전을 지어 하나님의 언약궤를 안치하기 까지는 그의 화려한 백향목구에 거하지 않기로 서원할 만큼 성전 건축에 대한 열의가 지대했었습니다.(삼하7:2)
이어 중반부 6- 9절은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시온으로 옮겨와 그가 예비한 장막에 안치할 때(삼하6:12- 19)의 감격적인 상황을 회상한 것이며, 후반부 10- 18절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회상하면서 그 언약들이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확신을 노래합니다. 다시 두 부분으로 요약하면 다윗 왕이 여호와를 위해 법궤를 찾아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했던 간절한 소망과 그 성취 과정을 서숧하고(1-9절, 삼하 6장) 이어서 하나님께서 다윗왕과 시온에서 세우셨던 언약을 기억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결국 본서는 성전 순례자들이 성전건축과 관련된 과거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그 성전 안에서 간절히 사모하고 기쁘게 찬양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함과 동시에, 다윗 언약을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와 축복에 대해 감사 찬양하고 그를 더욱 소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성전을 향해 순례하며 영원한 왕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부를 찬양이기도 합니다.
본문 3, 4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번영과 부를 누리는 다윗에게 있어 자신은 호화로운 곳에 거하고 하나님의 거처가 휘장 가운데 있음은 실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까지 모든 개인적 즐거움을 절제하기로 서원한 듯합니다.
이렇듯 다윗왕은 얼마나 성전건축을 사모했는지 모릅니다. 다윗의 열망은 대단했습니다. 많은 돈과 물자와 인력을 준비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의 성전”, 그 축복을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 까닭은 성전건축은 열망, 열정만 가지고, 돈, 재력만 있으면 짓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집을 지을 자격을 구비했는가? 다윗은 거기에서 걸렸던 것입니다.
성전은 아무나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한 믿음의 성숙, 인격의 성숙, 최선의 헌신을 요구하는 사역입니다.
왕상5장3절에 “당신도 알거니와 내 부친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인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왕상5장4~5절에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며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위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대상22:8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그래서 평화의 왕이라 불리우는 솔로몬에게 그 축복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이러한 마음을 너무나 잘 아셨으므로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9절을 읽겠습니다.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를 행하며 모든 주의 백성들은 즐거이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본문 12 절을 보겠습니다.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어떤 목사가 뉴욕에서 한 유명 인사와 식사를 하다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어쩌면 좋습니까? 열두살난 제 조카가 권총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잘생긴 얼굴에 성적도 모든 과목을 A학점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스케이트 대회에서 여러 차례 일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조카가 시카고에서 열리는 스케이트 대회에 나간다고 하기에 제 엄마가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시카고까지 스케이트를 타러 가서야 되겠느냐’고 말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2층 아버지 방에 가더니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머리에 대고 쐈다는 것입니다. 단지 시카고에 가지 말라는 말 한 마디에 권총 자살을 하다뇨.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자녀에게 말씀을 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헛된 교육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서 마음에 심어 주지도 않고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착각은 반드시 고쳐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면서도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아, 여호수아의 다음 세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교육 공백 이후에 사사기의 영적 암흑기가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5-9)
우리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여 할 것을 가르쳐야 자손대대로 영원히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은 일차적으로는 다윗과 그를 이어 왕위에 오를 후손들로 하여금 그들의 대적을 쳐부수고 승리케 함으로써 다윗 왕국을 크게 번성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본절 역시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사 사단의 권세를 쳐부수고 영원토록 왕 노릇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전건축을 원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시149:1-3절에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고 말합니다. 150:1절에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4절에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좋아 찬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법괘를 되찾아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너무 좋아 춤을 추다가 그의 옷이 벗겨져 버린 것을 그의 아내 미갈이 보고 비웃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일 때문에 그의 태가 막히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고, 하나님만 높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기에, 더욱 하나님만 자랑하고, 하나님이 선택하셨기에, 기름부은 자를 존경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제가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합니다. 앞으로 더욱 더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어떤 환경과 죽음 앞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성도들이 많아지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심령으로 사모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가 평생 주님만을 사랑하며 고난을 당할 때에도 주님과 함께 있음을 감사하게 하소서.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저도 좋아하고,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저도 싫어하며 주님이 이 땅에서 하셨던 일을 저도 행하게 하소서.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도록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하는 데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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