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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3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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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형제간 연합의 아름다움
본문: 시편 133편 1- 3절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에 레드우드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사막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심한 더위와 가뭄 때문에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사막에 어떻게 레드우드 공원과 같은 숲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물을 주기도 하지만, 여러 나무가 함께 자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많은 나무가 함께 자라면서 바닥에는 늘 그늘이 지고 습기가 잘 증발 하지 않아서, 나무가 죽지 않고 숲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 울창했던 밀림의 나무들도 한 그루씩 자꾸 베어지면, 앞의 경우와는 반대로 점차 땅이 메마르게 되어 나머지 나무들도 전부 말라 죽고 맙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공동체 속에 내가 있지 않으면 말라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사랑한다는 것,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쉽고 당연한 일 같지만, 어찌 보면 그처럼 어렵고 힘든 일도 없습니다. 공동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실천하려면 자기희생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 9- 12)
오늘 시편 133편은 형제들 간의 화목한 연합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독일의 나치 치하에서 그 무서운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결국 39세의 나이로 처형당한 본회퍼 목사의 박사논문에 “신도의 공동생활”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첫 줄에 본문의 말씀이 그대로 인용되었습니다.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이!"
본 회퍼는 그의 논문에서 신앙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 공동체와 가족 공동체(혈연 공동체)로 나눕니다. 사회적 공동체는 이익집단으로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모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 공동체, 혈연 공동체는 자발적인 공동체로 순수하게 모여진 공동체입니다. 이익 집단은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모입니다. 하지만 자발적인 모임은 의미 있는 삶의 가치와 보람을 위하여 하나가 됩니다. 여기에서는 돈이나 권력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발적인 집단에서는 시편의 말씀 그대로 “형제가 연합하여 같이 모이니 얼마나 좋은가? 참 좋다“ 라는 감탄사가 나옵니다. 어느 사이인가 교회가 이익집단의 형태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교회의 중심에 제도나 물질이나 힘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기쁨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자발적인 모임으로 행복공동체의 기능을 다하지 못함으로 성도들 상호간에 기쁨과 감격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절대로 사회적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익집단처럼 세상적인 돈과 정치와 제도가 교회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이 지배하고 말씀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한 형제 자매로 뭉쳐진 가족 공동체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회를 찾으시며 기뻐하십니다.
1.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들입니다.
사람은 때때로 외롭거나 쓸쓸할 때가 있습니다. 친구도 형제도 귀찮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때는 화목이니, 우애니, 친절이니 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인 것같이 여겨집니다.
"0"이라는 수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0"은 그 자신이 외롭고 초라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이 있어 줄 친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0"은 1, 2, 3... 모든 숫자를 만나 보았지만 그들은 모두 작고 가진 것이 없는 "0"의 친구가 되기를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0"은 좌절감에 빠지고 맙니다.
"1"도 "0"와 마찬가지로 친구를 찾아 헤맸지만 거만한 숫자들에게 거절당하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1"과 "0"은 친구가 되어 "10"을 이루게 되자 이제까지 무시하고 멸시했던 숫자들이 모여들어 친구가 되기를 간청했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작고 미약한 존재일지라도 뭉치고 합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1"이나 "0"은 분명히 "8"이나 "9" 보다 작고 초라한 숫자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10"이라는 수는 확실히 "8"이나 "9"보다 크고 우월하지 않습니까?
교회는 힘없고 작은 사람들이 협동하여 큰일을 이루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11명의 힘없고 낮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늘의 기독교를 이루었듯이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보혈로 맺어진 한 형제, 자매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한 형제, 자매들이기 때문에 함께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인들을 서로 만날 때마다 한 형제, 자매로 만나야 합니다.
사회적인 신분의 차이나 빈부의 차이나 학벌의 차이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가 연합하여 사랑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격이 다르고, 받은 은사가 다 각기 다를지라도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 서로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화목한 분위기를 서로가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2. 형제가 서로 연합하고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서 가장 무거운 썰매를 끌 수 있는 건강한 말을 뽑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대회에서 1 등을 한 말은 2,0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2 등을 한 말은 1,8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었습니다. 이 두 말의 주인들은 만약 두 말이 힘을 합하면 얼마만큼의 무게를 끌 수 있을 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두 말이 함께 썰매를 끌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5,5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 수가 있었습니다. 1,700kg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나누어 함께 하기를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끙끙거리면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참으로 비능률적인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불어서 일하기를 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짐은 가벼워지며,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모세가 혼자서 백성들을 돌보느라 너무 힘들어 하자, 장인 이드로의 충고로 천부장, 백부장 등을 세워 협력하게 되었습니다.(출 18:14-26)
형제가 서로 연합하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 연합을 깨뜨리는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연합을 방해하는 온갖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악한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형제가 서로 연합하며 살려면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합니다. 허물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해치는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에게 이로운 말을 하며 도움을 주고 기쁨을 주도록 해야 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살기를 원한다면 서로 상처를 주거나 형제로 넘어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남을 실망시켜서는 안됩니다. 서로 서로 짐을 져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해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주고 기쁨을 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 형제가 연합하는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의 기도처럼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고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이해하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이처럼 형제가 연합하고 사랑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있습니다.
본서는 연합하여 사는 것에 대하여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름부음과 이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 기름부음은 성령의 은혜를 가르치고 이슬은 산천초목을 살리는 생기를 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백성들에게 내리는 신령한 은혜와 육신적인 은혜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형제의 연합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축복이 약속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가 왜 부흥했습니까? 형제가 서로 연합하여 성령의 기름 부음이 넘치고 세상으로부터 칭송받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향기가 널리 퍼지듯 화목한 교회는 아름다운 소문이 널리 퍼집니다. 벌이 향기를 좇아 날아오듯 교회의 화목한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달려오는 것입니다. 형제간에, 성도간에도 화목해야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땅에서 풀고 화목해야 하늘에서도 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모든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고 했습니다.
화목한 사람만이 영생을 얻습니다. 불화하는 사람, 즉 화평을 깨뜨리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히 12: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아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를 보지 못한다는 말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생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형제간에 화목하는 것입니다.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복을 받아 누리는 형제 자매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철새인 기러기들은 이동할 때 한 줄 혹은 V자 형태로 날아갑니다. 그렇게 기러기가 무리를 지어 나는 이유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유는 무리를 지어서 날면 한 마리가 날아갈 때보다 훨씬 힘이 덜 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앞에 있는 기러기가 날개짓을 하면서 내는 바람이 뒤에 있는 기러기를 올려 주고 또 그 기러기가 내는 바람은 바로 뒤에 있는 기러기를 올려 주어 혼자서 날 때보다 71%나 힘이 덜 든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기러기 떼와 같이 서로에게 상승 작용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모여서 서로 격려하고 세워 주어 보다 나은 하나를 이룰 수 있어야지, 한데 모여 헐뜯고 싸워서 공동체를 파괴한다면 차라리 모이지 않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된 그리스도인의 형제 관계는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서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 내의 공동체 혹은 교회 밖의 공동체에서도 우리는 형제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에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서로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한 인간의 삶은 관계로 시작해 관계로 끝맺음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생은 바로 끊임없이 타인을 만나는 일로 이뤄집니다.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과 페니실린을 발명한 알렉산더 플레밍의 만남을 봅시다. 처칠은 물에 빠진 플레밍을 구해주고 가난한 플레밍이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후에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명해 폐렴에 걸린 처칠을 고쳐주게 됩니다. 아름다운 만남이 아닙니까.
아름다운 만남은 먼저 연합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형제 친구 성도가 연합할 때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식구들이 함께 모일 때 정말 보기가 좋습니다. 친척들이 함께 모여 나누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함께 모였다고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서로 연합해 동거할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 같은 마음으로 모였듯이 마음으로 서로 하나가 될 때 정말 아름답습니다. 연합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비록 성격이 다르고 기호가 달라도 함께 서로 용납하며 하나 될 수 있을 때 이것이 바로 연합입니다.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 성도가 하나 되고, 이웃을 만나 전도함으로써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며 아름다운 만남을 이뤄나가야 합니다.
본문 2절을 보겠습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연합하는 일이 "보배로운 기름"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기름이 아니고, "아론"의 수염으로 흘러내리는 기름이라고 했습니다. 아론의 예복의 깃으로 흘러내리는 기름은 제사장의 성별의식에 사용된 거룩한 기름입니다(출30:22~33). 기름은 아무 때나 쓰이지 않습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세울 때 사용하였습니다(삼상 16:13). 그들을 세울 때 사용되는 기름은 보통 기름이 아닌 <거룩함의 기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기름입니다. 이런 기름이 부어질 때 하나님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아론이 수염이 있었다니 얼마나 멋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기름은 은혜를 상징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말씀의 은혜, 구속의 은혜, 성령의 은혜를 받을 때 변화되고 이런 은혜의 향기가 가득할 때 공동체는 건강해지고 자꾸 모이게 됩니다. 이런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 만남을 이뤄나가고 놀라운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보배로운 기름은 많은 재물을 뜻합니다. 오늘날 보배로운 기름을 얻기 위해 너무나도 쉽게 자신들의 ‘아름다운 이름’을 포기하는 현대인들이 많습니다,
“좋은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전7:1)
우리는 재물보다 명예 그리고 물질의 풍요보다 형제간의 사랑과 연합을 더 귀히 여겨야 합니다.
본문 3절을 읽겠습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헐몬 산은 팔레스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이스라엘 중심을 흐르는 요단강의 근원지라는 점에서나 헐몬 산의 큰 구름 층이 시온의 남방까지 이른다는 점에서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간의 유기적 연합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교제와 연합은 하나님중심적일 때 참된 것이 되며 아름다운 것임을 교훈받게 됩니다.(골2:2, 요일4:7)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원죄로 인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나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고 아름다운 관계를 가질 때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연합하는 생활, 은혜의 생활, 영생의 축복을 얻기 위해 우리 곁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도들간에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제 자매는 피를 나눈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한 어머니 태속에서 생명을 얻은 특별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처음 태어나면서부터 한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난 특별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아버지를 통해서 새롭게 창조되고 조성된 사람들! 중생의 거듭남의 기쁨과 환희와 감격 속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원해서 만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깊으신 경륜과 의지와 섭리 속에서 맺어진 사람들!. 우리가 신앙하는 이상 우리가 형제임을 부정하려야 할 수 없는 숙명적인 사람들입니다. 가정의 형제들이 부모의 피를 나눈 형제라면,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만나진 형제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를 값으로 치른 형제들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연합하는 사랑의 공동체, 신앙이 공동체를 이룰 때 우리교회가 참으로 아름답게 변화될 것입니다.
서로 서로 주님 안에서 피로 값 주고 산 형제, 자매되심을 고백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세워주며 칭찬하고 아껴 주는 행복한 공동체, 신앙 공동체의 뗄래야 뗄 수 없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 아버지, 제게는 가정과 부모와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또 일할 수 있는 직장과 조국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주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저처럼 그렇게 행복한 삶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거처할 가정이 없이 방황하는 자들과 신앙이 박해받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근로 환경이 열악한 상태에서 낮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격무에 시달려 일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과 가정에서 동정을 받지 못함은 물론 심지어 학대를 당하는 자들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자들과 정신 이상에 걸려 정신요양소에 수용되어 있는 자들과 옥에 갇혀 있는 자들과 사람들로부터 멸시 당하고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총을 베푸시옵소서. 오! 하나님, 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그들의 불행을 결코 잊지 않게 하옵소서. 더불어 사는 훈련을 하게 하소서.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서로 돕게 하소서. 우리나라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다운 사랑과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주님과 아름다운 만남을 통해 구원의 기쁨을 주시고 형제와 연합하는 생활, 은혜의 생활, 영생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참다운 사랑과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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