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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시편 목련화............... 조회 수 3371 추천 수 0 2011.01.11 18: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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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1-6 
설교자 : 이원준 목사 
참고 :  

성경/ 시1:1-6, 제목/ 복 있는 사람이 누구

 

약 좋다고 남용 말고 약 모르고 오용말자. 아무나 성경 말씀을 들먹인다고 해서 믿음 있는 것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써 먹는다고 해서 경건한 것 아니다.  마4장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성경 말씀을 도구로 사용했다. 마귀는 자기 행동을 합법화하는 도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했으나 예수님은 그의 잘못을 단도직입적으로 지적, 꾸짖으셨다. 제대로 알고 들먹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죄 정함을 면치 못하며 불경건한 자로 낙인찍히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대한 죄로 심판받는다.

 

시편은 복있는 자는 하고 복이라는 말씀으로 시작을 한다. 이 말씀은 시편을 여는 관문이고 열쇠이다. 복의 개념을 바로 알아야 한다.

 

복있는 자는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돈있고 명예있고 권세있고 --- 뭐 그런 것인가? 착각이다. 오해이다.  복 있는 사람은 -- “아쉬레이 하이시” 라고 하는데 이 말을 직역하면 “그 사람의 복이여” 그런 뜻이다. 그 사람의 복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그런 것이라는 거다.

 

복이라는 말은 올바르다, 번영하다는 뜻에서 왔다. 올바른게 복이고 번영하는 게 복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원리상 올바르지 않으면 번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번영하는게 먼저가 아니고 올바른게 먼저이다. 올바르지 못한데 번영한다면 그건 복이 아니다. 풀이 먼저 자라고 왕성하다. 그것은 복이 아니다.

 

구약성경에서 복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바라크와 아솨르가 있는데 바라크는 415번 정도가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이 누군가를 축복할 때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리한 자가 축복할 때 사용되었다.  바라크는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이다. 인간의 선행과 관계없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크신 긍휼과 자비를 인하여 인간의 산업과 후손과 육체에 내려주시는 복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복을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주시는 것이다. 언약관계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이 복을 주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일차적 관계 안에 있는 것이 된다.  믿는 자의 후손, 믿는 가정에 태어나면 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솨르는 (복수형 -아쉬레이) 구약에 총 44회 중 시편에 26번 잠언에 8번 욥기와 전도서에 1번씩 나온다. 나머지는 구약에 골고루 나온다. 아솨르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 대한 보상으로 내리는 복에 대하여 인간이 고백하거나 기원하는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사오니 복을 내려 주옵소서 그렇게 간구할 때 주어지는 복을 말한다.

 

또 다른 뜻은 하나님 나라에의 참여를 통해 오는 특이한 즐거움을 가리킨다.

 

복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이 언약안에 있을 때 주권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순종할 때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했을 때 얻는 즐거움이다. 하나님의 율법,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받고 누릴수 있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에서 복에 주목했는데 이제는 사람에 주목해 보자.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그 사람만이 여러 형태의 복을 누릴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말했는데 원래는 “그 사람의 복이여” 그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그 사람의 복은 이런 것이다 그런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의 복은 무엇인가? 말씀을 따라 살아서 무엇을 받는 그것이 복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사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말씀이다.  복있는 사람이란 믿음이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 안에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의 복을 누릴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악인은 세상적으로 도덕적으로 악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유죄한 자,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법정에서 하나님의 율법, 말씀에 의해 죄가 있다고 입증, 판정된 자를 말하는 것이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가치 대신 자기만의 삶의 원리가 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안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이고 뭐고 없다. 다 집어 치운다. 이것이 바로 ‘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다.  꾀는 의도, 도모 등과 같은 뜻이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완전히 타락한 것이고 부패한 것이고 더러운 것인데 그 마음에서 좋은 것이 나올리 없다. 좋은 것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 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어리석고 부질없는 것이다.

막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했으니 이런 것들이 이미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좋은 것이 나오겠는가? 악한 꾀들만 나오는 것이죠. 자기 이익을 위해서 악한 꾀를 내는 것이다.

 

좋은 것들이 나오기 위해선 마음이 갈아엎어져야 하고 뒤집어 져야 한다.

[호10:12]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렘4:3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믿음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 안에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악인의 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죄인으로 정죄된 사람의 생각,말 행동 습관 유혹--- 이런 것을 따르지 않는다. 동조, 묵인, 지지 ---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이란 표적을 빗나가거나 미치지 못하거나 길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율법에서 빗나간 자를 죄인이라고 한다. 율법이란 무엇이냐,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율법은 중간이 없다. 하라, 하지 말라 둘 중에 하나이다. 하라 안하면 죄이고 하지 말라- 하면 죄이다. 해야 될 것을 다하지 못했다. 한다고 했는데 잘 못했다. 했는데 지나쳐 버렸다. 죄이다. 죄인은 율법, 하나님의 길을 가지 않고 자기 자신의 길을 간다.

 

죄인의 길에 선다는 말은 죄인과 동행한다는 말이다. 짝짜꿍하는 것이다. 음모를 꾸미고 모략을 꾸밀 때 거기에 함께 동조하는 것이다.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왕이 된 다음에 두 사람을 징벌한다.

왕상2: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로되 네가 내 부친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부친이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날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2: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으니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

2:29 혹이 솔로몬 왕에게 고하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로되 너는 가서 저를 치라

 

악한 사람에게 동조하는 것은 함께 망하는 길이다. 그런데 믿음있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그 영혼에게 깊이 박혀 있는 사람은 분별을 할줄 알기 때문에 아무리 꾀어도 망할 길을 가지 않는다. 물 불을 못 가린다 하고 똥 오줌을 못가린다 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모른다고 한다. 진리, 옳고 그른 것, 갈 곳과 가서는 알될 곳, 따를 것과 따라서는 안될 것, 이런 것을 분별 못하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 즉 믿음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복있는 사람의 삶을 살지 못한다. 함께 망하는 것이지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레침이라고 하는데 조롱하다, 비웃다는 뜻이다. 오만한자는 조롱하는 자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악한 말로 조롱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들먹이나 행위로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있으면 이래, 하나님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등등 교만한 말을 내뱉는 것이다. 복있는 사람, 믿음있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 속에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과는 같이 앉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자리의 철학을 아는 것이다. 설자리 앉을 자리를 아는 것이다. 같이 앉는다는 것은 한 패라는 것이다. 동류라는 것이다. 똑같다는 것이다.

 

찬송가 269장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믿다가, 마귀만 쫓다가, 재물만 취하다 죄값으로 지옥형벌 너도 ,저 마귀 지옥갈때에 너도 가겠구나, 세상 물건 불탈때에 너도 타겠구나  자리를 분별하지 못하면 같이 망한다. 도매값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믿음있는 사람은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여 같이 망하지 않는다. 믿음이 없어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것이다.

 

복있는 사람은 믿음 있는 사람이다. 가슴 속에 말씀이 살아 꿈틀대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깨달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복있는 삶을 산다. 복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복이여 그랬다. 그 사람의 복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와는 한시도 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시1:1-6, 제목/ 복 있는 사람 (2)

 

복 있는 사람은 믿음있는 사람이고 믿음있는 사람은 결국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지난주에 살펴봤다. 1절은 복있는 사람의 소극적인 면이고 2절은 복 있는 사람의 적극적인 삶이다. 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할 것은 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의 또 다른 삶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

즐거움이란 낙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을 낙으로 삼느냐 하는 것이죠. 복있는 사람- 믿음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이라는 말을 앞에 썼다. 우리가 즐거움을 삼는데 가끔씩 드문드문 어쩌다가 간혹 그것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으로만 즐거움을 삼는 것이다.  믿음 있는 사람은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다. 즐긴다는 말이 무엇인가? 기뻐한다는 의미이다. 믿음있는 사람은 주의 말씀을 즐긴다. 기뻐한다. [시119:77]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시119: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시119:16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시119:24]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시119:92]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시119:143]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고난 환란 우환 인생의 숱한 역경 속에서도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였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렘15:16]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기쁨이 무엇이고 마음의 즐거움이 무엇인가? 무엇을 기쁨으로 삼고 무엇을 낙으로 삼느냐 믿음 있는 사람-- 복 있는 사람의 판단 기준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신다.

 

복있는 사람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 여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주야는 밤 낮이죠.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묵상한다는 말이다. 묵상한다는 말은 말씀의 깊이(의미)를 음미하고 그 말씀으로 영의 양식을 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되새김질을 하는 것이다.

 

소, 양, 같은 초식 동물은 특히 소는 위장(밥통)이 네 개다. 눈이 큰데 겁이 많다.  그래서 먹이를 먹을 때 얼른 삼키고 시간이 있거나 여유가 있을 때 안전한 곳에서 먹은 것을 반추해 내어 다시 씹는다.  되새김질이라고 한다. 소를 보면 하루 종일 입을 우물우물한다. 그게 되새김질을 하는 것이다. 되새김질을 하려면 먹은 것이 있어야 한다.  먹은 것이 없어서 위가 텅 비었으면 되새김질을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소가 우선은 먹는 것은 욕심이 있어서는 아니다. 생리상 그렇게 하는 것이다.

 

복있는 사람- 믿음 있는 사람은 생리상 하나님의 말씀을 먹게 돼 있다. 식욕이 땡기는 것처럼 말씀이 땡긴다. 말씀에 대한 욕구가 강렬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말씀을 먹는다. 많이 먹는다. 자주 먹는다. 항상 먹고 언제나 먹는다. 읽기를 통해서 먹고 공부를 해서 먹고, 방송을 통해서 먹고-- 그리고 후에 묵상한다. 음미한다. 그래서 죄악에 빠지지 않고 죄와는 결별된 생활을 한다.

 

소가 먹은 것이 있어야 되새김질을 한다고 했는데 신자도 말씀을 먹은 게 있어야, 아는게 있어야 묵상을 하던지말던지 할 것이 아닌가?  아무 것도 들은 것이 없고 아는 것이 없으면 무엇을 묵상할 것인가? 율법, 말씀을 모르고, 아는 것이 없고 먹는 것이 없으면 복있는 사람- 믿음 있는 사람이 아니다. 베드로 전서 1장에서는 거듭남을 말하고 2장에서 거듭난 사람은 어린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한다고 했다.

그래서 복있는 사람- 믿음 있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고 거듭난 사람이라야 말씀을 사모하여 먹고 묵상한다.  성경에는 소 양 이런 가축은 고기를 먹으라고 했다.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기 때문이다. 굽이 갈라졌어도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가축의 고기는 먹지 말라 했다. 굽은 갈라졌는데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은 무엇인가?

대표적인게 개와 돼지이다. 개와 돼지는 굽은 갈라졌는데 되새김질은 하지 않는다. 개와 돼지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 보았는가? 개는 욕심사납게 먹기는 잘한다. 하도 먹는 것을 밝혀서 토했다가도 다시 먹는다. 그것은 더러운 것이다. 분별을 못하는 동물이라 하여 부정하게 여긴다.

 

돼지는 또 얼마나 잘먹는가? 배가 터지도록 먹고는 누워서 뒹굴기만 한다. 주인이 이렇게 맛있는 것을 많이 주셨구나 어떻게 보답할까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은혜를 모르는 자를 개, 돼지만도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개는 주인을 보면 꼬리라도 친다. 돼지는 꼬리치는 것도 없다.  돼지가 먹을 것 같다 준다고 꼬리치는 것 보았는가?

 

유대인들은 개와 돼지를 부정한 동물이라 하여 경멸한다.

지금은 율법시대가 아니고 은혜시대이기 때문에 돼지고기 보신탕 맛있게 먹는다.

 

요즘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택할 것을 택하고 그 다음에는 그 택한 것에만 집중한다는 뜻이다. 좋은게 좋지 하고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바보이다. 믿음없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누구만큼 마음이 넓지 못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회칠한 무덤이라고 욕을 했겠는가? 예수 믿는 사람은 무조건 사람이 좋아야 된다고-- 예수 믿는 사람이 너무 분명하게 굴면 안된다고 한다.

그것은 세상을 두리뭉술이로 살아가려는 수작이다. 잘못해 놓고도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며, 잘 못한 것을 모르며 어거지를 쓰는 사람에 대하여는 단호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형제가 네게 죄를 범하거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이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하여 무조건 용서받으려고만 한다.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하실 때 그가 돌아와서 회개하면,잘 못을 시인하고 사과하고 회개하면 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예수님이 누구만 못해서,마음이 좁아서 그렇게 조건을 붙였겠는가?

 

간음중에 잡혀온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하셨다. 이유는 예수님 앞에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다. 같은 죄를 또 지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믿음 있는 사람은 분별을 잘한다. 말씀을 알고 믿기 때문에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구분한다. 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안한다.

두루뭉술이로 넘어가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다. 믿음 없는 사람은 복 없는 사람이다. 복 없는 사람이니까 악인의 간사한 꾀도 따라가고 죄인과 같이 행동하고, 하나님을 대하여 함부로 말하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떡허니 자리 펴고 앉는 것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갈 때 정신차리면 산다고 했다. 정신 차리고 예수 믿자. 정신 차리고 예수 믿어야 산다.

 

성경/시1:1-6, 복 있는 사람

 

인간의 일반 상식은 일상적인 것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알수 있다. 이를테면 묘목을 보고 무슨 나무인지 아는 것이다. 그런데 더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좋은 나무는 열매를 보면 안다고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열리지 않고 못된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이러 이러한 것을 하지 않고 이러 이러한 것을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말씀의 요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런 것을 하지 않고 이런 것을 하였는지는 그 결과를 보아서 알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하지 않고 한 것의 결과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다는 것이다.

 

1.복 있는 사람= 믿음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언제나 충분한 수분을 공급받아 그 생명력이 싱싱하다. 복 있는 사람의 현상이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간헐천이 많다. 왕상 17장에 보면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릿 시냇가로 가서 머물렀다. 거기 머무는 동안 시냇물을 마셨는데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시냇물이 말라버렸다. 바닥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의 시내는 이렇게 이 따끔 물이 흐르는 간헐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로를 말하는 것이다. 간헐천은 비가 왔을때만 잠간 물이 흐르다가 비가 오지 않으면 물줄기가 말라 버린다. 그러나 인공으로 만들어진 수로는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오기 때문에 항상 물이 넉넉히 흐른다. 믿음 있는 사람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는 것이다. 항상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는다. 기쁨이 채워진다.

기쁨이 충만하고 은혜가 넘친다. 복 있는 자로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늘 은혜를 주신다. 그래서 삶의 현상을 보면 그가 믿음 있는 자인지 믿음으로 사는 자인지  복있는 사람인지 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은혜가 충만하고 기쁨이 넘치면 믿음 있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짜증내고 신경질부리면 믿음없고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다.

하박국처럼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음을 인하여 기뻐해야 한다. [신33:29]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2.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시절을 좇아 라는 말은 시절의 한계를 뛰어넘어 라는 의미가 있다. 요즘은 농사기술이 발달되어 사계절 농사를 짓는다. 한 겨울에도 하우스에서 딸기가 자라고 겨울에도 꽃이 핀다. 벼농사, 보리농사 같은 곡식농사만 겨울을 타지 다른 것들은 거의 전천후로 재배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항상 기쁨을 누리는 믿음 있는 사람은 계절의 한계를 초월한다. 겨울 농사도 잘되고 여름 농사도 잘된다. 사시사철 무슨 일을 하든 형통한다.상황의 악조건을 초월한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만사형통하리라=

렘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17: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겔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계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는 말은 또 이런 의미가 있다. 시절을 좇아 라는 말은 ‘그의 때에’ 라는 의미이다.  그의 때는 죄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항상 그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의 때, 그 사람에게 오는 적기를 의미한다.  그는 죄악을 밥 먹듯이 짓는 무리들로부터 유난을 떤다고 비웃음과 박해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고 꾿꾿하게 그 모든 박해를 견디고 이긴다. 하나님이 그런 믿음 있는 사람에게 때, 適期를 주신다. 그 원수 앞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바로 그 때에 믿음으로 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시73편의 의인은 박해를 겪었다. 의롭게 산 것이 헛되다고 하는 허탈감에 빠졌다. 악인들은 잘 되고 아무 탈도 없는데 의롭게 사는 자기는 조금만 잘못해도 마음만 먹어도 날마다 하나님의 징책을 보며 징계를 받았다. 그래서 회의가 생기고 실의에 빠졌다. 하루하루 믿음을 지키는 것이 힘겨웠다. 문자 그대로 힘든 싸움이었다.

그런데 시 73:16-17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73:16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그의 때 라는 것은 바로 이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인생의 추수기를 말하는 것이다.

나무에는 아무 때나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니다. 나무의 때가 돼야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나무가 추수기에 열매를 맺는 것이 당연하다.  의로운 사람, 복있는 사람, 믿음으로 산 사람도 자기 인생의 추수기, 곧 죽음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운명이 갈리는 그 때에 천국에 들어가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과실이란 것은 생산적인 업적,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은 생산적인 결과, 업적을 남긴다. 악인은 파괴적인 결과를 남긴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심판하신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의 삶이 어땠는지 판단한다. 생산적인 결과를 남긴 사람은 의인, 믿음의 삶을 산 사람이다. 파괴적인 결말을 지은 사람, 아무 것도 남긴 것이 없는 사람은 악하게 산 것이다.

 

3.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는 것은 나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잎이 무성하면 사람들에게 희망, 안도감, 푸근함을 준다. 쉬어가게 한다. 잎이 말랐으면 쓸쓸함, 삭막함을 준다. 아무도 그 나무에 와서 깃들이지 않는다. "홀애비 삼년에 이가 서말이고 과부 삼년에 깨가 서말"이라는 옛말이 있다. 사람들이 내게 꼬이느냐 어떤 사람이 꼬이느냐 내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냐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냐 증거된다.

 

다윗에게는 [삼상22:2]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이들을 통해 나라의 기초를 다졌고 왕국을 건설했다. 압살롬의 반역 때에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에게로 모여들었는데 그들이 다 압살롬과 함께 망했다. 내게 모이는 자들이 의를 위하는 자들인지, 모여서 교회를 세우려는 자들인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자들인지, 악을 도모하고 불평 불만을 조장하고

지도자를 거역하려는 자들인지 중요하다. 전자는 많이 꼬일수록 좋으나 후자는 많이 꼬일수록 비참한 것이다.

 

믿음있는 사람에게는 인생이 싱싱한, 삶의 희망과 의욕이 넘치는, 세상을 한번 좋게 만들어보자 그런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래서 주님에게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같은 꿈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었다.  그러나 불평분자에게는 불평분자만 모여든다. 고라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랬다가 하나님이 지진을 일으켜서 죽게 했다. 아무하고나 어울리지 말고 조심해서 사람들과 짝하라.

 

4.그 행사가 다 형통한다.

 

행사는 행하는 일이다. 형통은 사업이나 장사가 잘되다, 번영하다, 성공하다, 이익을 얻다는 뜻이다. 어떤 것은 잘되고 어떤 것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다 형통한다.  옛 말에 안 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다. 잘되는 놈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넘어진 그 자리가 금항아리가 묻힌 곳이다. 뭘해도 잘되는 것이다. 사업을 해도 잘되고 직장생활을 해도 승승장구하고---

 

이 원인은 1절과 2절에 있다.

수1:7-8에도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신29:9]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왕상2:3]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대상22:13]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형통하고 싶은가? 믿음으로 살라. 정말 믿음있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나는 점점 형통할 것이다. 바닥에 내려갔었기 때문에 이제는 올라갈 일만 있다. 하나님이 올려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살려고 애섰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 믿음은 거창하게 크게 소리치는 것은 없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왔다. 하나님의 정로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지금 유명세를 타고 거창하다고 복있는 사람은 아니다.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 그것은 증명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 편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의 편이기 때문이다. 나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않았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았다. 하나님을 대하여 경만히 말하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되뇌었다. 그러기에 3절의 축복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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