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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주님

시편 복음............... 조회 수 4287 추천 수 0 2011.01.19 07:09:36
.........
성경본문 : 시139:1-24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주님

본문: 시139편 1- 24

 

고층빌딩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장난감 같은 차들과 개미 같은 사람들이 꼬물거리며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보통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한 꼬마가 개미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작은 돌 하나가 굴 입구에 떨어지자 개미들은 안간힘을 쓰면서 그 돌을 밀어냅니다. 개미굴 옆에 떨어진 과자 하나에 몇 마리의 개미들이 붙어 안간힘을 쓰기도 합니다. 꼬마가 개미들이 물고 있는 과자를 살짝 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놓자 혼비백산한 개미들이 이번에는 굴을 찾아 우왕좌왕합니다. 개미들은 세상에 자기들만이 존재하는 줄 알고 열심히 자기 일들을 하지만 꼬마에게는 한눈에 다 보이는 일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로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세상을 감찰하십니다. 시편 기자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라고 묘사하듯이,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도 동일한 돌보심을 베풀고 계십니다. 감찰자 되신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그분께 인생을 맡기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시33: 13- 14)

 

 1. 나를 감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행동과 존재를 아시고 계십니다(1-4절).

어느 가을 달밤에 어떤 사람이 어린 아들과 같이 바람 쏘이려 들판에 나갔더니 무우 밭에 무우가 먹음직하게 보여서 아들보고 망을 보라 하여 아버지는 밭에 들어가서 무우를 잡고 뽑으려고 하는데 아들이 "아버지 누가 봅니다"하니 아버지는 누가 보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주일하교에 다니는 학생이었습니다. 아이는 무릇 두 번이나 번복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에이! 아무도 없지 않니! 하면서 세 번째 밭에 들어가 무우를 뽑으려고 하는데 "아버지 봅니다"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또 나와서 "야! 보기는 누가 보느냐?" "아버지! 하나님이 보십니다“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17:10)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앉고 일어섬과 자기의 생각도 알고 계시며(2절) 자기의 모든 행위도 익히 알고 계시며(3절) 또한 자기의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다윗은 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윗의 언행이나 심사나 동정의 일체를 다 아실 수 있으십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만드셨기 때문에 다윗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14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였기 때문입니다(14절). 다시 말하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으심이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오묘하기에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어제 성경책 욥기서를 읽다가 욥기 7장17-20절 말씀에서 잠시 머물러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하고 너무나 연관이 되는 말씀이라 생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욥은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님께서 크게 여기사 우리에게 매우 큰 관심을 가지시고 주목하시는지, 그리고 순간이라도 우리를 주목하심에 있어서 돌이키지 아니하시는지, 그는 주님을 가리켜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앉고 일어섬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모든 행위를 다 알고 계시며, 우리가 말을 하기 전에도 우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도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참 신기하고 오묘하게 만드셨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제일 잘알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전지하신 하나님, 우리를 감찰하시사 나의 모든 행동과 존재를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2, 우리는 우리를 감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에게서 숨을 수가 없습니다(5-12절).

옛날 어느 수도원에 훌륭한 원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제자들 중에 특히 한 아이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볼품없고, 지능이 뛰어나지도 않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니 다른 제자들의 불만은 대단했습니다. 이에 수도원장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면 그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를 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원장은 제자들에게 작은 새 한 마리씩을 주고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해질 때까지 그 새를 죽여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해질 녘이 되자 제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여 수도원 마당에는 죽은 새의 시체가 쌓였습니다. 그런데 원장이 특별히 사랑하는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작은 새가 산 채로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새를 죽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조용하고 으슥한 곳을 찾아보아도 하나님은 보고 계셨어요. 그래서 새를 죽일 수 없었어요."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잠20:27)

 

 오늘 본문 7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1996년 여름, 전방 지역에 퍼부은 장대비로 홍수가 났을 때 군인들의 막사가 무너져서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때 그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군종 활동을 하던 한 병사가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한밤중 갑작스레 차오르는 물을 피해 내무반의 높은 곳으로 몸을 피하는데 한 병사가 외쳤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줘요. 하나님께 기도해 줘요!’ 물을 피해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우리는 그곳에서 가공할 힘을 가진 자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느꼈습니다.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실존이 얼마나 초라한가 확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물난리의 자리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그분을 느끼는 병사들과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지금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도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하여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뉴에이지 운동이나 불교 등에서 주장하는 범신론적 신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인격적인 신이신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임재하여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의 편재하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분으로써 동시에 어디든 계실 수 있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우리를 제일 잘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렘23:23,24, 암9:2). 우리는 하나님의 감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다윗이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다윗이나 우리를 포위하신고로 우리는 그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손이 항상 우리를 붙드시고 계신고로 우리는 그 분의 관하에서 이탈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박윤선). 이것은 다윗은 조금이나마 이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는 오늘 본문 6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다윗은 편재하신 하나님에게서 피할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음을 하늘에 있을지라도, 음부에 있을찌라도 바다 끝에 가서 거하고 있을찌라도 그리고 흑암 가운데 있을찌라도 다윗은 피할 수 없음을 오늘 본문 8-12절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노아 때의 사람들의 악한 생각과 행동을 보셨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에 요셉이 도망가는 것을 보셨고, 아합과 이세벨을 보셨습니다. 이 눈으로 압살롬을 보셨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대로 갚으셨습니다. 세계 역사 역시 그렇습니다. 이런 눈으로 뭇솔리니를 보셨고 히틀러를 보셨고 동조를 보셨고 보든 독재자들을 보셨고 보신대로 달아보신 대로 갚으셨습니다. 전에 다윗과 밧세바가 은밀한 방에서 남이 모르게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숨길 수 는 없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깨닫고 시편 51편을 고백하였습니다. 주님이시여 내가 주님의 목전에서 이 악한 일을 하였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우리가 무슨 죄를 짓든지 하나님의 목전에서 짓습니다. 전에 아간이 의복과 금은을 감출 때는 남 몰래 감추었습니다. 누구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전에서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중에는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작은 죄나 큰 죄나 하나님의 목전에서 행하는 악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안과 밖을 꼭 같이 보시기 때문에 우리의 악한 생각을 악한 행동과 꼭 같이 미워하십니다. 그러기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음욕을 품으면 벌써 너희 마음속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든 죄 가운데서도 외식하는 죄를 특별히 미워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곁은 깨끗이 하지만 그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도다. 너희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 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 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모든 죄가 가중하지마는 외식하는 죄는 두 가지 죄가 겸했습니다. 속에 있는 더러운 죄, 그것을 가리우는 거짓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깨끗이 하라’ 고 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눈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의 눈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땅에서 무고하고 압박을 받으며 말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의 눈이 이스라엘 민족의 곤고한 것, 슬프고 억울한 사정을 내려다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 민족을 구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오늘 우리 한국 민족의 사정을 다 보시고 계실 줄 믿습니다. 한 나라 한 민 족의 사정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형편과 사정도 보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눈이십니다. 전에 나오미와 룻, 외로운 두 여인을 보셨습니다. 도와 줄 사람 없는 불쌍한 이 여인들을 보시고 도와주셨습니다.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가는 엘리야를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과 물을 주어 새 원기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조용하고 은밀한 가운데 무화과나무 아래서 메시아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는 나다나엘을 보셨습니다. 이달리야 대 백부장 고넬료가 은밀히 기도하며 남모르게 다른 사람을 돕는 자선사업을 많이 했는데 주변의 사람들은 군인으로만 보았지만 하나님은 고넬료의 은밀한 생활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청하게 되고 온 가정이 처음으로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행하시며 그를 진심으로 의지하는 이를 찾아서 그를 지켜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필요한 모든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의 외로운 사정을 보십니다. 우리의 억울한 사정도 보십니다. 우리의 배고픈 사정도 보십니다. 우리의 눈물도 보십니다. 우리의 간절한 소원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과 형편을 살펴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선한 사람을 감찰하시고 그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십니다. 주님의 눈은 불꽃같아서 우리의 속마음을 헤쳐 보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를 살피시고 나를 보십니다. 내 생각과 내 생활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것은 혹시 없습니까? 하나님의 눈이 우리 하나 하나를 지금 보시면서 우리 양심에 말씀하여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 고. 여러분! 스스로 속이지 맙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한 가운데서 깨끗케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자백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우리의 범한 죄를 모르기 때문에 자백하란 말씀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다 아시고 계십니다. 내가 지은 죄를 내가 죄로 인정할 때, 이 죄 때문에 가슴 아파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이사야서29장15절 말씀을 귀담아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화 있을찐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면서 마음으로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13절) 어두운데서 죄악을 범하면서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라고 한다면 ‘화 있을 것이다’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하나님의 편재하심 속에서 숨어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거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어디에 있으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편재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은 참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축복은 예를 들어 시편121편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저와 여러분들을 보호하시며 지켜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실족지 않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들은 의지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을 읽겠습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되는 것입니까? 이 문제는 낙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출생시나 태동시, 혹은 수정 후 몇 주 후부터라고 인위적으로 한정해서 생명의 시작을 규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분명하게 모태에서 조직이 이루어질 때부터 하나님의 창조 과정이 시작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순간에 생명을 태동시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사실을 과학적 입증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았던 시편 기자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연간 150만 건의 낙태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신생아가 연간 60만 명가량 태어나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가 생명을 얼마나 경시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세상 사람들과 달리 생명을 가장 귀중하게 여겨야 할 사람들입니다. 과연 어떻게 땅에 떨어진 생명윤리를 회복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낙태는 분명한 살인임을 자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어, 생명의 고귀함을 아는 사회를 만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3, 나를 감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은 나에게 최고의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17-18절).

오늘 본문 17-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편 기자 다윗은 자기를 제일 잘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또한 자기를 제일 사랑하셔서 모든 관심과 주목을 자기에게 해 주고 계시는 가운데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의 수가 모래보다 많은 것에 대해야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기가 잠에서 깰 때에도 편재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면서 자기를 향하신 생각이 수다함을 깨닫는 다윗의 마음은 어찌했겠습니까? 모든 관심과 초점(주목)이 다 자기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다윗의 마음, 하나님이 보배로운 사랑에 다윗은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14절). 그러한 감사 속에서 다윗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확신이란 하나님께서 다윗을 제일 사랑하시사 다윗의 원수들, 곧 하나님의 대적들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신다는 확신입니다. 이 확신과 더불어 다윗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므로 다윗 자신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확신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확신은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하나님의 편재하심과 특별히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근거한 것입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제일 잘 아시고 또한 제일 사랑하고 계시는 줄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므로 자기를 구원해 주실 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부족하나마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기에 나 같은 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들이 모래 사장의 모래 알들처럼 셀 수가 없다는 이 사실, 생각만해도 힘이 되고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인데 왜 하나님은 나 같은 자에게 셀 수 없는 생각으로 생각해 주시며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 그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들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를 제일 잘 아시고, 우리를 제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그 주님에게서 숨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 23-24절에서 다윗이 기도드렸던 것처럼 우리도 이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체험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우리는 다윗처럼 전지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고 아시길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를 시험하시사 우리의 뜻을 아옵시길 기도하십시다. 다윗은 이 시에서 하나님의 성품(속성) 중 하나님의 전지성, 하나님의 편재성, 하나님의 전능성, 하나님의 불변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전지하시고 편재하시며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과 뜻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길 기도하십시다. 우리의 삶 속에 아무 악한 행위도 없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본문 139편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귀중한 하나님의 창조물인지를 잊고 지내는 이들에게 귀한 위로가 되는 기도입니다.

세상은 어둠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다르다고 너무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이는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참으로 귀하게 여기시는 생명과 영혼들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어려움이 전혀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는 죄악 된 세상에서 ‘굽은 자’로서 여러분 자신을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잣대로 여러분 자신을 다시 재어 본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 주신 놀라운 창조물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남이 보지 않을 때는 행동을 달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시는 분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진실한 믿음으로 , 성도에게 합당한 행위를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가며 여러분은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고 여러분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를 의지하며 살아가십시오. 어떤 환난에도 낙심하지 말고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시고 축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 기도: 우리를 항상 감찰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 안에 아직도 숨겨져 있는 어두움의 영역에 빛을 비추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속 사람이 변화되고 영적인 빛을 소유함으로써 예수님의 영향력을 끼치는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모두 아시고 늘 지켜보심을 깨닫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을 일상 속에서도 늘 느끼게 도와 주소서. 생명의 귀중함을 깨달아 낙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묵상: 늘 당신의 영혼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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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1 시편 온 우주만물들아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시148:1-14  한태완 목사  2011-01-29 2407
4690 아모스 정의를 외친 선지자 아모스 암5:1-15  한태완 목사  2011-01-28 3936
4689 사사기 300명 삿7:1-8  하원양 목사  2011-01-28 2361
4688 시편 복 있는 사람 시1:1-6  조용기 목사  2011-01-27 2354
4687 누가복음 예수님의 오심과 사명 눅4:16-21  조용기 목사  2011-01-27 2264
4686 창세기 바라봄의 법칙 창12:1-5  조용기 목사  2011-01-27 3247
4685 누가복음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눅8:5-11  조용기 목사  2011-01-27 2586
4684 고린도전 옛 사람을 벗어 버려라 고전4:10-11  조용기 목사  2011-01-27 2377
4683 시편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 시144:1-15  한태완 목사  2011-01-24 2679
4682 시편 나를 고치시고 나를 구원하소서 시6:1-10  한태완 목사  2011-01-23 2665
4681 에배소서 계시의 영안을 밝히라 엡1:17-19  강종수 목사  2011-01-23 2235
4680 시편 악인의 응징과 의인의 보호 시5:1-12  한태완 목사  2011-01-23 2414
4679 시편 상한 심령의 구원 호소 시143:1-12  한태완 목사  2011-01-22 2976
4678 창세기 헌신의 3단계 창12:1-9,13:8-9  하원양 목사  2011-01-22 3156
4677 시편 외로운 영혼의 구원 호소 시142:1-7  한태완 목사  2011-01-21 2256
4676 시편 의로운 자를 도우소서 시140:1-13  한태완 목사  2011-01-20 2431
4675 시편 악에서의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 시141:1-10  한태완 목사  2011-01-20 2305
4674 하박국 기쁨의 선지자 하박국 합3:16-19  한태완 목사  2011-01-20 4987
» 시편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주님 시139:1-24  한태완 목사  2011-01-19 4287
4672 시편 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용기와 기쁨 시4:1-8  한태완 목사  2011-01-18 2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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