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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선지자 하박국

하박국 복음............... 조회 수 4987 추천 수 0 2011.01.20 11: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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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합3:16-19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기쁨의 선지자 하박국

본문: 하박국 3:16-19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오늘은 기쁨의 선지자인 하박국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뜻은 '씨름하는 자' '포옹하다' 또는 '움켜쥐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박국은 12 소선지 중의 한 사람이요 하박국서의 저자인데 그의 개인의 사적은 전연 알 수 없고, 하박국은 동시대의 예레미야 선지자보다도 그 전 시대의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더 신앙의 영향을 받은 레위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박국은 성도면 누구라도 품을 수 있는 신앙문제를 가지고서 혼자서 고민하며 씨름하다가 결국에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넘어져 버리고 마는 어리석은 자와 달리 그 문제점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그 분께로부터 해답을 찾을 줄 아는 참된 지혜와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께 두 가지 질문을 하는데 그 첫 번째 질문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유다의 죄악을 벌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내버려두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질문은 일견 하박국이 반정부 주의자 또는 비애국자인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질문의 근본 의도는 불의가 온 사회에 판치는 것에 대한 의인의 고뇌를 하소연하는 데 있으며 또한 징계를 통하여서라도 유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진정한 애국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갈대아(바벨론)를 심판의 도구로 예비해 두셨다는 것인데 그들은 유다를 치기 위하여 아주 신속히 팔레스틴으로 이동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은 하나님의 첫 번째 답변과 관계된 것으로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유다보다 더 불의한 갈대아를 사용하시어 유다를 징계하실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유다가 자신들의 죄 때문에 징계를 당하는 것처럼 갈대아 역시 그들의 죄 때문에 궁극적으로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인데 그 가운데서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질문과 대화를 통하여 하박국은 세상역사를 자신의 선하신 뜻대로 주관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완전히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제는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인하여 온전히 즐거워하리라고 고백하였고, 하박국은 이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실 하나님께선 공의로써 열방을 통치하시며 자기백성을 악인의 손에서부터 온전히 구원해 주실 분으로 만방에 선포하고 증거하였습니다.

 하박국은 유다의 요시야 왕 시대(B.C. 650∼627년경)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하박국의 질문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그리고 하박국의 기도와 하박국의 감사와 기쁨에 대하여 정리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하박국의 질문(불평)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르짖음에 응답지 아니하심을 인하여 탄식하며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그의 하나님께 대한 탄원은 악인의 강포로 인함이었는데, 당시 권세가들이 약한 백성을 압제하고 탈취하는 범죄를 자행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게 심판을 베푸실 것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달라는 기도로서 의인의 당연한 간구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서는 하박국 선지자의 생각대로 악인을 멸하시는 심판을 행치 아니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조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불평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8세에 왕위에 올랐는데 그의 부친 아몬 왕과 그의 조부 므낫세 왕은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몬은 므낫세의 뒤를 이어 22세에 왕이 되었는데 2년 동안 그 부친이 행했던 것과 같은 악을 행하고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이에 신복들이 아몬 왕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나 그를 죽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일어나 아몬 왕을 죽인 신복들을 다 죽이고 아몬 왕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당시 유다는 온 나라에 악이 가득하여 패역과 겁탈과 강포와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해이해지고 공의는 시행되지 못했으며 악인이 의인을 짓밟음으로 공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하박국 1:3, 4).

이때 정의감에 불탄 하박국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니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하박국 1:2, 3)

 이러한 하박국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미 심판이 준비되었으며 그 심판을 행할 사람은 사납고 성급한 백성인 갈대아 사람들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하박국 1:6).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들은 하박국은 또다시 하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하박국 1:13) 하박국 선지자는 유다에 대한 심판이 유다보다 더 악한 민족인 갈대아 사람들에 의해 실시되는 점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와 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하게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더 악하고 더 불의한 자가 활개를 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대답하실까요?

 

2. 하나님의 대답

자신의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이 없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불평한 하박국 선지자의 항의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전에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유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를 듣지 아니 하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정하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기에 기도에 응답이 없다고 불평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감찰하시고 성도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 파수하는 곳과 성루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몇 가지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정한 때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하박국 2:3). 여기에서 “정한 때가 있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시간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작정되었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하박국 2:3)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때에 그의 계획을 성취하시기 때문에 비록 현실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하박국 2:4).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도덕적 의미의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말미암은 의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짓밟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멸망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영생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에게 재앙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 2장 6절부터 20절까지 보면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탐욕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자에게 파멸의 심판을 내리겠다고 하셨으며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정복하는 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재물에 눈이 어두워 불의의 재물을 취하는 자들은 무너질 것이며 탐심과 강포를 행하는 자와 우상숭배자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고 죄를 범하는 자를 벌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하박국의 기도

 하나님께로부터 확실하고도 분명한 응답을 듣게 된 하박국 선지자는 그 불평을 기도와 찬양으로 바꾸었습니다.

 첫째로, 하박국은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하박국 3:2). 하박국은 유다와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속히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박국은 주의 일이 속히 성취되어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하박국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하박국 3:2). 하나님께서 인간을 공의로만 다스린다면 한 사람도 살아 남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죄 값으로 유다 민족이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박국은 하나님의 징계 중에서도 불쌍히 여겨 다시 구원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셋째로, 하박국은 하나님의 위엄을 찬양했습니다. 하박국은 3장 3절로 15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이후 가나안에 이르게 하시는 동안 역사하셨던 놀라운 은혜를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위엄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기억하면서 장래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리라고 굳게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현재의 어려움 속에서도 과거에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면서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속히 이루게 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하박국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기쁨을 노래했습니다(하박국 3:18). 그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기쁨의 선지자였던 하박국은 하나님을 삶의 자원으로 삼고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박국 서를 통해 하박국의 끈질긴 기도와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인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서도 긍휼의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만을 삶의 자원으로 삼는 하박국 선지자의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삶을 살 때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매일매일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선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보다 악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더 성공하고, 남을 속이고 타인을 짓밟는 사람이 인정을 받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럴 때마다 성도들은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샅아 계셔서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없어서 악인을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때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때가 되면 악인들은 결코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세상에서 누리던 쾌락은 오히려 그들의 심판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지금 믿음으로 사는 것이 힘들지라도 마지막 심판의 때를 바라보며 선하고 공의롭게 살아야 할 것이다. 

 

4. 하박국의 감사와 기쁨

*  예화: 3일의 비밀

 언제나 기쁨으로 얼굴이 빛나는 꽃장수 할머니가 있었다. 늘 그것을 궁금해 하던 한 단골손님이 어느 날 할머니에게 물었다.

* 손님 : 할머니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으신가봐요.

* 할머니 : 천만에요. 사람에게 걱정 근심이 없을 수가 있나요. 내게도 역경과 고통이 있답니다.

* 손님 : 그런데 어떻게 그리도 매일 기쁘게 사실 수가 있어요?

* 할머니 : ‘3일의 비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랍니다.

* 손님 : ‘3일의 비밀’ 이라니요?

* 할머니 : ‘3일의 비밀’ 이란,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고 3일을 기다리는 것인데, 이는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때론 숫자대로 3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주님의 부활 원리는 늘 동일하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어떤 암흑 같은 고난일지라도 광명의 열매로 끝난답니다.

 

오늘 본문은 기원전 600년경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의 사회는 부정부패로 인하여 사회악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어려운 문제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도를 듣지도 않으시고 구원하시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이런 죄악을 싫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지금 이 사회의 타락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왜 침묵하십니까? 하박국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절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절규가 1:2절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답답해서 한숨소리가 나옵니다. 그 한숨소리가 1:3에 어찌하여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울부짖는 하박국이 1장을 지나 2장에 들어서면 그의 기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2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은 기다리고 바라보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하박국 선지자는 인내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3절에 네가 기도하는 기도 제목은 더디게 응답되어 질 것이다. 그리고 “네가 원하지 않겠지만 이 나라는 속히 망하게 될 것이다”라는 응답이었습니다. 하박국이 그토록 울부짖으며 한 기도 응답은 나라의 부정과 부패를 해결하시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침공할 것이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망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악의 축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바벨론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침공하다니요? 하박국은 더욱 더 화가 났습니다. 어려움이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일이 어렵게 꼬여가고 있었습니다.

 

16절에 하박국은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에 몸이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뼈가 썩어나가는 고통을 고백합니다. 강원도 이재민들은 지금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가을 장마가 와서 더욱 힘들어 졌습니다. 이른 추위는 말미암아 더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 보려고 했지만 일은 더욱 꼬여 가기만 합니다. 집에서 보내주던 학비도 집이 어려워지면서 학비 조달이 어려워지더니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이번 달만 해 달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사업하기도 힘든데 아내가 아파 병원에 눕기도 합니다. 창자가 흔들리고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신실한 성도가 갖는 현실입니다. 신실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신실하게 신앙생활하고 기도 생활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질문합니다. 하나님 어느 때 까지 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데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있어야 합니까? 왜 나는 병에 걸려야하나? 왜 나는 실패해야 하나? 내가 이렇게 실패하고 병에 걸리는 것은 혹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내가 내 뜻대로 간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않는 것 일거야.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뜻은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내 뜻은 어디까지인가? 회의와 의심을 갖는 것이 우리들의 연약합니다. 그런데 3장으로 건너온 하박국의 고백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하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오늘 본문입니다. 1장에서 어둠의 골짜기에 있던 하박국이 2장에서는 그 골짜기를 벗어나 성루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3장에 와서 하박국은 망루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19절의 말씀처럼 자신의 발이 사슴의 발이 되어 높은 곳으로 다닐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믿음이 3장까지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아도 하나님의 응답이 더디어도 하나님의 응답이 내 생각하고는 전혀 달리 응답되어도 마침내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발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사슴의 발이 되어 우리가 오르기 힘든 산이라 할지라도 뛰어 올라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3:2절을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우리는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상황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부터입니다. 왜 우리는 변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상황 탓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머리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놀라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경험했듯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불 내리는 경험을 체험했듯이 우리가 이런 경험이 있을 때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하박국은 소망을 갖습니다. 그것은 부흥입니다. 망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소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소망을 잃어 버렸습니까? 긍휼함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놀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소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긍휼함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복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회복이 무엇입니까? 17절, 18절을 보십시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양식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없으면 생활이 위협을 받습니다.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면 어떻게 소와 양을 키울 수 있겠습니까? 농사꾼에게 열매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농사를 짓겠습니까? 사업하는 분들이 이윤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열매를 보기 위함이요 우리가 자녀들을 양육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열매를 사모하기 때문에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에게는 이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하박국 선지자는 최악의 상태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많은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배가 고픈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북에는 더 많이 있습니다. 아프카니스탄에도 굶주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배부른 사람들의 하나님이지 자신의 하나님이 더 이상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 보다 빵이 더 빨리 보이는 법입니다. 이처럼 자기 현실을 중시하고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이 크게 보이는 게 아니라 빵이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하박국을 보십시오. 그는 현실이 크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박국은 열매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열매가 없어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때문에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분명히 가지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면서 동시에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실제로 무신론자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박국 선지자처럼 상황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누가복음 10장 17절부터 20절에 나와있는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70인을 둘 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내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전도대원들이 돌아와서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합니다. 주여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라고 말하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 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를 하면서 많은 열매를 맺고 성공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주님 때문에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 된 것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우리의 환경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응답이 되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박국의 감사와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기뻐하십니까? 열매 때문에 기뻐하시는 분들입니까? 우리 주변에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떠 올려 보십시오. 여러분이 존경하는 사람들은 환경 때문에 울고 웃고 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아니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족함으로 사시는 분들이었습니까? 얼마 전에 경제 부총리가 뼈있는 말을 한 적이 기억납니다. 경제 부총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천민자본주의의 옷을 벗어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선 천민자본주의는 투기해서 돈을 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부자를 아름다움 부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부자를 우리는 추하다고 말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은 외형적인 조건에 만족하기보다는 내면의 세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았다는 확신으로 말미암아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런 확신이 분명히 있는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왜 이상에서 비굴하게 살아가야 합니까? 나에게 힘만 있다면 우리는 부러울 것 없이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19절에 하나님이 나의 힘이기 때문에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고 선포합니다. 나에게 돈이 없어도 나에게 좋은 자동차가 없어도 나에게 큰집이 없어도 나에게 사회적인 명예가 없어도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입에서 이런 선포가 있기를 바랍니다. 돈이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선포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작은 일에 비굴하게 살지 마십시오. 작은 돈에 자신을 팔아 버리지 마십시오. 힘있고 당당하게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19절을 다시 보면 우리의 발을 사슴처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사슴의 발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사슴의 발은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길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슴은 산을 쉽게 달리고 웬만큼 달려도 지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사슴처럼 높은 산을 달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웬만한 인생살이에도 지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열매 없는 인생살이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출발이 어두임이요 과정이 힘들지라 할지라도 마지막은 힘있는 삶으로 마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만이 힘이 되어서 높은 산을 오르는 힘있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기쁨과 감사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좋은 일, 기쁜 일 뿐만 아니라, 슬픈일, 힘들과 외로운 일, 억울한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면 왜 우리 성도들이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성도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면에서 감사의 생활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원망과 불평, 한숨과 눈물 그리고 배은 망덕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인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의 힘이시며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위대한 모범적인 신앙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바벨론의 대왕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따라서 금신상에 예배를 강요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배반치 않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로 그들은 뜨거운 풀무에 던져짐을 당하게 되지만 원망치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단 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결국 하나님을 배반치 않는 저들은 풀무에서도 상처하나 받지 않고 살아 나왔고, 왕으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게 되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억울한 일, 도저히 감사치 못할 일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자.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자기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요 전능자기 때문입니다.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힘과 기쁨의 원인이 됩니다. 어느 정도로 좋아하고 즐거워하는지 그 기쁨과 감사를 이기 못하여 잠잠하지 않고 찬송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범죄자들의 그 가정 배경이 많은 경우에 불우한 것이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만약에 우리가 영적으로 고아여서 의지 할 데 없이 홀홀 단신으로 아무도 나의 배경과 후견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낙망해 하고 좌절하며 불행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자녀가 건강하게 자라듯이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과 감사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는 진정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감사는 절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절망하기 쉽습니다. 절망은 문제 해결에 있어서 어려움 그 자체보다도 더 큰 방해물이 됩니다. 믿음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감사는 희망을 갖게 하고 절망을 극복하게 만듭니다. 비록 우리가 죽는다 할지라도 낙망하지 않는 것은 죽음 후에도 영원한 소망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사단은 자신이 그 동안 사람들은 유혹시키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모든 연장들을 양탄자 위에 펼쳐놓고 팔기 위하여 경매에 부치며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은으로 만들어진 쐐기가 유난히 반짝이며 눈길을 끌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사단에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단이 말하기를 그것은 자기가 가장 아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무기로 바로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인간들을 미혹하고, 타락시키는 수 없이 많은 도구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는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중국 속담 “배가 뒤집히지도 않았는데 투신하려 합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절망’이라는 도구에 낙심하여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사단의 ‘절망’이라는 도구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항상 마음속에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단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시 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욥은 극한 고통에서도 입술로 범죄치 않았습니다.

요셉은 극한 불행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바라보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발명가 에디슨은 많은 기계를 발명하여 인류 세계에 크게 공헌한 대 발명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발명하기 전 벌써 젊은 날에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행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그 불행을 유익하게 이용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내가 귀머거리가 됨을 감사하는 것은 연구에 몰두할 때 잡음이 들리지 않아서 많은 도움이 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R. 크릴리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다른 속박을 풀어 주십니다.”

 

5. 하박국을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하박국 선지자는 나훔과 마찬가지로 자기백성을 비난하고자 나선 것이 아니고 백성들 중 불경건한 자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국수주의자처럼 자기 민족애에 빠져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동기는 불의하고 비도덕적인 세력이 세계를 통치하는 데에 대한 의인이 고뇌입니다. 또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하박국서의 위대한 주제는 사도 바울(롬1:17, 갈3:11)과 히브리서 기자(히10:38)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으며 종교개혁과 루터의 개혁 이념이 되었다. 우리는 구원의 조건이 믿음에 있다는 복음의 핵심사상이 이미 구약에서부터 나타난 점을 주목합시다.

2. 비록 동족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범죄하였을 때엔 그 죄악을 지적하고 의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의 길이자 성도의 의무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하고서도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악인을 사용해서라도 우리의 죄악을 깨닫게 하십니다.(잠16:4)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아니하고, 세상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지 않기 위해서 라도 자신을 돌아보아 범죄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4. 구약성경의 많은 다른 선지자들처럼 하박국과 그의 일생은 글로 남아 있는 선지서를 통해서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그가 기록한 하박국서를 통해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어려운 시절들을 겪을 때 우리 중의 한 사람처럼 하나님께 어려운 질문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인생은 공평하지 않죠?" 왜 의로운 사람이 고통받는 동안 악한 자들이 성공합니까? 하나님은 왜 그 많은 조롱들을 참고 계십니까? 왜 그렇게 멀리 계신 것 같습니까?" 하박국은 의문하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대답도 들었습니다. 하박국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하셨던 것처럼 모든 의문에 하나씩 답해 주시지는 않았고, 하박국에게 역사와 세계를 보다 넓은 시야로 바라보면 거기에서 하나님을, 그분의 계획과 시간표를 보다 더 잘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실패와 고통을 경험할 그 때에 우리는 보다 더 하나님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그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는 기도를 함으로서 하박국서를 마칩니다. 그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런 사건들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때가 있는 것을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어둠의 때에라도 그는 빛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함으로 문제를 해결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언젠가 이루신다. 하지만 그 시기는 우리의 시간표와는 다릅니다. 당신과 하나님의 시간표 중 어느 것이 더 정확하겠는가?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묵상해봅시다.

 

성도 여러분, 참된 기쁨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세요. 죄 사함을 받으세요.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과 동행하며 누리는 기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면서 기쁘게 사십시다.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기쁨이 없으면 비극입니다. 이 세상을 얼마나 살겠기에 한숨과 걱정 가운데서 살겠습니까? 슬픔 많은 세상에서 넘치는 기쁨을 얻어 항상 기뻐하며 천국 생활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 공의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진정한 기쁨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로 하여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영광과 특권을 안겨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여, 오늘 예배드린 모든 성도들, 나는 왜 항상 기뻐하지 못하는가를 깊이 반성하고 돌아가게 하시고, 주안에서 기뻐하기로 선택하는 아름다운 삶을 날마다 이어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기뻐하느냐고 물어올 수 있도록 우리 삶을 기쁨으로 충만케 해주시옵소서. 특별히 생활고와 연약한 몸으로 고통 당하는 자녀들에게, 세상에서 실패하여 좌절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이 신비스러운 기쁨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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