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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47: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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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
본문: 147편 1- 20
지금부터 약 100여 전 한 과학자가 자신의 개를 상대로 끔찍한 생체 해부를 시도했습니다. 개의 충성심을 테스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생체 실험 중에도 그 개는 여전히 주인의 손을 핥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마취 없이 눈알을 빼는 등의 잔혹한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는 주인에게 끝까지 충성했다고 합니다. 그 실험 대상이 되었던 개로 알려진 '스파니엘'은 아주 영리하고 착하게 생긴 개입니다. 그 중에서도 '코카 스파니엘'이라는 개는 두부가 둥글며 주둥이가 짧고 아주 귀엽게 생겼습니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스파니엘' 개 보다 더 충성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이 존재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 시대에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원형 경기장에 끌려와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어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지면서도 신앙을 지켰던 초대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끝까지 고백하다가 장렬하게 순교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철저하게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있다면 바로 교회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주님이 말씀하시면 무엇이든지 순종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려는 충성스러운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교회에 출석해도 진정한 교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민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 많지만 그중 한 가지를 지적한다면 무슨 단체를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LA에만 해도 수백 개의 한인 단체가 존재합니다. 출신 고향을 따라 모이는 향우회 같은 학교 출신들이 모이는 동창회 등 수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제 해외 동포들에게도 본국 선거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국 국회에서 결정했기 때문에 앞으로 본국을 향한 정치적인 야욕이나 이해관계로 인해 많은 정치 단체가 만들어 질 것입니다. 다만 이런 단체는 자신의 개인적인 야망이나 이익을 따라 모이기 때문에 충성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최근 이민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세태를 보면 마치 이 세상의 단체와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의 단체처럼 어떤 특정한 목적을 따라 교회를 세웠다가 조금 있으면 사라집니다.
또 교회를 시작할 때만해도 그 구성원들이 의기투합하여 뭔가 큰일을 할 것처럼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인간의 야망과 욕심으로 인해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이 직접 세우시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재산이 없어도 괜찮고 건물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만유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그 교회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모신 곳이면 그 어떤 곳이든지 영원히 교회가 존재합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3:15)
오늘 본문은 할렐루야 시편 중의 하나입니다.(시146편 - 150편)
본문 1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왜 시편 기자는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하며 아름다우며 또한 마땅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여기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우신다는 말씀이요 곧 교회를 세우신다는 말씀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계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2: 13- 17)
본문 10-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참된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주님께서는 세우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주님께서는 교회를 어떻게 세우고 계시는 것일까요? 다음 몇 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그 대답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께서는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한 자들를 치유해 주시므로 교회를 세우십니다.
본문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하나님께서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고 상한 자들을 치유하시다는 말씀은 이 시의 배경을 알면 좀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시의 배경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 때 지은 시로써 포로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과 성전 및 조국 재건 때에 지은 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고 상한 자들을 치유하신다는 말씀은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며 그들을 회복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 4절에서 주님은 별들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그리고 그 별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실 수 있으시며,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5절)이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모으시는 것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으신 광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심에 있어서 흩어진 자들을 모으십니다. 그리고 흩어진 자들을 모으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세우심에 있어서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십니다(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회개하고 돌이켰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으셨고 또한 그들의 상심과 상처를 고치시며 싸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도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6:1).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주님께서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고 그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16장18절 말씀을 성취해 나아가심에 있어서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고 상한 자들을 치유해 주고 계심을 여러분들은 경험하고 있습니까? 만일 “예”라고 대답하신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자들로서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함이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겸손한 자들을 붙들어 주시므로 교회를 세우십니다.
본문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낮아졌습니다. 바벨론을 통하여 하나님께 매를 맞고 그들은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낮아졌습니다. 이렇게 낮아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붙들어 주셨습니다. 전에 새벽기도회 때 묵상한 이사야41장10절과 13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저와 여러분들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대로 우리 주님의 우리의 연약한 손을 붙잡아 주시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의로운 손이 우리 교회를 붙잡아 주시므로 그의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주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심에 있어서 먼저 우리의 교만을 꺾으시고 겸손케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손을 붙들어 주시고 계심을 믿음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할렐루야”하면서 마땅히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함이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셋째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므로 교회를 세우십니다.
본문 8-9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예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세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가 만드신 피조물들에게도 필요한 것들을 주실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저와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필요한 것들을 주시되 하나님께서는 땅을 위하여 비를 내려 주시기도 하시며 또한 들짐승과 까마귀 세끼에게 먹을 것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본문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게 공급해 주시되 풍성하게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궁핍해 지는 이유는 중 하나는 물론 우리의 죄 때문이지만 그 중에 하나는 청지기 자세로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풍성한 것들을 지혜롭게 잘 관리를 못해서 궁핍해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사람이 음식 문제로 염려할 것이 없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들은 산상수훈 말씀 중 마태복음 6장30절부터 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면서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닌데 우리 사람은 믿음이 연약하여 불신자들처럼 먹고 사는데 계속 걱정하고 염려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가정뿐만 아니라 교회도 공동체로서 이러한 걱정과 염려를 할 때가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의 메시지는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심에 있어서 교회가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고 채워주신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믿음으로 경험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함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문 11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코리 텐 붐 여사는 독일의 나치수용소에서 구출받은 체험을 가지고 있는 화란의 부흥사입니다. 그의 간증 중에는 구 소련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앙인들의 승리담도 있습니다. 한번은 지하교회 교인들이 창고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는데 소련군이 들이닥쳤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즉결처분을 당하거나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끝없는 노동을 하다가 여생을 마치는 일만 남아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소리쳤습니다. ‘너희들을 법대로 처분할 테니 그리스도를 부인할 사람은 나와라.’ 그러자 몇 사람이 나갔고 그들은 밖으로 보내졌습니다. 또 한 번 군인들이 같은 말을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죽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갑자기 문을 잠그며 총을 내리고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함께 예배드리려고 왔는데 여기에 가짜 교인들이 있을까봐 그들을 골라 내려고 그랬습니다. 이제 염려 없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만을 의지하는 성도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기뻐하시며 평탄한 길을 열어 주십니다.
넷째로, 주님께서는 그의 교회와 성도의 가정을 보호해 주십니다.
본문 13절을 보겠습니다.
“저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너의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의뢰하는 자들의 국토를 안전히 수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적용해보면 교회를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서는 그를 의뢰하는 성도들을 안전히 보호해 주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에 묵상한 시편146편 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객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배웠습니다. 또 전에 묵상한 시편145편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객을 보호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다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가 독생자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사랑하시사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평안”(14절)을 누립니다. 그리고 평안을 누리는 교회는 마땅히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문 12절부터 14절을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서로 치고 받으며 싸웠습니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부부는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상담도 받아 보고, 함께 자살하려고 수면제까지 먹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화해가 되지 않자 별거를 하였습니다. 물론 이혼을 전제로 한 예행연습과도 같은 별거였습니다. 이 부부는 아무리 애써 봐도 안 되니 마지막으로 이 상황을 주님께 맡기면서 찬송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하자 그들의 마음이 서서히 풀렸습니다. 찬송을 할 때에 그들의 마음속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새로이 싹튼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다시금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찬양하는 자녀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질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작용했다는 간증을 듣습니다. 찬양은 감사이고 감사하는 자세는 동시에 하나님을 높이고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찬양하는 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다섯째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로 보내시므로 교회를 세우십니다.
본문 18-19절을 보십시오.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우리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교회인 우리들에게 말씀 해주시고 또한 그 말씀을 계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16장에 나오는 베드로는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17절)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15절)라고 물으셨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 계시로 인하여 바른 신앙고백을 할 때 그 교회는 반석위에 견고히 세워져 가는 것임입니다. 이러한 견고히 세우시는 역사를 주님께서는 주님의 몸된 우리 교회에서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함이 선하고 아름다우며 마땅합니다(1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므로 우리 교회를 세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절). 어떻게 주님께서는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까?
첫째로, 주님께서는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한 자들을 치유해 주시므로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2-3절).
둘째로, 주님께서는 겸손한 자들을 붙들어 주시므로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6절).
셋째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므로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8-9절).
넷째로, 주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보호해 주십니다(13절).
다섯째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로 보내시므로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18-19절).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참으로 누추하고 보잘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귀중하고 사랑스러우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제사장 아론은 성전에 나올 때, 장식품을 걸친 화려한 외모로 향기를 풍기며 영광스럽게 나타났으나, 그리스도는 가장 천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점차 대형화되고 있는 현대 교회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건물의 크기와 화려함으로 자신들의 교세를 과시하려는 것입니다. 이미 일부 대형화된 교회들은 자기들 위주의 공동체 모임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 주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은 꺼려합니다. 교회가 너무 깨끗하고 화려해서 남루한 옷차림의 가난한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모습을 입으면서까지 낮아지셨던 주님의 사랑을 돌이켜보면서, 화려한 교회 건물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려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가 그의 몸이기에 성경은 교회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고 했습니다(엡 1:23). 이 말의 의미는 교회가 온 세상에 가득해야 하고 이 세상을 온통 교회로 충만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교회가 이 세상에 가득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돌과 나무로 지은 성전을 자기 처소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돌과 나무로 지은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바로 그 새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상 안에 거하시고 그 거하심을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새로운 성전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성전인 교회에 거하시고 교회를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교회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그를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를 그의 몸으로 하는 생명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거소요 성전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단번에 하나님의 완전한 거소가 될 수 없고 만물을 충만케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완전한 거소가 되기 위해서는 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야 하지만 양적으로도 온 세상에 가득하고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만이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거소가 확대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 분이십니다. 온 땅에 안 계신 곳이 없이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만이 자기의 성역화된 처소를 확대시켜 가시고 진정한 통치 영역을 확장시켜 가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비록 녹슨 종탑과 초라한 간판을 건 아주 작은 개척교회라도 청와대·백악관보다 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교회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기에.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교회는 더 많이 부흥해야 하고 이 땅에 더 많이 존재해야 합니다. 또한 땅끝까지 더 많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누가 감히 이 땅에 교회가 너무 많다고 했던가.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한 거소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기에 지금보다 더 많아야 하고 온 땅에 가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상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온전한 거소가 되기에 합당한 교회로 갱신되고 새롭게 정화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6, 9절에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 죄악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훼파 된 후, 친히 영광스러운 교회로 70년 후, 주께서 다시 회복하여 세계 열방에 기쁨이 되도록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첫째, 성전을 세우는 일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셔서 행하시고 이루십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16: 18절에도 주님이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말씀하셨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 짓는 일을 하려 할 때, 비방과 조롱과 방해를 받았으나, 이 성전을 세우는 일은 느헤미야가 아니라 하나님이 성전을 세우는 일을 하셨기에 52일 만에 역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성전으로 삼고 친히 영광스러운 성전이 되게 하실 것이며, 우리 교회를 주께서 친히 역사하여 세계 열방에 기쁨이 되도록 세워가실 줄 믿습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주의 전을 세우는 그 분들 속에는 반드시 일하시는 하나님이 그 분 안에 계십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 10- 13)
둘째,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는, 미래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십니다.
예레미야 6절과 9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풍부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이 성읍이 세계열방 앞에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주님이 세우는 성전이 되면, 치유와 회복이 있습니다. 은혜의 기쁨과 찬송과 예배와 찬양이 넘치게 됩니다. 양떼들이 많이 모여 목장에 눕고 쉼이 있는 풍성한 곳이 됩니다. 하나님의 복이 친히 임하고 역사하며 주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며 왕권이 회복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의 역사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입니다
렘 33장 2절에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라 말씀하시고,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확실히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믿음 위에,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예수님께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셨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돌아가신 다음, 요나의 표적대로 3일간 무덤 속에 계시다가 부활하시고, 40일간 땅에 계시면서 제자들을 강건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500명 성도가 보는 데서 마지막으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오순절 날에는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는 곳에 교회가 섰습니다. 할렐루야!
지금도 주님께서는 온 세계에 교회를 세우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도 사람이 세우는 것 같지만 주님께서 세우십니다. 새로운 성전도 우리가 짓는 것 같지만 주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교회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헐값으로, 못 쓰는 산비탈의 땅을 사기는 했는데 너무 높은 지역이라 교회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께서 마태복음을 읽으시다가 17장 20절 말씀에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는 거짓말을 못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목사님께서 교인들을 다 모은 다음 밤을 새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산을 옮겨 주세요. 그래서 교회를 짓게 해 주세요.”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전신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지금 전신국의 빌딩을 새로 지어야 되는데 땅이 너무 낮은 곳이라 비만 오면 물이 차서 땅을 돋우어야 됩니다. 마침 목사님께서 교회를 지으려고 사신 땅이 산이라 하는데 그 산의 흙을 좀 쓰고 싶습니다. 물론 그 흙 값은 우리가 보상해 드리지요.”
그래서 전신국에서 그 산의 흙을 파 가고 돈을 주어서 교회를 잘 지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세우시고 세계 교회를 다 세우십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청와대나 백악관이나 대학이나 회사나 백화점이나 마켓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백악관이나 청와대나 국회나 대학이나 마켓에 은혜는 주실지라도 세우시는 집은 교회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십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2장 20절에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성도들이 귀하지, 집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닙니다. 성도인 우리도 귀하고, 하나님의 집인 교회도 귀합니다.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이름이 교회에 항상 계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골로새서 1장 24절에도 『그의 몸 된 교회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지만 지금 교회로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본회퍼 목사님이 “예수님은 지금 교회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십니까?
미국은 북아메리카에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미국의 대사관도 미국 땅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땅에 있지만 천국의 대사관입니다. 서울에 있어도 미국 대사관은 미국과 같은 것처럼 교회는 천국의 지점이고 대사관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하늘의 만나를 먹고 하늘의 산소를 마십니다. 하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들어서는 곳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교회를 통하여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문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데 어떻게 예수 문으로 들어갑니까? 교회 문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교회 문은 바로 예수 문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수만 마리의 동물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컸지만 문은 하나뿐인 것처럼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백성이 많아도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하나 예수뿐입니다. 예수님의 몸이신 교회가 예수님의 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교회 문으로 들어오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습니다. 가룟 유다처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교회에 와도 말씀을 듣지 못하니 구원 받지 못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에 들어온 사람은, 말씀을 들으니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요한복음 3:16-18) 할렐루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아멘’ 하십시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0:28) 따라 합시다.
“나의 영생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노아 방주에 들어간 사람, 또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토끼나 짐승이나 새들은 감기나 그 어떤 전염병도 걸리지 않고 건강했던 것처럼, 교회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로마서 8장 38절, 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여러분과 저를 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는 지옥의 권세, 사망의 권세, 흑암의 권세를 말하는데, 교회 안에 있으면 우리는 약해도 주님께서 이기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이 찬송이 영어로는 ‘They are weak but he is strong.(우리들은 약하나 주님은 강하다.)’입니다. 따라 합시다. “주님은 강하시다.”
강한 주님께서 우리의 영생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교회를 통해 먹이시고 입히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엄마가 아기를 낳아 놓고 돌보지 않으면 아기는 죽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끝까지 아기를 길러서 그 아기가 자라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교회를 통해 끝까지 자라도록 돌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양입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꼴과 좋은 생수로 먹이시고 우리가 병들면 치료해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교회는 어머니 품 같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화원, 꽃밭과 같습니다.
「나는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 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은혜의 단비를 주룩주룩 부어주셔서 우리가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면 세상의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주의 능력으로 이기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도 이깁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따라 합시다. “성도는 이긴다. 성도는 이긴다.”
인생은 순풍의 돛단배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러기를 원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 앞길에, 직장에, 사업에, 자녀 교육에 장애물이 많습니다. 우리 인생은 산 너머 또 산이고 강 건너 또 강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십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우리가 살아가면서 세상에 부딪히면 힘이 빠지고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일어나 걸어라. 내가 네게 새 힘을 주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라고 하시며 항상 이기게 하십니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휴 애런슨은 18살에 꿈을 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나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취직도 되지 않았습니다. 돈은 한 푼도 남지 않았는데 배가 너무 고파 무작정 서부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화물칸에 숨어 있다 승무원에게 잡히는 바람에 매만 맞고 쫓겨났습니다.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강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서 강물에 뛰어들어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교회학교에서 배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디모데후서 4:7)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했는데, 나는 아직 한 번도 인생을 싸우듯이 살지 못했지 않나? 18살밖에 안 된 나에게는 앞으로 달려갈 길도 많을 텐데……. 그래, 나도 한 번 싸우듯이 살아보자. 싸우듯이 일하자. 싸우듯이 공부하자. 싸우듯이 믿음 생활을 하자.”
그가 그 즉시 일어나 싸우듯이 갈 길을 달려 마침내 몬테나 주의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교회에 있으면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 생활이 어렵고, 경제가 어렵고, 실직을 해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가 축복을 받아 잘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시편 118:26)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시편 84:4)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에베소서 1:23)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교회가 왕성한 나라가 잘됩니다. 교회가 왕성할 때 개인도 잘되고, 가정도 잘됩니다. 교회 문을 닫게 하는 나라는 북한처럼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되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명기 28:1-6)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교회는 축복하는 집입니다. 가난하게 왔지만 부요하게 되고, 불행하게 시작했지만 행복하게 되고, 이름 없이 들어왔지만 명예로운 사람이 되고 이름이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6.25사변 때 남대문 시장을 전전하는 한 거지 소년이 밥도 얻어먹기 어려우니 길에 서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한 미군 병사가 그 소년을 보았습니다.
“얘야, 왜 우니?”
“저리 가세요. 귀찮아요.”
“아니? 얘야, 왜 우느냐고?”
“상관마세요. ”
“얘야, 나도 너 같은 아들이 있어서 그래. 왜 우니?”
그는 군의관이었습니다. 소년의 형편을 알게 된 그는 소년을 미군 부대로 데리고 가서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아들로 삼아서 미국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비록 의사의 아들이 되었지만, 낯설고 물선 미국 땅에서, 그때는 인종 차별이 심했으니 얼마나 서러움이 컸겠습니까? 더구나 그는 열여덟 살이 되도록 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부터 ABCD를 배우며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기도하면서 공부하고, 또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석사가 되고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워싱턴 주의 하원의원이 되고 또 상원의원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폴 신(신호범) 장로님입니다. 거지 소년이 미국 상원의원이 되고 장로님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리라. 뛰어나게 하시리라.’
이 복을 저와 여러분과 우리 자녀들이 받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지금 미국의 치즈 왕이라고 불리는 그래프드 재벌도 젊은 시절에는 마차에 치즈 몇 개를 싣고 집집마다 다니며 팔던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많은 트럭으로 미국 전역에 치즈를 공급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기도입니다. 나는 치즈를 마차에 싣고 다닐 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기도하니 지혜를 주셔서 오늘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교회는 잘되게 하는 집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2)
우리 모두 괴로우나 슬프나, 즐거우나 기쁘나 교회 품에 있으면 은혜를 받고 성장하고 번영하고 이기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에 교회가 많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우리 칠천만 명이 다 들어와 구원을 받으려면 지금보다 두 배, 세 배 교회를 더 지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업에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왕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를 세울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바쳐 충성해서 우리 교회를 든든한 교회, 내실 있는 교회가 되게 해야 됩니다.
보너 박사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스스로도 신실한 신앙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꿈에 천사가 나타나 “너의 충성을 저울에 달아 보겠다.”라며 충성한 것을 내용에 따라 나누어 저울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네가 교회에 충성은 했어도 네가 대접받으려고, 네 자리를 든든하게 하려고, 네 명예를 높이려고 충성한 것이 74㎏이고, 하나님을 위해 순수하게 충성한 것은 26㎏밖에 안 된다.”
보너 박사님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충성 전체가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74㎏은 자신을 위한 것이고 26㎏만 순수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글을 읽고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한 방울의 땀도 주님을 위해 흘리고, 1초의 시간도 주님을 위해 쓴다고 말했는데, 정말 주님을 위한 순수한 충성은 내 삶에서 몇 퍼센트인가?’
여러분도 한 번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순수하게 아기처럼 주님을 위해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우리 교회는 더 든든히 서게 될 줄 믿습니다. 또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여러분의 가정에도 축복이 가득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기도: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 피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교회와 성도를 위하여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섬기고 봉사하게 하옵소서. 교회 건축에 동참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하소서. 교인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교회가 되게 하소서. 주님만을 진실하게 섬길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님만을 기쁘시게 한다는 일념으로 찬양하게 하옵소서. 주님만이 나의 사랑이요, 나의 기쁨이요, 나의 소망이요 나의 생명이십니다. 존귀하신 주님, 나와 영원히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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