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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대하18:1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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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진실만을 말한 참 선지자 미가야
본문: 대하18:12- 34
찬송: (321, 구35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오늘은 왕의 사자의 압력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겠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한 참 선지자 미가야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교훈을 얻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미가야라는 이름의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으랴'라는 의미입니다. 미가야는 아합 왕 시대의 예언자이며 이믈라의 아들입니다.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 없이 삼년을 지내었는데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을 만나러 내려가매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제의하기를 '길르앗 라몬은 본래 우리의 것이니 힘을 합해 아람 왕과 싸워 되찾자'고 하자 여호사밧이 이에 동의하면서 전쟁하기 전에 선지자들에게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물어보라 하매 그들이 모두 길르앗 라못의 원정은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선지자가 또 없냐고 묻자 이스라엘 왕 아합이 미가야를 추천하면서, 아합 왕은 미가야에게 길르앗 라못의 원정에 대해서 바알의 선지자들이 말한 것처럼 길한 예언을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실을 말해야겠다고 맞섰습니다.
"저가 가로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왕상22:17)
이 예언은 전쟁에 대한 길한 소식이 아니라 목자없는 양같이 산산이 흩어지게 된다는 패전의 예언이었습니다.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왕상22:19-21)
이 예언은 천국회의에서 아합을 길르앗 라못 전쟁에 출전케 하여 죽게 하도록 한 영이 거짓 선지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왕이 틀림없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거짓 예언을 하도록 했다는데 대한 해명입니다.
시편 16편 8- 1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주계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여호와의 진리를 늘 내 마음에 담아 흔들리지 않고 충만하고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각자의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남북 이스라엘 두 왕국이 계속 적대관계에 있다가 아합과 여호사밧이 우호 동맹을 맺으면서 그 관계가 호전되는 시기에 두 왕은 아람과 전쟁을 벌여 길르앗 라못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이에 두 왕은 선지자들에게 가서 싸워도 되는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게 되는데, 모든 선지자들은 가서 싸워도 된다고 예언합니다.
여호사밧이 한 번 더 확인할 선지자를 구하자 아합은 이전부터 흉한 일만 예언해서 미워하는 미가야를 언급하게 되었고, 여호사밧은 미가야를 오게 하도록 하였는데, 미가야를 불러간 사신이 미가야에게
"선자지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당신의 말도 그둘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라고 말하면서 다른 선지자들의 예언과 같은 예언을 할 것을 종용합니다. 이에 대해 미가야는 곧은 자세로 "여호와께서 살아두고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고 말하고 왕들에게 나아가서는 아합 왕이 죽을 것을 예언하게 됩니다.
미가야가 왕 앞에서 이와 같이 흉한 예언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담대한 용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는 앞에 놓여진 상황이 어떠하든지 오로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만을 말하겠다는 미가야의 곧고 담대한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저는 과연 성경의 말씀 그대로를 성도들에게 전파, 선포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나의 지식이나 철학, 사고에 기해 각색된 하나님과 예수님의 진리를 말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신앙간증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아합은 이 불길한 예언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명이 되기까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고생의 떡과 물을 마시우도록 하였습니다.(왕상22:24-28)
그러나 과연 미가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연합군은 패하여 이스라엘 왕 아합은 전쟁터인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아람 왕의 병사들과 더불어 싸우다가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고 유다 왕 여호사밧은 도망하였습니다.(왕상22:29-36, 대하18:14-34)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궤휼을 말하느니라"(잠12:17)
불의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실을 말한 참선지자 미가야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시대적 배경
B.C. 872-848년까지 통치. 북이스라엘 왕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과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제 3대 왕 아사 때까지 만해도 남북 왕국은 계속 긴장 관계에 있었으나 여호사밧 때부터는 남북 왕국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당시 북쪽에서 아람의 세력을 크게 확장하여 위협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공동 대처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간의 동맹 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당시 북쪽에서 아람이 세력을 크게 확장하여 위협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공동 대처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간의 동맹 관계가 여호와를 전적 의뢰하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악한 왕에 의지한 결과라는 점입니다.
2. 확신에 찬 미가야의 예언
북쪽 이스라엘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은 의지가 굳은 여자로서 자기가 숭배하는 바알 신을 적극적으로 선교할 열정에 충만하였다. 그래서 비록 갈멜산 상의 엘리야의 시합으로 많은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기울여 졌지만 이세벧은 바알 신을 위한 종교정책으로 나라에서 월급을 주는 공인 예언자를 많이 확보해 두었다. 그리고 여호와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학살하였다. 그래서 웬만한 백성들은 참신은 여호와인 것을 알면서도 살기위해서 양쪽 신에게 양다리를 거치고 있었고, 국가 공인의 예언자들도 살기 위해서는 싫어도 왕의 구미에 맞는 예언만을 해야 하는 어용 예언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남쪽 유대 왕 여호사발이 북쪽 이스라엘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합은 생각하기를 이 기회에 남북이 연합군을 편성하여 과거 전투에서 시리아 왕에게 빼앗겼던 고을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여 탈환한 것을 제의하려고 하였다. 여호사밧은 여호와를 신봉하는 왕이었던 고로 그 뜻은 좋으나 여호와에게 물어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그래서 아합왕은 이미 국가 정책으로 확보해두었던 400명의 예언자들을 불러 신탁을 묻게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어용 예언자들이였던 고로 한결같이 "왕의 말씀이 지당 하오니 침략하십시요"하고 찬성했습니다. 여호사밧은 다시 다른 여호와의 예언자를 불러 물어 주기를 청원했습니다. 아합은 하는 수 없이 평소에 늘 자기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미가야라는 선지자를 불러 올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미가야가 예언하기 전에 아합의 신하들은 미가야게 공갈협박을 하면서 이미 400명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처럼 왕의 뜻에 찬성해 줄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전할 따름이요." 하고서는 왕 앞에 나가 용감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이산 저산으로 흩어지는데 마치 목자없는 양떼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이것들을 돌 볼 주인이 없으니 모두들 고이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 패배할 것을 예언했다. 그러나 아합은 오히려 미가야를 미워하고 옥에 가두게 하고서는 여호사밧을 권하여 침략전쟁에 참가하도록 했고 결국 아합은 적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3. 신앙은 확신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유의해야할 점은 모든 대세가 다 아합의 강요에 떨어 불의한 찬성을 했으나 단 한사람으로서 공갈협박 속에서도 굳이 옳은 말을 한 미가야 선지자에게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신앙은 확신입니다. 뜨뜻 미지근한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들의 신앙을 굽히지 아니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의 목숨이 지속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영광 그리고 그분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써 덤으로 붙여진 우리의 목숨은 아낌없이 버릴 수 있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의에 대해 목숨을 내놓고라도 싸워 주님이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공의가 서로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기를 위해서 우리의 확신을 굽혀서는 안됩니다.
4.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오늘 성경에서는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미가야는 당대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하는 아주 영성이 탁월한 선지자 였음을 아합의 반응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아합은 400명의 선지자가 자신의 승리를 예언하고 여호사밧이 돕고 전쟁을 앞두고 사기가 대단히 좋은 분위기 입니다. 그래서 미가야를 데리러 간 사람이 미가야에게 거짓된 말이라도 좋으니 아합에게 잘 될 것이라고 말해달라고 유혹과 협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청을 받은 미가야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쫓는 사람입니다. 결코 사람을 기뻐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10절에서바울사도는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의 소유자 입니다.
5. 진실만을 말한 사람
(1) 진실의 힘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아버지는 폴란드 사람입니다. 고향인 폴란드의 슐레지엔으로 가기 위해서 말을 타고 산길을 갔습니다. 그때 우려했던 대로 강도들이 나타났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말도 빼앗겼습니다. 강도가 물었습니다.
“숨긴 것이 없느냐?” “없습니다.” “그럼 가거라.”
무사히 강도들 틈을 빠져나와 한숨을 쉴 때 바지춤에 비밀히 감추어둔 금덩어리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강도들에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회개합니다. 조금전에는 너무나 무섭고 정신이 없어서 숨긴 것이 없느냐고 물을 때 없다고 대답했는데 가다보니까 이 금덩이를 숨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받으십시오.”
강도에게 숨겼던 금덩어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러자 강도는 빼앗은 물건과 말을 내주면서 엎드리더니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당신이 두렵습니다”
고 말했습니다. 바보같은 순결함에 그 강도들도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아야 간다고 하셨습니다.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진실 앞에서는 누구나 떱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된 방법을 쓰는 것은 잘못입니다. 신용만큼 중요한 명함은 없습니다. 장사를 해도 속임수는 잠깐뿐입니다. 오래 유지하려면 신용을 간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부부의 사랑이란 실상 신용의 농도를 말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못 믿게 되면 그 집은 끝장입니다. 그리고 한 국가가 거짓 뉴스를 공공연하게 매스컴에 흘리면 그 피해는 전 인류에게 미칩니다. 현대인은 신문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에 그 신문의 내용이 거짓이면 생활의 기둥이 흔들려버립니다. "절반은 진실이다"라는 말은 전체가 거짓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거짓을 섞어 탄 진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진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짓은 아무리 모여도 진실이 될 수 없습니다. 진실은 잠시 가려져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으나 언젠가는 반드시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과 거짓을 놓고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이 선택은 날마다 시간마다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진실은 악마를 쓸어내는 빗자루입니다. 거짓은 악마를 불러들이는 초인종입니다. 거룩한 땅이 어디입니까? 진실을 지키다 죽은 자의 무덤이 거룩한 땅입니다. 만일 그대가 진실을 말하면 모든 사람과 하나님의 후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대가 거짓을 말하면 모든 사람과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됩니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시7:10)
(2) 진실하여라
한 신사가 길을 걸어가다가 맹인소녀가 동전통을 앞에 놓고 앉아있는 것이 불쌍하게 생각돼 지갑에서 1만 원짜리 지폐 1장을 꺼내 넣어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소녀가 눈을 크게 뜨고 큰 액수에 놀라는 눈치로 지폐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신사는 “얘야, 너는 맹인이 아니지?”라고 물었다. 소녀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아저씨, 미안해요. 사실은 우리 아저씨 대신 앉아 있는 거예요” 신사는 다시 질문했다. “그럼 너희 아저씨는 어디 가셨니?”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 저희 아저씨는 조금 전에 영화 보러 가셨어요.”
많은 이들이 이 사회에 진실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사람들보다는 일시적으로나마 위기를 모면해보려고 부인하고 변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꿈에 거짓말 하였거든 깨어나서라도 반성하자"고 하셨으며, 검은 대륙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리빙스턴은 유언으로 "아이들아, 진실하여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진실이야말로 하늘로 통하는 길이요, 사랑과 웃음과 행복을 만들어 내는 최고의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수고의 땀방울이 얼룩져야만 이루어갈 수 있는 현실 속에 뿌려진 진실의 씨앗은 아름다운 축복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자는 가슴에 후회가 없고 발걸음에 날아갈 듯한 힘이 솟아납니다. 진실은 항상 남아있지만 거짓은 쭉정이처럼 날아갑니다. 거짓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가장 견고하고 확실한 진실 위에 우리의 삶을 살아갑시다.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잠14:25)
(3) 진실한 여성이 아름답습니다.
진실이란 무엇입니까? 진실이란 변함이 없는 우직함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은 남성을 오직 한 여성만을 사랑하는 남성으로 만들 듯이, 여성을 오직 한 남성만을 사랑하는 여성으로 만듭니다. 해바라기처럼 딴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하나만인 사랑을 위하여 하나뿐인 생애를 내던지는 것이 진실입니다. 또한 진실이란 이중성이 없는 정직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진실은 표리가 같고 꾸밈이 없고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람을 만듭니다. 정직하지 못하고 얻는 상대적 즐거움보다 불이익을 당할지라도 정직함으로 얻는 절대적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또한 진실이란 더러움이 없는 마음의 깨끗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진실은 외모보다는 인격으로 평가받기 위해 준비하기도 하고 인격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사람을 만듭니다. "여자의 화장한 얼굴을 물로 닦으면 육안이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외모보다는 아름다운 마음을 추구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집념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여성들이 화장도구만 가지고 있다면 일생을 무인도에서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름다움을 추구해도 날마다 자기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느껴야 하는 여성들은 날마다 절망해야 합니까? 바야흐로 현대는 오직 미인들만을 위해 축배를 드는 시대가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형수술만으로도 절세미인을 만들 수 있는 현대에는 오직 진실만이 최종 축배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진실함을 추구하다가 유행에 쳐지게 된다고 할지라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꽃들이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다른 꽃을 닮으려 하지 않고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얀 프리지아는 프리지아대로, 빨간 장미는 빨간 장미대로, 소박한 민들레는 민들레대로 자기의 모습에 충실하지 않습니까? 외모의 아름다움보다는 마음의 아름다움을 중시하고 유행미를 따르기보다는 개성미를 유지 발전시키려는 진실한 모습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추길 것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9)
(4) 소녀와 꽃씨
옛날, 어느 평화스러운 나라에 현명한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진실됨을 알고자 했습니다. 하루는 임금님이 신하들을 불러 여러 종류의 꽃씨와 화분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예쁘고 탐스러운 꽃을 피우게 한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어느덧 1년이 지나 임금님은 약속된 날, 신하들을 데리고 각 마을을 돌면서 가지각색의 예쁘고 소담스러운 꽃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잔뜩 찌푸린 임금님의 얼굴은 밝아질 기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마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많고 예쁜 꽃들을 보고도 못 본 체 지나가는 임금님 때문에 신하들은 조바심과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꽃을 다 본 임금님은 막 돌아서려고 하다가, 어느 소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흙만 담긴 화분을 들고 울먹이며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임금님은 그제서야 빙그레 웃으며, "너야말로 내가 바라는 진실한 사람이로다." 하고 많은 상금을 내리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애초 임금님께서 내린 꽃씨는 끓는 물에 담갔다 꺼낸 것이어서 꽃을 피울 수 없는 꽃씨였답니다. 나라의 신하들과 백성들은 임금님의 환심을 사고자 죽은 꽃씨의 꽃들을 피웠다고 거짓 아뢰었지만 임금님이 정말 보고 싶어 했고, 찾았던 것은 진실이라는 가치였던 것입니다. 눈 앞의 현실적 이익에 눈이 어두워 가장 중요한 마음의 보석을 잃는다면 그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시15: 1-2)
(5) 진흙 속의 진주
로마의 시인 테르툴리아누스는 말합니다.“햇빛은 하수구까지 고르게 비추되 햇빛 자신은 더러워지지 않는다.” 훌륭한 사람은 진흙 속의 진주 같아서 진흙과 함께 있을지라도 주위 환경에 오염되지 않습니다. 요즈음 거짓에 익숙해져 진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짝퉁은 진품보다 더욱 화려합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짝퉁과 진품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음식도 마찬가집니다. 조미료나 향료 맛에 혀가 길들여져 음식의 진짜 담백한 맛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향료 맛에 따라 반응할 뿐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불신의 삶은 영생의 소망이 없습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모릅니다. 죽음 이후에 아무런 소망이 없는 인생은 얼마나 비참한가요. 당신은 혹시 향락의 향료에 길들여져 있지는 않은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진흙 속의 진주처럼 세상의 탁류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성경은 말씀합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12:19)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시111:7)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찌니라”(렘7:28)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9)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시33:4)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슥8:16)
「레미제라블」이라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전과자였던 장발장은 과거를 숨기기 위해 새로운 이름으로 어느 지방 도시의 시장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과를 훔치다 붙잡힌 한 노인이 수배 인물 장발장으로 판명이 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장발장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조용히 있어야 하는가? 정체를 밝혀야 하는가?”
그는 벽장 속 깊숙한 곳에서 자신이 진짜 장발장임을 증명할 수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심한 갈등과 번민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다음 날, 재판정에서 판사의 언도가 내려지려는 순간 진짜 장발장은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내가 장발장이요!” 결국 장발장은 자신을 대신하여 처벌을 받을 뻔한 노인을 위해 명예와 권세를 모두 포기하였습니다. 죄를 고백하려 할 때에는 진실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의 마음은 너무나도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55: 6-7)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가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24:16)
하나님은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이 세상에 속일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과 양심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속일 수 없고, 스스로의 양심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이를 속이려 하는 자는 마침내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진실과 거짓은 판가름나게 마련입니다. 거짓되게 오래 오래 잘 사는 것보다 비록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도 참되고 진실되게 사는 것이 값있는 삶입니다. 진실을 위해 불의와 거짓을 물리치고,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 아합에게 화를 예언한 오직 한 사람
톨스토이는 "신앙은 인생의 힘이다"라고 했습니다. 신앙 중에서도 진실한 마음과 열성있는 마음은 능히 하나님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인생의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요즈음을 말세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말세의 징조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신실한 신앙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미혹하는 미혹된 영들이 그만큼 많아져 신실한 신앙이 아니면 미혹의 영에게 속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미가야라는 선지자는 신실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혹의 영에 현혹됨이 없이 소신있게 아합의 패전과 전사를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시대에 오직 하나뿐이었던 참 선지자로서 진실을 예언한 미가야의 행동을 통해서 오늘날 어지러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자가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합니다.
누가복음 11장 28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본문의 미가야는 바로 이렇게 행했던 자였습니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로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패전할 것이며, 또한 전사할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때에 시대적 상황은 미가야가 이러한 예언을 하기에는 상당한 위협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 왕 아합은 이미 길르앗 라못 탈환을 위해 출정 계획이 끝난 상태였고, 이미 미가야를 제외한 400명이나 되는 다른 모든 선지자들은 승리를 예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하지 않고 왕의 듣기에 좋은 예언을 했을지라도 미가야 선지자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대로 아합 왕은 패전할 것이며 전사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미가야 선지자의 신실한 신앙을 보게 됩니다.
(2) 환난과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미가야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자체만을 전했습니다. 자신이 전사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화가난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라 명했습니다.(26절) 이렇게 미가야는 오직 진실만을 말히기 위해 감옥에 갇히는 일조차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담대한 신앙을 지켰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특히 믿는 사람들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일제 시대 때에도 그랬었고, 6.25동란 때에도 핍박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진실된 신앙을 가졌었습니다. 이처럼 담대한 신앙은 어떠한 환난과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을 우리의 믿음의 조상 뿐만 아니라 미가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3) 세상과 조금의 타협도 없습니다.
요즈음은 형식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많은 성도들을 미혹시켜 타락의 길로 읶는 무리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한 이뿐만 아니라 성경을 약간씩 편리한 대로 수용할 것과, 수용하지 않아도 될 것을 구분지어 믿도록 하는 단체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말씀 자체로서 존중되어야지, 인간의 입장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신실한 신앙은 자신의 입장에서 싫든지 좋든지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미가야 선지자도 아합으로부터 신변 위협의 요소가 많았지만 그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세상에서 조금은 외로움과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길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넓은 길과는 달리 좁고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험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미가야 선지자는 그 시대에 참된 선지자로서는 하나뿐인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고, 어떠한 환난과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세상과 조금의 타협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미가야 선지자처럼 이 세상에 난무하고 있는 미혹의 영들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만을 굳건히 전하는 오직 한 사람이 됩시다. 오늘날은 미가야 선지자 같은 오직 한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때임을 명심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왜곡되지 않고 바르게 전파될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전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설혹 그 일을 하다 핍박을 받는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7. 미가야를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이 무엇인가를 정리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마지막 때에 반드시 많은 거짓 선지자가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여 봅시다.(요일4:1)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7:15)
(2) 미가야는 아합 왕의 거짓 예언 요구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무릎쓰고 정직하게 예언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미가야처럼 불의에는 어떤 고난이 온다해도 굴복하지 말고 진실하게 살고 정직하게 말합시다.
(3) 미가야의 예언은 처음에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과 똑같았습니다. 그가 전쟁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예언한 이유는 아합 왕의 완고함과 어리석음을 비꼬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가야는 자신의 진실한 예언에도 불구하고 아합이 자기의 계획을 끝까지 고수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합의 어리석음을 비꼬면서 역설적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결국 미가야는 진실을 예언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진실된 예언을 함으로써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에게 뺨을 맞는 모욕을 당하고, 아합 왕에 의해서 투옥되었습니다. 엘리야와 예레미야도 시대적인 조류와 야합하지 않았기에 핍박과 박해와 조롱과 멸시를 당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도 그런 인물 중 하나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마5:10)
(4) 참 진리로 인해 고난 받는 미가야 선지자의 모습을 통해 진리를 고수하는 데에는 그만한 교통이 따른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진리가 결국에는 승리하게 하시며 진리로 인해 받은 고통을 보상해 주십니다.(살후3:13)
참으로 어려운 자리에 미가야 선지자는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가야는 담대하게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합왕이 이번 전쟁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가야는 분노한 아합에 의하여 감옥에 투옥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미가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확신에 대하여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세상속에서의 관계나 자신의 입장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를 주장합니다. 포로의 신세로 끌려간 다니엘과 세친구도 자신들의 위치나 당시의 환경을 탓한다면 결단코 그곳에서 채소를 먹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환경과 자신들의 입장과 인간적인 모든 것을 뛰어 넘었을 때 그 일로 인하여 믿음의 영광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행하며 결단하며 믿음으로 고백하고 나아가는 결단의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미가야 선지자처럼 권력과 환경에 굴하지 않고 진리와 진실을 말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정직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배신과 음모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답게 진실하고 당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또한 내게 주신 소명을 기억하며 좁은 길을 기쁨으로 걷는 믿음을 허락해 주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께서 맡기신 일에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하소서. 거짓을 미워하고 위선을 경계하며 이 땅에 진실을 쌓아가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피난처이시요 방패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힘있고 정직하게 살게 하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묵상 및 토의
0 미가야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 해보세요
0 나는 미가야의 어떤 면을 닮고 싶은지 이야기 해보세요.
0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해 있을지라도 주를 의지하고 담대할 수 있는가?
0 나는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인가?
0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고 진실한 자가 되려고 힘쓰고 애쓰는가?
0 거짓말하는 기독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0 당신의 말에는 정직한 말과 거짓말, 과장된 말이 어느 정도 됩니까?
0 내가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하는 거짓말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0 내가 정직하고 진실되게 말함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0 성도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이야기 해 보세요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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