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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포리일기 70】밤에는 잠을 자야 되는데
시골 우리 집은 대추나무가 20여그루나 있어서 해마다 커다란 다라에 한 가득 대추를 거두어들였습니다. 대추가 어찌나 크고 실한지 따기도 전에 보건소장님 몇 되, 성산 이모님 몇 되, 광주 현식이네 몇 되, 아랫집 몇 되... 하면서 미리 예약을 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 대추나무에 대추가 열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 베어버리고 서너 그루만 남아 있습니다.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집 앞에 가로등 두 개가 생기면서부터 대추나무가 밤에 잠을 못 자 스트레스를 받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밤새도록 켜놓은 등불이 나무들, 짐승들, 온갖 것들을 참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곡식이나 열매는 어둠 속에서 알이 영글고 밑이 든다고 하지요. 그래서 어느 동네에선가는 벼들이 잘 자도록 한밤중에는 가로등을 모두 끈다는 글을 읽은 것도 같습니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과학영농’이라는 이름으로 비닐하우스에 밤에도 불을 환하게 켜서 채소나 동물들을 속성으로 기르고 키워냅니다. 낮인지 밤인지 분간 못하고 정신 없이 자란 상추며 쑥갓이며 깻잎이며 채소들, 그리고 밤낮 구분 없이 낳은 계란, 고기를 먹고사니 사람들도 그렇게 밤낮구별을 못하는 걸까요? 2006.9.3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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