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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욥23: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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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하원양 목사 |
참고 : | 에드몬톤 벧엘교회 |
제 목 : 두 손에 꼭 쥔 것.
본 문 : 욥 23:10-14 35:9-16
한 성도가 욥기를 열심히 읽고 묵상한 후 아무래도 의문이 풀이지 않아 목사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욥을 시험하시기 위해 재산을 빼앗으시고 자식들까지 모두 빼앗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왜 욥의 아내만은 데려가지 않으셨습니까? 욥기2:9에 보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까지 저주했는데도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골똘히 생각하던 목사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시험하신 후 빼앗아 가신 것들을 갑절로 갚아 주셨습니다. 만약 욥의 아내를 빼앗아 갔다면 아내까지도 두 사람을 주어야 했습니다. 한사람의 마누라 거느리기도 힘든 세상에 두 사람에게나 시달리게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욥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차마 그 같은 형벌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자기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요나요, 다른 한 사람은 욥입니다. 욥은 동방에서 제일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물질을 다 빼앗기고 하루에 자녀 10명을 잃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난 악창은 그를 잿더미로 몰았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버렸습니다. 그에게 남은 일은 절망하는 것뿐이고 포기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런 환란과 고통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끝까지 두 손에 꼭 쥔 것이 있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욥이 끝까지 찬송의 능력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말씀 욥35:9-10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밤 중에 노래하고 있습니다.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하고 욥은 고통 속에서도 노래하였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고 잿더미에 앉아서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의 능력은 욥에게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에 노사 분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먹을 쥐고 노래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보통 노래를 하여도 힘이 생겨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노래를 부르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노래인 찬송을 부르면 얼마나 능력이 생기겠습니까?
바울과 실라도 감옥에 갇혔습니다. 팔다리가 모두 착고에 묶였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이 능력이 되어 천사가 동원되었고 옥 터가 흔들렸고 옥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욥이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라는 말씀이나 바울이 “한밤중에 찬송하더니”라는 말씀은 바로 찬송이 능력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시는 분이시기에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능력을 주십니다. 찬송은 능력입니다. 욥이 잿더미에 앉아서,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어떤 찬송을 불렀겠습니까? 아마 이런 찬송을 불렀을 것입니다.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찬송은 능력입니다.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마지막까지 잃지 않고 두 손에 꼭 쥔 것은 찬송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찬송의 능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욥이 기도의 능력을 끝까지 두 손에 꼭 쥐었다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말씀 욥35:13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신앙은 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께서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돌아보지도 않으신다는 기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올바른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욥은 최악의 환경에서도 기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욥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욥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을 아오니”
욥42:4-5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내가 귀로 듣기만 하였는데 이제는 눈으로 하나님을 뵙게 되었다고 회개와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욥은 다 잃었어도 기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구세군을 창설한 영국의 윌리암 부스(William Booth)는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간결하고도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였을 때 마음이 녹아지고, 여호수아가 기도하였을 때 아간의 죄가 심판 받았고, 한나가 기도할 때에 아들을 얻었고, 다윗이 기도할 때에 원수 아히도벨은 스스로 목을 메어 죽었고,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에 앗수르 군은 진멸되었으며, 엘리야가 기도할 때에 3년 6개월의 가뭄이 끝나고 큰 비가 내렸고, 120문도가 기도할 때에 성령이 충만하게 강림하였습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세를 갖추어 기도하고 찬송 부르면 하나님은 어두운 밤을 물러가게 하십니다. 어느 분이 기독교는 기도교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셀 폰보다 좋은 7가지 이유입니다.
1. 셀 폰은 잘해봐야 한 달 200분 무료통화지만, 기도는 한번 가입하면 평생 무료 통화입니다.
2. 셀 폰은 환경에 따라 통화성능이 결정 나지만, 기도는 성능이 너무나 좋아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합니다.
3. 셀 폰은 공공장소에서 사용하기엔 눈치 보이지만, 기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이 가능합니다.
4. 셀 폰의 사용내역은 통신회사에 남지만, 기도의 사용내역은 하늘나라 책에 남습니다.
5. 한대의 셀 폰으로는 한 사람밖에 통화 할 수 없지만,기도는 원한다면 한 번에 수많은 사람이 동시통화 할 수 있습니다. (손잡고도 하며, 돌아가며, 소리질러가며, 통화방법도 다양합니다.)
6. 셀 폰에서의 침묵은 쓸데없는 상상을 일으키지만, 기도할 때 침묵은 주님이 알아서 접수하십니다.
7. 셀 폰의 업그레이드는 사람의 시선을 끌지만, 기도의 업그레이드는 하나님의 시선을 끕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욥이 끝까지 소망을 두 손에 꼭 쥐었다고 하십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고, 모든 사람을 잃었지만 소망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욥이 소망을 잃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해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욥23:13-14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욥은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은 지금 이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은 소망을 잃지 않았기에 때문에 그런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끝을 맺을 수가 있었습니다.
소망이 능력입니다. 유대인 학살 수용소를 연합군이 탈환한 뒤 이 수용소의 벽을 검사하던 한 군인은 낡은 조각으로 쓰여진 찬송가의 가사를 보았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두루마리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겠네.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겠네.” 그리고 그 가사를 좀 더 자세하게 바라보던 군인은 이런 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픔을 다 아시며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소망은 능력입니다. 쥐를 잡아서 통속에 두고 빛 한 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더니 곧 질식하여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바늘구멍으로 빛을 넣어 주었더니 며칠을 견뎠습니다.
욥은 절망 속에서도 소망의 빛을 보았습니다.
욥은 소망의 빛 때문에 죽음의 고통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단련시킨 후에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지만 소망을 두 손에 꼭 쥐고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소망은 능력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욥이 끝까지 두 손에 믿음을 꼭 쥐었다고 하십니다.
오늘본문말씀 욥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 믿음을 두 손에 꼭 쥐고 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통으로 단련시킨 후 순금같이 들어 쓰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드라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창공을 날고 있었습니다. 이때 독수리 한 마리가 배가 고파서 비둘기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독수리에게 이길 수 있는 비둘기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달아날 수도 없었습니다. 독수리가 수 십 배 빠르게 날기 때문입니다.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눈앞에 바위가 보였고 바위 옆에 굴이 보였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 굴은 자기는 들어갈 수가 있고 독수리는 들어갈 수 없어서 숨기에 적당한 크기의 굴이었습니다. 기쁨 속에서 비둘기는 굴속으로 잽싸게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독사가 웅크리고 앉아서 잘 들어 왔다고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죽었구나 생각하고 절망하고 있는데 주인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구구 구구 하면서 자꾸만 소리를 냈습니다. 주인이 자기 집 비둘기 소리를 듣고 소리가 나는 굴로 다가왔습니다. 굴 앞에 앉아 있는 독수리를 쫓았습니다. 그리고 비둘기를 꺼냈습니다.
주인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욥은 자신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있었습니다. 애굽 군사가 쫓아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뒤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 모세는 앞뒤가 막혔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증거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고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믿음으로 승리하였습니다. vus지를 보낼 때마다 믿음을 연습한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먼 곳에 사는 친구에게 쓴 편지는 내 손으로 전할 수가 없습니다. 우체국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체국에서 그 편지를 전달하려면 먼저 내가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야 합니다. 편지를 갖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우체통에 넣어서 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우체국에서 나의 편지를 친구 집에 배달해 줄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내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우체국에 대한 나의 믿음 때문에 내 편지는 벌써 친구의 손에 도착한 것과도 같은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문제를 만날 때 우리의 믿음은 도전을 받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그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때에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기 전까지는 내 문제를 내 손에 그대로 쥐고 있는 셈입니다. 내 문제를 하나님 손에 맡길 때까지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일단 내 손에서 놓으면 내 문제가 하나님 방법으로 해결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고 계시는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살고 있습니까? 욥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시킨 후 순금같이 나오게 하시리라는 믿음을 끝까지 두 손으로 붙들었습니다. 욥의 믿음은 이제 귀의 믿음이 눈의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찬송은 능력입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소망은 능력입니다. 지금 나의 두 손에 무엇을 꼭 쥐고 있습니까? 욥보다 더 고통을 받으신 분 있습니까? 욥은 다 잃었어도 찬송을 잃지 않았습니다. 욥은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도 그의 두 손에는 찬송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욥은 연약한 두 손은 고통 속에서 파르르 떨면서도 찬송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회복되어야 할 것이 찬송입니다. 이 교회에 새롭게 메아리쳐야 할 것이 찬송입니다. 욥은 다 잃었어도 기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욥보다 더 육체의 질병을 앓고 계신분이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두 손을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이민의 힘든 삶과 경제적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두 손에 꼭 쥐어야 할 것이 기도입니다. 욥은 다 잃었어도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고국을 떠난 낯선 타국 땅에서 살 때 많은 아픔도 있었습니다. 섭섭함도 많았습니다. 눈물도 많았습니다.
이대로 끝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욥을 배로 회복시켜 주셨듯이 나를 몇 배로 회복 시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회복시키시는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욥은 다 잃었어도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나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연단 받은 후 순금 같이 귀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이민자들의 문제의 해결방안입니다. 나의 두 손에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할 것들이 무엇입니까?
어떤 환란과 고통이 와도 두 손에 찬송을 꼭 쥐어져 있어야합니다.
어떤 어려움과 핍박이 있어도 나의 두 손은 기도하는 손이 되어야합니다.
어떤 실패와 넘어짐이 있어도 나의 두 손에는 하늘의 소망이 쥐어져 있어야 합니다.
어떤 눈물과 유혹이 나의 길을 가로 막아도 쓰러지지 않고 두 손에 믿음을 쥐어야 합니다.
힘들고 힘든 이민생활에서 우리들의 두 손에 끝까지 놓지 않고 쥐고 있어야 할 것들입니다.
찬송입니다. 기도입니다. 소망입니다. 믿음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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