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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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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회개할 때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를 비웃는 어떤 사람이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교회에서는 늘 죄의 짐이 무거운 것이라고 얘기하고 또 목사님은 말씀하기를 죄짐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하시는데 저는 아무 짐도 못 느끼거든요. 도대체 그 죄짐이라는게 얼마나 무게가 나갑니까? 한 50파은드 나가나요? 아니면 백 파운드쯤 되나요?"
이 사람을 이윽고 바라보던 목사가 입을 열어 말을 했다.
"선생, 만약 여기에 죽은 사람이 한 사람 누워 있다면, 그 위에다 무거운 짐을 올려 놓을 때 그 죽은 사람이 무게를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을 했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못 느끼지요. 천 파운드의 무게를 올려 놓아도 못 느끼지요." 목사는 다시 말했다. "선생, 그것과 똑 마찬가지입니다. 선생은 죄 가운데서 죽어있는 상태이기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명 한센병이라고도 하는 문둥병의 병원균인 나균은 마취 주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문둥병은 상처를 통해 감염이 되는데, 일단 감염이 되면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온 몸이 흉칙한 모습으로 문드러집니다. 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아주 작은 모습으로 우리 안으로 침투합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킵니다. 그런 다음 무서운 속도로 우리 온 몸과 영혼을 헤집고 다닙니다. 지금 당장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막으십시오. 그리고 이미 들어와 있는 죄가 빨리 나가도록 출구를 활짝 열어 놓으십시오. 죄의 파괴력을 두려워하십시오. 아무리 작은 죄라도 허용하지 마십시오. 죄는 늘 작은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요즈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사람들이 모두 세뇌당한 것 같습니다. 기독인들도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이 세상을 본받고 있습니다.
세뇌라는 말은 "상대편을 일종의 마비상태에 빠지게하여 어떤 특정의 사상이나 주의를 주입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세뇌당한 현대인들은 판단의 기준이 흐려졌습니다. 특히 매스컴의 영향은 엄청난 위력을 갖고 사람들의 사고를 획일화시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해야 할 선악의 기준을 잊었습니다. 다만 주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모두들 소위 "관행"이라는 말을 하며 아무런 죄의식없이 계속 범죄하는 "관행범"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명하셨습니다. "예루살렘 거리에 가서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
남왕국 유다는 얻어 맞으면서도 아픈 줄을 모르고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그 결과 나라는 멸망당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오늘 서울 거리에서 바르게 살며 신용을 지키는 사람을 찾으면 얼마나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종교지도자들,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회당의 상석에 앉아, 군림하면서, 성도의 헌물로 배불린 모습(겔34:2-4)과 오늘날 지도자들의 부정과 비리를 보면서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별다른 생각없이 같은 죄를 저질르지는 않았겠는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에스라는 성전앞에 엎드려 울며 자복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였습니다. 그들은 남녀노소 모두 크게 통곡하였습니다. 그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하여 이방여인과 결혼했던 사람들이 처자를 버리는 고통까지도 감수하였습니다.(스10장) 또한 그들은 모여서에스라가 읽고 풀이해 주는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울며 회개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지키지 못했던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백성들은 베옷을 걸치고 흙을 뒤집어 썼습니다. 금식을 하며 죄를 뉘우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대로 살 것을 맹세하였습니다.(느8-10장) 유대인들은 지금도 종교적 전통에 따라 일년에 한 번씩 속죄일을 지킵니다. 이날은 대중교통 수단도 메스컴도 전체가 쉽니다. 노래도 부르지 않고 웃지도 않으며 일체의 오락을 하지 않습니다. 신앙심 깊은 유대인들은 금식을 합니다. 온 국민이 하루를 조용하고 경건하게 보내며 하나님께 죄를 고백합니다. 참으로 부러운 전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의 개념이 희미한 국민은 미래가 없는 민족입니다. 예루살렘을 보시며 한탄하셨던 예수님께서 오늘 서울을 보시며 탄식하실 것입니다. "서울아! 서울아!"(눅13:34)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하루를 대속죄일로 선포해야 할 때입니다. 온 국민이 엎드려 울며 죄를 회개할 때입니다.
일반인 보다 기독교인들이, 그리고 직분맡은 제직자들(장로, 권사) 특히 교역자들이 먼저 회개할 때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를 멀리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 무궁한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하늘에 사무쳐 큰 재앙과 진노가 임하기 전에 우리 모두 어서 속히 회개합시다. 지금은 무엇보다 회개할 때입니다.(대하7:14)
기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 진정으로 감사하오며 주님을 사랑합니다. 죄는 반드시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를 멀리하고, 죄를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없는 자처럼 살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순간순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9-11)
한태완 지음, 요나출판사, "기쁨의 샘"중에서
교회와 그리스도를 비웃는 어떤 사람이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교회에서는 늘 죄의 짐이 무거운 것이라고 얘기하고 또 목사님은 말씀하기를 죄짐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하시는데 저는 아무 짐도 못 느끼거든요. 도대체 그 죄짐이라는게 얼마나 무게가 나갑니까? 한 50파은드 나가나요? 아니면 백 파운드쯤 되나요?"
이 사람을 이윽고 바라보던 목사가 입을 열어 말을 했다.
"선생, 만약 여기에 죽은 사람이 한 사람 누워 있다면, 그 위에다 무거운 짐을 올려 놓을 때 그 죽은 사람이 무게를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을 했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못 느끼지요. 천 파운드의 무게를 올려 놓아도 못 느끼지요." 목사는 다시 말했다. "선생, 그것과 똑 마찬가지입니다. 선생은 죄 가운데서 죽어있는 상태이기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명 한센병이라고도 하는 문둥병의 병원균인 나균은 마취 주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문둥병은 상처를 통해 감염이 되는데, 일단 감염이 되면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온 몸이 흉칙한 모습으로 문드러집니다. 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죄는 아주 작은 모습으로 우리 안으로 침투합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킵니다. 그런 다음 무서운 속도로 우리 온 몸과 영혼을 헤집고 다닙니다. 지금 당장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막으십시오. 그리고 이미 들어와 있는 죄가 빨리 나가도록 출구를 활짝 열어 놓으십시오. 죄의 파괴력을 두려워하십시오. 아무리 작은 죄라도 허용하지 마십시오. 죄는 늘 작은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요즈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사람들이 모두 세뇌당한 것 같습니다. 기독인들도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이 세상을 본받고 있습니다.
세뇌라는 말은 "상대편을 일종의 마비상태에 빠지게하여 어떤 특정의 사상이나 주의를 주입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세뇌당한 현대인들은 판단의 기준이 흐려졌습니다. 특히 매스컴의 영향은 엄청난 위력을 갖고 사람들의 사고를 획일화시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해야 할 선악의 기준을 잊었습니다. 다만 주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모두들 소위 "관행"이라는 말을 하며 아무런 죄의식없이 계속 범죄하는 "관행범"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명하셨습니다. "예루살렘 거리에 가서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
남왕국 유다는 얻어 맞으면서도 아픈 줄을 모르고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그 결과 나라는 멸망당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오늘 서울 거리에서 바르게 살며 신용을 지키는 사람을 찾으면 얼마나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종교지도자들,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회당의 상석에 앉아, 군림하면서, 성도의 헌물로 배불린 모습(겔34:2-4)과 오늘날 지도자들의 부정과 비리를 보면서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별다른 생각없이 같은 죄를 저질르지는 않았겠는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에스라는 성전앞에 엎드려 울며 자복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였습니다. 그들은 남녀노소 모두 크게 통곡하였습니다. 그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하여 이방여인과 결혼했던 사람들이 처자를 버리는 고통까지도 감수하였습니다.(스10장) 또한 그들은 모여서에스라가 읽고 풀이해 주는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울며 회개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지키지 못했던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백성들은 베옷을 걸치고 흙을 뒤집어 썼습니다. 금식을 하며 죄를 뉘우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대로 살 것을 맹세하였습니다.(느8-10장) 유대인들은 지금도 종교적 전통에 따라 일년에 한 번씩 속죄일을 지킵니다. 이날은 대중교통 수단도 메스컴도 전체가 쉽니다. 노래도 부르지 않고 웃지도 않으며 일체의 오락을 하지 않습니다. 신앙심 깊은 유대인들은 금식을 합니다. 온 국민이 하루를 조용하고 경건하게 보내며 하나님께 죄를 고백합니다. 참으로 부러운 전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의 개념이 희미한 국민은 미래가 없는 민족입니다. 예루살렘을 보시며 한탄하셨던 예수님께서 오늘 서울을 보시며 탄식하실 것입니다. "서울아! 서울아!"(눅13:34)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하루를 대속죄일로 선포해야 할 때입니다. 온 국민이 엎드려 울며 죄를 회개할 때입니다.
일반인 보다 기독교인들이, 그리고 직분맡은 제직자들(장로, 권사) 특히 교역자들이 먼저 회개할 때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를 멀리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 무궁한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하늘에 사무쳐 큰 재앙과 진노가 임하기 전에 우리 모두 어서 속히 회개합시다. 지금은 무엇보다 회개할 때입니다.(대하7:14)
기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 진정으로 감사하오며 주님을 사랑합니다. 죄는 반드시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를 멀리하고, 죄를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없는 자처럼 살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순간순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9-11)
한태완 지음, 요나출판사, "기쁨의 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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