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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포리일기 99】영평사에서
언젠가 신문에서 한 스님이 10년 동안 구절초를 가꾸어 절 주변과 산 언덕을 온통 하얀 구절초세상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 구절초 피는 영평사가 10분이면 갈 수 있는 동네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혼자 조용히 영평사 구절초를 찾아갔습니다. 너무 일찍 갔는지 구절초는 아직 꽃이 피기 직전이었고 마침 산에 있는 밤나무에서 알밤이 빠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절 마당으로 난 길을 따라 밤나무가 군데군데 있었는데, 굵은 알밤이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왓! 알밤바라... 누가 줍기 전에 얼렁 줍자...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지 뭐!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알밤을 주웠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저 앞에 무슨 통이 하나 있었고 그 안에는 알밤이 얼마정도 들어있었습니다. 아, 주워서 거기에 넣으라 이거지?
에... 한 톨도 안 남기고 주머니를 뒤집어서 먼지까지 다 털어 넣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으니 그냥 모른 척 하고 슬쩍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까짓거 버리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할 뻔한 절간의 밤나무를 뒤로하고 장군산에 오르니 사방 천지에 밤나무가 가득하여 알밤이 발에 밟힐 정도로 많았습니다.
2006.10.14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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