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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무등신춘] 풍산이, 북으로 돌아가다 -임경선

신춘문예 임경선............... 조회 수 1571 추천 수 0 2011.02.08 23: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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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신춘 '무등문예' 동화 당선작- 풍산이, 북으로 돌아가다

 

풍산이, 북으로 돌아가다 /임경선

풍산이~1.JPG

 다정이가 사는 햇볕마을은 산마루에 올라서면 강 건너 북한 마을이 가물가물 보입니다. 큰 비가 온 다음날이면 햇볕마을 아이들은 냇가로 나갑니다. 물이 빠질 때, 같이 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을 잡을 수 있고, 가끔 북한에서 떠내려 오는 잡동사니들을 구경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캄캄했던 하늘이 오늘은 거짓말처럼 활짝 개었습니다. 다정이는 오빠와 함께 냇가로 뛰어나갔습니다. 냇가엔 북한에서 떠내려 온 양은냄비, 바가지, 책 등 신기한 물건들이 둥둥 떠다녔습니다.

"강아지! 오빠, 강아지가 떠내려 와!"

저만치 물 가운데, 하얀 강아지 한마리가 나무판자를 타고 떠내려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디? 와, 정말!"

오빠가 어느새 기다란 막대기로 떠내려 오는 판자를 끌어 당겼습니다.

"영차, 영차!"

다정이와 오빠가 나무판자를 붙잡자마자, 강아지는 금세 땅으로 기어 나왔습니다. 잔뜩 겁을 먹은 채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어찌나 떠는지, 다정이가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오빠, 이것 봐. 이름표가 달렸어."

황토 물에 얼룩진 하얀 털 사이에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풍산이. 황해도 배천군 솔이네."

오빠가 목걸이에 써진 글씨를 자세히 읽었습니다.

"오빠,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키우자."

"안 돼. 엄마는 개 싫어하잖아.'

오빠는 끝까지 안 된다고 우겼습니다.

"그래도…… 이것 봐. 금방 죽을 것 같잖아."

다정이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햇볕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집배원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세우며 다가왔습니다.

"웬 강아지냐?"

집배원 아저씨는 다정이가 안고 있는 강아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봤습니다.

"보통 개는 아닌 것 같은데……."

"그죠? 아저씨~ 이름도 풍산이래요. 북한에서 떠내려 온 게 분명해요."

"이번에 내린 비에 북쪽에서 떠내려 왔나보구나."

"네."

"얼른 데리고 가서 씻기고, 뭐 좀 먹여야겠다."

다정이는 엄마에게 야단맞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제가 강아지를 주워 왔어요."

"뭐? 강아지를? 주인을 찾아 줘야지 집으로 데려오면 어떻게 하니?"

"북한에서 떠내려 온 것 같은데……."

"엄마. 다정이와 제가 잘 돌볼게요."

다행스럽게도, 오빠가 다정이의 편을 들어 주었습니다.

"뭐? 어디서 빨갱이 놈의 개를?"

지켜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광견병 주사나 맞혔겠니? 엉뚱한 소리 말고 당장 읍내 동물보호소에 데려다 줘라. 알겠니?"

엄마가 아주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오늘만 봐 주세요. 내일 꼭 데려다줄게요."

겨우 허락을 받은 다정이는 강아지를 화장실로 데려가 목욕을 시켰습니다. 그러고는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먹였습니다.

 

다음날, 다정이와 오빠는 강아지를 안고 집을 나섰습니다.

"엄마는 그렇다 쳐도 왜 할아버지까지 역정을 내실까?"

뭐든 편을 들어주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역정을 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한쪽 다리를 잃으셨잖아. 그러니 끔찍하시겠지?"

정말 오빠의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이제 어떡해?"

"글쎄……. 아, 성황당할머니! 학교 가는 길목이니까 당분간 성황당할머니에게 부탁해보자!"

오빠의 말에 다정이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언제라도 아이들 부탁을 잘 들어주는 성황당할머니는 당분간 강아지를 묶어두라고 허락했습니다.

그날부터 다정이는 공부를 마치면 곧장 성황당할머니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풍산아~"

"멍, 멍멍!"

다정이는 매일 학교에서 주는 간식을 먹지 않고 풍산이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물론 오빠도 도와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강아지는 다정이를 잘 따랐습니다. 일요일에 다정이는 풍산이를 데리고 일부러 산마루에 올라갔습니다. 풍산이는 고개를 세운 채 멀리 내려다보이는 북한 마을을 끝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풍산아, 집에 가고 싶어?"

"멍, 멍멍!"

대답이라도 하듯 풍산이가 짖어댔습니다. 다정이의 손을 핥아대는 풍산이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새 소문을 들은 동네 아이들도 풍산이를 보기 위해 성황당할머니 집을 들락거렸습니다.

"안녕하십네까. 내레 리북에서 떠내려 온 풍산입네다."

"이보라우, 풍산 동무, 날래 날래 짖어 보라우."

아이들이 장난을 치자, 풍산이도 덩달아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재미나게 놀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나가던 동네 망태할아버지가 성황당할머니 집으로 쫓아 오셨습니다.

"이 놈들. 흉내 낼 게 없어 북한 사투리를 하는 게야?"

"왜요? 할아버지. 재미있잖아요?"

아이들이 조잘조잘 풍산이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뭐라고? 북한에서 떠내려 온 개라고? 어디 한 번 보자."

다정이는 풍산이를 뺏길까봐 망태할아버지를 막아섰습니다. 내내 꼬리를 치며 놀던 풍산이도 망태할아버지를 향해 으르렁거렸습니다.

"이놈의 개새끼가!"

망태할아버지가 막대기를 들이밀었습니다. 당장 풍산이를 잡아 보신탕을 만들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풍산아, 뛰어!"

다정이가 풍산이 목줄을 잡고 달렸습니다.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둘이서 얼마를 달렸을까? 망태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정이는 불쌍한 풍산이를 어른들이 왜 미워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성황당할머니 집으로 달렸습니다. 그런데 이장님이 풍산이를 끌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장님, 안 돼요!"

"떠돌이 개를 이렇게 두는 건, 법을 어기는 거란다. 또 병이라도 걸리면 온 마을 개들한테 옮기게 돼."

"안 돼요. 풍산이는 아주 건강하단 말이에요."

"걱정 마라. 읍내 동물보호소에 데려다 놓을 테니,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 가서 보거라."

이장님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풍산이를 억지로 자전거 뒤에 실었습니다. 다정이가 쫓아갔지만, 이장님이 탄 자전거는 벌써 저만큼 달려가 버렸습니다.

풍산이가 끌려간 지, 며칠 뒤였습니다.

오빠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정아, 이장님한테 들었는데 한 달 내에 풍산이를 맡아 키울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죽여 버린대."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그래. 그렇대. 풍산이 불쌍해서 어쩌냐?"

오빠도 어느새 풍산이와 정이 들었는지, 걱정을 했습니다.

"말도 안 돼. 풍산이를 죽게 할 순 없어!"

다정이는 집으로 달려와 엄마를 졸라 보았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 할아버지까지 모두 절대 안 된다고만 했습니다. 다정이는 안절부절못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정이는 텔레비전에서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장면을 봤습니다.

'맞아, 풍산이를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거야!'

다정이는 대한적십자사에 부탁하면 풍산이를 북으로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빠, 적십자사에 편지를 쓰면 안 될까?"

"십자사에 편지를? 너 정말 웃긴다. 그게 말이나 되니? 나라에서 겨우 강아지 한 마리 보내자고 북한에 연락하겠니? 너, 바보 아냐?"

"? 적십자사가 이산가족들 만나게 해 주잖아."

"사람하고 개가 같니? 꿈 깨라. 꿈 깨!"

다정이는 실망이 가득했습니다.

학교가 끝나자, 다정이는 땅바닥만 쳐다보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다정이 곁으로 오토바이를 탄 집배원 아저씨가 다가왔습니다,

"휴우~"

집배원아저씨를 보자마자 다정이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땅 꺼지겠다. 무슨 일 있니?"

"실은 제가요. 대한적십자사에 편지를 보내려고 하는데요."

다정이는 지금까지 풍산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차근차근 이야기했습니다.

"그랬구나. 먼저 편지부터 써보렴. 아저씨가 도와줄게."

"정말이요?"

"그럼. 풍산이처럼 귀한 개를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우리 풍산이가 귀한 개에요?"

"다정이가 몰랐구나? 진돗개, 삽살개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토종개인데 북한에선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단다."

다정이는 풍산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곧바로 적십자사에 편지를 보내놓고,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집배원 아저씨는 빈손만 들어보였습니다. 어른들 말씀처럼 적십자사는 많이 바쁜 모양이었습니다.

 

온통 풍산이 걱정으로, 다정이는 선생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컴퓨터실에서 적십자사 홈페이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사이트 어디에 풍산이 이야기를 써야 될지, 아무리 보아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마다 풍산이를 살려 달라는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아이들도 하나 둘 다정이를 도왔지만, 어른들이 알까봐 쉬쉬했습니다.

며칠 동안 컴퓨터실을 들락거렸지만 어디서도 좋은 소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내일이면 풍산이가 죽게 되는 날입니다.

아이들이 막 수업준비를 마치고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교실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2학년 1반 김다정은 교장실로 오세요."

"다정아, 얼른 가 보렴. 교장선생님께서 널 찾으시는구나."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서며 말씀하셨습니다. 적십자사에 편지를 보낸 것 때문에 혼이 나는가 싶어 다정이는 울상이 되었습니다.

다정이가 교장실로 들어가자, 교장선생님께서는 환하게 웃으며 맞아 주셨습니다.

"우리 다정이가 참 장한 일을 했더구나. 적십자사에서 네 편지를 보고, 북한적십자사와 연락한 끝에 풍산이를 북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단다."

"네? 정말이에요?"

적십자사에서 나온 아저씨가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다정이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정이가 풍산이를 안고 판문점을 찾은 날은 유난히 하늘이 높은 가을날이었습니다. 풍산이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지 꼬리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신문기자들이 다정이에게 자꾸 말을 걸었지만, 온몸이 떨려서 입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쁘면서도, 풍산이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자꾸 눈물만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때 기자들이 다급하게 북쪽으로 뛰어갔습니다.

저만치 북쪽판문점에서 군인 몇 명과 풍산이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타났습니다.

풍산이를 안은 다정이가 앞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풍산이가 갑자기 멍멍 짖더니, 잡을 사이도 없이 훌쩍 뛰어내렸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 북쪽의 아이 품에 안겼습니다. 꼬리를 흔들며 연방 옛 주인의 얼굴을 핥아댔습니다.

"풍산아, 잘 가!"

다정이가 울먹거리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풍산이를 안고 가던 북한 아이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멍멍, 풍산이가 짖어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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