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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동화]
귓속에 사는 무당거미 /안수자
"오빠, 어떡해! 잠자리가 두 마리나 죽었어.”
아침부터 송이는 곤충채집통을 들고 징징거렸다.
“걱정 마, 오늘 다시 잡아줄게.”
송이는 손가락을 걸고 도장, 복사까지 하면서 내게 다짐을 받았다.
심심한 우리들은 만날 잠자리 잡고 매미 잡으며 놀았다. 놀다가 채집통 속의 잠자리들을 모두 놓아주곤 했다.
오늘도 곤충채집통의 뚜껑을 열었다. 하지만, 겨우 잠자리 두 마리만 날아가고 나머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송이가 한 마리씩 꺼내서 풀잎 위에 살짝살짝 올려놓았지만 날아가지 않았다.
나는 다시 거미줄을 걷으러 갔다. 무당거미는 더 높은 곳에 집을 지어놓았다.
“히히, 거미야, 오늘도 네 집 좀 빌려간다.”
이번에는 무당거미가 거미줄 끝에 매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절대로 자기 집을 내놓을 수 없다는 듯이. 나는 잠자리채로 거미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무당거미가 긴 줄을 타고 ‘툭’ 떨어지듯 내려오더니 내 눈 앞에서 멈췄다. 내 눈을 정면으로 노려보는 것 같았다. 나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거미가 거미줄에 매달린 채 뱅뱅 돌기 시작했다. 노란색과 검정색의 얼룩무늬가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소용돌이는 점점 작아지더니 모기만 해졌다.
잠시 오르락내리락하던 거미가 내 머리 위로 뚝 떨어졌다. 볼볼볼, 머릿속이 가닐거렸다. 귀가 간지러웠다. 분명 무당거미가 내 머리로 떨어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머리를 털었다. 아무 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귀도 후벼보았다.
“윽-”
갑자기 왼쪽 귓속이 따끔했다.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귓속을 후볐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오빠! 왜 그래?”
송이가 달려왔다.
“거미가, 거미가 내 귓속으로 들어간 것 같아!”
“뭐?”
“무당거미가 내 귓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니까!”
“에이, 거미가 어떻게 귓속으로 들어가?”
송이가 내 귓속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데. 진짜로 아파?”
“뭐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이 간질간질하고, 먹먹해.”
“그럼, 병원에 가봐야 되는 거 아냐?”
병원이라는 말에, 금세 귓속이 거짓말처럼 편안해졌다.
우리는 다시 거미줄을 찾아 다녔다.
‘하지 마, 하지 마.’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송이야, 너도 들었니?”
“아니, 아무소리도 안 들리는데.”
우리는 다시 잠자리를 잡으러 갔다. 내가 막 잠자리를 잡으려 할 때였다.
‘잡지 마! 잡지 마!’
놀라서 잠자리채를 떨어트렸다. 물론 그 사이에 잠자리는 날아가 버렸다. 나는 기분이 찜찜해서 잠자리채를 송이에게 주고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마루에 누워 몸을 뱅글뱅글 돌리며 해바라기를 했다.
‘빨리, 내 집 돌려줘!’
어디선가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넌 누구야? 숨지 말고 나와서 얘기해.”
‘싫어. 난, 네 귓속에 있어.’
“내 귓속에 있다고. 네가 누군데 내 귓속에 있다는 거야?”
‘아침에 네 귓속으로 들어갔잖아.’
“그럼, 네가 그 무당거미?”
‘그래, 집이 없어졌으니까 난 여기서 살 거야.’
“말도 안 돼. 빨리 나와! 너는 다시 집 지으면 되잖아.”
더 이상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양쪽 귀 속을 후볐다.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처럼 왼쪽 귀를 아래로 숙이고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거미가 내 귓속에 있다고 생각하니, 온 몸이 근질근질하고 견딜 수 없었다. 수수알갱이 같은 소름이 온 몸에 돋았다. 진짜인 것 같아서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
‘귓속에 거미줄을 치는 건 아닐까?’
귓속에 벌레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상을 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는 내가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귀가 몹시 아파서 병원에 가본 적은 있었지만, 어떻게 커다란 무당거미가 귀에 들어갈 수 있을 까 생각하니, 픽 웃음도 나왔다.
컴퓨터도 없고, 친구들도 없고, 심심하니까, 이제는 별 상상을 다 하는 내가 한심하기까지 했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직장을 잃게 되어 한 달 전에 이곳 방골 마을로 이사 왔다. 방골 마을은 ‘빨리빨리’라는 말에 쫓겨 살던 도시의 생활과는 완전히 달랐다. 학원은 물론 방학이라 학교도 가지 않았다. 하루 종일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동네를 돌아다니며 잠자리나 매미를 잡으며 신나게 놀았다. 며칠 전에는 매미를 잡으러 느티나무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져 잠자리채를 부러뜨렸다. 잠자리채는 송이와 내게는 주요 놀이도구였다. 내 머리 속에는 온통 잠자리채를 다시 만들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 때 만난 것이 바로 무당거미였다. 지붕과 감나무 사이의 거미집에 잠자리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서 나는 부서진 잠자리채를 대신 할 도구를 생각해냈다. 바로 거미줄잠자리채다.
굵은 철사를 둥그렇게 구부려 양쪽 끝을 새끼를 꼬듯 말아서 바지랑대에 꽂았다. 그리고 철사의 둥그런 부분에 거미줄을 걷었다. 거미줄을 여러 겹으로 거푸 걷었더니 끈적끈적 하면서도 제법 짱짱한 거미줄잠자리채가 만들어졌다.
송이와 난 그 잠자리채를 가지고 하루 종일 잠자리와 매미를 잡았다. 잠자리를 잡다가 거미줄잠자리채에 구멍이 뚫리면 다시 거미줄을 걷어서 고쳤다. 더 이상 거미줄을 찾을 수 없을 때까지 우리는 잠자리와 매미를 잡았다.
잠시 지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송이가 곤충채집통과 잠자리채를 들고 들어왔다. 곤충채집통에는 잠자리 세 마리와 매미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오빠, 빨리 잡으러 가자!”
송이는 매미를 더 잡아달라고 졸랐다.
“귀가 아프니까 다음에 잡아줄게.”
내가 싫다고 하자, 아침에 한 약속을 지키라며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잠자리채를 들고 송이를 따라 나섰다.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로 갔다. 느티나무에는 매미가 많았다. 하지만 난 매미를 잡을 수가 없었다. 송이가 잠자리채를 뺏어가서 매미 한 마리를 잡았다. ‘찌르르르’
쇳소리가 들렸다. 고막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윽-”
두 손으로 귀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오빠, 왜 그래?”
매미를 잡아 곤충채집통에 넣던 송이가 놀래서 달려왔다. 설마 했는데, 웃기는 상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거미가 들어간 것 같았다.
“매미의 비명소리가 들렸어.”
“장난치지 마!, 괜히 매미 잡기 귀찮으니까 그러는 거지?”
송이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
“아냐, 정말이라니까.”
“그럼, 빨리 병원에 가야지.”
송이는 내 팔을 잡아끌며 일으켰다. 귀가 먹먹하면서, 송이의 목소리가 모기소리처럼 작아졌다.
“네 목소리도 안 들려!”
나는 크게 소리쳤다. 송이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계속 뭐라고 말했지만, 입만 달싹달싹 할 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송이가 나를 느티나무 뿌리 위에 앉혀놓고 잠자리채와 곤충채집통을 갖고 왔다.
‘찌르르르’
쇳소리가 또 들렸다.
“으으윽…….”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나는 땅바닥을 굴렀다.
나를 일으키려고 팔을 붙들고 있던 송이도 엉덩방아를 찧었다. 곤충채집통이 내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갑자기 귓속이 조용해졌다. 놀란 매미와 잠자리들이 날개를 파닥이며 자꾸만 채집통 벽에 부딪쳤다. 바닥으로 떨어졌다가는 다시 날아올라서 벽에 부딪치는 것을 반복하면서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닥거리는 날개로 내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살려줘! 살려줘!’
나는 곤충채집통의 문을 활짝 열었다.
갇혀있던 잠자리와 매미들이 날아올랐다.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는 잠자리와 매미를 멀뚱하니 바라보았다.
“오빠! 괜찮아?”
울먹이는 송이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렸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온 몸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송이가 텅 빈 곤충채집통을 보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 아빠 모두 밭에서 안 오신 모양이다. 나는 조심조심 마루에 걸터앉았다. 잘못 움직이면 또다시 귓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서 신발을 신은 채 가만히 마루에 등을 대고 누웠다.
밖으로 달려 나간 송이가 엄마를 모시고 왔다.
“귓속에 거미가 들어갔다고? 소리가 잘 안 들려?”
엄마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예. 그런데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어요.”
“그럼, 거미가 나온 거야.”
“아니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엄마는 귀에 손전등을 비추며 살펴보셨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안 되겠다. 빨리 병원에 가보자.”
나는 엄마를 따라 읍내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갔다.
의사선생님이 귓속에 볼펜처럼 생긴 기계를 집어넣자 컴퓨터 모니터에 귓속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전에 중이염을 심하게 앓은 흔적이 있군요.”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귓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귀가 먹먹하니 소리가 아예 안 들리기도 했대요.”
내가 말하기도 전에 엄마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다.의사선생님은 몸이 약하거나 기운이 없으면 가끔 귀가 먹먹하고 환청이 들릴 수도 있다고 하셨다.
겨우 안심이 된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괜찮으니 걱정 말라는 위로를 했다. 그러고는 다시 밭으로 나갔다.
‘정말 환청이었을까?’
나는 마루에 누워서 의사선생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오빠! 이리 좀 와 봐.”
송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송이는 마당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우리가 아침에 놓아준 잠자리들이 개미와 벌레들에 쌓여서 거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되어있었다.
“오빠, 우리가 아침에 놓아 준 잠자리가 죽어서 이렇게 됐나봐.”
송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고개를 돌렸다.
“다 살아서 날아갈 줄 알았는데…….” 날개와 꼬리가 따로따로 떨어진 잠자리를 개미들이 까맣게 달라붙어서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었다.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젠 잠자리 절대 안 잡을 거야.”
송이는 빈 곤충채집통을 재활용 분리수거 바구니에 넣었다.
나도 바지랑대에서 거미줄잠자리채를 분리시켰다.
송이와 나는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았다.
마당 하늘 가득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며칠 동안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처음 무당거미를 만났던 곳으로 눈길이 갔다.
무당거미가 기둥과 감나무 사이에 열심히 거미집을 짓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당거미네! 이제 내 귓속에서 나온 거야?”
무당거미는 집이 완성될 때 까지 두 시간이 넘게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나도 눈으로 함께 거미집을 지었다. 거미는 장풍을 쏘는 능력을 가졌나보다. 소리 없이 거미줄이 날아가 감나무에 가서 붙기도 하고 지붕에 붙기도 했다. 뼈대가 될 날실을 치고, 왔다 갔다 하면서 튼튼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가는 씨실을 듬성듬성 치더니, 다시 밖에서부터 굵은 씨실을 꼼꼼하게 쳐갔다. 드디어 거미집이 완성되었다. 눈이 따갑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거미집을 만드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하늘이 몽땅 거미줄에 걸렸다. 무당거미의 몸에도 석양이 깃들었다. 거미와 거미줄이 황금색으로 반짝였다. 저렇게 예쁜 집을 내가 빌려간다며 온통 망가트린 것이다.
“무당거미야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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