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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간구

시편 복음............... 조회 수 2371 추천 수 0 2011.02.14 10: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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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02:1-28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간구

본문: 시102편 1- 28

 

 우리는 때때로 실수하기도 하고 범죄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올바로 깨끗하게 살려고 힘써도 부지중에 잘못하고 주님의 뜻을 어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을 한탄해 보기도 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쳐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돌보아 주십니다.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회개할 때 즉시 용서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옛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하나님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을 깨끗하게 해 주시고 온전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에 파우스트가 자살하려다가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젊을 때는 충실히 신앙 생활했던 파우스트가 그의 학문이 진보하자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사회에서는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중년에 이르러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칠 때 낙심하고 자살을 기도하게 됩니다. 독배를 들고 그 인생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찰나, 먼 곳에서 부활절의 교회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교회 다닐 때의 일과 교회를 떠난 후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게 됩니다. 결국 그는 독배를 내던지고 통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깨닫고 회개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그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죽었던 아들이 살아났고 잃었던 아들을 다시 얻게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아무리 타락한 사람도, 돌아오기만 하면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온갖 은혜와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102편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민족적 수난을 직접 체험한 어떤 시인이 민족적 수난을 개인적 고통으로 표현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곤고함을 탄식하며,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선민의 회복을 간절히 열망한 참회의 시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극한 고통을 호소하며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서 부르짖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속히 응답해 주실 것을 구하는 간구로 시를 시작합니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는 것'은 고통 중에 있는 자신의 기도를 외면하는 것, 곧 자신에게 은총 베푸시는 것을 거절하시는 것이므로 그렇게 하시지 말라고 간구합니다.

이어서 본문 3-11절에서는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아뢰며, 그로 인해서 원수들이 자신을 공격하고 조롱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탄식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지금 불이 자신의 뼈를 태우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3절). 아마도 시인은 어떤 질병으로 인해 고통이 극심한 상황 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4-7절, 9-10절). 마음조차 마른 풀처럼 시들어 버렸다고 탄식합니다(4절). 뜨거운 태양 볕에 금방 시들어 말라버리는 풀과 같은 시인의 상태를 묘사하는 듯합니다(11절). 시인이 풀처럼 시들게 된 이유는 음식을 먹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외롭겠습니까? 황량한 광야에 외로이 울고 있는 올빼미나 부엉이 그리고 지붕위의 외로운 참새와 같이 시인은 고통으로 밤을 지새우며 탄식하고 있습니다(6-7절). 또한 육체적인 고통과 외로움에 더하여 원수들의 조롱까지 더해집니다(8절). 이것은 원수들이 다른 사람을 저주할 때 시인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인이 저주받은 자의 표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신의 고통이나 외로움, 원수들의 공격의 결과로 시인은 음식 대신에 '재와 눈물'을 양식 삼고 있다고 탄식을 합니다(9절). 그런데 더 견디기 힘든 사실은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일어난 심판이라는 겁니다(10절). 자신과 민족이 저지른 '죄'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들어서 던지셨다.'고 토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자신이나 민족의 죄에 대한 회개를 전제하고 있는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기울어지는 그림자' 곧 저녁의 긴 그림자처럼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탄식합니다(11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역시 본문의 상황처럼 답답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꽉 막혀 있어서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부르짖는 것이 무의미한 수고는 아닐까?"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가 바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밤이 깊을수록, 어려움이 클수록, 의심과 회의가 밀려올수록 더 간절히 더 큰소리로 하나님을 향해 온 맘과 힘을 다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절)"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간구대로 시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가 기도하면 들으시고 응답하시겠다 말씀하신 걸까요? 우리가 부르짖으며 간구해야만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행하실 때 당신 홀로 무엇을 행하시는 것보다 자기 백성인 성도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면이 꽉 막히고 견고한 장애물이 놓여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사실을 다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문제를 내어놓고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직접 하길 원하십니다. 이를 통해 당신의 자녀들이 더 강건한 믿음으로 세워지고 아무리 견고한 장애물이라도 능히 이겨나가도록 인도해주십니다. 시인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의 곤고한 처지를 간절히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험난한 굴곡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릅니다. 아무리 강건한 자도 그 건강을 보장할 수 없고, 아무리 부유한 자도 그 풍요를 계속 지속할지 알 수 없는 게 인생 아닙니까? 개인이나 가정, 교회 그리고 국가와 민족이라도 무수한 위기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위기와 어려움을 우리를 통해 당신과 함께 이겨나가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15:7절)" 말씀과 믿음의 기도로 주님과 연합하여 우리 앞에 놓인 위기와 장애물을 헤쳐 나갑시다.

오늘 시편을 쓴 시인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마음을 짓누르는 괴로운 일들 가운데 놓여 진 시인의 마음이 본문에 상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첫말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긍휼을 맛보려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와 교회사를 돌아보십시오. 그러면 먼저 하나님께 간청함 없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크신 긍휼이 임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통해 이미 이것이 사실임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동안 여러분에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은총을 베푸셨을 것입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가 임하기 전에 항상 많은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36:37)

시편 40편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찾아 기도하는 자마다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다’라고 고백하며 여호와를 찬양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자기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님은 자기를 생각하시고 도와주시고 건지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다윗은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의 기도 내용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시56:1).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 밖에 없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위해서 받는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요 위기 가운데서도 받는 구원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40:1)

괴로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는 오늘 시인의 첫 말을 인용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1절을 나의 말로 옮겨 적어 보세요.

“하나님, 내 기도를 꼭 들어 주세요. 내가 부르짖는 소리가 주님께 이르게 하옵소서.”

 

  본문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하이든은 독실한 신앙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저명한 예술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민’과 ‘고통’의 문제가 화제로 올랐습니다. 경제적 고통이나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 때의 고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화제의 초점이었습니다. 저마다 한 마디씩들 하는 가운데 하이든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이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작은 골방을 기도실로 정했습니다. 일에 지쳤을 때나 고민이 시작되면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방에서 나올 때는 작은 빛을 발견하고 나옵니다.’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생각하며 골방으로 들어가십니까? 가장 소극적인 방법처럼 보이는 골방 기도가 가장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우리의 모든 고민과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은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으므로 어느 누구보다 잘 아시고 잘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골방에 들어가는 것은 매일 매일의 훈련이 밑받침되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행동으로 가장 잘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368장(통 486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곧 충만케 하옵소서. 이 주리고 목마른 나의 맘에 주 성령을 부으소서.

2. 주 예수여 죄에서 풀어 주사 날 정결케 하옵소서. 이 세상의 유혹이 나의 맘에 틈 못타게 하옵소서.

3. 옛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던 그 믿음을 주옵소서. 이 세상의 물결이 흉흉해도 날 평안케 하옵소서.

4. 주 예수여 완전한 주의 사랑 나 받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이 내 맘에 충만하여 날 기쁘게 하옵소서.

5. 내 마음에 임하신 주의 성령 늘 계실 줄 믿습니다. 큰 은사를 나에게 부어 주사 주 섬기게 하옵소서.

[후렴]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본문 3-11절을 살펴보세요. 본문에는 시인의 괴로운 마음이 자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 나의 마음과 처해진 상황을 자세히 아뢰는 것이 필요합니다.

괴로움을 토로하며 자신의 문제에 매달렸던 시인의 기도가 12절부터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으로 갑자기 바뀌고 있습니다. 시인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기도의 처음은 내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기도를 진행하다 보면 하나님께로 관심의 중심이 옮기게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는 것이, 기도에 대한 첫 번째 응답입니다. 한결 같으신 주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가 우리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본문 3-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대저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나이다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같이 시들고 말라(쇠잔) 버렸사오며 나의 탄식 소리로 말미암아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요셉은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욥도 다윗도 모두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이렇게 고난 속에서 인생을 꽃피운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의 성패를 순경 속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패는 순경 속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고난 극복의 힘은 무엇일까요. 용기입니다. 용기야말로 고난의 벽을 뛰어넘게 하는 삶의 동력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용기 때문입니다. 용기는 고난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극복의 대상으로 보게 합니다. 그리하여 고난과 당당히 맞서 싸우게 합니다. 문제는 이 용기가 믿음에서 온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용기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에서 우러나옵니다. 과연 믿음은 삶의 용기를 주고 용기는 삶에 변화를 줍니다. 그리하여 고난의 바다를 기쁘고 당당하게 항해하도록 삶에 힘을 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2:18)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5:13)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9)

 

  본문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광화문 지하도의 층계 아래 매일같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구걸하는 사람답지 않게 옷차림은 제법 깨끗하였습니다. 하나 구걸하고 있는 것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앞으로 벌리고 있는 손바닥 위에는 백 원짜리 동전이 한 개 외롭게 놓여 있었습니다. 부산히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손바닥 위의 동전을 늘지도 줄지도 않습니다. 어느 여학생은 홀깃 할머니를 쳐다 본 다음에 시선을 돌리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납니다. 한 넥타이 차림의 젊은이가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동전 하나를 꺼내어 할머니 손에 얹어 놓습니다. 동전은 이제 한 개가 아닙니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수그립니다. 엄마의 손에 끌려 지나던 어린이가 물끄러미 할머니를 바라봅니다. 엄마는 급히 어린이 손을 잡아당깁니다. 할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자리를 지킵니다. 언제 밥을 먹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끼니를 거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할머니는 구걸을 하면서 혼자 무슨 생각을 할까?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수많은 사람들이 할머니 앞을 지나갑니다. 떠들썩한 그 속에서 할머니는 홀로 앉아만 있습니다. 하루 얼마나 벌이가 될까? 그걸 또 할머니는 뭣에 쓸까? 혹은 어느 움막에선가 기다리고 있을 어린 손자를 위해 라면을 사갈까? 할머니의 얼굴에는 외로운 모습이 스칩니다. 그런 할머니가 어제도 오늘도 보이지 않습니다. 병이라도 났을까? 부산하게 오가는 사람들은 할머니를 잊었습니다. 비정한 도시는 모든 감상을 거부합니다. 사람들의 불행이나 고통, 외로움에도 무감각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워 질 수 있는 풍토가 이제는 아닙니다. 할머니가 앉았던 콘크리트바닥에 빗방울이 맺힙니다.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시10:14)

 

  본문 11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려지는 제니 린드는 한때 오페라 가수로서 크게 성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정상의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어느 날, 그녀는 홀연히 무대를 떠난 후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았습니다. 은퇴한 후 그녀는 많은 돈과 명성과 그리고 수많은 청중들의 갈채를 잃어버렸으나 혼자 사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어느 날 한 영국인 친구가 해변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무릎에 성경을 펴놓고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니, 어떻게 당신은 그 최전성기에 무대에서 떠났나요?"

제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때 나는 성경을 통해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내 자신에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꼈어요."

제니는 성경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이렇게 말한 후,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그와 같은 생활이 저 지는 해와 같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니 제가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있었겠어요?"

그녀는 손으로 지는 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시144: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1:2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본문 13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사일러스라는 어린 소년이 어머니에게 7센트의 용돈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사일러스, 그 중에서 1센트나 2센트는 아주머니 댁에 있는 선교 헌금함에 넣는 것이 좋지 않겠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일러스는 아주머니 댁으로 가면서 선교헌금으로 얼마를 넣을지 고민했습니다. 한참 만에 사일러스는 2센트를 넣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양심의 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배를 채우는 데는 5센트를 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겨우 2센트를 내겠다고?’ 그리하여 사일러스는 군것질에 4센트, 헌금에 3센트를 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헌금함에 다다른 사일러스는 눈을 딱 감고 용돈으로 받은 7센트 전부를 털어 넣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사일러스는 허기로 지쳐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경위를 듣고 난 후 접시에 빵과 우유를 가득 담아 아들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약속되어 있습니다(마 5:7). 하나님의 긍휼을 움직이는 힘은 긍휼을 베푸는 우리의 따뜻한 손길입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힘닿는 대로 도와 줌으로써,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도록 하루를 살아갑시다.

시편 102편 전반부에는 나의 괴로운 날에 대하여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후반부에는 나의 괴로움을 해결해 주시는 주님을 향한 신뢰와 기도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잭 캘리라는 한 신문기자가 소말리아의 비극을 취재하다가 겪은 체험담이 있습니다. 기자 일행이 수도 모가디슈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는 기근이 극심한 때였습니다. 기자가 한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 기자는 한 작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온몸이 벌레에 물려 있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불룩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빨갛게 변해 있었으며, 피부는 한 백 살이나 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일행 중의 한 사진기자가 과일 하나 갖고 있어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너무 허약해서 그것을 들고 있을 힘이 없었습니다. 기자는 그것을 반으로 잘라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고맙다는 눈짓을 하더니 마을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기자 일행이 소년의 뒤를 따라갔지만, 소년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소년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한 작은 아이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은 완전히 감겨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는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형은 자신의 동생 곁에 무릎을 꿇더니 손에 쥐고 있던 과일을 한 입 베어서는 그것을 씹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의 입을 벌리고는 그것을 입 안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동생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동생이 씹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기자 일행은 그 소년이 자기 동생을 위해 보름 동안이나 그렇게 해온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결국 소년은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동생은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시70:5)

 

  본문에 나타난 대로 주님은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는 분으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문제로 갇혀 있는 사람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시는 분이십니다.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대로 버려두지 마옵소서”(시141:8)

 

  본문 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입은 은혜를 간증하며 당신의 이름을 보다 널리 선포하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명에 결코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시련을 당할 때, 내가 고통 중에 있을 때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음을 진솔하게 증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는 일은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 32, 33)고 하셨습니다. 부디 주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담대하게 선포하시며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떳떳하십시오. 그런 당신의 모습을 통해 주님은 영광과 기쁨을 누리십니다.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사24: 14, 15)

 

  본문 24절을 보겠습니다.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주님 나를 중년(중도)에 데려가지 말아 주십시오.’ 주의 종들의 자손들이 안전하게 거주하고 주 앞에 굳게 서기를 위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일어나셔서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소망한다는 내용입니다. 본문을 읽다 보면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입에 발린 이야기가 아니라 솔직함이 묻어난 나는 기도입니다. 공감이 가는 기도입니다.

특히 내가 중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주여 나를 중년에 데려가지 말아달라는 기도는 100% 공감하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서 승리를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늘 위로받고 도전하는 지체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본문 26-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초등학교 시절은 또래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은 부모가 이루어 놓은 업적을 중심으로 어울린다고 합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아버지의 직업과 직위를 밝히자 하나 둘 친구들이 떠나가고 외톨이가 되었던 설움을 경험한 아이가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친구들이 모여서 ‘우리 아버지는 사장이고 쟤네 아버지는 회장인데 너희 아버지는 뭐하시니?’라고 물으면 회사원이라고 대답하기가 창피했던 그 아이는 고민 끝에 기발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진 돌아가셨다.’ 이 한 마디면 더 이상 아버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엄연히 살아 있는 아버지를 두고 돌아가셨다니, 통탄할 일이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머리에서 나온 그 생각은 오늘날 사회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어제나 오늘이나 살아 계심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필요 때문에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같으신 분,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영원히 계십니다. 즉 주는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다는 말씀입니다. 시인은 마지막으로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께 후손들에 대한 장구한 축복과 은혜를 간구하면서 이 시를 끝맺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고 지키심으로 유대인들이 결코 소멸하지 않고 대를 이어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시37: 39) 이는 곧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킬 것이라는 시인의 확신에 찬 소망을 반영한 말입니다.

“그의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살리로다”(시69:36)

 

  고난은 할 수만 있다면 회피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난과 고난에 대한 승리의 경험이 없는 삶은 이슬과 거품과 같이 무기력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고난은 신앙의 성숙을 가져오며,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의 시간이요, 장래의 소망을 바라보게 하는 소중한 보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고난 속에 갇혀있다 여겨질 때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쁨으로 하나님을 바라며 소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고난당할 때 자신의 지난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도우심을 바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져진 믿음으로 삶을 살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시며 주님 주신 자비를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고통이 찾아올 때,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는 응답을 주시옵소서. 골방에 들어갈 때는 괴로움과 고통이나, 나올 때는 하나님의 빛을 보며 기뻐하게 하소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주변 환경이 다 바뀐다 할지라도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생활하게 하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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