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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딤후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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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성급하지 말자.
본문: 딤후3: 1- 4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조급병입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조급함은 마귀적인 것이 아니라 마귀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성장하는 것보다 급성장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결코 한 순간에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영성입니다. 하나님은 귀히 쓰시길 원하는 사람마다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 철저하게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정금 같이 쓰시기 위해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게 했습니다. 모세를 훈련시키기 위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했습니다. 여호수아를 쓰시기 위해 모세의 시종으로 40년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존귀하게 쓰시기로 작정하실수록 거룩한 삶을 위해 많은 준비를 시키십니다.
어떤 버섯은 6시간이면 자랍니다. 호박은 6개월이면 자랍니다. 그러나 참나무는 6년이 걸리고 건실한 참나무로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이 걸립니다. 참나무와 같은 인물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조급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거룩한 신분이 됩니다. 그러나 그 거룩을 완성하는 데는 평생이 걸립니다. 거룩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매일 기도와 말씀 묵상이라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구원은 은혜와 믿음으로 받지만 거룩은 은혜의 수단인 영성 훈련으로 완성됩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룩에 대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빌 2:13).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잠28:20)
알렉산더 대왕이 친한 친구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물은 잘 훈련된 사냥개 두 마리였습니다. 사냥을 즐겼던 대왕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어느 날 대왕은 사냥개를 데리고 토끼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개들은 사냥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했습니다. 달아나는 토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빈둥빈둥 누워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화가 나서 사냥개들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대왕은 사냥개를 선물한 친구를 불러 호통을 쳤습니다.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볼품없는 개들을 왜 내게 선물했는가? 그 쓸모없는 사냥개들을 내가 모두 죽여버렸다."
친구는 대왕의 말을 듣고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대왕이시여, 그 사냥개들은 토끼를 잡기 위해 훈련된 개들이 아닙니다. 호랑이와 사자를 사냥하기 위해 오랜 시간 훈련받은 값비싼 개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알렉산더 대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발이 급한 사람'은 성급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면 실수를 하고, 따라서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꼭 시간을 두고 신중히 생각하여 일을 생각하여 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14: 29)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일을 서두르면서 바쁘게 살아가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어휴! 바쁘다 바뻐. 지금 나는 너무 바쁘니까 나를 방해할 생각은 하지도 마!"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보면 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지나쳐 버릴 수가 있습니다. 나의 배우자 일 수도 있고 자녀일 수도 있고 부모님들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는 그들은 나의 도움을 기다리다 못해 지쳐서 탈진하고 말지요.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예수님 보다 더 바쁘고 분주하신 분이 또 있을까요? 그러나 그분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발걸음을 멈추고 그 누구보다도 친절하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바쁘다"는 말은 "나는 일하는 요령을 전혀 모릅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일을 잘하는 사람은 바쁘게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일을 합니다.
급히 서둘러야 할 때가 있기는 합니다. 예를 들면 달리기 시합을 한다거나 1루에서 2 루로 도루를 할 때, 주일 아침에 교회에 갈 때, 파란 신호등이 깜빡거리는데 횡단보도를 건너가야 할 때, 위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구해야 할 때 정도입니다.
교통사고의 태반이 과속에서 비롯됩니다. 인생 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순간 욕심이 나서 갑자기 빨리 달리다가 돈도 명예도 건강도 잃게 됩니다. 마구 내달리고 싶을 때일수록 오히려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21:5)
나는 오늘 아침에 건널목 20m 앞에서 초록 신호등이 켜진 것을 보고 빨리 건너려고 뛰다가 넘어져 손바닥과 무릎을 다쳤습니다. 손바닥에 흐르는 피를 보며 굳이 빨리 가지 않아도 될 것을 공연히 서두르다 이렇게 다쳤구나 하면서 후회했습니다.
"너무 서둘러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아이젠하워가 보좌관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가장 자주 했던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 너무 서두르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그 실수가 치명적일 때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신중한 처신, 누구든 언제나 명심할 일입니다.
가짜 절망은 성급한 속단에서 올 수도 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말합니다.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이 포기하는 그 순간 자신이 성공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 깨닫지 못한다." 한마디로 골대 앞에서 넘어지는 격이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는 적잖이 발생합니다. 실제로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금광을 찾아 너도나도 서부로 몰리던 골드러시 시대에 더비라는 사람과 그의 숙부도 광맥을 찾기 위해 서부로 떠났습니다. 곧 광맥을 찾아낸 그들은 친척과 이웃에게 막대한 자금을 빌려 필요한 도구들을 구입한 뒤, 금광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금광맥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꿈은 허무하게 무너졌고 그곳에는 이제 한 조각의 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둘은 채굴 설비를 몽땅 헐값으로 고물상에게 넘겨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채굴 설비를 산 고물상은 혹시나 하여 광산 기사를 데리고 가서 광산을 다시 조사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더비 일행이 광산을 포기한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단층에 관한 지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광산 기사의 계산에 의하면 금광맥은 더비와 숙부가 채굴을 단념한 지층으로부터 단 1m 아래에 있었습니다. 곧 고물상은 몇 백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금광석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더비와 그의 숙부는 1m 때문에 횡재를 버린 셈이 되었고 고물상은 1m 때문에 횡재를 거저 주었습니다. 성급하게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마십시오. 어떤 일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리지 마십시오.
'이 일은 이제 글렀어. 여기가 끝이야'라고 체념하지 마십시오.
'그는 안 돼'라고 꼬리표를 달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열린 희망을 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결코 성급하게 체념하여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단박에 시험에 합격하기를 꿈꾸지 마십시오. 빠르게 성과를 올려 승진하기를 욕심내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패배감, 무력감, 좌절감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당장은 답답하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려 보십시오. 신영복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다림은 더 많은 것을 견디게 하고 더 먼 것을 보게 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갖게 된다."
역사 속 역경을 이긴 많은 이들에게서 우리는 꿈과 희망을 지니고 포기하지 않을 때 그것을 이룰 수 있음을 배웁니다. 그러니 인내로 내공을 쌓아 마지막 망치질까지 박차를 가합시다. 성급한 속단이 가져오는 가짜 절망을 깨달으십시오. 그 자체로 폐기된 희망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국에 갔을 때, 어느 중국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제가 아는 바로는 중국집에서 식사할 때는 한 접시가 나오면 다 먹고 난 다음에 그 다음 접시가 나오고, 또 다 먹은 다음에 그 다음……, 그렇게 해서 보통 두 시간 반 동안 식사를 하는 것이 중국음식을 먹는 그 하나의 에티켓인데 그 중국 음식점에서는 한꺼번에 세 접시씩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서 왜 이렇게 빨리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한국 사람들은 처음부터 "빨리 빨리 빨리 빨리" 그러기 때문에 아예 한국 사람이 가면 알아서 세 접시씩 그냥 빨리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빨리 먹고 가기 때문에 부탁을 안 해도 음식 값을 할인해 준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주 세계적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한국 사람은 너무 성급합니다,
1910년 한일 합방이라고 하는 치욕적인 사건이 있은 뒤에 우리 한국에 많은 지성인들 뜻이 있는 분들이 해외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북만주로 많이 갔고 심지어는 구라파로 혹은 북미로 각 나라로 흩어져서 이렇게 이민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얼마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남미로 이민을 가게 되었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보따리를 쌌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게 될 때 그들의 마음은 매우 무거웠습니다. 그들의 봇짐 속에는 배추, 무, 고추 이것들의 채소의 씨앗을 가지고 갔습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나 김치를 먹어야겠고 매운 것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낯선 지방에서 어떤 다른 양식을 취하더라도 이것만은 꼭 가지고가야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자마자 그들은 자기 집 뜨락에 배추, 고추, 무를 심었습니다. 아주 무성하게 잘 자랐고 그래서 이것을 뜯어서 다소간의 식량을 하며 고향생각을 달래게 됩니다. 꼭 같이 독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그 시간에 있었답니다. 이 분들은 자기 집 뜨락 옆을 돌아다니면서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다가 호두 씨앗을 심는 겁니다. 그래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이렇게 말했다지 않습니까?
"호두를 심어 놓으면 20년 후에 호두가 열릴는지 안 열릴는지 알 수 없는 것인데 그걸 무엇하러 지금 심느냐"고.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됐느냐 하면 채소를 심었던 사람들은 그저 그대로 그 모양으로 살았고 호두를 심었던 사람들은 지금 세계의 호두 생산의 70%가 바로 거기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결정적인 약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만사를 조급히 생각하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에스더는 왕비요, 더구나 왕이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준다고 말했어도 금방 원수 하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두 번이나 잔치를 베풀며 기회를 기다린 끝에 마침내 자기 종족의 원수인 하만를 처형하고 승리 하였습니다.
성급함은 일을 치르는데 있어 독약과 같습니다. 성급함은 반드시 실수를 낳습니다. 성급함은 가벼워 보이며 적에게 큰 약점을 보이는 것입니다. 성급함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14:29)
맥아더 장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에서 이런 연설을 했습니다.
“온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경제문제다. 경제문제는 군대문제다. 군대문제는 정치문제다. 정치문제는 정치가의 양심문제다. 양심문제는 도덕의 문제다. 도덕의 문제는 종교의 문제다. 종교의 문제는 신학의 문제다.”
이 시대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그 문제는 결국 하나로 귀결됩니다. 신학, 곧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환경이나 상황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신앙의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노터치!(No touch) 먼저 주의 얼굴을 구하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손대면 댈수록 덧날뿐입니다. 조급하게 감정대로 행동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개입하실 여지가 있도록 침묵하며 기도하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이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시 80:19)”
요즘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며 서두르는 데 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본다든지 여유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원래 한국인의 기질과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은근과 끈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강인한 기질과 여유와 유머를 찾아볼 수 없도록 조급해하고 감정적이며 직설적입니다.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이판사판'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쓰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만큼 우리들이 격동의 세월을 지내왔고 한의 세월을 보냈다는 증거라고 변명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극단적인 우리들의 생활방식이나 정서를 정곡으로 찌른 말입니다. '새치기'나 '급행료'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언어생활이나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증거요, '한탕주의'는 이 시대를 대변하는 사조입니다.
성경에 보면 조급하거나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신앙의 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참된 신앙인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인내하는 모습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인내와 신앙을 연결시켜 표현한 말씀이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로마서5장 3-4절에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2-3절에도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는데, 두 구절 모두에서 인내란 참 소망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며, 온전하고 흠없는 신앙인격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된 신앙인의 자세는 조급한 것이 아니라 오래참고 끝까지 견디는 데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에서도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의 뜻은 인내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생은 기다리는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다린 자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태속에서 열 달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도중에 아기를 꺼낸다면 죽은 아이나 잘못된 아이를 얻게 될 것입니다. 농부는 씨를 심어놓고 기다려야 합니다. 도중에 열매를 따버린다면 아무 결실을 맺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자전거를 탈 만큼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젊은이는 그가 차를 운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의학도는 졸업증서를 받을 때까지, 직장인은 승진을 위해 기다려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가정의 평온을 위해, 새 집을 마련하기위해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의 기술은 한 순간에 습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다림이란 성숙한 축복이요, 열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기다리지 못해서 저주를 받은 한 사람의 예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저 유명한 사울 왕입니다.
사무엘상 13장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여 있습니다. 병거가 3만이요, 마병이 6천명입니다. 사울왕은 다급했습니다. 제사를 드려야 할 사무엘은 기한이 다 되었지만 오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민심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조급한 사울은 사무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그가 해서는 안 되는 번제를 사무엘대신 드리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이 왔을 때는 이미 번제를 드리고 난 후였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부득이 번제를 드렸다"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13장 13절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이 얼마나 비참한 순간입니까.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여 조급한 번제를 드리다가 당한 심판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고 삽니다. 영광스러운 그날이 임할 것을 바라보며 삽니다. 그 사람이 바로 크리스천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심을 믿고 살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는 조급함 대신에 인내를 갖게 되며, 서두름 대신에 차분한 기대를 갖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4절에서도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라는 말을 보게 됩니다. 서두르는 것이 사랑이 아니며, 조급한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기다려주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많은 현대인이 조급증을 앓고 있습니다. 당신이 조급증을 앓고 있다면 '달팽이 걸음'을 생각해 봅시다. 어느 날 달팽이가 사과나무에서 위를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더듬이를 세우고 느린 속도로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을 때 나무 껍질 틈새에서 벌레 한 마리가 빠져나오더니 빈정거렸습니다. '이 느림보야' 너는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는구나. 저 위에는 네가 먹을 사과가 하나도 없어. 그러나 달팽이는 계속 기어오르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저 꼭대기에 도달할 때쯤이면 사과가 열릴 거야"
최후의 승리는 출발점의 비약이 아닙니다. 결승점에 이르기까지의 끈기와 노력입니다. 성경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시37:5-7)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한 번 더 기다리며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해보자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2장19절에는 애매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를 당해도 조급하지 말고 당황하거나 서두르지를 말고 살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 매 순간이 천국이 될 것입니다.
둘째, 무슨 일이 생기면 지금의 어려운 순간이 반드시 미래의 기쁨과 축복이 될 것을 믿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사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조급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조급할 일이 없습니다.
바쁨과 조급함과 소란함 뒤에는 언제나 사단의 속삭임이 있습니다. 사단은 내용을 보지 못하게 하고 겉표면만을 보게 합니다. 사단은 사실을 보게 하지만,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어느 날 주님은 약속대로 구름 타고 공중에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이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조급하지 맙시다. 서두르거나 쉽게 단정하지 맙시다. 주님의 뜻을 기다려봅시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5)
* 기도: 우리를 사랑하여 오래 참으신 주님, 헛된 일에 분주하고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현실이 어렵고 곤란하더라도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을 주소서. 성급하고나 억지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게 하소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과정을 등한히 여기지 않게 하소서. 악을 생각하고 도모하는 악한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깨달아 그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갖게 하소서. 저희는 인생에서 너무 빨리 좌절하고, 너무 빨리 포기하고, 마지막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하나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인내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기에 저희들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따라 인내하며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조급, 성급에 관한 금언
0 조급함은 육신의 일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그러하심과 같이 서둘지 않고 일한다.(존 뉴턴)
0 모난 돌이 정 맞는다.<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독일 격언)
0 작은 그릇이 쉬 끓는다.(독일 격언)
0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되는 것은 아니다.<속단하지 말라>(영, 미 속담)
0 병아리가 태어나기 전에 숫자부터 샌다.(영국 속담)
0 성급함이 일을 그르친다.(영, 미 격언)
0 아이도 낳기 전에 포대기부터 장만한다.<결과도 보기 전에 좋아하지 말라>(독일 격언)
0 서둔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영국 속담)
0 최대로 서두른다는 것은 곧 늦어진다는 의미이다.(독일 격언)
0 하나님의 도움은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입니다.(강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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