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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

창세기 이선근 형제............... 조회 수 2092 추천 수 0 2011.03.03 19: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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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26-27 
설교자 : 이선근 형제 
참고 : 새길교회 

sgsermon.jpg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

(창세기 1:26-27, 요한복음 1:14)

 

2011년 2월 13일 주일예배 말씀증거

이선근 형제

 

 

성경의 맨 앞에는 창조의 세계와 질서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창세의 모습은 그 문장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람을 창조한 부분에서 저는 그 절정을 느끼곤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세상은 6일간 만들어 집니다.

이 모든 과정에 대해서 창세기 기자는 31절에서,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마치신 하나님은 2장 3절 후반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렛날 자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세상에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 2장 4절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사람에 대한 부분은 7절에 이어집니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세기의 1장과 2장에서 반복되어 두 번이나 언급한, 사람의 창조는 우리 모두가 익히 잘 알 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며,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을 주셨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으셨으며 피조된 온 만물과 생명들에게 축복했다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의 첫 문장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말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순수한 그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니 또 얼마나 보시기에 좋았을까요.

저는 이 구조에 감탄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실 때 그 시간과 공간에 직접 함께 운행하셨던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어 생명을 주셨다고 합니다. 물이 흐르고 온갖 생물들이 태어나는 땅에서 흙을 취하고 당신의 호흡으로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태초에 하나님의 나라가 창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하나님의 질서이며 그 모습이며 그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기에 좋았던 세상에 하나님은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이렛날이 되어서 모든 일에서 손을 떼시고는, 그 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여섯 날을 일하며 지어낸 그분의 세상이 얼마나 보기에 좋았으면, 연신 좋다 하셨겠습니까. 그리고는 이렛날 이 세상을 보며 또 얼마나 감격되셨을까 싶습니다. “복되고 거룩하라”는 당신 나라에 대한 축복이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처럼 복되고 거룩한 날들을 살고 있으며 보기에 좋은 세상 그 자체입니다.

 

저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자녀가 있는 부모님들은 자신의 아이가, 맑고 선한 영혼으로 태어나 예쁜 눈이 반짝반짝 내 눈과 마주치고 그 작은 손으로는 꼬물꼬물 세상을 손잡으며 또 그 작은 입은 오물오물 꿈을 노래하는 경험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살아가며 이 소중한 사건은,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눈도 코도 입도 게다가 표정까지 너무나 똑같은 내 아이를 보며 감격하고 이제 막 태어난 생명을 위해 온 맘을 다해 축복하셨을 것입니다. 사람도 이와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셨겠습니까?

창조 이야기는 요한복음서에서도 또 한 차례 다뤄집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라고 하면서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다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생명의 빛으로 비유되고 있는 한 사람에 대해서 이어집니다. 14절에 와서 마침내 그 빛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으며, 우리는 그 영광을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으며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고 합니다. 이어서 18절 후반부에 가서는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4, 18)

그의 정체는 하나님의 외아들이며 또 하나님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려주려고 왔습니다. 사실 예수는 요한복음의 기자가 표현한 것 이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직접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창세때부터 하나님께서 보기에 좋았던 존재였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보기에 좋았던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형상은 이미 우리의 생명과 함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성서 본문은 바로 이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과는 상대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쁨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첫 번째 이적 사건은 가나의 혼인잔치였습니다. 이때 그는 물이 포도주가 되는 이적을 보이십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잔치 중에 일어났던 것으로 사람들은 이 잔치에서 더욱 기뻐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은 또 어떠합니까? 배고픈 오천명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에 가득 할 정도로 남았다고 하니 배고픈 이들이 나누었을 기쁨은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렸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직접 살았던 사람 예수는 사람들과 어울려 기뻐했습니다. 그 기쁨은 참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었습니다. 갈릴리의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먹고 마시며 보낸 시간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였으며 사람들은 참으로 기뻐했던 것입니다.

기쁨은 꾸미거나 노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은 억지로 그 삶을 마지 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믿음으로 예수의 삶에 동참 했습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과 병은 믿음으로 인해서 자유를 얻고 해방되어 참 기쁨이 됩니다.

 

갈릴리의 예수를 이야기 하며, 그의 하나님 나라가 기쁨으로 사는 삶 속에 있었다는 것에 우리는 무척 감동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지위가 높은 부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피조한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착하고 선한 사람들에게만 당신의 나라를 허락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못된 사람도 죄지은 사람도 미운 사람도 모두 당신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지금 저는 보기에 좋은 세상, 하나님의 형상, 생명, 예수가 삶으로 보여 주신 하나님 나라...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중이지만, 사실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리 아름답고 황홀한 것, 혹은 완전무결하여 완벽한 어떤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결하고 거룩한 그 무엇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았던 하나님 나라는 정신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병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있었으며, 몸을 파는 여자에게도 있었습니다. 더럽고 가난한 꼴찌들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더럽고 가난하지 않습니다. 꼴지도 아닙니다. 예루살렘과 로마에서 보기에는 무척 더럽고 가난한 꼴찌로 보였겠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진실하게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당신의 형상과 생명이 언제나 고결하고 거룩한 그 무엇으로써 항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방귀도 뀌고 이에 고춧가루도 끼지만 참으로 사람다운 정감어린 관계에서 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남편과 아내를 처음 만난 그 시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왕자님 같고 공주님 같아 이슬만 먹고 살았을 것 같은 그이가 함께 살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고결하고 거룩하기만 하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여간 숨이 막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멋진 사람이 어느날 보니 방귀도 뀌고 이에 고춧가루도 끼기 때문에 함께 살고 있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방귀를 참은 우리는 항상 변비에 시달리게 될 거며, 고춧가루가 들지 않은 음식만 먹어 영양실조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예쁜 것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도 나누고 부족함도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은 창세 때 살았던 아담과 하와만이 아니고, 2000년 전 예수시대에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래 전부터 이미 우리가 살고 있었지만 모르고 살았을 뿐입니다. 혹은 더 근사한 무언가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무리는 예수를 왕으로 섬기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또는 혁명을 위해 따라다녔는지도 모릅니다. 왕국을 기대 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무리가 아니라 제자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토록 우리 공동체에서는 예수따르미로서의 삶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저는 영등포역, 서울역, 용산역 등에서 노숙인들과 수년을 함께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안타까워서 시작했지만, 조금 지나다 보니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상황들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러한 부분 때문에 노숙인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사지가 건강한 3-40대 젊은 남성이 술에 취해 거리에 누워있는 모습이라던지, 구걸을 하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욕을 퍼붓기도 하고 옷을 벗고 싸움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술을 사 마실 돈이 있다면 밥을 사먹을 것이지..., 구걸할 용기가 있다면 구직을 하면 어떨런지..., 욕을 하고 싸움을 할 정도의 힘이라면 막일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은지...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게으르고 나태하고 더럽고 무서운 사람들이 바로 거리의 노숙인에 대한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틀리지 않습니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더럽고 무서운 사람이지요. 맞습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수식어들을 더 추가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 지위도 없고 힘도 없으며 인맥도 빈약한 그래서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사람들, 가진 것이 없는 아니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그래서 줘 본적도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때로 힘 있고 가진 것 많은 사람들에게는 친구가 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사실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홀대했으며 어떤 이들은 이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이들에게도 주셨고 더더군다나 생명을 주셨습니다. 살아서 숨을 쉬는 존재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창녀와 앉은뱅이와 문둥병자와 먹고 마셨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바로 힘 없고 가진 것 없던 사람 아니었습니까. 이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살았던 진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려준 사람이 맞다면, 우리는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이 사람들이 비록 게으르고 나태하고 더럽고 무서울지언정 하나님 나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저는 이 분들이 참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만났던 분들은 한겨울에도 공사장에 나가 하루 돌짐을 지고 돌아와서 품삯으로 받은 돈을 귀하게 여기는 분들이었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동료의 아픔을 김치찌개와 소주로 위로하기도 하고, 가진 전 재산을 털어 밀린 쪽방 값을 갚아 주기도 합니다. 혹여나 술에 취해 떨고 있는 사람이 아무리 어제 나와 싸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업어서 지하도나 화장실로 옮겨 줍니다. 모두가 친구고 모두가 가족입니다.

물론 동료의 돈을 훔치기도 하고, 주먹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툰 관계 맺기입니다. 본심이 상대를 헤하고 싶었던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분들과 같이 있으면서 사람이 사는 기쁨이 뭔지 조금이나마 깨달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마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성경을 보니 예수님의 삶은 갈릴리에 있었지만 그의 말씀은 갈릴리에 있는 힘 없고 가진 것 없었던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예루살렘과 로마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권력과 물질을 향해 깨달아 돌아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줘야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을 들었던 부자는 근심에 사로잡힙니다.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를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할만하지요. (누가복음 1818-:25)

제가 만난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은 결코 경건하지 않았습니다. 거룩함과는 거리가 정말 멀었습니다. 항상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지요. 게다가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속이기도 얼마나 많이 속이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은 자신이 전 재산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기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해 연말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해 결국 병으로 돌아가셨던 한 노숙인 동료분이 있었습니다. 가족도 없어 장례식도 치룰 수 없다 싶었는데, 노숙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시간과 노력을 아껴서 장례식을 준비 했습니다. 모두들 그의 마지막을 함께 울어 주었습니다. 그날 저는 하나님의 나라를 분명히 보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하나님 나라가 아름답고 완벽하리라 생각했던 우리 마음의 착각을 바로 고쳐 봅니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더럽고 무서운 사람도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으며 오히려 건실하고 충실하며 깨끗하고 착한 사람일지라도 예수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 나라는 결코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록 노숙인이라는 특수한 계층을 이야기 했지만, 사실 대단한 계층적 차이가 아닐 수 있음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바로 우리 공동체에서는 어땠는지, 또 직장이나 가족들에게는 어땠는지 성찰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기쁨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는지... 정말 우리는 예수를 허상으로 따랐던 무리가 아니라 진실한 제자인지,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는 사람인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일은 발렌타인 데이라고 합니다. 모든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날이지요. 비록 상업적인 색이 짖지만, 이런 날이라도 있어야 한참 사랑이 뜨거운 연인들이 한 번 더 기념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모 어떻든 꼭 어떤 날이 아니어도 한 번쯤 동료에게 가족에게 누구에게라도 사랑을 표현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나로 인해 기뻐하는 그이에게 고맙다고 표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예수의 제자가 되어 그 삶을 살아감에 진심으로 기쁘게 나누며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관계가 건강한 평화로 이루어지며, 오늘보다 내일 더욱 깊은 기쁨을 깨닫게 하시옵고, 오직 건강한 생명으로 예수 따르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옵소서. 새길의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쁨이 우리 공동체 모두의 기쁨이 됨을 믿으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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