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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19: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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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추응식 형제 |
참고 : | 새길교회 |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세상학교
(시편 119:148, 로마서 3:29-30)
2011년 2월 27일 주일예배 말씀증거
추응식 형제
오늘 이 졸업축하예배라는 이 제목은 저에게는 좀 어렵습니다. ‘졸업 축하’까지는 알겠는데 거기에 ‘예배’라고 이렇게 붙으니까 저에게는 좀 무겁게 느껴집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소망가지고 나아가라. 그리고 축하한다.’ 이런 상투적인 말 이외에 더 붙일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졸업 예배와 얼마나 관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평시 가지고 있던 ‘세상 학교’에 대한 생각을 좀 나누어볼까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이 학교는 개교 이래 단 하루도 휴교나 휴강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단 한순간도 교육이 멈춘 적이 없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언제 어디서든 수업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교재이고, 때로는 우리들 자신도 서로가 서로의 교재가 되어 배우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교재들 역시 이 학교 설립자 선생님의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해 한 순간도 멈춤이 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자라고 쇄락하며, 우리가 앉아있는 이 의자도 지금 새것에서 헌 것으로 미세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 땅 속의 작은 벌레에서부터 우주의 별까지 하나님의 교재들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교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우리들의 수업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정교하게 교재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이게 바로 선생님의 나타나심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이 세상의 많은 생명체 중 사람을 학생으로 받아 주셨습니다. 입학 자격에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종교나 사회적 지위, 빈부, 성경지식 등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거나 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더 환영합니다. 이것이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숙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이 거대한 학교는 태어나면서부터 자동으로 입학이 되는 무상 교육기관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갓난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몸 속 깊은 곳에 하나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소통 코드를 입학선물로 장착해 주십니다.
교과서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코드를 부여받음으로서 학생들은 하나님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삼라만상 이 세상의 교재를 보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됩니다.
어릴 때는 잘 모르다가 크면서 우연히 선생님의 내밀한 소리를 듣고 감격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바로 이 공유 코드 때문이라고 합니다. 불행히도 평생 이 은밀한 내장 코드가 자기에게 있는 줄도 모르고 이 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엉뚱한 곳과 소통하면서 하나님의 수업을 듣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이 더 하나님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고 떠들고 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업을 잘 듣지 못하면 성적도 좋을 리 없겠지요. 이 학교 많은 학생들은 졸업성적에 따라 졸업 후 천당과 지옥으로 강제 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실감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이 학교를 설립하실 때는 전교생이 생활비까지 지급받는 전면 장학생제도를 준비해 놓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업은 하나님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자율적 학습으로 이루어지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제 1회 입학생인인 하와와 아담이 자율을 남용하여 교칙까지 어기는 바람에 그 벌로 이후부터는 학내 근로를 하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도록 교칙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지금 재학생들은 워낙 오래된 일이라 다 잊어버리고 일하면서 학교 다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세상 학교의 또 하나의 특성은 설립자 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학교는 개교한지가 엄청나게 오래되었지만 그동안 아무도 선생님을 뚜렷이 본 적이 없습니다. 가끔 꿈이나 환상으로 선생님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정말 선생님의 모습을 본 건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들었다고 하셨지만 어디까지나 영의 문제지 육신의 형상은 아니기 때문에 선생님이 우리들처럼 생겼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선생님은 딱히 정해진 이름을 가지고 계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통해서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하늘에 계신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우리 곁에, 또 어떤 사람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계신다고 합니다.
이처럼 선생님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학교에서는 우리가 배우고자 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선생님은 금방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본다하더라고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세상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눈에 뚜렷이 보이는 십자가 있다면, 그것은 한갓 나무 조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또렷이 눈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상일 것입니다.
이 학교에서 배움을 더해 가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점차 보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의 눈을 밝아지는 것으로서 학생들은 이 눈으로 선생님을 뵙게 된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특별히 학교 안에 교회라는 것을 세우고, 그곳에 가서 마음을 모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종 이 세상학교에는 선생님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이용해 이 학교의 선생님처럼 행동하며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결국 들통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생은 애당초 이 거대한 세상학교를 빈틈없이 운영하시는 설립자의 능력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학교를 사랑하신 설립자 선생님께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시고 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2000년 전, 드디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교선생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동안 설립자 선생님의 지침을 가까이서 듣고 다른 학생들에게 전해주었던 모세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도 단지 학생의 신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학교 설립자의 의지에 의해 파견된 전무후무한 조교 선생님이셨습니다. 설립자의 아들이자 분신과 같은 조교선생님의 부임은 설립자 선생님께서도 이미 약속하셨고, 학생들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것이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은 당시 자율교육이 남용되어 학내에 만연하고 있던 폭력과 위선의 질서 대신 설립자의 교육이념이 완전하게 실현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반듯함이 아니었습니다. 학생을 사랑하고 학생을 위하는 것이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학생들이 꺼리는 왕따들을 사랑했습니다. 사람 같지 않은 창녀를 사랑했고, 더러운 문둥이를 사랑했습니다. 비열한 세리를 사랑했고, 소외된 과부를 사랑했습니다. 이들은 학생 이전에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위에 서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구별하기 위해 특별한 제복을 입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눈높이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편한 말로 대화했으며, 그들이 먹는 것을 함께 먹으며 가르쳤습니다. 그는 병을 고쳤고, 귀신을 내쫒았으며, 새로운 세상을 예언하고 새 질서를 선포했습니다. 그는 전인교육의 전범이었고, 지혜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설립자 선생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이제 학교의 교훈은 사랑으로 확고히 정해졌으며, 새로 부임하신 예수 선생님은 이 교훈이 학교에 실현되도록 온 몸으로 가르치고 실천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예수 선생님의 교육법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학생들이 받아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선생님의 참뜻을 이해하면서 학내에는 점차 예수선생님을 따르는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폭력으로 학교를 장악하고 있던 기존 집단에게는 위협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폭력집단은 예수선생님을 죽였습니다. 학생이 선생님을 죽이는 비극이 학내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이것이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었던 선생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학교의 모든 학생들에게 졸업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소망을 던져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육신에 매여 있던 우리들에게 영의 세계를 열어주시고, 그 눈을 통해 영원을 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 선생님이 떠난 후에도 이 학교의 학생들은 선생님을 잊지 못했습니다. 이후 몇몇 학생들은 학내에 전해 오던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옮겼습니다. 그 책들을 묶은 하나의 책은 대부분 교회에서 유일한 교과서로 채택되었습니다. 이후 교회에는 세상학교의 전인교육 대신 이 책을 중심으로 한 교회 중심 성도교육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서와 세상학교가 교류하는 것도 막아나갔습니다. 세상학교를 인정할수록 사람들은 교회에 모이는 대신, 세상학교로 흩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세 확장 경쟁이 강화되면서 하나님의 세상학교는 학생들로부터 점차 멀어져 갔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교회의 권위를 위해 하나님의 가르침은 교회에 있다고 앞 다투어 퍼뜨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늘날 하나님이 설립하신 세상학교는 교회성장주의에 의해 위축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왜소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밖 학생들은 이런 것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조차도 세상학교의 속에 있는 하나의 교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중 어떤 사람은 교회를 이 세상 학교 속의 연구동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과외교습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사설 불법교습소라고 비하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 안 성도들은 이 세상의 진정한 학교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밖에 없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관장하시는 세상학교에서 하나님이 권면하시는 대로 평시 공부를 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날을 정하여 공부 분위기가 비교적 좋은 새길교회에 갑니다. 그곳에 가서 특강도 듣고, 기도도 올립니다. 그것은 세상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세상학교에서 배운 것 2가지를 나누는 것으로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첫 번째 신학대학에 관한 이야깁니다.
제가 신학대학에 가려고 한 학교에 입학조건을 물었을 때, 세례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조건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왜 세례증이 없는지에 대해 말이라도 한번 나눠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문의한 그 대학은 진보적인 신학대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증은 신학교에 입학하는 절대조건이었고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이 세상의 예수교 행위들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비로소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양재동 성서공회에 갔을 때 일입니다.
10여년 전, 제가 무슨 일 때문에 양재동 성서공회에 들렀을 때, 민영진 목사님과 김창락 목사님은 밤 세워가며 새로 나올 성서의 번역 막바지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문득 성서 기자들이 영감으로 기술해 나갔다는 것이 떠올라 민영진 목사님께 저는 이런 작업에 몰두해 계시는 동안 평시와 다른 신령한 경험을 좀 하시는지라는 당돌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 후 표준새번역 성서가 출간되었을 때, 목사님께서는 저에게도 번역 성서 한권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 책 앞에는 시편 한 절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아마 목사님은 잊으셨겠지만 저에게는 이것이 마치 전에 드린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간결한 이 한 문장에서 제 질문의 어리석음과 함께 올바른 신앙자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날 성서공회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누가 옆에서 식인종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김창락 목사님은 “식인종이 어디 있어?”하고 조금 소리를 높혀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직감으로 선생님이 사람을 먹고 안먹고 와는 상관없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식인종이란 말 자체가 이미 오만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약을 담당하셨던 민영진 목사님, 그리고 신약을 담당 하셨던 김창락 목사님.
깊은 신앙과 넓은 신학, 두 분의 가르침은 바로 수직적 믿음과 수평적 사랑의 십자가였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교회의 십자가보다 더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세상학교에는 하나님의 강의가 계속되고 있을 것입니다. 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해서 졸업 후 좋은 곳에 가고 싶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학교를 사랑하시어 좋은 선생님을 보내주시고, 그로부터 배워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때도 시도 없이 가르쳐주시는 모든 것들을 잘 배울 수 있도록 늘 깨어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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