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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월간 들꽃편지 발행인)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유대인들은 고기를 잡아 주지 않고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하지요. 아마도 평생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만한 '경험'을 주는 것이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와 2박 4일 동안 지리산 종주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학교는 1주일동안 현장체험학습으로 결석을 했지만,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소중한 것을 많이 얻어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초등학교 6학년에 불과한 딸내미가 커다란 배낭을 매고 거의 40km가 넘는 산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었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아빠와 딸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며 웃고 즐긴 행복한 2박 4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딸아이는 평생토록 이번 지리산 종주여행을 잊지 못하고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어려운 인생의 순간마다 바위산을 넘어가며 앞서 손을 잡아 끌어주던 아빠와, 뒤에서 밀어주던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손길을 기억하면서 힘을 낼 것입니다.
처음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며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딸 좋은이가 적극적으로 해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니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뭘 몰라서 그래" 옆에서 엄마의 한 숨 가득한 걱정을 뒤로하고 6월 4일 밤 00:40분 서대전역에서 구례구역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배낭에는 3일 동안 먹을 음식과 필요한 것을 넣으니 내 배낭 10kg 좋은이 배낭 5kg 졸다가 깼다가 비몽사몽 헤롱헤롱 하면서 새벽 4:15분 구례구역에 도착, 택시를 타고 성삼재로 올라갔습니다.
1미터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서 꼬불꼬불한 길을 과속으로 오르다 보니 기압차이로 귀가 멍멍하고 멀미가 나서 거의 토할 뻔하였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번에서 쌩쌩 부는 바람과 차가운 기운에 온 몸이 오돌오돌 떨려서 급히 배낭을 열고 준비해 온 옷을 모두 꺼내어 두껍게 껴입었습니다.
드디어 새벽 5:00 땡 하는 순간 성삼재를 들머리로 지리산 종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거의 눈이 딱 붙은 상태에서 어떻게 올라갔는지도 모르게 노고단까지 올라가 취사장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고 기운이 났습니다.
노고단 정상탑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돼지령-임걸령-임걸령샘터-노루목에 도착하니 아침9:00였습니다. 노루목 갈림길에 웬 배낭들이 많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지리산 3대 주봉인 반야봉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힘드니까 배낭을 그냥 그곳에 벗어놓고 올라간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배낭을 벗어놓고 반야봉에 빈 몸으로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벽소령까지 가야하는 일정상 반야봉에 오르는 것은 무리였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습니다.
배낭을 벗어놓은 곳에 다시 내려오니 벌써 한시간이 흘렀습니다. 급하게 올라갔다 내려오느라 몸이 지쳐버렸습니다. 다시 배낭을 매고 삼도봉-화개재-토끼봉 정상에 오르니 시간은 12:30 예상대로라면 연하천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우리는 지쳐서 토끼봉 정상에 죽치고 앉아있었습니다. 일단 가지고 간 오이를 하나씩 먹고 힘을 내서 연하천을 목표로 걸음을 떼었습니다.
그리고 1:50분에 드디어 연하천대피소 도착! 서둘러 점심을 컵라면으로 해결했습니다. 다리를 주무르고 파스를 뿌리고 그늘에 앉아서 한시간을 쉰 다음... 오늘의 숙소인 벽소령까지 약 5km를 어떻게 갈 것인가를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습니다. 우선 걸음걸이가 만만한 아주머니들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며 라면 한 개를 얻어먹었던 연약해 보이는 어떤 아주머니 두 분을 찍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이 출발하기에 우리도 얼른 따라붙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금방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두 분은 현직 여자소방대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사람들과 떨어져 연하천-삼각봉-형제봉-형제바위-벽소령까지 바위와 계단으로 된 길을 다리를 질질 끌면서 몸을 움직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앞질러 가면서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씩씩한 척 걷다가 사람들이 안보이면 바람빠진 허수아비처럼 풀썩 꺼졌습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시간 5:20분에 드디어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여 마당 의자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오늘은 첫날인데 약20km를 11시간정도 걸었습니다.
"아빠, 오늘이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힘든 날이어요. 이보다 더 힘든 날이 또 있을까?"
"음... 오늘보다 더 힘든 날이 멀잖아 있을지도 모르지. 내일 보자"
저녁을 햇반으로 해 먹고 군대의 내무반 같은 대피소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6시에 눈을 떴습니다. 서둘러 아침을 누룽지밥으로 끓여먹고 7:30분에 대피소를 출발하였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걸어야 될 거리가 반 밖에 안되기 때문에 한결 여유가 있었습니다. 벽소령에서 선비샘 사이에 전망 좋은 곳에서 그림 같은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금방 어제보다 온 몸이 더 아프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무릎 관절이 욱신거리고 힘들어졌습니다. 놀다가 쉬다가 해찰하다가 구경하다가 느릿느릿 벽소령-선비샘-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12:15분!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1:30분에 오늘의 숙소가 있는 장터목대피소로 다시 출발하였습니다.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까지의 구간은 이번 지리산 종주의 하이라이트! 길이 편하고 아름다워서 사진을 많이 찍고 가지고 간 간식을 거의 이 구간에서 심심풀이로 다 까먹었습니다. 발바닥과 온 몸이 아프고 쑤시는 것은 여전하였지만 모처럼 딸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과자도 많이 얻어먹고 깔깔대면서 밧줄을 타고 타잔놀이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두 번째날은 약 11키로미터를 7시간 정도 걸었습니다.
세 번째날은 새벽 2:50분에 일어나 3:00에 후뢰쉬를 켜고 천왕봉까지 오르는 야간산행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시간 10분만에 천왕봉 정상 도착! 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을 올라오는 사람들의 후레쉬 불빛이 일렬로 늘어서 움직이면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천왕봉 정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푸르스름한 동녘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일출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5:10분에 해가 뜬다고 하였는데, 갑자기 등 뒤쪽에서 회색빛 구름이 덮쳐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단 10분만에 온 산은 중산리 마을만 마치 고양이 눈처럼 희미하게 비칠 뿐 모두 구름 속으로 잠기고 말았습니다. 이 엄청난 자연의 신비로운 거대한 쇼를 보면서 모두들 할 말을 잃고 넋을 잃었습니다. 이 벅찬 장면 한 가운데 딸과 함께 서 있는 영광을 누리다니... 너무나도 감격스러웠습니다.
갑자기 태풍이 불어오듯 거센 바람이 불어와 사람들이 하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중산리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약 2시간동안 내려가 로타리대피소에서 아침밥을 해 먹고 잠시 쉬다가 중산리까지 내려오니 10:16분이었습니다. 드디어 역사적인 지리산 종주를 마친 것입니다. 함께 앞서거니뒷서거니 했던 분들이 좋은이의 성공을 박수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세 번째 날은 약 10km를 7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정류장에서 진주-대전-집까지 고속버스로 돌아왔습니다.
종주기를 쓰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는데 어느 분의 불러그에서 분명히 우리 이야기인 것 같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오늘 형제봉을 넘어가면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이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초등학생 그것도 여자다!! 정말 대단하다. 6학년생 아빠가 조은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앞서 걸어가는 딸의 뒤를 뚱뚱한 아빠가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건빵 세 알을 힘내라고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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