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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9: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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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일전에 친구 목사님 중에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 분이 있어서 기도 부탁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찾아가 만나봤더니 석 달여 만에 암이 거의 완치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췌장암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암이 간과 복막에까지 전이가 되어 모두 말기 상태였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가 되면 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의사도 잘 해야 넉 달 정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은혜로 전혀 소망이 없던 상태에서 그렇게 호전이 된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처음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을 때 얼마나 당황하고 절망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분명히 가졌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세밀하게 체험한 것은 병원에서 어떤 환자를 통해서였다고 합니다. 암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어떤 환자가 식이요법으로 암을 치료하는 한 연구기관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른 환자들은 건성으로 듣고 넘겼는데, 이 목사님은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관을 찾아가서 거기서 처방해준 대로 치료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처지에 있었는데, 유독 이 목사님만은 그 말을 귀담아 듣고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에게는 그 선택과 결정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선택과 결정을 내리면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정말 일생을 좌우할 만한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결혼과 같은 문제는 한 번의 결정이 평생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런 선택과 결정을 내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게 될 선택을 앞두고 고민하는 빌라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결국 어떤 결정을 내렸으며, 그의 영원한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빌라도를 찾아오신 예수님
빌라도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치하에서 유대 총독으로 임명된 전형적인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일이 닥쳐왔습니다. 그 일은 빌라도로 하여금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했으며, 그 결정으로 인하여 빌라도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유대인들은 한 사람을 잡아 빌라도에게 끌고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사람을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한다는 죄목으로 빌라도에게 고소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로마 황제에 대해 반역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 사람을 심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빌라도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유대인들이 고소한 죄에 대한 그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이 사람을 시기하여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한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죄가 없기 때문에 석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7절)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8절)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던 빌라도
빌라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단독으로 만나는 엄청난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만남은 빌라도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을 너무나도 중요한 만남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아들을 인정하고 믿기만 한다면 그는 영원히 구원을 받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와 예수님과 나눈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이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서 예수님이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매우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니라”(9절) 예수님께서 왜 대답해주지 않으셨을까요?
빌라도는 이미 알아야 할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그분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당시 로마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에게 보낸 보고서가 남아 있습니다. 그 보고서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에 예수님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받은 인상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한참 동안 저는 이 비범한 사람을 존경과 두려움으로 응시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신들과 영웅의 형상을 그린 수많은 화가들이 아직 그려내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라도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마27:19)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질문에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신 것은 알 만한 것을 다 알고 있는 빌라도가 이제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아직도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출세에 대한 욕심과 야망 때문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삶과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삭개오와 같은 사람은 예수님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여리고의 세무서장이었습니다. 당시의 세리들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미움과 냉대를 받았습니다. 세리들은 동족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게 바치면서 부당한 이익을 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삭개오는 돈과 권세는 가졌으나 동족들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로 하여금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셨을 때 그는 마음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과 단독으로 만나는 기회를 잡았으나 구원을 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고민하는 빌라도
빌라도는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비범한 인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석방하면 로마 황제의 충신이 될 수 없다고 위협했습니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12절) 이제 빌라도는 예수님과 로마 황제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반역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석방할 수 없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를 찾아오셨고, 그는 일생에서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예수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로마 황제를 선택할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를 받아들인다면 로마 황제에게 반역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정치적인 생명은 끝이 날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지금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로마 황제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10절)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11절) 당시 전 세계는 로마 황제의 권세 아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에서는 빌라도가 최고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에서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 권세는 오직 빌라도에게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권세는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가 으스대며 자신의 권세를 강조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 권세는 빌라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빌라도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오늘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당신은 이것을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도로 가져가셔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욥은 정말 다복하고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 때 욥이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이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욥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경외했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을 모두 ‘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내 돈’이고 ‘내 집’이며 ‘내 자식’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가져가실 때 우리는 화를 내며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것을 요구하실 때도 매우 인색하게 굽니다. 얼마나 잘못된 태도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자식도, 재산도, 건강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기뻐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빌라도처럼 그것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만과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결정하는 빌라도
빌라도는 마침내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는 이제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 재판석에 앉았습니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13절) 빌라도는 최종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14하) 이 말은 빌라도가 유대인들을 조롱하기 위해서 한 말입니다. 그리고 너희 왕을 꼭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하겠느냐고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더욱 흥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15절)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약점을 잡고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12절에서도 그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12하) 빌라도는 이 말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도를 이렇게 위협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 자를 석방하면 의심 많은 황제 티베리우스의 원수가 될 것이다.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황제에게 당신이 로마 정부에 반역한 자를 사면해주었다고 고소할 것이다.”
이 말은 빌라도의 급소를 찌른 것과도 같았습니다. 빌라도는 이렇게 외쳐대는 유대인들에 대해서 ‘빌라도 보고서’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저는 가끔 시민폭동에서 노도한 군중을 목격하여 왔으나 이번처럼 격렬한 폭동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지옥의 모든 유령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것과 같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중들은 걸어 다닌다기보다는 갑자기 땅에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것 같았으며 총독 청사의 입구에서부터 시온 산까지 이르는 군중들은 넘실거리는 파도를 따라 움직이는 소용돌이처럼 보였고, 판노니아의 공회소의 소동이나 폭동에서도 결코 들어볼 수 없는 가지가지의 해괴한 소리를 지르며 모여들었습니다.”
빌라도는 흥분해서 외쳐대는 유대군중에게 굴복하여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니라”(16절) 빌라도는 예수님을 단독으로 만나는 엄청난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아무 죄가 없음을 분명히 알았으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석방하려 했으나 유대인들의 위협에 굴복하여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후 빌라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이 비극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으며 그로부터 수년 후에 유배를 당하여 고심하다가 자살했다고 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큰 감동과 충격과 도전을 받을 때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순간입니다. 연약한 형제를 도와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순간입니다. 죄에 대해 강한 책망을 들을 때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순간입니다. 당신은 이러한 일들을 경험해보셨습니까? 그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고 올바른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철저한 고백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빌라도처럼 예수님을 만나도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오늘 주님께서 당신을 찾아와 결단을 촉구하고 계십니다. 올바른 결단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주님께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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