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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9:3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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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8·11·22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아직 어려서 죽음이라는 것이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한 번 돌아가신 어머니는 아무리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해도 다시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86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마음이 편하고 감사했습니다. 장례를 마친 다음날 포근하게 내려 수북이 쌓인 눈을 보면서 왠지 가슴이 찡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분을 생각할 때마다 아쉬움이 너무나도 많이 느껴집니다. 생전에 해드린 것이 너무도 없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립니다.
사람은 일생동안 수많은 일을 겪습니다. 많은 일들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악착같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일단 죽고 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은 그것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평소에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던 사람들도 이제는 더 이상 그 관계를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에게 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게 됩니다. 사람은 그 누구라도 일단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장례식이 그렇게 엄숙하고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장례식을 통하여 한 사람의 삶과 인생을 종결짓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장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장례는 보통 사람들의 경우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장례가 모든 것의 마지막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승리와 영광과 완전한 성취가 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흩어져 달아나고 없었습니다. 십자가 곁에 요한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몇 명의 여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시자 슬픔과 절망에 빠져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은 골고다 언덕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 일부가 예수님의 장사를 생각하기는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예수님을 장사지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장사지내기 위해서 두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한 사람은 아리마대 요셉이었고, 또 한 사람은 니고데모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경건하고 믿음 좋은 사람들이었고 큰 부자들이었으며, 당시 유대 사회에서 최고위급 인사들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들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38-39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제자였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그것은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선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들을 살펴봅시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마27:57-61) 마태는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으며,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하여 바위 속에 판 자기의 새 무덤에 장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막15:42-47) 마가는 이 사람이 존경받는 공회원이며 하나님 나라를 기다라는 자라고 했으며, 빌라도에게 가서 당돌히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하여 무덤에 장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눅23:50-56) 누가는 그가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며, 예수님을 정죄한 산헤드린의 결의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고 존경받는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었으며, 도덕적으로도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는 것은 그가 굉장히 높은 귀족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헤드린은 오늘의 국회와 비슷한 기관인데, 7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높은 귀족이었고 부자였으며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숨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동안 숨어서 예수님을 따르던 이 사람이 전면에 나서서 예수님을 장사했습니다.
니고데모
예수님을 장사한 또 한 사람은 니고데모였습니다. 이 사람의 신분 역시 아리마대 요셉과 비슷했습니다. 니고데모 역시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요3:1) 니고데모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서 물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그날 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았을 것이며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유명한 요한복음 3:16은 바로 니고데모에게 주어졌던 메시지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이렇게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요셉처럼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숨어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였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존경과 특권을 누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들이 누리던 모든 특권과 지위를 다 잃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핍박을 당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것이 두려워 숨어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그들은 더 이상 숨어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모든 제자들은 두려워하며 다 흩어졌습니다. 아무도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을 장사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당돌하게 총독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자기에게 내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니고데모는 백 리트라(약 32kg)나 되는 막대한 향품을 준비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싸서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의 소유로 준비해두었던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습니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은 함께 의논하고 나타나 예수님을 장사했던 것 같습니다.
이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믿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십자가에 죽으셨던 것입니다. 이들은 숨어서 예수님을 따르던 자신들의 태도를 후회하면서 장례를 치렀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살아계실 때 자신들이 그분의 제자임을 자랑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습니다. 주님을 위해 핍박과 손해를 감수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고 모든 것이 끝나버렸습니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신앙이 너무나도 후회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는 끝이 아니었으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들의 수고를 알고 계셨습니다.
무덤에 계신 사흘
사람은 죽어 무덤에 장사됨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무덤에 장사되신 것이 주님의 마지막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중의 일부였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것과 마지막 심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히 죽으시셨고 무덤에 장사되셔서 사흘 동안 거기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머물러계신 사흘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신 사흘은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즉시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절하셨다가 깨어나셨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했고, 예수님의 시신은 무덤에 장사되어 사흘이 지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에서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을 어떤 자세로 당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당황하고 원망하며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여 이 모든 일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덤 속에서 조용히 하나님의 능력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까? 안달하며 불평하면서 나팔을 불고 다니지 마십시오. 오직 조용히 하나님의 능력을 기다리십시오. 마침내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장사의 의미
예수님께서는 생전에 조금도 자신을 위해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해 온전히 희생하셨고, 자신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갖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죽으심과 장사에 대해서는 예외였습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매우 비싼 향유를 부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인이 비싼 향유를 낭비했다고 화를 내면서 비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칭찬하시면서, 그것은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막14:8)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었고, 영원히 멸망당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죽음은 그 무엇보다 귀했습니다.
니고데모는 향품 백 리트라를 예수님의 시신에 발랐으며,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위해 새 무덤을 내어드렸습니다. 니고데모가 준비한 향품은 왕이나 큰 부자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해둔 돌무덤은 동굴이 아니라 바위를 파서 만든 것으로 큰 부자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무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멸시와 천대와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시고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지극히 합당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왕의 왕이신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낮아지셨던 것입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이렇게 장사한 것은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사53:9하) 물론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구약의 예언을 이루는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헌신했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비록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평소에 숨어서 예수님을 따랐으며 그것을 후회하면서 예수님을 장사지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헌신을 귀하게 받아주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이제 장사되셨습니다. 주님의 죽음과 장사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고, 구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 대신 멸시와 고난을 당하셨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남김없이 죄인들을 위한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주님의 이 죽으심으로 이제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죽으시고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이 시간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당신이 믿는 즉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로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나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5:15)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시고 장사되셨기 때문에 이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직도 주님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나를 위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당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제 더 이상 숨지 맙시다. 이제 더 이상 주저하지도 맙시다. 기회가 다 지나가버리면, 우리의 삶이 끝나버리면 후회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주님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드려 섬길 기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고 가장 귀하게 사용해주십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되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이제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고 오직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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