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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룻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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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9·02·07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당장 숨 쉬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우리는 한순간도 평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영원한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도 없고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절실히 깨달은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간절히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모하며 겸손하게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더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모압 여인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대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 소망도 없어 보이는 룻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이 가련한 여인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자 룻의 인생에 다시 소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룻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가장 복된 여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통하여 룻에게 은혜를 부어주셨고, 그녀의 삶을 놀랍게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실패했습니까? 당신도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겸손하게 은혜를 구하십시오. 믿음으로 간절하게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힘입어 인생이 완전히 새롭게 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참한 여인 룻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온 룻은 아무 소망도 없는 비참한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이민 온 유대인의 가정에 시집을 갔다가 엄청난 비극을 당했습니다. 몇 년 사이에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는 바람에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 그리고 손위 동서 오르바와 함께 과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 집안의 세 남자가 다 죽고 세 여인들만 과부로 남았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힐 일입니까? 이런 비참한 일을 당하고 나서 나오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두 며느리였습니다. 큰 며느리 오르바는 결국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대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이렇게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온 룻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멸시를 당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룻은 이방인이었고, 과부였으며, 매우 가난했습니다.
룻이 이방인이라는 것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비극적인 요소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멸시했으며, 아예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날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이방인이 아닌 선민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은 당장 생계를 이어갈 아무 대책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룻은 젊은 과부였습니다. 그것도 도와줄 가족이나 자식이 전혀 없는 과부였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고아와 과부는 늘 힘없는 약자였습니다. 룻은 그야말로 비참하고 불행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난한 이방인 과부 룻이 매우 배타적인 유대인들의 사회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룻에게서 어떤 소망도, 어떤 가능성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대함
그러나 룻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대하는 룻의 모습을 보십시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데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가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2절) 룻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되 누군가를 통해, 즉 사람을 통해 은혜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은혜를 사모하며 갈망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돌아온 나오미와 룻을 위해 은혜를 예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때는 마침 보리를 거두는 시기였습니다. 율법에는 곡식을 거둘 때 가난한 자들을 위한 배려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23:22)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도 이삭을 주워 생계를 꾸려갈 수가 있었습니다.
모압에서 돌아온 나오미와 룻에게 유일한 생계대책은 추수하는 밭에 가서 이삭을 줍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밭에 나가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생계를 이어갈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 여인으로서 낯선 땅에 온 룻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룻은 일단 들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룻의 믿음과 기대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룻을 엘리멜렉의 친척인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3절)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장차 나오미와 룻을 어떻게 회복시키시며 축복하실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3절은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룻기의 저자는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 이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연’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준비해 놓으시고 룻을 인도하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척이었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보아스를 통해 룻을 회복시키시고 큰 복을 주실 계획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에게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선하고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 계획에 따라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순종하면 반드시 예비해놓으신 은혜와 복을 받게 됩니다.
최선을 다하는 룻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던 룻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아무 소망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룻을 위해 이미 가장 선하고 좋은 길을 예비해놓으시고 그녀를 인도해주셨습니다.
룻은 이렇게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룻은 밭에 나가 이삭 줍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룻의 태도는 그녀를 보는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마침 밭주인 보아스가 추수하는 일군들을 보러 왔다가 낯모르는 여인을 발견하고 물었습니다.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5절) 그때 보리를 베던 사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6-7절)
생각해 보십시오. 대단히 배타적인 유대인 사회에 들어온 이방 여인, 그것도 과부였던 룻이 갈 수 있는 곳이 과연 어디였겠습니까? 당신이라면 그런 처지에 남자들이 곡식을 베고 있는 밭에 불쑥 나타나서 이삭을 줍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룻은 보리를 베는 밭에 나와 이삭을 주웠을 뿐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그녀는 주저하거나 그날 먹을 것만 대충 주워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쉬지 않고 열심히 이삭을 주웠습니다. 얼마나 귀한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더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사람은 싫어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달란트 비유에서 게으른 종이 이런 책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25:26)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을 수 없습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지치고 실망하여 자포자기하거나 나태한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과거에 실패한 것에 더 이상 매달리지 마십시오. 어려운 처지를 비관하며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중간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고 해서 의미 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곳에서, 당신이 직면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대하면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인생을 복되게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고 누구를 대하든지 주께 하듯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의 삶을 놀랍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양 도둑이 성자가 되다.
옛날 머나먼 나라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요즘 흔히 보는 청년들과 아주 비슷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두 형제는 매력이 있었지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거친 기질이 있었습니다. 장난이 점점 도가 심해져서 급기야는 동네 농부의 양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양을 키워서 먹고 사는 지역에서는, 양을 훔치는 것은 큰 죄였습니다. 동네 농부들은 그들에게 어떤 벌을 줄지를 결정했습니다. 두 형제의 이마에 ‘ST’(Sheep Thief)라는 글자를 낙인찍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낙인이 찍힌 채 평생을 살아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한 형제는 낙인찍힌 것을 너무도 당황해 하며 그대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이후 그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형제는 그 동안 저지른 일을 후회하면서 운명에 순응했습니다. 고향에 머물며 자신이 해를 입힌 마을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의 태도가 의심스러워 아무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지난 잘못을 속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을에 병자가 생길 때마다 그는 죽을 끓여 가서 그를 돌봐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손이 필요한 곳에 가서 일을 거들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가리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수고비를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어느 길손이 그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길가 옆 선술집에 들러서 점심식사를 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노인의 이마에 이상한 낙인이 찍힌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선술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고 노인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놀다가 노인을 보면 놀이를 멈추고 그와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길손은 선술집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저 노인의 이마에 찍힌 이상한 낙인은 무엇을 뜻하는 글자입니까?”
“글쎄 모르겠는데요. 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서 …” 선술집 주인은 말꼬리를 흐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 내 생각에는 ‘성자’(Saint)란 말인 것 같군요.
(쓰러지지 않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잭 캔필드 외 지음)
양 도둑(Sheep Thief)이 성자(Saint)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반전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최선을 다한 나머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던 라합은 여리고의 모든 사람들이 멸망을 당할 때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목동이었던 다윗은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이스라엘 최고의 성군이 되었습니다. 이방 여인이요 가난한 과부였던 룻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최선을 다한 결과 놀라운 회복의 은총을 힘입어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조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회복시켜 새롭게 변화시키시려고 은혜를 예비해놓고 계십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까? 실패했습니까? 믿음이 약해졌습니까? 지치고 실망하여 힘을 잃고 침체되어 있습니까? 룻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룻처럼 간절하게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바로 서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을 위해 예비해놓으신 회복의 은혜를 힘입게 될 것입니다. 그 은혜를 힘입어 당신의 인생이 회복되고 놀랍게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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