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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룻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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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9·02·14
성경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창조와 타락, 그리고 회복(구속)입니다. 창조는 창세기 1,2장에 기록되어 있고, 타락은 창세기 3장에 나옵니다. 그리고 창세기 4장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회복, 곧 구속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구속의 책’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타락한 이후 즉시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회복, 즉 구속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주인공은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룻기 역시 구속에 관한 책입니다. 룻기는 모압으로 이민을 갔다가 비참하게 몰락한 나오미의 가정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회복은 가난한 과부이며 모압 여인인 룻의 구속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에는 룻을 구속해줄 보아스가 등장합니다.
구속
구속이란 일반적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속박상태에서 풀려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대속은 자신을 종으로 팔거나 자기 땅을 팔아버린 빈궁한 친족을 대속하는 의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구약에서의 구속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가르치기 위한 모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영원한 멸망에서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룻기에는 구속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기업 무를 자’라는 말이 9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업을 무른다는 말이 바로 구속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룻기의 주제는 ‘기업 무르는 것’ 즉 구속입니다. 구약에서의 구속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구약의 율법에는 기업 무르는 일에 대해서 두 가지 경우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땅에 관한 것입니다.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레25:25-28) 이스라엘에서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남에게 영구히 양도할 수 없었습니다. 땅을 남에게 팔았을 때는 언제든지 형편이 되면 되살 수 있었습니다. 만일 자신이 그럴 힘이 없으면 친척 중에서 누구라도 힘이 되는 사람이 되사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업 무르는 것입니다. 만일 그 땅을 되살 힘이 없으면 희년이 되는 해에 본래 주인에게 돌려보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 희년은 50년마다 반복되는데, 땅을 매매할 때는 희년까지 남은 햇수를 계산해서 땅 값을 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땅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구약에서 구속의 또 한 경우는 가문을 잇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만일 형이 자식을 보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그의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를 들어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잇게 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신25:5-6)
구속자
오늘 본문에서 룻기의 저자가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룻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회복시킬 보아스의 등장입니다. 저자는 구속자에 대해서 어서 말하고 싶은 나머지 2장 초두부터 그의 이름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1절) 이 보아스의 등장으로 아무 소망도 없어 보이던 룻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엘리멜렉의 가정은 기근이 들었을 때 땅을 팔고 이민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민 간 모압에서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엘리멜렉의 가정은 기업이 사라지고 가문이 끊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한 젊은 과부가 남아 있는데, 바로 모압 여인 룻입니다. 만일 누군가 엘리멜렉의 친척 중에 유력한 사람이 나타나 엘리멜렉이 팔았던 땅을 되사고, 엘리멜렉의 며느리인 룻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면 그의 가문이 회생될 수 있었습니다. 룻기에서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척이며,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룻과 기꺼이 결혼하여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 아들이 바로 다윗의 조부인 오벳입니다. 이렇게 해서 엘리멜렉의 가정이 회복됩니다.
구속자의 자격
구약의 구속제도는 장차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 아무 소망도 없게 되었던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구약 율법에 규정된 구속은 참으로 귀한 제도였습니다. 아무리 소망이 없게 된 사람도 누군가가 와서 구속해주면 새롭게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구속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구속자는 반드시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구속자는 그 사람의 친척이어야만 했습니다. 친척이 아닌 남들은 구속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조건은 유력자여야 했습니다. 값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구속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원하는 사람이라야 했습니다. 아무리 친척이고 그럴만한 힘이 있다 해도,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구속자가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구속자는 그 사람의 친척이며,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기꺼이 그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본문에서 룻기의 저자가 소개하기 시작한 보아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자가 처음부터 보아스를 엘리멜렉의 친족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력한 자였습니다. 그런 일을 할 만한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1절) 뿐만 아니라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기를 원했습니다.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기를 원한 것은 그가 구속자가 되기를 원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보아스의 등장으로 룻기의 이야기는 급반전되기 시작합니다. 1장에는 비참하게 몰락한 가정의 모습, 거기에 남은 세 과부의 불쌍한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희망도, 가능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아스가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룻은 가난한 이방 여인이며 과부였습니다. 룻은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요소를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를 통해 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그녀는 부자가 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되며, 유력한 가문의 여주인이 됩니다. 그리고 훌륭한 아들을 낳아 그리스도의 조상이 됩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룻기는 오늘 우리의 이야기
그런데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룻처럼 비참하고 소망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1-12)
이 말씀이 룻의 처지를 얼마나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까? 그런데 사실 이 말씀은 구원받기 전 우리의 형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 우리는 이방인이요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 아니었으며 영원히 멸망당할 소망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한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구속자의 자격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구속자는 친척이어야 하고, 유력한 자여야 하며, 자원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보아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진정한 우리의 구속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우리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구속자의 모든 조건들을 다 갖추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척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히2:11-12)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의 친척, 형제가 되셨습니다.
구속자의 두 번째 자격은 유력자, 즉 구속할 대상의 값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당할 우리를 구속할 구속자는 무엇보다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 있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속할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죄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오신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속하기에 충분한 유력자이셨습니다.
구속자의 세 번째 자격은 자원하는 자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시고 자원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히10:7)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십자가를 피하실 수가 있으셨지만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척이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하나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토록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예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력자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기 원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속자이십니다.
구원 - 구속의 은혜
이방 여인이며 가난한 과부였던 룻은 보아스를 만남으로 더 이상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부자가 되었고, 떳떳한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룻은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다윗왕의 조부가 되는 사람입니다. 룻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구속자인 보아스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룻의 이야기는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우리는 죄로 인해 아무 소망도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이러한 죄인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6)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상)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우리는 이렇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 소망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속자이신 예수님께서 이러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제 누구든지 우리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대신해서 죄 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와 멸망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전에는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이제는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한 지옥형벌에 던져질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현대인들에게는 큰 비극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죄와 운명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만일 오늘 밤에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보셨습니까? 만일 오늘 밤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최후의 심판을 하신다면 당신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우리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아직도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왜 당신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십니까? 왜 당신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습니까? 룻처럼 겸손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마음을 열고 엎드리십시오. 이 시간 내 마음속에 오셔서 나의 구주가 되어주시라고 기도하십시오. 오늘 당신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은혜를 더욱 감사하십시오. 우리는 아무 소망도 없는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이 구원의 은혜를 더 깊이 알게 해주시라고 기도하십시오. 날마다 구원의 감격 속에서 살아가게 해주시라고 기도하십시오. 당신이 만일 이 구원의 은혜를 깊이 알게 된다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깨닫고 뜨겁게 감격하면서 기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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