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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5: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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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십자가 고난의 의미
본문/ 히5:7-10
1. 들어가는 이야기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노아 홍수 때 노아의 방주에는 암수가 짝을 이루어야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행복이 저 혼자 왔습니다. 노아가 “이 방주에는 그 누구라도 짝 없이는 入場禁止(입장금지)이니 네 짝을 데리고 오라” 고 하였습니다. 행복은 한참 지난 후 자기 짝을 데리고 왔는데 그 짝은 불행이었습니다.
Happiness and unhappiness are neighbors.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상에는 행복(樂)과 불행(苦)이 현존합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원하고 불행을 싫어하므로 離苦得樂(이고득락:고통을 떠나 즐거움을 얻음)-推吉避凶(추길피흉:길한 것을 추구하고 흉한 것을 피함)-甘呑苦吐(감탄고토:달면 삼키고 쓰면 뱉음)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의 역사를 보면 행복과 불행은 긴밀한 변증법적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은 불행에서 비롯하고 불행은 행복에서 비롯합니다.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윷놀이 판에서 “첫 도(돼지)는 복 도(돼지)다”-노름판에서 첫 끗발은 개 끗발이다-少年登高科一不幸(소년등고과일불행-너무 젊어서 출세하는 것은 불행일 경우가 많다)-人間萬事 塞翁之馬(인간만사 새옹지마).
2. 불행=苦難(고난)의 신비
앞에서 행복은 불행에서 비롯하고 불행은 행복에서 비롯한다고 말씀 드린바 있으나 우리 사람이 태어날 때 “하-하-하-” 웃으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앙-앙-앙-” 울면서 태어난다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 경험하는 것처럼 행복한 시간은 짧게 느껴지고 불행한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는 것(Life is short to the fortunate, long to the unfortunate)을 보아서도 우리 각 사람은 실존적-심리적으로 행복의 현실보다 불행의 현실이 더 길고 크고 절박하고 우선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을 굳게 믿는 사람”은 자기의 죄로 인한 고난이든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한 고난이든 모든 고난-불행-아픔-고통-슬픔에는 의미가 있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욥과 같이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까지도 그 의미가 있다고 하십니다.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혹독한 고난을 통하여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뵙는 놀라운 영적 은총”을 받았고 “壽富貴多男考終命(수부귀다남고종명)” 의 물질적인 복도 배나 더 받았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욥42:1-6, 42:10).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지난 주일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각 사람의 개인적-실존적인 죄 그리고 종교적-사회적-제도적인 죄에 대하여 “아니오!” 하셨기 때문에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라틴 속담에 “진리는 적을 만든다(veritas odium parit-베리타스 오디움 파리트)”고 한 것처럼 진리이신 예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죄(물질 황금 만능 주의, 미움, 교만, 탐욕, 자기 이익을 위하여 의를 저버리는 죄, 음란 죄, 이웃에 대한 무관심, 이생의 자랑 등)-우리 사회의 죄(불의한 법, 부정부패, 복지부동, 정경유착 등)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눈물-땀을 흘리고 참혹하게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때 우리는 나 자신의 죄 그리고 우리 사회의 죄를 돌아보고 깨닫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죄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를 깨닫게 합니다.
사람이 죽음의 자리에 이르면 3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하나, 좀 베풀며 살 껄! 둘, 좀 즐겁게 살 껄! 셋, 좀 참고 살 껄! 이 그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 와 보니 베풀고 살 수 있었는데-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참고 살 수 있었는데...그렇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통탄한다는 말입니다. 왜? 무관심과 인색함의 죄 때문에-쌓아 놓으려는 탐욕과 두려움의 죄 때문에-용서하지 못하고 원망하는 죄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의 힘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따라다닙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오호라 나는 곤곤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1-24)” 고 죄의 힘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연약함을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까지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일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때 우리에게 죄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깊이 실제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우리가 실제 현실 생활에서 죄의 세력과 대결 할 때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명징하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이 되셨느니라(히5:7-10)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1:29)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너는 모든 일에 근심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 하라(딤후1:7, 2:3, 4:5)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우니라(벧전2:20-21)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라..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벧전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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