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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애1:1-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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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그래도 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1:1-5:22
1. 들어가는 이야기
요즈음 우리 대한민국 민심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9월 금융 위기 대란설-달러 보유 5개월 연속 하락-경상수지 적자 심각-전년 대비 추석 보너스 감소-코스피 지수 1450선 붕괴-계속되는 외국 신문들의 한국 경제 위기설-물가 급상승-생활고 비관 동반 자살-생계형 범죄증가 등의 뉴스가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이거 또 IMF 사태가 오는 거 아냐?”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정부는 9월 1일 “26조 원 조세감면 특례법”을 발표하였고, 대한민국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사실 우리 경제는 IMF 이후 최악이다. 그러나 IMF 염려할 수준은 전혀 아니다” 라고 해명하였으나 그래도 국민의 불안과 우울 증세는 쉬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올 추석은 이래저래 辛酸(신산)한 추석이 될 모양입니다.
나는 이와 같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현재의 걱정-근심-불안한 世情(세정)을 성경에서 찾아본다면(사태의 심각성 정도로 말하자면 비교의 대상도 못 되지만...) 유형론적(typology)으로 볼 때 예레미야 선지자의 시대와 같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2. 예레미야 선지자의 시대 상황
우리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일컬어 “눈물의 예언자” 라고 합니다. 왜? 그는 유다 왕국의 멸망과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전이 철저히 파괴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울었습니다(애1:11, 2:1-2). 망국의 젊은이들이 칼에 죽고(애2:21)-노인들과 처녀들은 능욕을 당하고(애2:10)-어린 아이들은 굶어 죽고(애2:12)-평소에 그토록 자애롭던 어미가 그 자식을 삶아 먹는 것(compassionate women have cooked their own children)을 보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참상이 저 거짓 예언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 두 달, 일 이 년 안에 끝날 것(렘28:1-11)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 죄 값을 다하는 날(렘16:10-13)까지 장장 70년이 지나야 끝나리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계시를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실존적 비극 때문에 울었습니다. 나는 이번 휴가 동안 성경 일독 중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 애가를 천천히 읽으면서 그의 눈물은 눈물이 아니라 피눈물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예언자”가 아니라 “피눈물의 예언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본토에 남은 백성들과 600km 멀리 바벨론 땅에서 전쟁 포로로 온갖 비인간적 학대-굴욕-자존심 파괴로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백성들에게 간곡히 피눈물로 호소하였습니다(렘29:1-14).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움막이라도 짓고-거적이라도 덮고, 돌작밭이라도 갈아 피죽을 끓여 먹고, 자식을 낳으시오! 그리하여 제발, 제발, 제발 살아남으시오! 이스라엘은 예레미야의 호소대로 그런 혹독한 상황에서 그렇게 살았고, 살아남았고, 그리하여 지금 21세기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백성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이 걱정-근심-불안한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세상이 아무리 요동쳐도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굳게 믿고 살 뿐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곧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2)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끊임없이 선포한 것처럼 *너희가 입으로는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실제로는 나를 떠났도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 배역함을 고치리라(렘3:19-22)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를 조사하고(애3:40) 우리 죄를 자복하고(렘3:13)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둘째. 사는 것이 옳으니라. 지난 8월 27일 지하철 5호선 개화산 역에서 홍모 여인(30세)이 아들(11세)-딸(5세)과 함께 생활고를 비관하여 투신자살하였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인천에서 세 아이를 14층 아파트에서 흩뿌리고 죽은 손 모 여인 사건이 생각났다). 오죽하면 그랬겠나? 싶습니다. 정말,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절대 죽지 말고 살았어야 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지지리 간난한 가정(남편은 술주정뱅이-아내는 폐병 말기-자녀는 6명)의 주부가 또 임신을 하였습니다. 자, 이런 경우 낳아야 하는가? 낙태하여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낙태!”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질문자는 말하기를 “여러분은 지금 위대한 악성 베토벤을 낙태 시킨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그 누가 보아도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할 지경”에 처하였을지라도 살아야 합니다. 무조건 살아야 합니다. 움막, 지하철역에서 거적을 덮고 자고-빌어먹고-주식이 거덜 나고-빚으로 집이 날아가고-내가 죽는 날까지 출구가 보이지 않고-사회복지 기관이 제공하는 밥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살아야 합니다.
혹,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좋아, 나는 그렇다고 쳐 그러나 내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어? 결국 이러나저러나 한 번 죽는 것은 일반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다운 삶-자존심-인간적 체면-부끄러움을 무지르고 살아남을 수 있는 마음-의지-무의식-그 모든 것의 총체가 진짜 생명력입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똑똑하고 자존심 강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모든 비극의 극치 상황에서 玉碎(옥쇄)-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여호와 이레-여호와 라파-여호와 닛시-여호와 샬롬-여호와 치드케누-여호와 삼마-여호와 레하”로 축복하시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리 모두 보는 바 오늘 21세기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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