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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22: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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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여호와이레
창22:1-18
1. 들어가는 이야기
<창12:1-25:11>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나이 75세에 하란을 떠나 175세에 헷 족속의 땅 헤브론(마므레)의 막벨라 굴에 장사될 때까지 꼭 100 년 동안의 아브라함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란을 떠남-기근 때문에 애급으로 피난-조카 롯과 헤어짐-롯을 구출하기 위한 전쟁-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 바침-이삭을 주실 것을 약속-사라와 하갈의 갈등-아브라함 99세(이스마엘 13세)에 받은 할례-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그랄 땅의 아비멜렉과의 갈등-100세에 얻은 이삭-서자 이스마엘 추방(15세 쯤)-브엘세바 우물 분쟁-이삭을 제물로 바침-사라의 죽음-리브가를 며느리로 맞음-아브라함 175세 죽음으로 이삭과 이스마엘이 막벨라 굴에 장사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참으로 多事多難(다사다난)-迂餘曲折(우여곡절)-九折羊腸(구절양장)한 100년 이었습니다.
2. 아브라함 역사의 하이라이트-여호와이레
장대한 아브리함 역사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브라함이 받은 세 가지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어느 날 갑자기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신 시험입니다. 둘째는 자녀를 생산할 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네게 후사가 있을 것이라는 시험입니다. 셋째는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샘물 115호, 480호, 481호, 482호에서 이 문제를 묵상한 바 있습니다.
창12장의 첫째 시험-모든 것이 갖추어진 안전한 현재를 떠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하여 갈 수 있느냐? 하는 시험, 창15장의 둘째 시험-사람으로는 불가하나 하나님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믿느냐? 하는 시험, 어느 것 하나 예사 시험이 아니었으나 아브라함은 단순-무모-우직하게 그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창22장의 셋째 시험-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은 앞에 두 시험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시험이었습니다. 앞에 두 시험도 웬 만한 믿음 아니면 통과할 수 없는 시험이었으나 셋째 시험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평면적 차원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가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삼차원적 시험이었습니다. 즉, 첫째-둘째 시험의 목적이 “이삭” 이었는데 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은 첫째-둘째 시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며 따라서 사람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절대 무의미한 믿음까지 믿음으로 受容(수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이레>의 세계-새 하늘과 새 땅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여호와이레(여호와의 산에서 준비 되리라)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첫째.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시험하시고 도전하시고 시련하시고 단련하시고 연단하십니다(창22:1, 욥1:12, 욥2:6, 잠17:3, 고전10:13).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도전하시고 시험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본문처럼-나는 못 갑니다, 못 간다니까요 하는 모세에게-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에게-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이라 말할 줄 모릅니다 하는 예레미야에게-느니웨 가기를 싫어하는 요나에게-세관에 앉아 미적미적하는 세리 마태에게-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시는 예수님께 까지 여호와 하나님은 도전하시고 시험하시고 단련하십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전-시험-연단-시련 앞에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할 것인가? 아니면 부자 청년처럼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각자의 태도에 달린 문제입니다.
둘째. 여호와이레는 아브라함처럼 이사야처럼 기꺼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응답하고 피-눈물-땀을 흘리며 하나님의 시험-시련-연단을 통과한 사람만이 듣고 볼 수 있는 기쁨-영광-깨달음-행복-축복-새 하늘 새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뿔이 수풀에 걸린 수양을 보았습니다. 욥은 귀로 듣기만 하던 주를 눈으로 뵈었습니다(욥42:4). 엘리야의 사환은 산에 가득한 불말과 불병거를 보았습니다(왕하6:14-17). 엘리사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왕상19:12). 엘리야의 사환은 산에 가득한 불말과 불병거를 보았습니다(왕하6:14-17).
셋째. 여호와이레의 축복. “여호와이레” 라는 말은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On the mountain of the LORD it will be provided (창22:14)” 라는 뜻입니다.
무슨 뜻인가? 아브라함-욥-엘리아-엘리사의 사환 등 저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에서 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저 마다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이 시험을 통과 하였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도 저 마다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린 수양, 욥은 눈으로 뵌 하나님,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엘리사의 사환은 불말과 불병거 등등이었습니다. 모양은 달랐으나 저들의 심령 속에 맺혔던 것-막혔던 것-간절히 원하던 것이 一擧(일거)에 탁! 트여 새 지평이 열렸다는 것, 저들의 심령이 물 댄 동산 같아졌다는 것, 저들의 심령에 長江大河(장강대하)와 같은 도도한 새 힘이 밀려들었다는 것은 공통됩니다. 그것이 여호와이레입니다.
大學에 曰, 至於用力之久而一旦 豁然貫通焉(지어용력지구이일단 활연관통언: 사람이 한 분야에 지극정성을 다하여 용맹 정진하여 그 애씀이 오래되면 어느 날 아침 홀연히 그 분야의 심오한 이치를 하나로 꿰뚫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그 어떤 답답한-재미없는-의미없는-차라리 죽는 게 나아보이는 절망적 상황에 몰렸다고 할지라도 무조건 살아남아 여호와이레로 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우직하게-단순하게-미련하게-바보 같이 라도 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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