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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는 음식

마가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436 추천 수 0 2011.03.15 23: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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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4:22-26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영원히 사는 음식
막14:22-26

사람이 8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일평생 먹는 음식 섭취량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평균 하루 식품 총 섭취량은 1천 48g이라고 합니다. 80년 동안 하루 세끼씩 꼬박꼬박 먹는다면 평생 모두 8만 7천 6백 끼를 먹게 됩니다. 어린 시절이나 병들었을 때, 늙어서 많이 먹지 못하는 때 등을 무시하고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인당 평생 음식 총섭취량은 3만 6백 4kg이나 됩니다. 즉 30톤 이상이 됩니다. 포장 이사할 때 쓰는 대형 5톤 트럭 6대 분량입니다. 많은 양을 먹습니다. 시간을 계산해도 상당히 많습니다. 한 끼 40분씩만 잡아도 하루면 120분입니다. 일평생 총3,504,000 분이고 58,400시간, 2433일, 6.6년이나 됩니다. 그 외 차 마시는 시간, 간식 먹는 시간을 합하면 이보다 더 많아질 것입니다. 먹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까지를 합한다면 인생의 2/3 이상은 먹는 것과 관계된 시간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먹으며 삽니다. 모든 생물은 다른 생명의 죽음을 통해 살아갑니다. 동물들은 존재하는 것만 먹고 인간은 재배하고 가공하여 먹습니다. 더 좋은 음식을 먹으려 애를 쓰지만 어떤 음식을 먹든 결국 죽습니다. 그런데 한 번만 먹으면 영원히 사는 음식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경에는 영원이 죽지 않는 생명의 떡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 6:48-50)”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 6:58)”
예수님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식인종처럼 인육식을 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늘 성경에 기록된 유월절 만찬을 통하여 예수님을 먹고 영원히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 날 유월절 만찬을 하였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애굽인의 장자는 죽었지만 유대인의 장자는 산 날, 애굽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입니다. 명절이 되면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먼저 두가지 일을 합니다.
집안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유월절 준비는 특이한 것이 있었습니다. 집안 청소하기는 하되 유월절이 되기 전 날에 집안에 있는 누룩을 다 제거하였습니다. 집안 구석구석까지 누룩이 들어 있는 음식이 남아있는 일이 없도록 깨끗이 청소합니다.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 누룩없는 빵 즉 무교병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월절에 잔치할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유월절 음식에서 중요한 것은 어린양, 무교병, 쓴 나물이었습니다. 성전에 가서 어린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피를 제단에 뿌렸습니다. 그 어린 양의 고기는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함께 구워 먹었으며 그 뼈는 하나도 꺽지 못하게 했습니다(출12:46; 민 9:12). 이 구운 고기는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되 완전히 다 먹어버려서 이튿날 아침까지는 아무것도 남기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파괴되어 성전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자 조금 달라졌습니다. 나라가 망한 후 성전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자 유월절에는 여섯 가지의 특별한 음식들이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①정강이 뼈, ②삶은 달걀, ③쓴 나물(양고추냉이;horseradish), ④파슬리(parseley)나 셀러리(celery) 혹은 양상추, ⑤소금물, ⑥하로셋(양념장) 등의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쓴 나물(양고추냉이)을 먹으며 이집트의 노예 생활의 고역을 기억하였고, 하로셋은 양념장의 일종인데 색깔이 진흙과 같아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진흙으로 벽돌을 굽던 노예 생활을 기억하기 위하여 쓴 나물을 하로셋에 찍어 먹었다고 합니다. 정강이 뼈와 삶은 달걀은 제 2성전이 파괴된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며 이 음식을 먹으며 성전에서 행하던 희생 제사를 기억하였다고 합니다. 소금물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흘렸던 눈물을 상징하며 파슬리나 셀러리, 양상추 등은 봄이 왔다는 의미에서 생명을 상징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기쁨과 축복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하실 때는 헤롯 성전이 있었기 때문에 유월절 음식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양과 마짜라고 하는 무교병입니다.
유대인의 유월절 행사는 과거의 고난과 슬픔을 기억하며 현재의 축복을 감사하며 미래의 소망을 기원하는 순서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은 순서가 있었습니다.
음식을 다 준비하고 유월절 저녁 온 식구들이 모여 만찬을 합니다.
만찬의 주례자는 가장이나 주빈이 합니다.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은 만찬을 하시는데 예수님이 주례자입니다.
먼저 첫잔을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의 잔에 포도주를 따른 후 주빈이 축복기도를 드립니다. 축복문을 낭송하는 것입니다. 참여하는 자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 때 드리는 기도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세상의 임금님이시며 포도넝쿨에서 열매를 일구어내시는 주님, 찬양 받으소서”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축복 기도 후 다같이 잔을 비웠습니다. 행사 동안 네 번째 잔을 마시는데 첫 번째 잔입니다. 축복이 끝나면 각자 부엌이나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슬리나 셀러리 혹은 양상추를 소금물에 찍어 먹습니다. 야채는 새봄의 새로운 생명을 상징하고 소금물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흘린 눈물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과거를 기억하며 교훈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주례자는 출애굽 사건을 이야기하고, 유월절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유래와 누룩없는 빵과 쓴 나무을 먹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고 합니다. 출애굽 사건을 재현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미리 질문 네 개를 만들어 아이들이 질문하고 아버지가 답변하는 형식을 취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이 출애굽기에서 세 번, 신명기에서 한 번 모두 네 번 아버지는 반드시 그의 자녀들에게 출애굽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라고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출 12:26; 13:8; 13:14; 신 6:20). 정통 유대인들은 지금도 유월절에 이런 질문을 통해 교훈한다고 합니다.
질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왜 이 밤에 우리는 맛짜(무교병)를 먹습니까?
둘째, 왜 이 밤에 우리는 쓴 나물을 먹습니까?
셋째, 왜 우리는 이 밤에 파슬리를 소금물에 두 번 찍어 먹습니까? 또 쓴 나물을 하로셋에 찍어 먹습니까?
넷째, 왜 우리는 유월절 음식을 뒤로 비스듬히 기대어 먹습니까?
인도자인 아버지는 유월절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릴 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놓은 집의 장남은 죽이지 않고 넘어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날 때 급하여 무교병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설명하고, 누룩은 죄를 상징하는데 죄없는 빵을 먹게 하기 위해 누룩없는 빵을 먹게 하였고,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하여 쓴 나물을 먹는다고 설명합니다. 이집트에서 흘린 눈물을 기억하며 소금물에 파슬리를 찍어 먹는다고 설명하고 이제는 자유로운 백성으로서 뒤로 기대어 먹어도 될 만큼 여유와 기쁨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뒤로 기대어 편히 음식을 먹는다고 설명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식구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들에게 베푸신 이적과 기사를 찬양하며 '다예누'라는 노래를 합창한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는 할렐 시편 전반부 시편 113, 114편을 찬양했다고 합니다. 찬양이 끝나면 두 번째 잔을 마시고 중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현재를 축복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인도자가 유월절의 음식과 마짜(무교병)를 위하여 축복 기도를 올립니다. “우리 하나님이시오. 세상의 임금이시며 땅에서 빵을 생산하시는 주님, 찬양받으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는 먼저 쓴 나물을 먹습니다. 이 때 쓴 나물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기억하기 위하여 먹는 것이므로 뒤로 비스듬이 기대어 먹지 않고 똑바로 앉아서 먹었다고 합니다.
가장이나 주빈이 누룩없는 빵을 집어 들고 찬양기도를 드린 빵을 떼어 나누어 줍니다. 현대 정통 유대인들은 쓴 나물을 마짜(무교병) 사이에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이 샌드위치를 가리켜 "힐렐 샌드위치"라고 합니다. 맛이 없는 마짜(무교병) 사이에 쓴 나물을 넣어 먹으면 얼마나 맛이 없겠습니까? 그 후 본격적으로 특별히 맛있게 준비된 유대인 최고의 요리 유월절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는 내용을 보면 바로 최고의 요리인 유월절 음식을 먹기 전, 무교병을 먹는 장면부터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막 14:22)”
예수님은 축복기도하신 후 누룩 없는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교병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무교병이 바로 내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파격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처음 들어 보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교로 볼 때는 이단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교병 떡은 누룩이 없는 떡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두 가지를 상징하였습니다.
첫째가 고난을 상징하는 빵입니다. 누룩은 밀가루 속에 들어가 발효되어 반죽을 부드럽게 해주고, 부풀어오르게 하고, 소화도 잘 시켜주고, 맛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교병은 발효가 되지 않은 맛없는 떡입니다. 출애굽할 때 이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처음 출애굽 할 때 유월절 무교병은 그들이 애굽에서 급히 나가야 했기 때문에 무교병을 만들어 먹었습니다.(출 12:33-). 그들은 급히 애굽을 떠났기 때문에 발효시킬 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이 무교병을 먹으면서 믿음의 조상들이 출애굽 할 당시 겪었던 고난과 역경을 기억하였습니다.
둘째가 죄없는 순결을 상징합니다.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누룩은 효소 작용을 해서 빵을 만드는 밀가루 반죽, 술이나, 간장, 된장 등을 발효시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러한 효소의 분해 및 발효작용을 물질이 썩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누룩'의 나쁜 의미는 죄와 악을 상징합니다(고전 5:6-8). 누룩은 영적인 의미에서 ‘죄’와 '부패'와 '타락'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과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소제, 레2:1-16)에 꿀과 누룩을 넣는 일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에 종교적 도덕적 타락을 의미하는 '누룩'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무교병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통해 궁극적으로 교훈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무교병이 바로 내 몸이라는 것입니다.
누룩이 없는 즉 죄 없으신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상징하는 무교병이 십자가에 찢기실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22-29에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독약을 먹으면 죽습니다. 인간은 먹는 것을 잘 못 먹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사탄의 유혹을 받아 그것을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시면서 하나님의 영역으로 선악과만 따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구분점을 두었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령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범하였습니다. 이 죽음이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단절을 말합니다. 생명이 단절되고 교제가 단절되는 것을 말합니다. 저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지금도 사진을 통해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제하지 못합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지 못합니다. 아픔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조언을 구할 수 없습니다. 교제가 단절된 것입니다. 우리가 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됩니다. 그것을 영적 죽음이라고 합니다. 육신적으로 우리의 영과 육체가 단절됩니다. 서로 교류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육신적 죽음이라고 합니다. 지옥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과 단절됩니다. 그것을 영원적 죽음이라고 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고 죽었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먹으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게 됩니다.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확신하게 됩니다. 남들이 알지 못한 것을 알고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됩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됩니다. 영이 살아 나지 않으면 눈이 아무리 좋아도 영적인 세계를 볼 수가 없습니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고전 2:13)”합니다.

그러면 먹는다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떡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장정만 5천명을 먹이신후 제자들이 참떡 영원이 죽지 않는 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주소서 (요 6:34)”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은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길은 바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양식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찢어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영생함을 받습니다.
첫째, 이 사실을 믿으면 죄 용서함 받고 구원을 받아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10:38)”
둘째, 이 사실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 : 12)”
셋째, 이 사실을 믿고 살면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21 : 22) ”
넷째, 이 사실을 믿으면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다섯째, 이 사실을 믿으면 새로운 영적 세계를 알게 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알게(히 11:3)”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신령한 몸으로 육신이 부활할 것을 믿게 됩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나라를 사모하며 살게 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절망하며 원망하고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그 나라를 소망하며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어제도 시골 결혼식에 갔다 왔는데 시골에 갔다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보면 좌우에 수많은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것을 봅니다. 그 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아파트 중에 내 집은 한 채도 없구나, 목회를 그만두면 당장 다음날 일용할 양식도 없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면 처량하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하면 우리 주님 때문에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먹고 살며 주님 의지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이 됩니다. 이 믿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합니까? “ 초가 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값진 재물도 내겐 없지만내게 주어진 하늘나라에 가면 금수정 길을 거닐겠네 내게는 하늘 저 위에 집 있네 햇빛 비치고 찬란한 그 곳 그 날이 오면 다시 방황치 않고 순황금 길을 거닐겠네 나 가난해도 외롭지 않네 천국길 가니 실망없다네 나그네로서 면류관쓰고 거문고 타는 천국가네~”

오늘 본문에는 가장 중요한 식사인 유월절 어린양 고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어린 양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알려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만찬을 하실 때는 헤롯 성전이 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유월절 어린양 고기가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인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후 유월절 어린양을 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어린양 식사를 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성전이 파괴된 후에는 미래를 바라보며 식사가 끝나면 문을 열어 놓는답니다. 인도자는 준비된 엘리야의 컵에 포도주를 채운다고 합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들어와 메시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선포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메시아가 오시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라고 예언해 주었는데 유대인들은 말라기에 근거해서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미리 와서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고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만찬 때 모든 사람은 함께 '엘리야후 하나비 (선지자 엘리야)'라는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메시야가 이 땅에 옴으로 온 인류에게 궁극적인 평화와 자유가 오기를 기도한다고 합니다.
'레샤나 하바아 베루샤라아임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노래를 부름으로 모든 유월절 식사의식을 끝맺는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대인들은 매년 유월절마다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자는 그들의 꿈을 이 노래를 통하여 표현해 왔다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할렐 시편 후반부를 불렀다고 합니다(시편115-118)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 때 먹는 네 번째 마지막 포도주를 주시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포도주는 바로 내 피라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생각나게 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게 만드는 유월절 어린양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막 14:24)” 마태복음에는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에 먹는 포도주에 대하여 파격적인 해석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피를 먹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포도주는 어린양의 피를 상징하고 그 어린양은 예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유월절 어린양이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죽음에서 살아났는데 바로 그 포도주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흘리시는 구원의 피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 피를 먹으면 죽는 것이 아니라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므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대신 짐승을 죽였습니다. 피를 흘려 제단에 뿌리고 번제로 살랐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 1:7)”

그런데 그것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해 놓으신 것이 성취된 것이라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의 피라는 것입니다.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 죽음이 임하지 않으려면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했습니다. 피가 있는 집은 죽음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언약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피를 바른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
아담 이후 피의 제사를 들려야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세우신 언약, 곧 행위 언약을 말합니다(창2:16-17) 즉,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고 먹지 않으면 산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져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다른 언약 곧, 율법의 언약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율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죄를 깨달을 뿐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이 언약을 성취하실 메시아를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5-6)”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님의 모형이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 그 언약의 피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메시아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만찬을 하면서 엘리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5)”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째,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사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예수님의 피는 사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잔을 받아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속죄의 피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고 그분의 죽음에 참예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피가 내 생명에 동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칭의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셋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화목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필로 말미암아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성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화목하게 됩니다. 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넷째,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성결의 능력이 있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13:12)”
다섯째, 승리하게 하십니다. 승리의 능력이 있습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12:11)”
우리는 보혈의 능력으로 사탄의 유혹과 핍박을 물리치고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죄의 문제를 붙들고 늘어지는 사탄에게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의롭게 되었다고 선포하고 담대히 살아야 합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이웃을 용서하고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고 결국 승리하여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며 말씀합니다.
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질적으로 새롭게 된 삶 속에서 식사의 교제를 나눌 날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새하늘과 새땅을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3-54)” 우리 주님은 궁극적으로 승리하십니다. 몸이 찢기시고 피를 쏟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포도주를 먹으면 베푸는 예수님의 만찬은 그것으로 끝이 났지만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의 잔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차려지는 기쁨의 잔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성찬에 참여하고 어떻게 합니까? 26절에 보십시오. 찬미하고 감란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통하여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유월절 만찬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제 과거를 회고하는 아픔의 만찬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감격하고 영원한 천국 잔치를 사모하는 기쁨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보약을 먹는다고 해도 늙고 언젠가 죽게 되었습니다. 우주도 만찬가지입니다. 모든 생물은 다 때가 되면 주고 모든 물체는 때가 되면 소멸되게 되어 있습니다. 지구 운명의 날 시계는 언제가 멈추게 될 것입니다. 인류는 핵 무기라는 엄청난 재앙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습니다. 컴퓨터 과학의 창시자 폰 노이만(J. von Neumann)은 " 핵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모든 사람이 핵전쟁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핵전쟁이 아니라도 생물학전, 화학전, 오존층 파괴, 온실효과, 환경오염, 질병, 화산 분출,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 지구 근처에서의 초신성 폭발, 다른 거대한 천체의 폭발 등 다양한 변수들이 어떻게 지구에 나타날지 모릅니다. 종말의 시계는 어떤 요인에 의해 언제 0시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이 나이가 들면 죽듯이 우주도, 태양도 수명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태양에 의해 지구의 온도는 이미 700도까지 오르고 모든 생명체는 사라질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불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심판의 날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계 6:14)"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 끝이 오지만 우리는 이미 영원히 사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입니다. 신랑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종말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 유월절 만찬에 참여했던 베드로 사도를 통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벧전4:7-11)”
“신랑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때 밝은 등불 들고 나갈 준비 됐느냐 그날밤 그날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 됐느냐 예배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때 밝은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 (162장 1절) 항상 깨어기도하며 거룩한 기름 준비하지 않고 주를 맞지 못하리 그날밤 그날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 됐느냐 예배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때 밝은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 (162장 3절)“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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