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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앙의 교훈

출애굽기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308 추천 수 0 2011.03.15 23: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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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8:16-19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이 재앙의 교훈
출8:16-19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세 번째 재앙은 ‘이’ 재앙입니다. 여기 나오는 ‘이’로 번역된 ‘킨님’은 단지 출애굽 당시의 재앙과 관련해서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엇이가에 대하여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킨님에 대하여 어떤 학자는 ‘빈대’라고 주장하고 어떤 학자는 ‘이’라고, 어떤 학자는 ‘모기’라고 주장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애굽의 지리적 환경으로 볼 때 모기의 일종인 ‘각다귀’로 봅니다. 다리가 길고 몸집이 아주 작아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사람과 동물들의 눈과 콧속까지 기어 들어가 쏘아대므로 애굽 사람들에게 아주 고통스러운 곤충이라고 합니다. 필로와 오리겐에 의화면 ‘이’는 피부에 가장 고통스런 자극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추수 후에는 침수된 곡식밭에서 일어나 큰 떼를 이룬다고 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세 번째 나오는 이 재앙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두 번에 걸친 재앙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세 가지 다른 점을 통하여 세 가지 교훈을 받으려고 합니다. 앞에 일어났던 피의 재앙과 개구리과 이의 재앙이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주어진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우리기 원하십니다.
앞의 피의 재앙과 개구리 재앙과 다른 점은 아무런 경고 없이 찾아온 재앙입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한 재앙은 아침에 예고를 하였습니다(7:15-16). 하수를 치면 피로 변할 것이라고 미리 예고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피의 재앙을 내렸습니다. 개구리 재앙도 미리 바로의 왕궁에서 예고했습니다. 8장 2절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지경을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듣지 않자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이의 재앙은 아무런 경고가 없이 내린 재앙입니다. 다시 설득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경고하지도 않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아론에게 명하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온 땅에서 이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에게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고 바로 땅을 쳐 이가 되게 하였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두 번째 개구리 재앙이 일어날 때 바로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구하여 개구리를 백성에게서 떠나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호와께 희생을 드릴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응답해 주어 개구리를 다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문제가 해결되자 어떻게 합니까?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숨을 통할 수 있으니까 약속을 어겨버립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고 약속을 어긴 대가로 바로 티끌이 이가 되는 재앙을 내입니다(16). 이와 같은 원리는 여섯 번째 악성 종기 재앙(9:8-12)과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 재앙(10:21-29)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앞에 두 번의 재앙은 경고를 합니다. 그러나 계속 말로 설득해도 듣지 않으면 세 번째 재앙은 경고 없이 내립니다. 이런 재앙의 원리를 통하여 하나님은 무엇인가 교훈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자기 정당화의 함정에 갇혀 버리 바로를 예고없는 재앙으로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미 바로는 자기가 심판자가 되고 자기가 판단자이고 자기가 재판자가 된 것입니다. 모든 나는 왕이고 너희는 노예라는 선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처럼 나는 의인이고 너는 죄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내 밑에 있는 노예들이 믿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사람은 화인맞은 양심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설득이나 논리도 통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의 옳음을 입증하는 자료로 사용해 버립니다.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갑자가 심각한 재앙이 닥쳐와야 그 때야 조금 미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말로 할 때 들어라는 것입니다. 말로 할 때 내 백성을 내보라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 삶에 전혀 예고 없이 재앙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3일 밤 수유동에서 관광버스 브레이크 고장으로 아반떼에 타고 있던 교육 공무원 7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당사자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갑작스런 재앙입니다. 유족들에게는 땅을 치고 통곡할 일입니다. 그런데 버스 운전기사는 브레이크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감지하였다고 합니다. 출발 뒤 끽끽거리는 소리가 세 차례 나는 등 브레이크 이상 징후를 감지했지만 무시했다고 합니다. 네 번째 이상 징후를 감지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다가 오는 재앙이 아무런 경고가 없는 것같지만 이미 경고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무시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다가온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로에게 경고하였습니다. 바로는 그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하였습니다. 마음이 강퍅하였습니다. 경고하시는 하나님을 노예들의 신으로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정도는 자신이 부리는 마술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로 깨닫지 못하니까 두 번, 세 번 열 번의 재앙을 당해야 만 항복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기회를 주었는데 그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네 가지 것은 지나면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입으로 내뱉은 말, 날아간 화살, 지나가 버린 시간, 잃어 버린 기회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회 주었을 때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몸에 감기만 걸려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산에 피어오르는 들꽃 한 송이를 보고도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식이 병들고 사고가 나고 집안이 망하고 죽음이 턱밑에까지 밀고 들어오고 있는데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가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는 작은 변화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계속 오늘날도 말씀합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2-3)” 하나님은 오늘날도 인류가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재앙을 통하여 끊임없이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품으로 돌아 와야 참 평안과 미래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에 멸망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참으로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도시가 형성되어 잘 먹고 잘 사는 곳이었습니다. 환락의 도시였습니다. 인본주의와 쾌락주의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도시였습니다. 끝없이 번창할 것같고 영원할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패한 도시를 향하여 경고했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 성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순식간에 유황불에 망하니까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사위는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말씀에 귀를 기우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순식간에 유황불에 타죽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어떻습니까? 돌아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소금 기둥으로 변해 버립니다.
노아 시대를 보십시오. 노아에게 홍수가 올 것을 경고해 주었습니다. 120년입니다. 어머 어마한 크기의 배를 만들며 경고해 주었습니다. “홍수가 내린다. 홍수가 내린다. 여호와께 돌아오라” 노아는 삶으로 홍수를 경고했습니다(벧후2:5). 그러나 그들은 무시했습니다. 결국 홍수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노아의 때와 롯의 때를 말씀 하시면서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17:30)"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으로 기록한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가정이 행복해 지시길 원하십니까? 사업이 잘 되길 원하십니까?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자녀가 잘되길 원하십니까? 세상에서 성공하기 원하십니까? 비전을 이루시길 원하십니까? 걱정 근심없이 평안하게 살기 원하십니까?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귀를 기우리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의 재앙이 피의 재앙과 개구리 재앙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재앙의 발생 근원이 다른 것입니다. 첫 번째 재앙과 두 번째 재앙은 재앙의 발생 근원이 물이었습니다. 물이 피가 되고 물에서 개구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재앙은 땅입니다. 땅의 티끌이 이가 되는 재앙입니다. 물을 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있는 티끌을 내리치는 것입니다. 아주 미미한 티끌입니다. 재앙의 근원이 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땅입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땅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흙의 신 게브(Geb)를 섬겼습니다. 게브(Geb)는 그들의 수호신이었습니다. 게브는 대지의 신이며, 세상의 근원이며 기반이라고 믿었습니다. 지상 만물을 지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브가 누워 있는 모습이 산이나 땅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브에게는 '신들의 아버지'라는 칭호가 주어졌습니다. 애굽 나라만 이렇게 대지의 신을 섬긴 것은 아닙니다. 나라마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대지의 신을 숭배합니다. 로마의 대지의 여신은 ‘텔루스(Tellus)’입니다. 중국에서는 땅을 관장하는 신을 ‘려(黎)’라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대지의 신을 ‘샤니(Shani)’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대지의 신을 섬겼겠습니까?
땅은 모든 생물의 기반이 됩니다. 특히 나일강 삼가주는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토사가 밀려와 기름진 땅을 만들어 곡식을 풍요롭게 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났는가를 그들 나름대로 설명하는 시도하였을 것입니다.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으로 시도한 것입니다. 만물이 기초가 되는 땅, 그렇게 비옥한 땅을 만들어 주신 신이 바로 게브 신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게브가 땅을 비옥하게 하고 농사를 지어 먹거리를 제공해 주는 복의 근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재앙을 통해 땅의 신 게브가 기름진 땅을 주고 그들에게 삶의 기반을 주는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 힘도 없고 오히려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만물의 근원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신 분은 하나님 이시다는 것을 교훈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을 할 때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이 열 개의 재앙이 겉으로 보기에는 자연적 이상 현상을 통한 재앙들을 열거해 놓은 것 같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적으로 이루신 재앙입니다. 첫 번째 재앙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농경과 식수 등 식생활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일강과 나일강 신들을 벌하는 것입니다. 아홉째 재앙은 최후 재앙을 예고하고 있는 동시에 이집트인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시하였던 태양신 ‘라’신을 무력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도 두 번째부터 여덟 번째 재앙은 그들이 섬기는 수호신에 대한 징벌입니다. 결국 이 모든 재앙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누가 참 신이냐?를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왜 재앙을 내렸습니까?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출 7:5)”
“그 날에 내가 내 백성의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나는 세상 중의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출 8:22)”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네 마음과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너로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알게 하리라 (출 9:14)”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 온 땅의 사람이 하나님만이 참 신인 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능력을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출6:7, 10:2)
그리고 이 땅(earth)은 애굽 신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에게 속하였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입니다.(출9:16, 29, 11:7, 시24:1)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겠느냐’고 물은 바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입니다(출 5:2, 7:5, 8:22, 9:14)
바로에게 네 것이라고 생각하는 땅이 복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지나친 소유욕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땅을 경작하기 위해 잡아 놓은 이스라엘 노예를 풀어 주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는 붙들어 놓으면 다 자신의 것이 될 것으로 착각하는 지나친 소유욕 때문에 그 재앙을 당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애착을 가지고 섬기는 땅을 신을 징계함으로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고 큰 소리고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복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소유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기도하여 사무엘을 얻는 한나의 신앙 고백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7)”
삼권을 다 쥐고 40년 동안 통치한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성전을 짓기 위해 예물을 바칠 때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대상 29:11)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 29:12)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대상 29:13)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대상 29:14)”
그는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 18:1)”라고 고백합니다.
복의 근원을 헛된 것으로 찾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다 없어져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토로 함께 하십니다.
자원도 별로 없고 일제 36년과 6.25 동란을 겪으며 폐허화 된 우리 민족이 이 정도 잘 살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민족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처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120년 동안 4대째 한국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가문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백두산 천지 못을 측량하였습니다. 연세대학을 세웠습니다. 새문안 교회를 세웠습니다. 많은 교회 개척하였습니다. 그는 어릴 때 너무 가난하였다고 합니다. 주일 학교 시절 헌금 시간이 되었는데 헌금할 돈이 없어 눈을 감고 있었답니다. 헌금하지 않고 있는 그 어린 아이를 선생님이 불러 사정을 물어 보았답니다. 가난하여 헌금할 돈이 없어 기도하고 있었다고 말했답니다. 선생님은 무슨 기도를 했냐고 물었답니다. “하나님께 내 몸과 생명과 내 일생을 바치겠다.”고 기도했다고 말했답니다. 선생님이 감동이 되어 약간의 돈을 주고 돈을 바꾸어 매주 1달러씩 헌금하라고 했답니다. 몇 주일이 지나자 다시 헌금하지 않더랍니다. 선생님이 이상하여 물었답니다. 그 때 어린 언더우드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잔돈으로 바꾸어 호주머니에 넣고 헌금하였는데 사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어요. 사 먹으면 죄를 지을 것 같고 그래서 지난 주일에 몽땅 바치고 이제 기도만하기로 했어요.”라고 말했답니다.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바친 이 소년이 1884년 부활절에 한국에 최초로 선교사로 들어와 이 민족에게 복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이 민족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내 인생의 복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복의 근원도 땅이나 물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민족의 복의 근원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사탄에 속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세 번째 이의 재앙이 피의 재앙과 개구리 재앙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애굽의 마술사가 흉내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재앙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피의 재앙과 개구리 재앙은 애굽의 마술사들이 흉내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내린 이의 재앙은 애굽의 마술사들이 흉내를 내지 못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애굽의 마술사들이 모세와 아론처럼 해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여전히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생명 창조 앞에 바로의 마술사들은 자신들의 무능력과 한계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바로에게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몇 가지 흉내 낸다고 사단에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생명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파괴는 합니다. 마귀는 모방의 천재입니다. 위장의 천재입니다. 거짓의 천재입니다. 속임과 가장의 명수입니다. 하나님을 흉내고 예수님을 모방합니다. 마귀들도 때로는 초능력을 나타냅니다. 술객은 사단의 힘을 빌러 두 번이나 속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속입니다(살후 2:9-10). 그러나 살리지 못합니다. 복음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가정을 살리지 못합니다. 기업과 민족을 살리지 못합니다. 교회를 살리지 못합니다. 대단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살후 2:9-10)”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방언과 병고침과 갖가지 은사를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마24:24에는 큰 표적과 큰 이적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계13:13에는 불을 내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엘리야만 하늘에게 불이 내려오게 한 것이 아닙니다. 욥기에서 보면 사탄도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여 욥의 아들들의 재산을 태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단을 이런 기적을 통해 무엇을 합니까?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3:8을 보십시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라고 합니다. 얀네와 얌브레는 술객을 말합니다. 바로의 마술사들은 사단의 조정을 받는 하수인들로 진리를 대적합니다.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유사 복음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단은 철학, 과학, 역사학, 심리학, 고고학, 생물학 등을 동원하여 예수님은 사생아라고 속입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부인하게 합니다(요이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이 1:7)”
그리스도를 바로 알지 못하게 하고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4)”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에 이르지 못하도록 속이는 것입니다. 신천지,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유대교, 이슬람교, 제칠일 안식교, 크리스찬 사이언스 등을 통해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방하고 흉내냄으로 그리스도인 것처럼 속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속입니다(살후2:3-4) 월간 현대 종교에 의하면 자칭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교주 20명이나 되고 재림주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5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사탄의 조정을 받으며 유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들은 것을 빼앗습니다. “(막4:15)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말씀을 의심케 합니다. 회의를 가지게 합니다. 궤계를 사용합니다(고후2:11). 욥에게 질병을 가져다 주었듯이 때로는 질병을 줍니다(욥2:7) 핍박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욕하도록 꾀합니다. “(욥2:5)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우리로 하여금 복음의 진리대로 살지 못하도록 속입니다. 사단을 따르면 부도 명예도 줄 것으로 유혹합니다. 광명한 천사로 가장합니다(고후 11:13-15; 고후14:14) 자신을 따르면 천하를 다 줄 것처럼 유혹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인기인이 되게 해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거짓입니다. 따라가면 필경 망하는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귀는 거짓말로 속입니다(요8:44). 교리로 속입니다(딤전4:1) 여성해방과 기복신앙, 인본주의, 배금주의 교리로 속입니다. 주의해야 합니다(시62:9) 마귀는 점쟁이들로 하여금 속입니다(렘29:8) 헛된 말로 속입니다(엡5:6) 철학과 세상전통(골2:8)과 과학(딤전6:20)으로 속입니다. 유혹하는 말(골2:4; 딤후4:3-4)과 종말론(살후2:3)으로 속입니다. 우리는 유사 복음과 유사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눅21:8 살전5:21)
또한 사탄이 교묘하게 이용하는 유사 직분자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홀로 신앙생활 잘하는 것 같습니다. 열심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없습니다. 살리지 못합니다. 죽입니다. 사랑이 없습니다. 미워하게 합니다. 복음이 없습니다. 용서가 없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습니다. 회의를 품게 만듭니다.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진실한 신앙의 삶이 없습니다. 비판의식만 있지 대안도 자기 성찰도 없습니다. 정직이 없습니다. 그럴듯하게 말을 합니다. 대단한 훈련을 받고 대단히 신앙 생활을 잘한 것처럼 말만 잘 합니다. 그러나 열매를 보면 압니다. 죽음의 열매가 열리는지 생명의 열매가 열리는지 보면 압니다. 그들의 열매를 보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파괴합니다. 우리는 열매를 보면 유사 직분자인지 진실한 직분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열매를 보면 더러운 열매만 맺힙니다. 직분을 왜 하나님이 세웠습니까? 왜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었습니까? 성경은 아주 명쾌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2)”
그런데 성도를 온전하게 못합니다. 신앙생활에 회의를 들게 만듭니다. 봉사하지 않고 권세의 자리에 앉기를 좋아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파괴합니다. 겉으로는 옳은 체하고 자신은 대단히 신앙생활을 잘하는체 하면서 목회자를 장로를 교회를 비판합니다. 결국 자기 의를 주장하지만 열매를 보면 결과적으로 교회를 파괴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말에 미혹되어서는 안됩니다. 무슨 말을 해도 무시해 버려야 합니다.
먼저 된 줄로 알고 교만하면 속는 것입니다(갈6:3) 자신은 배울 것도 없이 다 된 줄 알고 영적 성장을 멈추면 속는 것입니다(엡4:14). 뿌리지 않는데서 거둔 것으로 알고 허랑방탕하면 속는 것입니다(갈6:7)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속는 것입니다(약1:22). 경건한 척하면서 입에 재갈 물리지 않는 자는 속는 것입니다(약1:26). 악한 사귐을 하면서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는 속는 것입니다.(고전15:33) 모이기를 꺼리면서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속는 것입니다. 이득을 경건으로 착각하면 속는 것입니다.(딤전6:5)
왜 하나님께서 이런 거짓 선지자를 허락하셨습니까?(신13:1-3)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테스트하시길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런 유사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합격점수 맞아야 합니다.

오늘 이 재앙을 통해 교훈 받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주어진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우리기 원하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믿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사탄에 속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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