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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의 종결과 자연의 회복

창세기 복음............... 조회 수 1995 추천 수 0 2011.03.19 19:09:02
.........
성경본문 : 창8:1-22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홍수의 종결과 자연의 회복

본문: 창세기 8: 1- 22

 

  창세기 7장에서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불화와 세상의 멸망이 언급되었으나 본장에서는 세상이 다시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회복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도 화목이 이루어지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의 물이 줄어들게 하셨고, 홍수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자비로 온 지면을 휩쓴 홍수의 위세가 수구러들고 육지가 드러나자, 노아 일행은 땅에 정착하였습니다. 이같은 홍수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이 노아의 방주에 있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합니다. 전 인류의 타락 가운데서도 의인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홍수의 참된 의도는 심판이 아니라 악의 일소를 통한 긍휼의 재확인이었으며, 노아는 육지에 내린 후 가장 먼저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엄청난 대홍수의 종결과 방주 안에 머물던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서 나와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희생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를 드린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게 된 것을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

 

  1. 홍수의 종결

 

(1) 노아의 가족들을 하나님께서 권념하심

노아와 그 가족들과 짐승들이 방주 안에서 지낸 지도 1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내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기적적인 은혜의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아무 고통이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려움 당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돌보셔서 그 어려운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잘못된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방주 안에 있던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동물들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일 년 이상을 그 안에서만 지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방주 안에 닫아 넣으시고는 잊어버리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권념하셨다는 말은 기억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와 똑같은 단어가 출애굽기에도 나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출2:23-25) 그러면 하나님께서 방주 안에 있던 사람들과 짐승들, 그리고 애굽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을 잊고 계시다가 그제서야 문득 기억하셨다는 뜻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사랑하시며 항상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버리시거나 잊으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간혹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잊어버리신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을 때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도록 유혹을 받게 됩니다. 절망과 두려움이 우리에게 엄습해옵니다. 이제 도저히 안되겠다고 포기하려고 합니다. 이 때가 우리에게 가장 힘들고 위험할 때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은혜를 주시며 위로해주시고 확신을 새롭게 심어주십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권념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려고 할 때,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마침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오늘 막다른 길에서 이제 포기하려고 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믿음과 소망이 희미해지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붙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권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권념하심이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에 있는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택한 백성을 잊어버리는 일이 결코 없으십니다. 항상 기억하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방주 안에 있는 노아와 그 식구들과 짐승들을 권념하셨다는 말은 잊었다가 다시 기억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늘 염두에 두실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a.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심(신33:12)

b. 의의 길로 인도하심(시23:3)

 

  (2) 물이 감해짐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보내사 땅위의 물이 줄어들게 하셨습니다. 많은 비가 온 후 물이 줄어들려면 태양이 뜨겁게 작렬하는 것보다는 세찬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시골에서 목회할 때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벼를 심어 놓았는데 많은 비가 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세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바람이 불어야 물이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렇게 며칠 동안 바람이 불자 그 많던 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보내사 땅 위의 물이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바람은 단순히 그런 바람이 아닙니다. 그 바람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도 있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14:21) 우리는 이러한 일을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마8:2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의 능력으로 땅위의 물이 물러가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힘

2절은 하나님께서 땅위의 물이 물러가게 하신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땅이나 하늘에 뚫려있던 어떤 구멍을 막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홍수 이전의 상태로 원 위치시키셨다는 뜻입니다. 노아 홍수는 단순한 홍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던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세상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던 것입니다. 궁창 위의 물이 다 쏟아졌으며, 솟아올랐던 땅이 다시 꺼져버렸습니다. 그러자 바닷물이 밀고 들어와 온 세상이 물로 뒤덮여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궁창 위의 물을 회복시키시고 꺼졌던 땅이 다시 솟아오르게 하셨습니다. 이 장면을 시편 기자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시104:6-9) 이 말씀과 3절을 비교해보십시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세상을 회복시키고 계셨습니다.

세계의 가장 높은 산들인 히말라야, 알프스, 그리고 안데스 산맥에서 물고기와 조개 등의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창조 과학자들은 이 산들이 그렇게 오래된 산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들은 본래 높은 산이 꺼져서 봉우리만 남은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내륙 지방에서 물고기나 조개의 화석들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한 일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곧 노아 홍수가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가득한 물을 감하셨습니다.

땅 위에 바람을 일으켜서 많은 수분을 증발시키신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비와 해일, 그리고 지하수의 역동적인 분출을 막으심으로써 지구의 물을 더 빨리 격감시켰습니다.

대홍수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였던 것처럼 홍수 심판을 끝내시고 땅을 본래대로 회복시키는 데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고 주권적인 능력이 단독적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a. 하나님의 때와 세상의 때(요7:6)

b. 하나님이 통제하심(시107:25)

c. 바다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시107:24)

 

  (4) 방주의 정착

노아의 가족과 모든 육축은 방주 안에 갇혀 불안 속에서 지냈습니다. 홍수가 시작된 지 150일이 되어 그 동안 성난 물결에 정신없이 떠다니던 방주가 아라랏 산에 정착했습니다.

이로써 노아의 가정 구원은 온전히 완성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방주는 안전하게 정착했습니다.

a. 하나님의 섭리는 알 수 없음(전3:11)

b. 노아의 방주(창7:1)

c. 방주의 정착(창8:1-5)

 

  2. 기다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회복시키고 계시는 동안에 노아는 방주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노아는 방주 안에서 철저하게 기다렸습니다. 사실 방주 안에서는 별 소란이 다 일어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동물들이 얌전해지기는 했지만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때로는 동물들이 소란을 피우기도 했을 것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잠시만 가둬 놓으면 얼마나 안달을 해댑니까? 그런데 그 많은 짐승들이 방주 안에서 일년 이상을 지냈던 것입니다.

힘들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비행기를 몇 시간만 타도 몸살이 난다고 합니다. 하물며 일 년 이상을 밖을 내다볼 수도 없는 방주 안에서 지냈으니 오죽했겠습니다. 별 소리와 의견이 다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주가 땅에 닿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번 나가보자고 보채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전히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왜 문을 열어보지 않느냐고 따지는 아들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노아는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과 짐승들을 방주 안에 닫아 넣으신 지 일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가장 선하고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따라가는 것이 최상의 길입니다. 때로는 정말 지루하고 답답할 정도로 기다려야 할 때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선하고 안전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렇듯 노아의 믿음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큰 귀갑이 됩니다. 우리는 스피드 시대에서 조급하게 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끝까지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리는 믿음,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감사드리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길 소망합니다.

 

  (1) 상황을 알아보는 노아

노아의 가족들과 동물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간 지가 벌써 6개월 이상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방주가 어딘가에 닿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4절).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노아는 계속해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또 약4개월이 지났을 때 노아는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냈습니다(6-7절).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던 까마귀가 어느 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물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노아는 또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비둘기는 지면에 내려앉을 곳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노아가 다시 비둘기를 내보냈는데, 이번에는 비둘기가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습니다(10-11절). 감람나무는 일정한 고도 이하에서만 서식하기 때문에 노아는 이것을 보고 물이 어느 정도 빠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둘기가 물고 온 감람나무 새 잎사귀는 새로운 희망과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황폐된 세상에 새로운 은혜를 베풀고 계셨던 것입니다. 노아가 비둘기를 다시 내보내자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땅에 물이 거의 말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노아는 방주 문을 활짝 열고 나오지 않고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보내어 상황을 짐작해보았습니다. 만일 노아가 답답한 나머지 문을 활짝 열고 나왔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큰 위험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세상은 물로 덮여있었고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할 때 무모하게 행동하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노아처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상황을 재보고 짐작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더욱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지시가 없을 때 무모하게 내 생각대로 행동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상황을 짐작하면서 좀 더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물이 거의 말랐다는 사실을 짐작한 노아가 얼마나 기뻤을까요? 노아와 그 가족들은 한시 빨리 답답한 방주에서 나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리며 여전히 방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 없이는 한발자국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바뀌고 물이 걷혔을 때 비로소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열어제쳤습니다(13절). 그리고 땅이 완전히 마른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14절). 그런데도 노아는 여전히 방주에서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아는 철저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이렇게 철저히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2) 까마귀를 내보냄

노아는 방주가 아라랏 산에 도착한 지 만 113일이 지난 뒤 창문을 열고 최초로 까마귀를 바깥 세상에 날려 보냈습니다. 노아가 까마귀를 내어 보낸 것은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까마귀는 노아와 방주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a. 까마귀는 혼자 사는 습성이 있어(사34:11)

b. 가증히 여겨야 될 짐승(레11:13-15)

이밖에 성경에 나타난 까마귀에 관한 말씀입니다.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욥38:41)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시147:9)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왕상17:6)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눅12:24)

 

  (3) 비둘기를 내보냄

까마귀는 지면에 물이 감한 사실을 알아보려는 노아의 요구에 불성실했으며 단지 실망시킬 따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아는 이제 비둘기를 바깥 세상에 내어 보냈습니다. 비둘기는 까마귀와는 달리 노아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비둘기에게서 얻은 정보를 통해 노아는 지면의 물이 감한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a. 나갔다가 돌아오는 습성의 새(사60:8)

b. 사랑스러움(아2:14)

c. 순종을 상징하는 새(렘8:7)

이밖에 성경에 나타난 비둘기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3: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 16)

 

  (4) 바깥을 바라보는 노아

지면의 물이 감한 여부를 알려 주던 비둘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지면이 말랐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그리하여 노아는 방주 뚜껑을 제치고 오랜만에 바깥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바깥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이 진정되고 땅과 나무, 모든 풀들이 물기에 젖어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상태였습니다.

a. 새 세상을 향한 용기를(삼상30:6)

b.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시42:11)

 

  3. 노아의 신앙

(1) 방주에서 나옴

노아는 지면의 물이 완전히 감한 것을 알고도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는 어떤 것이든지 감히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방주에 들어갔으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방주에서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방주 안에 있던 노아에게 가족과 함께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산 노아 일가는 새 세상을 개척하는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a. 만사는 그 때가 있어(고후6:2)

b. 의인에게 복을(렘17:7)

 

  (2) 하나님께 제사함

드디어 노아는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세상은 완전히 황폐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방주에서 나온 후에 노아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당장 먹을 것이나 살 집도 없었고, 가축을 위한 우리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먹을 것을 찾거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창8:20) 예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이 다 멸망을 당하는 홍수심판으로부터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드린 제사는 감사의 제사였을 것입니다. 노아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고백하며 감사했습니다. 제사 드리는 노아의 가슴이 감격과 감사로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그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하는 당신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뜨거운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까?

노아가 드린 제사는 번제였습니다. 번제는 소나 양, 염소 등의 제물을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번제의 목적은 죄를 속하는 것과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헌신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번제를 드린 것은 죄에 대한 깊은 각성이 있었다는 것과, 새 삶을 시작하면서 그 죄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 받고자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은 죄 때문에 철저히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홍수심판으로 죄가 다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아를 비롯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죄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노아는 홍수심판 후에 살아남은 자기들이 또 죄를 짓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에 죄가 가득 차면 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기 전에 가장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노아는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 제사는 속죄를 상징하는 제사이며 화목을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것은 그의 신앙을 잘 보여 주는 행위입니다.

a. 감사로 드려야(시50:14)

b. 믿음의 제사를 드려야(히11:4)

 

  (3) 하나님의 응답

죄가 세상에 가득 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홍수심판으로도 세상에 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홍수심판은 세상에 죄를 없이하지 못했습니다. 홍수 후에 노아를 비롯한 사람들이 다시 죄를 짓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는 갈수록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홍수심판으로도 해결되지 못했던 죄의 문제가 제사로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드리는 제사를 기쁘게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셨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21절)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제사를 받으시고 세상에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는데, 제사가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심판을 면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홍수심판으로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던 죄의 문제가 제사로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도 흠향의 응답을 하셨습니다. 이 흠향의 응답이 제일 중요한 응답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노아의 제사를 기쁘게 흠향하신 하나님은 온 세상이 다시 한 번 완전하게 회복되어 정상적인 자연 법칙 아래 진행될 것과 생태계의 균형을 완전하게 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a. 때를 따라 식물을(시145:15)

b. 응답하시는 하나님(창9:16-17)

 

  4. 구원받은 성도의 삶

예수 믿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까? 당신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예수 믿고 나면 구원을 받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즉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믿음으로 살려고 하니 막막하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 믿고 나서 이제 믿음을 지키며 살려고 하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주일 지키는 문제 때문에 마땅히 할 만한 사업을 찾기가 힘들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여간 불편하고 힘들지가 않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와 학원에서는 주일에도 나와서 공부를 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과연 구원받은 성도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노아와 그의 가족은 홍수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홍수가 끝난 후 곧장 천국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홍수가 끝난 후 그들은 다시 땅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돌아와서 살아야 할 땅은 홍수심판으로 인하여 완전히 황폐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세상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구원받은 후의 삶은 홍수 전보다 막연하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든 것이 황폐된 상태에서 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믿기 전보다 훨씬 힘듭니다. 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철저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울 것 같습니까? 놀라운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러한 삶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1) 구원받은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는 후에도 우리는 바로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는데 세상은 전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죄악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결단한 성도는 세상에서 좌절을 경험하고 실망하게 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니 세상에는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싫습니다. 그런데 세상도 나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이제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 과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 오직 믿음으로 살기로 새롭게 결단한 성도의 고민이요 고통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권고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두려워하던 큰물이 물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서두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분간 답답한 일이 계속된다 할지라도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렸습니다. 노아처럼 우리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사용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는 능히 세상을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더 강하고 위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지켜주시고 돌보아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며 철저하게 순종할 것을 다짐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바쁘고 시간이 부족할 때도 그것만은 꼭 해야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배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예배만큼은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예배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있으며, 예배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있으며, 예배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이 바쁘다고 예배에 나오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느라고 예배에 빠지는 성도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놀러 가느라고 예배를 빼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우리 성도들이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있어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철저한 순종

그 사람의 믿음이 좋은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믿음이 좋은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결정적인 기준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철저히 순종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노아를 볼 때 그는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셨을 때 120년 동안이나 하나님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짐승을 한 쌍씩(정결한 것은 일곱 쌍씩) 방주에 들어오게 했습니다. 성경은 노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준행했다고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6:22)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7:5) 노아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으며, 하나님께서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하시자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노아의 철저한 순종은 방주 안에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1년 10일 동안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방주에 있는 동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습니까? 어느 날 방주가 어딘가에 걸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방주가 아랏랏산에 머문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노아는 꼼짝하지 않고 그냥 배에 있었습니다. 노아가 방주 안에서 한 일이라고는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보내어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를 알아보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침내 물이 다 빠져서 방주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땅이 완전히 마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방주 안에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나오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지시가 없이는 방주 안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내가 마음대로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답답해도 하나님 말씀을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가면 넘어지고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면 선하고 아름답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생육하고 번성하라.

기다리고 있던 노아에게 마침내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창8:15-17)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자 그제서야 비로소 노아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18, 19절은 하나님께서 방주 안으로 들어가게 하신 모든 것들이 어느 것 하나 상실되지 않고 온전히 보존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되었습니다. 방주 안에 있는 동안 어느 것 하나도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신실하게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성도는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한 사람도 잃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세상은 황폐되었고, 사람이라곤 노아와 그 가족들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짐승들도 방주에 들어갔던 극히 소수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주신 축복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창1: 22)

비록 홍수심판으로 세상이 황폐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이들을 통하여 다시 땅을 충만하게 채워 가실 작정이셨습니다. 땅이 황폐되어 막막했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셨기 때문에 노아의 가족들과 짐승들이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이 오늘 당신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4) 자신의 죄된 모습을 보는가?

이러한 노아를 통하여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자신에게서 죄로 더럽혀지고 병든 모습을 보고 있습니까? 아무리 죄를 짓지 않으려 해도 어느새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까? 이러한 죄 때문에 내가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겠다는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예배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와 앉을 때, 기도하기 위해서 머리를 숙일 때 여러분의 죄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나에게 소망이 없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에게 이러한 마음들이 없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고, 그 죄로 인하여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회개하지도 않게 되며, 그 죄를 해결 받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를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고 아무리 작은 죄라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다시 같은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이것은 마치 치명적인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픈 줄도 모르고, 그 병이 자기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고민하며 회개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예배시간에 미리 나오셔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도록 하십시오. 기도할 때도 먼저 회개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시오.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유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진심으로 죄를 내놓고 회개하여 사함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십자가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고 진노하셔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짐승의 제물을 태워 드리는 제사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용서와 사랑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제사가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짐승의 제물로 그런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거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이 제물은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순종과 생명을 받으시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보혈을 의지하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아가 드렸던 제사는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습니다. 이 제사만이 아니라 구약의 모든 제사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지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도 두려워할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죄를 용서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아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고 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 쏟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는 결국 심판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당신의 죄를 내놓고 회개했습니까? 노아는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하심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홍수심판이 끝난 후 세상에 나오자마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소망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홍수심판 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 노아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누그러뜨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신의 죄를 내놓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거두시고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예배를 통하여 죄를 사함 받고 풍성한 은혜를 받으면 우리의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얼마나 귀하고 중요합니까? 예배를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날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구원받은 인생입니까? 그렇다면 감격적인 예배와 달콤한 말씀과의 교제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을 살펴보아 예배와 교제로 성령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임을 깨닫고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 하나님의 넓고 큰 은혜는 저 바다보다 깊고 측량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공로 외에는 세상의 어느 것도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 모두가 믿음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 나같이 추하고 약한 죄인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니 그 은혜 평생감사하며 죽도록 충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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