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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되려고 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

마태복음 복음............... 조회 수 3436 추천 수 0 2011.03.20 11: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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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3:10-11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리더가 되려고 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

 본문: 마 23: 10- 11“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정미수 원장은 항상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인다. 그리고 자녀들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자녀들과도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해 놓았다. 형제가 싸우면 동네 다섯바퀴 돌기, 거짓말 하면 종아리 다섯 대 맞기 등 자녀들과 규칙을 만들어 놓았다. 자녀들이 어쩌다 거짓말을 해 약속을 어기면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한다.

“네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엄마가 교육을 잘못시켰기 때문이다”고 말하고는 자신의 종아리를 아이에게 때리라고 한다. 아이는 울면서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거짓말 하지 않을게요”라면서 용서를 빈다. 그러나 정원장은 “자, 빨리 때리라”고 재촉한다. 아이는 주저하면서 살살 때린다. 그러면 정원장은 더 세게 때리라고 한다. 마지못해 자녀는 좀더 세게 회초리로 엄마를 때린다. 이번에는 자녀에게 종아리를 걷게 한다. “너도 거짓말을 해서 규칙을 어겼으니 약속대로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 그리고는 자녀의 종아리를 때린다. 아이들은 종아리를 맞으면서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자녀들을 교육시켰더니 자녀들이 약속을 잘 지키고 올바로 자라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트레이닝 잡지에 따르면 95%의 사람들이 옳은 말을 하지만 이것을 자신이 실천하는 리더는 5% 미만이라고 한다. 항상 솔선수범하라. 여러분은 진정한 리더가 된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3)

 

  작자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어떤 사람(石一進 ?)의 글을 인용하겠다.

우리나라 격언에 '용의 꼬리가 되지 말고, 뱀의 머리가 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현대적으로 이해한다면 '리더가 되라'는 격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더를 부러워하며,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 아니,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러 가지 제시되는 리더가 되기 위한 방안들을 따라 온갖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국어사전에서는 '리더'를 '어떤 무리의 지도자나 우두머리'라고 설명한다. '지도자'는 '어떤 목적이나 이념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요, '우두머리'란 '어떤 집단이나 조직의 책임자나 가장 높은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리더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어떤 무리 중에서 다른 사람들의 지도적 위치에 있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리더가 되면 자기가 속한 무리들 중에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지도적 위치에서 저들을 부리며(?) 능동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리더가 되지 못하면, 무슨 일이든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수동적이어야 하며, 이런 사람은 자주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자기의 삶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여긴다.

정말 그럴까? 리더가 된다는 것, 지도자나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이 반드시 국어사전의 설명과 같다고 해야 할까? 리더가 되어 한 무리의 지도자나 우두머리가 되지 못하면 자기의 삶을 성공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일까? 리더가 되지 못했다고 하여 실패자라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리더가 되어 지도자나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성공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서는 '뜻하던 바나 목적하던 바를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말 그럴까? 자신의 뜻하던 바나 목적을 이루면 그것이 진짜 성공일까? 개인의 경제적인 이익이 창출되고, 개인의 명예가 높아져서 많은 사람을 지배하고 저들 위에 군림하면 그것을 '성공했다'라고 할 수 있을까? 상대방은 아랑곳 없이 자기의 뜻이나 목적을 이루는 것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느 한 가지 개인의 역량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다. 여럿이 더불어 협력함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태초에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돕는 배필로 하와를 창조하셨던 것이다. 저들이 개체이면서 서로 더불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하게 하셨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뜻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의 시작이었다.

그렇다. 사람은 본래부터 사회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 사람이 자기의 이기적인 뜻이나 목적을 이루게 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특별하게 창조하신 존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공동의 뜻이요, 목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두가 하나되어 기쁨으로 동참하는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자기 개인의 이기적인 뜻과 목적을 이루는 일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 힘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고, 세상을 지배하는 자가 자기의 뜻과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여기며 모두가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 개인의 탁월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길은 오직 리더가 되는 것뿐이라고 여기고 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가르치셨다. '랍비'는 곧 '선생'을 가리킨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오늘날의 표현으로 리더가 된다는 것과 동의어다. 결국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지도자가 되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리더는 하나요, 우리 모두는 다 형제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이다.

야고보서의 저자 야고보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3:1)고 권면했다. 야고보는 스스로 자기가 리더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저는 리더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것인지를 잘 알았다. 리더에게 하나님의 더 큰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많이 리더가 되지 말 것을 경계했다. 이것은 경계라기보다는 경고였다.

왜 예수님과 야고보는 선생, 곧 리더가 되는 것을 경계했을까? 리더는 무리의 유기적인 관계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어느 특정한 한 사람이나 소수의 리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 개개인에게 주신 달란트가 유기적 관계를 통해 연합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이루어진다. 그래서 예수님과 야고보는 어느 특정한 개인이 리더가 되는 것을 우려하며 경계한 것이다. 각자의 달란트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유기적인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다. 역할의 충실은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일로 나타난다. 또한 섬기는 일은 다른 사람을 부려서 이기적인 뜻과 목적을 이루려할 때 나타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는 일에 집중할 때 나타난다. 이럴 때에 비로소 무리를 위한 자기희생과 봉사가 일어나며, 이것이 곧 유기적인 관계를 맺게 한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위에 군림하는 리더를 자처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 성경의 가르치심을 따라 다른 사람과 분리된 개체로 여기지 않고 한 몸으로 여긴다. 오직 예수님을 머리로 한 하나의 몸에 붙어 있는 서로 다른 지체로 여긴다. 서로 다른 지체이지만 동일한 한 몸이기에 상대방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상대방을 사랑하기에 군림할 수 없게 한다. 결국 스스로 리더를 자처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유일한 리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무리의 리더가 되려고 하지 말라. 그냥 무리 속에 함께 동화되는 지체가 되라.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라고 선언하셨음을 상기하라. 빛과 소금은 존재하되 가시적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불가시적 존재로 세상 속에서 실체하는 존재일 뿐이다. 비취는 빛으로, 녹은 짠 맛으로 존재적 실체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곧 세상의 빛이요, 소금의 존재적 가치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 더불어 한 몸된 삶을 살아야 한다. 건강한 몸은 건강한 지체를 유지한다. 건강한 지체는 항상 유기적 관계 속에 자기 역할에 충실한다. 자기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면 병든 지체다. 병든 지체를 다른 지체가 비난하거나 왕따시키지 않는다. 병든 지체도 한 몸의 지체다. 더불어 아픔과 고통을 공유해야 한다. 몸에서 결코 분리되거나 격리될 수 없다. 더불어 건강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몸에는 오직 하나의 머리로 충분하다. 둘 이상의 머리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만일 머리가 둘이라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샴쌍둥이라 하여 비정상적인 기형이다. 하나를 떼어내야 한다. 오직 하나의 머리가 하나의 몸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에는 수 많은 지체들이 있어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건강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런 지체들이 비로소 건강한 몸을 이룰 수 있게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가 되신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몸에 있는 각 지체다. 몸의 지체가 역할을 달리하듯이, 우리도 예수 안에서 행할 역할이 다르다. 그 다름을 서로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름을 서로가 유기적 관계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은 상대방을 존중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그래야 진정한 한 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참으로 어떤 경우에도 더 이상은 리더가 되려고 하지 말라. 스스로 리더가 되어 무리를 이끌어 가야 할 책임이 있는 듯이 여기는 잘못된 독선을 피하라. 리더로서 언제나 모든 일들의 해결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 놓으라. 리더의 사전에는 실패는 없고 오직 성공뿐이어야 한다는 그릇된 착각으로부터 벗어나라.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의 몸을 이루기 위한 지체의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라. 우리의 몸은 오직 하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다. 연약하고 병든 지체를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 한 몸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건강한 지체가 건강한 몸을 이룬다. 온전한 한 몸을 이루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 더불어 한 몸된 삶을 살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일을 즐겨라. 이를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리더가 되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동일한 지체의식 속에서 서로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지체들이 하는 일을 만족하게 여겨야 한다. 머리되시는 예수님만이 진정한 리더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지체의 개체적인 역량을 존중하며 그것을 기뻐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에 충실하게 순종하는 모범적인 삶을 살라. 한 몸된 다른 지체들로 하여금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여 살도록 도우라.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된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전11:1)고 고백했다. 우리도 이런 고백을 다른 이들에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먼저 주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삶의 모범을 통해 다른 이들로 하여금 동일한 충성의 삶을 살게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한 번도 자신을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를 만삭되지 못해 낳은 자와 같다거나, 죄인 중의 괴수라고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된 지체로 알아 다른 지체가 병들었을 때에 그 병이 낫기 위해 간곡히 권면하며 눈물 흘려 기도했다. 이런 바울의 기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런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의 몸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는 점을 유의하라. 우리가 서로 하나의 몸을 이룰 때, 세상은 놀랍게 변화된다. 더 나아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과 목적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종 차별로 악명 높던 남아공화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남아공화국은 인종 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흑인과 백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고 별도로 예배를 드린다.

'성시온교회(Holy Church of Zion)'라는 흑인교회에서는 고난주간의 성만찬을 행하기에 앞서 세족례(洗足禮)를 베풀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듯이 서로 발을 씻어 주며 예수의 겸손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 세족례를 행하는 흑인 교회에 '올리브'라고 하는 백인 대법원장이 이곳을 혼자 방문했다. 세족례 시간이 되자 그는 ‘마르다’라는 흑인 여성을 불러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서 발을 씻어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인인 대법원장' 이 흑인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발을 다 씻어 준 올리브 대법원장이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이 사람은 내 집에 노예로 있는 사람입니다. 한평생 우리 집 아이들의 발을 수백 번도 더 씻어 주었습니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은 늘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우리 집 아이들의 발을 씻어 준 바로 이 사람의 발을 씻어 주어야 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아 이렇게 한 것뿐입니다. 뭐 대단한 일을 행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이상하게 여길 것 없습니다."

올리브 대법원장은 이 일 때문에 대법원장직에서 파면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제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기뻐하며 감사했다고 한다.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사회였지만 올리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랑의 정신을 앞서 실천하였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세계 2차대전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다. 병력이 부족하고 또 졸지에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에 각 지방의 젊은 청년들은 영장을 받은 후 큰 도시로 집결해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갔다.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정들을 태운 기차는 주로 밤늦게 떠났다. 그러므로 워싱톤에도 밤마다 유니온 기차 정거장에는 수백 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나와서 그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때 시민 가운데 밤마다, 밤늦게까지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잔을 쟁반에 들고 젊은 장정들에게 봉사를 한 사람이 있었다. 어떤 때는 임시로 마련된 주방에서 코코아를 끓이기도 했다. 어느 장정 하나가 그 노인을 자세히 살펴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대통령이었다.

"각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은 육체적으로 자유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밤마다 기차 정거장에 나와 기차로 떠나는 청년들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들고 다니며 봉사했다. 대통령이 친히 기차 정거장에 나와서 따라주는 코코아를 마신 청년들의 사기는 대단했다. 이처럼 섬기는 일에는 위아래가 없는 법이다. 성경 말씀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되라’(마20: 27)고 했다. 종이 되는 길은 으뜸이 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일부러 선생이 되고 지도자가 되려는 생각은, 아예 갖지 말도록 하자. 다만,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나고 새로워지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말이 아닌 그 삶으로써, 존경받는 스승이 되고 섬기는 자가 되도록 하자 아무쪼록, 우리는 좋은 스승이신 예수님을 모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모두 더욱 주님을 닮아 가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기원한다.

 

  * 기도: 섬기러 오신 주님, 내 이름을 불러주시며 나의 모습을 아시고 항상 보호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어려움에 처한 때에도 나를 건져주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나의 삶에도 이러한 헌신이 있게 하소서. 우리를 항상 인도하시고 방초동산 좋은 곳에서 우리 먹여 주옵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님, 어떤 형편에서든지 함께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을 위해 살고자 하오니 내 갈길 인도하소서. 겸손과 온유와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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