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히11:1-3 |
---|---|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산믿음
히브리서 11:1-3
요즈음 믿음을 이야기할 때에 이렇게 믿음에 대하여 생각을 합니다.
"믿음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내가 열심히 믿고,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다. 믿는대로 되리라,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능치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러한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믿음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믿는 사람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과의 차이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와의 차이점은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모든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누구도 믿음이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갑니다. 왜 갑니까? 병원을 믿고, 의사를 믿고, 약을 믿으니까 병원에 가는 것입니다. 수술을 하면서 의사의 손길을 믿기에 자신의 몸을 맡깁니다. 차를 타면 운전수를 믿습니다. 불안하면 어찌 그 타에 탈 수 있겠습니까? 1994년도에 성수대교가 무너졌습니다. 많은 사상자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영동대교를 지나가면서 참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서죠. 그래도 무너지지 않겠지 하는 마음에 그 다리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믿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운전을 할 때에 도로 표지판을 보거나, 또한 지도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모르는 길을 갈 때에 도로 표지판이나 지도를 의지해서, 즉 믿고 찾아갑니다. 만약에 그러한 것들을 믿지 아니한다면 결코 도로 표지판이나, 지도를 볼 수가 없겠죠. 우리들이 사용하는 돈도 믿습니다. 그냥 종이조각이지만, 1,000원짜리 종이를 주면 1,000원어치의 값어치를 나타낼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믿음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무엇인가 믿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믿는 믿음과 우리들이 믿는 믿음과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요? 우리들의 믿음에 대하여 야고보서 기자는 산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산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죽은 믿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 기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보고 "죽은 믿음이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산 믿음은 어떻겠습니까?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고 산 믿음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이 바로 산 믿음입니다.
첫째로 산 믿음이란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예수님께서 어두컴컴할 때에, 풍랑이 일 때에 물위를 걸어오십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한결같이 유령으로 생각을 하여 놀랩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내니 안심하라'고 말씀을 하시자, 정신을 수습한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대담하게 청을 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갑니다.
몇 발자욱 같을까요? 몇 발자국을 걸으면서 베드로의 심정이 어떠 했을까요? "아 나도 걸을 수 있구나, 정말 신기하다. 재미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분도 잠시, 밀려오는 풍랑을 보고 두려워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베드로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믿음 그 자체는 실상입니다. 실상이라는 것은 '밑에서 바치는 받침대'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었다고 해서 믿음 자체가 응답은 아닙니다. 믿음은 응답을 올려놓은 받침대입니다. 여러분 이 강대상을 강단 위에 얹혀 놓았었습니다. 이 강단이 약하면 강대상은 넘어질 것입니다. 화병을 얹어 놓아도 받침대가 튼튼해야 화병을 얹어 놓습니다. 받침대가 약하면 화병이 무너지고 말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이야기한 것이 믿음일까요? 아니면, 물위를 걷기 위해서 배에서 내린 것이 믿음일까요?
베드로의 믿음은 배에서 내린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부탁한 것이 믿음이 아니라, 배에서 내려 발을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갔을 때가 믿음입니다. 비록 나중에 풍랑을 바라보고 물에 빠지므로, 주님께 책망을 들었지만, 다른 제자들이 감히 상상치 못할 일을 해 냈습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은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합니다. 세상의 풍파를 보고, 불신을 가져서는 안되겠지요! 고백한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고백도 필요하지만, 그에 따르는 행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순종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의 믿음은 말만 가지고 안되고, 행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한 여행자가 그랜드 캐년 가장 자리에 다가갔다가 길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벼랑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가까스로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는 매달렸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소리쳤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없소? 누가 나를 좀 구해줘요?" 그러자 어떤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주 너의 하나님 말이다. " "당신이 거기 계시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구해 주기는 하겠지만. 그 전에 한 가지만 물어 보겠다. 넌 나를 믿느냐?"
"주님. 제가 착실히 믿습니다. 저는 매주일 교회에 나갈 뿐만 아니라 새벽기도회에도 나갑니다. 또 성경도 읽고 매일 기도 시간도 가칩니다. 헌금도 많이 냅니다" 주님이 다시 물으셨습니다. "아니 네가 정말로 나를 믿는냐고?" "제가 얼마나 당신을 믿는지 모르실거예요. 저는 당신을 믿어요"
"좋아. 그렇다면 이제 그 나무가지에서 손을 떼거라" "그렇지만 주님 ‥"
"정말 날 믿는다면 그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거라" 한참 동안 그는 조용히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거기 위에 다른 누구 없소, 나를 좀 구해줘요!" 산 믿음은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바다를 향해 가는 것이고, 나뭇가지에서 손을 놓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항상 등장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을 향하여 3일길을 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 3일간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더 긴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죽은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되므로 산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산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됩니다.
본문 말씀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미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믿은 것은 믿음이 아니겠네요'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으로 기도를 했으면 이미 받은 줄로 알라"고 하십니다. 믿고 기도를 했으면, 이미 이루어졌다. 즉 기도가 응답되어진 것을 과거의 이야기로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기도를 해 놓고 무슨 기도를 했는지를 모른다면 어찌 기도한 것이라 이야기하겠습니까? 기도를 해 놓고 집에 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으면 그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의심치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 난 15분 후에도 의심치 않으면 그 기도는 응답이 되어집니다. 사람들은 기도하고, 뒤돌아서서 "이루어 질까!" 의구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기도하고, 그 기도가 이루어 질 줄을 확신하십니까? 우리들이 기도를 했으면 그 기도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년이 가도 그 믿음이 변하지 않을 때에.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 질 것이란 확실한 믿음 위에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들에게 이루어지는 실상을 만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갔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아니한 땅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질 순간에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확실히 믿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보지 못하는 것의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갑니다. 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한평생 성경의 약속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수도가 있는데 그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리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그러한 믿음만 있고, 수도를 통해서 물을 얻으려면 수도꼭지를 트는 행함이 있어야 만이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 인정을 받고자 합니다. 누구에게 관심을 끌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욱 인정받아야 할 대상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로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신앙이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2절에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하였습니다. 증거를 얻었다는 말씀은 선진들이 이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환난과 핍박가운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신앙을 굳건히 지킴으로 신앙을 인정받았습니다. 도저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그저 믿어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과거에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을 그려주면서,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이러한 길을 걸었다. 그러니 너도 걸어라 우리들의 신앙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그 말씀이 우리들에게 실현이 되어지고,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이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이렇게 산 믿음이 되셔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아빠를 믿어요/ 어느 날 어린 아들이 오래 묵은 사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아버지는 나무 아래에서 아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너무 나이가 많아서인지 아들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지며 부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키라고 소리쳤고 사람들은 나무 곁에서 멀리 피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이 곤경에 빠진 것을 보고 두 팔을 벌리며 소리 쳤습니다. "얘야. 어서 뛰어내려라 아빠가 받을 테니 걱정 말고 뛰어 내려라" 아들은 잠시 아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빠,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그렇죠? 아빠. 나는 아빠를 믿어요." 그리고 난 후 아들은 안전하게 아버지의 두 팔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 그리고 아버지는 그분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채워 주신다는 사실도 믿게 되었습니다
/한태완 목사
빅토리아 여왕이 예수를 믿게 된 이야기
저명한 목사 롤랜드 힐(Rowland Hill)은 설교를 할 때 청중이 대단히 많아서 예배당 안에 다 수용할 수가 없어서 야외에 강단을 설치하였다. 한번은 그가 설교를 하는데 영국의 여왕 빅토리아가 화려한 마차를 타고 앞뒤에서 옹위하며 길을 지나다가 마차를 멈추고 설교를 들었다. 힐 목사는 “내가 지금 한 사람의 영혼을 경매하겠는데, 가장 높은 값을 내는 사람에게 주겠오.”라고 외쳤다. 그는 이어서 “나는 마귀가 값을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나는 부귀영화로 그 영혼을 사겠오. 내가 그에게 재물을 주어서 그로 일생동안 어떻게 해도 다함이 없도록 먹게 해주고,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주며 그로 세상에서 가장 큰 국왕이 되게 하겠오. 하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영혼은 내게 돌려주어야 하오.’라고 말했오.”라고 했다. 힐 목사는 이어서 “나는 주 예수께서 값을 내놓는 것을 들었는데 그 영혼을 사겠다고 하오. 그분은 ‘나는 내 자신의 피로 그의 영혼을 사겠오. 나는 단 마음으로 그의 죄악을 짊어지고 그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겠오. 그는 세상에 있으면서 혹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거나 사람들의 학대를 받을 것이고, 혹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없을 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인도하여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뵈러 가서 그분의 집에 거하게 하겠오.’라고 말했오.”라고 했다. 힐 목사는 얼굴을 돌려서 그 여왕 빅토리아에게 “당신은 당신의 영혼을 누구에게 팔기 원하십니까?”라고 말했다. 빅토리아는 즉시 “나는 내 영혼을 위해 피를 흘리신 주 예수께 팔기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왕은 전에 비록 재물이 있고 지위가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예수가 없고 마음속에 평안이 없었다. 그 때부터 그녀는 예수를 믿었고 후에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여왕이 되었으며 영국 역대로 적지 않은 축복을 받았다.
히브리서 11:1-3
요즈음 믿음을 이야기할 때에 이렇게 믿음에 대하여 생각을 합니다.
"믿음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내가 열심히 믿고,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다. 믿는대로 되리라,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능치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러한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믿음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믿는 사람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과의 차이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와의 차이점은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모든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누구도 믿음이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갑니다. 왜 갑니까? 병원을 믿고, 의사를 믿고, 약을 믿으니까 병원에 가는 것입니다. 수술을 하면서 의사의 손길을 믿기에 자신의 몸을 맡깁니다. 차를 타면 운전수를 믿습니다. 불안하면 어찌 그 타에 탈 수 있겠습니까? 1994년도에 성수대교가 무너졌습니다. 많은 사상자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영동대교를 지나가면서 참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서죠. 그래도 무너지지 않겠지 하는 마음에 그 다리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믿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운전을 할 때에 도로 표지판을 보거나, 또한 지도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모르는 길을 갈 때에 도로 표지판이나 지도를 의지해서, 즉 믿고 찾아갑니다. 만약에 그러한 것들을 믿지 아니한다면 결코 도로 표지판이나, 지도를 볼 수가 없겠죠. 우리들이 사용하는 돈도 믿습니다. 그냥 종이조각이지만, 1,000원짜리 종이를 주면 1,000원어치의 값어치를 나타낼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믿음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무엇인가 믿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믿는 믿음과 우리들이 믿는 믿음과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요? 우리들의 믿음에 대하여 야고보서 기자는 산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산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죽은 믿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 기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보고 "죽은 믿음이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산 믿음은 어떻겠습니까?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고 산 믿음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이 바로 산 믿음입니다.
첫째로 산 믿음이란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예수님께서 어두컴컴할 때에, 풍랑이 일 때에 물위를 걸어오십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한결같이 유령으로 생각을 하여 놀랩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내니 안심하라'고 말씀을 하시자, 정신을 수습한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대담하게 청을 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갑니다.
몇 발자욱 같을까요? 몇 발자국을 걸으면서 베드로의 심정이 어떠 했을까요? "아 나도 걸을 수 있구나, 정말 신기하다. 재미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분도 잠시, 밀려오는 풍랑을 보고 두려워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베드로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믿음 그 자체는 실상입니다. 실상이라는 것은 '밑에서 바치는 받침대'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었다고 해서 믿음 자체가 응답은 아닙니다. 믿음은 응답을 올려놓은 받침대입니다. 여러분 이 강대상을 강단 위에 얹혀 놓았었습니다. 이 강단이 약하면 강대상은 넘어질 것입니다. 화병을 얹어 놓아도 받침대가 튼튼해야 화병을 얹어 놓습니다. 받침대가 약하면 화병이 무너지고 말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이야기한 것이 믿음일까요? 아니면, 물위를 걷기 위해서 배에서 내린 것이 믿음일까요?
베드로의 믿음은 배에서 내린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부탁한 것이 믿음이 아니라, 배에서 내려 발을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갔을 때가 믿음입니다. 비록 나중에 풍랑을 바라보고 물에 빠지므로, 주님께 책망을 들었지만, 다른 제자들이 감히 상상치 못할 일을 해 냈습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은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합니다. 세상의 풍파를 보고, 불신을 가져서는 안되겠지요! 고백한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고백도 필요하지만, 그에 따르는 행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순종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의 믿음은 말만 가지고 안되고, 행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한 여행자가 그랜드 캐년 가장 자리에 다가갔다가 길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벼랑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가까스로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는 매달렸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소리쳤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없소? 누가 나를 좀 구해줘요?" 그러자 어떤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주 너의 하나님 말이다. " "당신이 거기 계시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구해 주기는 하겠지만. 그 전에 한 가지만 물어 보겠다. 넌 나를 믿느냐?"
"주님. 제가 착실히 믿습니다. 저는 매주일 교회에 나갈 뿐만 아니라 새벽기도회에도 나갑니다. 또 성경도 읽고 매일 기도 시간도 가칩니다. 헌금도 많이 냅니다" 주님이 다시 물으셨습니다. "아니 네가 정말로 나를 믿는냐고?" "제가 얼마나 당신을 믿는지 모르실거예요. 저는 당신을 믿어요"
"좋아. 그렇다면 이제 그 나무가지에서 손을 떼거라" "그렇지만 주님 ‥"
"정말 날 믿는다면 그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거라" 한참 동안 그는 조용히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거기 위에 다른 누구 없소, 나를 좀 구해줘요!" 산 믿음은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바다를 향해 가는 것이고, 나뭇가지에서 손을 놓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항상 등장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을 향하여 3일길을 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 3일간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더 긴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죽은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되므로 산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산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됩니다.
본문 말씀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미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믿은 것은 믿음이 아니겠네요'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으로 기도를 했으면 이미 받은 줄로 알라"고 하십니다. 믿고 기도를 했으면, 이미 이루어졌다. 즉 기도가 응답되어진 것을 과거의 이야기로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기도를 해 놓고 무슨 기도를 했는지를 모른다면 어찌 기도한 것이라 이야기하겠습니까? 기도를 해 놓고 집에 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으면 그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의심치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 난 15분 후에도 의심치 않으면 그 기도는 응답이 되어집니다. 사람들은 기도하고, 뒤돌아서서 "이루어 질까!" 의구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기도하고, 그 기도가 이루어 질 줄을 확신하십니까? 우리들이 기도를 했으면 그 기도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년이 가도 그 믿음이 변하지 않을 때에.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 질 것이란 확실한 믿음 위에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들에게 이루어지는 실상을 만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갔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아니한 땅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질 순간에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확실히 믿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보지 못하는 것의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갑니다. 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한평생 성경의 약속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수도가 있는데 그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리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그러한 믿음만 있고, 수도를 통해서 물을 얻으려면 수도꼭지를 트는 행함이 있어야 만이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 인정을 받고자 합니다. 누구에게 관심을 끌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욱 인정받아야 할 대상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로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신앙이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2절에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하였습니다. 증거를 얻었다는 말씀은 선진들이 이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환난과 핍박가운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신앙을 굳건히 지킴으로 신앙을 인정받았습니다. 도저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그저 믿어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과거에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을 그려주면서,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이러한 길을 걸었다. 그러니 너도 걸어라 우리들의 신앙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그 말씀이 우리들에게 실현이 되어지고,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이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이렇게 산 믿음이 되셔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아빠를 믿어요/ 어느 날 어린 아들이 오래 묵은 사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아버지는 나무 아래에서 아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너무 나이가 많아서인지 아들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지며 부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키라고 소리쳤고 사람들은 나무 곁에서 멀리 피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이 곤경에 빠진 것을 보고 두 팔을 벌리며 소리 쳤습니다. "얘야. 어서 뛰어내려라 아빠가 받을 테니 걱정 말고 뛰어 내려라" 아들은 잠시 아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빠,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그렇죠? 아빠. 나는 아빠를 믿어요." 그리고 난 후 아들은 안전하게 아버지의 두 팔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 그리고 아버지는 그분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채워 주신다는 사실도 믿게 되었습니다
/한태완 목사
빅토리아 여왕이 예수를 믿게 된 이야기
저명한 목사 롤랜드 힐(Rowland Hill)은 설교를 할 때 청중이 대단히 많아서 예배당 안에 다 수용할 수가 없어서 야외에 강단을 설치하였다. 한번은 그가 설교를 하는데 영국의 여왕 빅토리아가 화려한 마차를 타고 앞뒤에서 옹위하며 길을 지나다가 마차를 멈추고 설교를 들었다. 힐 목사는 “내가 지금 한 사람의 영혼을 경매하겠는데, 가장 높은 값을 내는 사람에게 주겠오.”라고 외쳤다. 그는 이어서 “나는 마귀가 값을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나는 부귀영화로 그 영혼을 사겠오. 내가 그에게 재물을 주어서 그로 일생동안 어떻게 해도 다함이 없도록 먹게 해주고,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주며 그로 세상에서 가장 큰 국왕이 되게 하겠오. 하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영혼은 내게 돌려주어야 하오.’라고 말했오.”라고 했다. 힐 목사는 이어서 “나는 주 예수께서 값을 내놓는 것을 들었는데 그 영혼을 사겠다고 하오. 그분은 ‘나는 내 자신의 피로 그의 영혼을 사겠오. 나는 단 마음으로 그의 죄악을 짊어지고 그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겠오. 그는 세상에 있으면서 혹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거나 사람들의 학대를 받을 것이고, 혹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없을 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인도하여 우리의 하늘 아버지를 뵈러 가서 그분의 집에 거하게 하겠오.’라고 말했오.”라고 했다. 힐 목사는 얼굴을 돌려서 그 여왕 빅토리아에게 “당신은 당신의 영혼을 누구에게 팔기 원하십니까?”라고 말했다. 빅토리아는 즉시 “나는 내 영혼을 위해 피를 흘리신 주 예수께 팔기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왕은 전에 비록 재물이 있고 지위가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예수가 없고 마음속에 평안이 없었다. 그 때부터 그녀는 예수를 믿었고 후에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여왕이 되었으며 영국 역대로 적지 않은 축복을 받았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