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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치료

마가복음 한태완 목사............... 조회 수 2546 추천 수 0 2011.03.20 23: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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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6:53-56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사랑의 치료
마가복음 6장 53 절- 56 절

어떤 시골 교회의 종각 아래에 허술한 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원래 그 집에는 무척이나 단란한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의 가장이 그만 폐결핵 3기라는 판명을 받았습니다. 계속해서 피를 쏟는 것에 지친 나머지, 환자는 신경질적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잘해주려고 애써도 남편은 화만 내고 신경질만 부립니다. 급기야는 이를 견디지 못해 한바탕 크게 싸우고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래서 이 환자는 아무도 없이 혼자서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교회의 여전도사님이 눈치챘습니다. 비록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전도사님은 그 집에 매일같이 들러서 음식을 갖다주고 어지러운 방을 치워주기도 하면서 뒤치닥거리를합니다. 그런데 이 환자를 보십시오. 전도사님께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는 못할망정 "불쌍한 사람 돕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소? 이런 구제는 사치입니다. 당신이 예수 믿는답시고 선한 일 하려는 모양인데 언제까지 갈는지 어디 두고 봅시다"라고 비꼬아댑니다. 도대체 얼마나 비난을 하는지 옆에서 보는 사람조차 견딜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만큼 신경질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은 묵묵히 이 사람을 계속 돌보아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그 날도 어김없이 방문하여 방을 치우고 있는데 그 사람이 전도사님께 무언가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침을 하고 각혈을 해서 엉망이 되어버린 이부자리 밑에 감추었던 사과 한 개였습니다.
"늘 저희 집에 오시지만 드릴 것이 없었는데 좀 시들시들하더라도 이것 한 번 잡수어 보십시오. 그나마 전도사님께서 제게 주셨던 것이지만요." 전도사님은 "고맙습니다" 라고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씻지도 않은 채 앉은자리에서 그 사과를 맛있게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던 이 사람이 갑자기 전도사님의 손을 잡으면서 목놓아 울며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나쁜 놈입니다.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분을 괴롭혔으니 나는 정말 천하에 없는 못된 놈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까? 그렇다면 저도 예수 믿겠습니다." 그 때에 그는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병균이 다 없어지고 소생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에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십시다. 사람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하는 가장 위대한 약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충분치 못할 때 우리는 외롭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일4:18)하였습니다.
유명한 내과의사인 폴 토니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의 방탕과 무질서로 위장병, 위궤양에 걸린 부인에게 아무리 좋은 약을 투입해도 그 위장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남편에 대한 억압적인 감정으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결코 병이 낫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잘못을 사랑으로 용서하고 남편 또한 아내의 사랑을 받아들여 회심하게 되어 자신의 마음의 병을 고치게 된 경우는 허다합니다."
위장병에 약품을 투입하는 것이 의학적인 치료라면 그 병의 원인인 남편과의 불화를 치료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랑인 신앙의 결단입니다.
오늘날은 이렇듯 의학과 심리학과 신앙이 합동해서 병을 치료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을 남에게 줄 때에 상처를 치료받고, 내가 하나님 앞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전달할 때 상대방의 상처도 치료하여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미국 뉴욕에 에드워드라는 기독교 병원이 있습니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이 많은 병원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어린아이들을 치료하는데 다른 병원에서는 고치지 못하는 병을 다 고칩니다. 많은 의사들과 제약회사들이 그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그 병원의 에드워드라는 의사가 말하기를 "우리가 쓰는 약은 T.L.C 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약은 처음 들어보는 약 이름이었습니다.
에드워드라는 의사가 이 약에 대해서 설명을 했는데, T.L.C.는 Tender, Love, Care의 약자로 '부드러운 사랑으로 치료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약 한 알을 줄 때도 사랑의 마음으로 부드럽게 치료하면 효과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깊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병원 이름은 그 의사의 이름을 따서 에드워드 기독교 병원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피터 구르퍼라는 사람은 스트라디벨리우스가 만든 아주 값비싼 바이오린을 가지고 연주하다 넘어지는 바람에 그 귀중한 악기를 그만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크게 실망하고 있을 때 악기기사가 깜쪽 같이 고쳐주었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나서 큰 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다 깨졌던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아니면 고침 받을 수 없는 상처투성이인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길이 붙잡아 주셔서 우리를 치료해주시고, 우리를 새 사람이 되게 변화시켜 주신 것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내 가정의 아들, 딸들을, 교사들은 제자를, 구역장들은 자기 구역 식구들을 사랑으로 대할 때,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고, 막힌 담이 헐리고, 관계가 새롭게 되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21)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너무 사람들이 많아 음식 드실 겨를도 없을 정도여서 한적한 곳을 찾아 배를 타고 가셨던 일, 그래서 날은 저물어 오는데 아무것도 먹을 것 없이 따라다니는 무리를 보실 때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생각하시고 민망히 여겨 보리떡 다섯과 생선 두 마리로 5천 명도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이적을 행하신 일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게네사렛 땅에 이르렀는데, 예수님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특히 병든 자를 많이 침상채로 메고 나아왔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께서 가버나움 지방에 들어가셨을 때도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는지 문 앞에라도 용신할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중풍병 환자를 메고 온 그의 친구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예수 계신 곳으로 환자를 내려보내 고침을 받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병든 자를 보실 때 그를 불쌍히 여겨서 죄를 사하여 주실 뿐더러 고쳐주셨습니다. 그 후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기서 떠나서 지나가시다가 마태라고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서 세를 받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세리는 곧 자기가 하던 일을 그 만두고 일어나 예수님을 좇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 가서 음식까지 같이 나누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야기로 들을 때 별로 이상한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야말로 참 이상한 일이었고 예수님을 모함하려는 모든 사람들의 악선전의 구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에는 유대 나라가 로마의 속국으로 있어서 그 당시의 세리들은 특히 유대 사람들의 피를 빨아 모아 정부에 바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정한 세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밖에 과중한 세를 매겨 로마 정부에 바치고 남는 것은 자기 개인이 착복하여 치부하는, 말하자면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들처럼, 유대 사람들에게는 적대시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보 통 몸을 팔아 사는 창녀와 세리를 같이 취급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세리 는 물론 가산은 넉넉하지만 유대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토색하고 불의한 사람들이라고 빈축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마태도 본래 세리였습니다. 멸시받고 죄인시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개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청해서 식탁을 같이 하는 즐거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이 식탁에는 본래 마태의 친구들이었던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추궁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당신들의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오? 사실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직접 공격을 하고 싶었지만 그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도 좀 들으라고 큰 소리로 추궁한 모양입니다. 이 말을 옆에서 듣고 계시던 예수님은 제자들을 대 신하여 대답하여 주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합니다. 가끔 병원에 가보면 중한 병에 걸린 사람이 의사를 붙들고 간청하는 광경을 봅니다. 의사 선생님, 어떻게 하든지 저를 살려 주십시오. 이 병을 고쳐주세요.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며 애원합니다.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의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모든 죄인들을 병든 사람으로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 자신을 병든 자를 고치는 의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보통 우리들이 보는 눈과는 전혀 다릅니다. 흔히 우리는 죄수를 범법자로 봅니다. 그래서 의례히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을 대 할 때는 찬 눈으로, 멸시의 눈으로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와는 달리 일반인이 그렇게 보는 죄인들을 병든 사람, 앓는 사람, 환자로 보셨습니다. 죄를 한 심령의 병으로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을 대할 때에 멸시와 냉대와 증오로 대하지 아니하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생각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 합니다. 우리가 다 이와 같이 예수님처럼 죄인들을 환자로 대할 수 있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많이 달라질 줄 압니다. 사실 문화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죄인의 심리를 연구하게 되고, 그렇게 할수록 예수님의 이 태도가 얼마나 옳았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세상이 사실은 병원입니다. 그런데 이 병원에 참 의사가 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병원에 가보면 병도 여러 가지입니다. 문자 그대로 만병입니다. 만 가지입니다. 우 리의 죄도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는데, 이런 것들은 사실 대표적인 것들이고 구약 율법대로만 보아도 6백 가지가 넘는 죄를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도 통용되는 육법이 있는데 여기에 하나라도 저촉이 되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죄목이 성립됩니다. 하물며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죄로 되는 것을 꼽는다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보면 우리 지체 가운데 병나지 않는 지체가 별로 없습니다. 사지백체, 오장육부가 다 병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육체로 안 짓는 죄가 없습니다. 눈으로 정욕, 입으로 궤휼, 손으로 악한 일, 마음으로 시기와 질투, 배로 욕심을 행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병은 여러 가지인데 한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선 병나면 아프다는 것입니다. 눈병도 아프고 귓병도 아프고, 치통으로 잠을 못 자고, 소화가 안되어 괴롭고, 무슨 병이든지 작고 큰 것을 막론하고 병나면 아픕니다. 괴롭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도 여러 가지이지만 한 가지 공통되는 것은 고통입니다. 죄를 범하게 되면 신음합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가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시 32: 3∼4) 하였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마음이 평안할 리가 없습니다. 육신의 병이 생기면, 가령 손끝이 곪으면 그 전에는 몰랐는데 아플 땐 왜 그렇게 그것을 쓸 일이 많은지 또 많이 다치게 되는지 모릅니다. 사실은 그 부분을 전보다 더 쓰는 것도 아니고 다치는 것도 아닌데 아프니까 다치게 되고, 다치니까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무슨 죄를 지으면, 그것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것이 자꾸만 우리를 괴롭힙니다. 남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깜짝깜짝 놀랍니 다. 고통입니다. 그리고 병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나 그 결과는 똑같습니다. 병의 마지막은 사망입니다. 작은 병이라도 오래 가면, 심해지면 죽습니다. 눈병도 심해지면 죽습니다. 손가락 하나가 병들어도 그것이 심해지면 그것 때문에 죽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감기도 심해지면 그것이 폐렴이 되고, 더 심해지면 죽습니다. 사실 병치고 죽지 않는 병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아무리 작아도 장성하면 사망입니다. 크든지 작든지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큰 바위만 물에 던져서 가라앉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돌을 물에 던져도 가라앉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더구나 병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누구나 병에는 약합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믿음이 튼튼하다고 범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조심하지 아니하면 누구나 다 죄를 짓습니다. 옛날 구약에 나오는 많은 위인들 가운데 누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성경의 기록대로 보면 사무엘, 요셉 이외에는 모두가 다 죄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삼손도, 다윗도,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병에 대하여 약한 것처럼 영은 죄에 대하여 약합니다. 건강한 사람이라 도 위생을 잘 지키지 아니하면 병이 납니다. 안양에 가면 은퇴하신 교역자님들이 계시는 원로원이 있습니다. 거기 가면 가장 젊었다고 할까, 춘추가 적으신 분이 75세요, 대개는 그 이상이신 분도 계십니다. 대개 그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평생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비교적 건강한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영적으로 죄인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병든 사람, 이 많은 환자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두면 그 병으로 말미암아 결국 다 죽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병들면 절망입니까? 범죄하면 희망이 없습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 마가복음 6장 53절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고 내리실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온 지방으로 돌아다니며 병든 자를 침상에 메고 나왔습니다. 먼저는 내가 건강해야겠습니다. 모든 죄의 병에서 고침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런데 병원 하면 병 고치는 데 약 값이 있어야 하고 치료비가 있어야 합니다. 제일 큰 문제는 돈입니다. 병들어도 돈 없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을 고치지 못하고 희생되는 경우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나아와 병 고침을 받는 데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먼저 내가 영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댄 사람들이 그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주님 앞에, 의사 앞에 나오지 못하는 심령의 환자들을 메고 인도 해 나와야 합니다. 인간 의사는 실수할 때도 있지만 만병의 의사이신 예수님은 실수하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못 고치시는 병이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는 죽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예수님이 장례식 주례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고침을 얻습니다.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나아와 고침을 받으십시오! 우리 이웃을 주님께 데리고 나오십시오!
과학의 발달과 함께 의학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법정전염병인 페스트 발진티푸스 장티푸스 천연두 뇌염 등은 무서운 병이었지만 지금은 별로 두려운 병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현대의학이 모든 질병을 다 퇴치한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문명병인 당뇨 고혈압 암 등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학계의 보고에 따르면 현대병의 70∼75%가 상처난 감정에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이 파괴되면 육체에 질병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노벨 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칼렌 박사는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6- 21절에 보면 상처난 감정을 ‘두려움’이라 정의하고 이 두려움을 쫓는 유일한 해결책을 ‘사랑’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상처난 감정, 파괴된 생각은 정서 불안과 두려움, 분노, 자포자기, 교만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을 치료하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상처난 감정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치유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상처난 감정인 두려움을 내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40)고 명령하셨습니다. 문제가 많은 사람들,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분노하고 낙심하며 좌절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도 다윗을 극도로 미워하다가 악신에 사로잡혀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대신 사랑합시다. 그러면 상한 감정이 치유됩니다.
사랑을 받으면 상한 감정이 치유됩니다. 육체는 음식을 먹어야 건강한 것처럼 우리의 정신과 영혼은 사랑을 받아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사랑 받으면 상한 감정이 치유됩니다.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면 상처난 감정이 치유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 4:8).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 그리고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충만케 되면(엡 3:14∼19) 속 사람이 강건케 됩니다. 상한 감정이 저절로 치료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구원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3일만에 부활케 하셔서 구세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 엄청난 하나님 사랑을 알고 체험하게 될 때에 상처난 감정이 치유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서로 사랑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사랑의 주님, 나의 마음이 세상을 향해 옹졸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처럼 넓고, 이해하며, 감싸주고 덮어줌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받았사오니 서로 용서하며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아픔을 함께하는 치유

어느 할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은 날부터 갑자기 성격이 매우 난폭해졌습니다. 식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욕을 퍼붓고,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네에서 이 할아버지를 가끔 만나던 어린 꼬마가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왔습니다. 식구들은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한번 들어가서 할아버지를 만나 보렴” 하며 그 꼬마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한 20-30분 동안 소년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온 뒤에 할아버지가 변했습니다. 태도가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사람들도 만나고, 이야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해서 소년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너 할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했니?”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아무 이야기도 안 했어요.”
“그러면 도대체 할아버지랑 20-30분 동안이나 뭘 했니?”
그랬더니 어린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저요? 할아버지하고 같이 울었어요.”
할아버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면서 함께 우는 순간, 더불어 껴안고 울던 그 눈물을 통해 할아버지의 아픔이 치유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픔을 함께 느낄 때 치유의 능력이 솟아납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 우리의 오해받음, 우리의 배신, 우리의 눈물, 우리 죄악의 치욕과 부끄러움을 이해하십니다. 그렇게 내 죄를 담당하시고 보배로운 피를 쏟아 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십자가 앞에 나오는 사람을 우리 주님은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입니다.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위로입니다.
십자가는 소망입니다.

* 의사 입장에서 볼 때, 기분 나쁜 환자와 기분 좋은 환자가 있다. 기분 나쁜 환자는 아는 척하는 사람, 의사를 믿지 못하는 사람, 이 병원 갔다 저 병원 갔다 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치료 효과가 약하고, 돈과 시간을 이중적으로 소비하고, 정신적 고통까지 가중된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기분 좋은 환자는 모든 것을 의사에게 맡기고 하라는 대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특히, 틀니를 해 넣을 경우 같은 때에도 입 속에서 쇠가 왔다 갔다 해도 의사를 믿고 가만히 있는 환자는 치료가 잘 된다. 그런 사람은 돈, 시간, 정신적 고통 등도 절감된다. 당신은 예수님 앞에 어떤 환자인가?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가만히 있는 환자인가? 왜 당신의 삶 속에 열매가 맺히지 못했었는가?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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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3 에배소서 당신은 작품인가 상품인가 엡2:8-10  이중표 목사  2011-03-24 2570
4932 누가복음 그 아버지와 그 아들 눅1515:18-23  이중표 목사  2011-03-24 2613
4931 시편 고통 중에서의 성숙한 신앙자세 시38:1-22  한태완 목사  2011-03-22 2694
4930 시편 여호와를 기뻐하라 시37:1-40  한태완 목사  2011-03-21 3991
4929 창세기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창9:1-29  한태완 목사  2011-03-21 3435
4928 로마서 지도자를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 롬2:1-11  한태완 목사  2011-03-21 2328
» 마가복음 사랑의 치료 막6:53-56  한태완 목사  2011-03-20 2546
4926 히브리서 산믿음 히11:1-3  한태완 목사  2011-03-20 2168
4925 로마서 세례 예식 [1] 롬6:1-13  한태완 목사  2011-03-20 2525
4924 골로새서 용서의 기적 골3:12-14  한태완 목사  2011-03-20 2488
4923 마태복음 잘 믿는 체 말라 마6:1-8  임의환 목사  2011-03-20 2245
4922 느헤미야 애물을 넘어서 느2:17~20  박봉수 목사  2011-03-20 1822
4921 마태복음 좋은 씨, 아름다운 열매를 맺자 마13:1-9  한태완 목사  2011-03-20 3209
4920 야고보서 기도가 안 되는 이유 약4:2-3  강종수 목사  2011-03-20 3082
4919 시편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시73:18-28  이원준 목사  2011-03-20 5737
4918 마태복음 리더가 되려고 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 마23:10-11  한태완 목사  2011-03-20 3436
4917 창세기 홍수의 종결과 자연의 회복 창8:1-22  한태완 목사  2011-03-19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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