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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2: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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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지도자를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
본문: 로마서 2: 1- 1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로마서 2:1)
어느 대학의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차례로 졸업장을 받고 있었습니다. 순서가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는 한 축하객에게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어느 학생이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고 총장에게 악수도 받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축하객은 '세상도 많이 변했군, 저렇게 건방진 학생도 있으니.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다니 이 학교는 4년 동안 무얼 가르쳤단 말인가?'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재학생이 말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저 분은 한 팔을 잃고 대신 의족을 하고 4년 동안 훌륭하게 학교를 다닌 학생입니다"
그러자 보이는 대로 비난했던 축하객은 얼굴을 붉히며 함부로 말을 한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 1-3)
한 기독교 지도자가 이번 일본 지진과 재난에 대해 “일본은 원래 지진이 많은 나라인데, 지진으로 수많은 재산 피해와 생명을 상실하게 된 일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길 바란다.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화위복이 돼서 이 기회에 주님께 돌아오면 좋겠다"
“한국은 일본의 물리적인 지진보다 거룩한 영적 지진이 일어나야 될 때에 와있다”며 “하나님이 영적인 큰 회개 운동을 허락해 주셔야 되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그 지도자를 욕하고 맹비난을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할 때 회개를 촉구하는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달콤한 위로의 말씀만 전하고, 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지 못한다면 지도자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지진은 우상숭배라고 지적한 것은 일본을 미워해서가 아니고, 진정으로 사랑해서 앞으로 더 무서운 지옥불 못에 가지 말자는 애타는 구원의 메시지라고 봅니다.
여러분!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입니다. 목회자를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자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려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비난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반항입니다.(민12: 1- 10)
참된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전합니다.
역대하 18장 12- 34에 보면 미가야 선지자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자체만을 전했습니다. 아합 왕은 자신이 전사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화가 나서 미가야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라 명했습니다.(대하18: 26) 이렇게 미가야는 오직 진실만을 말하기 위해 감옥에 갇히는 일조차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담대한 신앙을 지켰습니다. 결국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대로 길르앗 라못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회개치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온 나라에 죄악이 가득하였으므로 그들은 멸망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회개뿐이었습니다(예레미야 7:1∼8:3).
예레미야가 이러한 예언을 계속하자 고향 사람들과 친척들까지 그를 모함하여 죽이려 했습니다. 이처럼 회개하지 아니하고 죄의 길을 걷던 유다는 결국 멸망했고, 70년의 긴 세월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므로 때때로 실수하여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때로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도 실수하거나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지도자를 완전히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으며,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6:37)
결혼을 앞둔 어떤 남성이 '완벽한 배우자'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여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해 둔 배우자와 결혼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세상 구석구석을 살폈습니다. 이렇게 40년을 허비했으나 그런 여성과는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나이 이제 70인데, 그래 세상에 그런 여성이 없었나?"
"사실 딱 한번 그런 여성을 만났었네. 그런데 그녀는 '완벽한 남성'을 찾고 있었다네. 그래서 결혼이 이뤄지지 못했지."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만 할 뿐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 32)
성경에 나오는 의인 노아도 포도주에 취해 실수하였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위대한 왕 다윗도 범죄하였으나 그가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었고,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도 닭울기 전에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의 허물과 죄를 함부로 비판하거나 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롬14:3,4)
그러나 김정일과 같이 만인이 인정하는 독재자와 이단과 우상숭배를 쫒는 지도자들은 비판하고 판단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사람을 악한 길로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다하면서 헛된 욕망의 길로 인도하는 자는 악한 지도자로서 마땅히 비판받고 배척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참지도자와 거짓 지도자를 어떻게 구별하느냐구요?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뿌리를 알 수 있습니다. 거짓 지도자와 그 추종자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릅니다. 그들의 열매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함과 술취함과 방탕함 등입니다. 그러나 참 지도자와 성도들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습니다.(갈5: 16- 23)
그래도 그를 잘 모르겠거든 비판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 보십시오. 초대교회 때에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핍박하였습니다. 그때 지혜로운 가말리엘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행5: 34- 40)
하나님은 종류대로 다양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얼굴 모습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개성이 있고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 좀 다르고 내 생각과 다르다고 남을 비판하고 욕하는 자는 실로 어리석고 악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에 맡겨야지 내가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맙시다.
내가 보기에 틀려보여도 하나님보시기에 옳을 수가 있고, 현재는 틀려 보여도 나중에 옳은 것이 판명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 명심해야 할 것은 천재지변으로 죽은 사람들과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 우리보다 더 죄가 많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13장 1- 5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리도 언제 자연재해를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해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진이나 해일 등의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거울로 삼아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노아의 홍수가 나던 시기의 현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유전자공학은 슈퍼감자나 유전자변형 콩을 생산하고 있으며, 태양열을 이용하여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시험관에서 아기가 잉태되고 있으며, 환경파괴, 공해물질 배출로 인한 오존층 파괴로 앞으로 50년 후면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아 바닷가에 있는 대부분의 도시가 사라질 것이며, 성적인 문란함과 인간성 파괴로 인한 인간존엄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전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마지막 때의 징조인 거짓 선생들의 패역과 민족분쟁과 지진, 해일, 기근 등 수많은 사건과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마24:6- 7, 막13:6- 8)
노아는 10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짧은 기간 안에 방주 만들기를 끝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노아처럼 방주를 만드시렵니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처럼 '헛소리 말라'며 비웃으시렵니까? 우리는 마지막이 가까움을 볼수록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히10:24, 25)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지라 아비의 하체를 본 함은 그의 두 형제에게 이를 알리매(비난함), 그 자손이 저주를 받았고, 옷을 가져다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준 셈과 야벳은 창대하게 되었습니다.(창9장)
가정에서 부모의 연약함과 허물을 비난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을 비방하지 말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십시오. 남편은 가장(가정의 지도자)입니다.
미갈은 다윗이 법궤 앞에서 춤추는 모습을 비웃고 비난하므로 여성의 큰 기쁨 중 하나인 출산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였습니다.(삼하6: 20- 23) 한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먼저 그의 행동과 태도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부부간에 서로 존중하고 겸손합시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벧전2:1)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대통령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통령을 비난하지 말고 진심으로 충언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남을 비판하는 것보다 잘 한 점을 칭찬해 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이것은 도적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는 일과 같은 무서운 죄입니다. 우리가 이 죄를 범하고서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습니다.(약4:11)
내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 속에 티를 보고 빼라고 하기 쉽습니다. 겸손히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만큼 자기도 비판을 받게 되고, 남에게 너그러우면 나도 그런 대접을 받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남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남을 지적하면 손가락 세 개가 나를 지적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귀가 길고 혀가 짧습니다.(약1:19- 20, 롬15: 2- 3)
예수님 주변에는 바난하려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이나 공동체 속에도 마치 비난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가라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강도 만나 고통 받는 사람을 도운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에게도 거침없이 비난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어느 집에 도둑이 들어 값나가는 물건을 모두 훔쳐갔습니다. 그 집 주인이 재산을 몽땅 털렸다는 소식을 들은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 각자 한마디씩 했습니다.
"잘못은 집주인한테 있군요" 좀 더 튼튼한 잠금장치를 만들어 놓았더라면 도둑이 들지 않았을 텐데."
"맞아요. 창문에 쇠창살이 없군요."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르게 자지 않나요.?"
"아마 도둑이 집을 통째로 가져가도 잠만 쿨쿨 잘걸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주인이 갑자기 언성을 높여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도둑은 전혀 잘못이 없단 말이요?"
사람들은 자신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자기 나름대로 바리새인이나 율법사들처럼 원칙을 만들어 그 원칙에 자신과 남을 맞추려 합니다. 나의 잘못된 원칙에 타인을 맞추려 하면 타인은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고 힘들어 하며 비명을 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남의 잘못과 약점을 지적하지 말고 앞으로는 허물을 덮어주고, 남을 사랑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남을 판단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먼저 살피게 하시고 나에게 사랑의 마음을 주셔서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게 하옵소서.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주사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감사와 찬송, 칭찬과 덕스러운 말, 소망스러운 말, 생명의 말, 거룩한 말로 일관되게 하옵소서. 우리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먼저 보게 하셔서 비판하는 죄를 범치 말게 하옵소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주님, 비판함으로써 서로를 해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서로를 세워주며 격려하는 복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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