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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강도

누가복음 목련화............... 조회 수 2684 추천 수 0 2011.03.29 09: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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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23:39-42 
설교자 : 이원준 목사 
참고 :  

성경/눅23:39-42,

제목/예수님과 강도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이다. 이슬람은 회교라고도 모하멧교라고도 한다. 파키스탄에서 한 젊은 기독교 여성이 이슬람교 신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셨는데 마호메트는 너희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줬느냐고 말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국제 인권단체들의 항의와 호소로 사형은 면하고 형벌을 받고 풀려 났다고 한다.

 

[요13:1]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 했다.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는데 정말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죄인을 구원하는데 사력을 다하셨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양 옆에 강도 두 사람이 함께 못 박혔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강도 중에 한 사람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죽음 직전에 구원받고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갔다는 내용이다. 이 본문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이 있다.

 

1.용서 받지 않아도 될 죄는 없다.

 

성경에는 죄를 언급할 때 중죄, 큰 죄 그런 말을 썼다.[출32:21]“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했다.아론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을 중죄라고 했다. 우상을 만든 것은 중죄이죠.가벼운 죄가 아니다. 무거운 죄이다. 욥31: 9-11 에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 받을 악이요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라 나의 모든 소산을 뿌리까지 없이할 것이니라” 남의 여인에게 음흉한 마음을 품는 것은 중한 죄라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마음에 그런 유혹만 품었어도 자기 부인이 남의 맷돌을 돌리며 다른 남자에게 강탈을 당하고 재산이 남아 있는게 없이 망하는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죄를 심상히 여긴다. 살인, 강도, 사기, 간음 이런 것은 큰 죄이고 교통법규 안 지키는 것, 남을 욕하고 흉보는 것, 비방하는 것 이런 것들은 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죄는 실질적으로 크고 작음을 논할수 없다.죄를 범하는 마음, 동기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간음을 안 했어도 음욕을 품으면 간음죄를 지은 것이다. 하나님은 살인을 안 했어도 미워하거나 욕을 하면 살인한 것과 같이, 동일하게 취급을 하시는 것이다.그러므로 마음이 정결하고 순수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은 강도들이다. 누가는 이들을 행악자라고 했다. 마태는 강도라고 했다. 표현만 다를 뿐 의미는 같은 것이다.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강도짓을 하다가 붙잡혀서 사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5: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감옥에 들어간 다음에는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죄를 회개할수 있는 기회, 용서받을 수 있는 시간은 살아 있을 때 뿐이다.죽으면 그래서 지옥에 던져지면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모든 죄는 죽기 전에 용서 받아야 한다.

 

2.용서 받지 못할 죄는 없다. (성령훼방죄 예외)

 

이들 두 사람은 생활이 건전치 못한 사람들이었다. 누구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을 위해 착하게 산다는 것과도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선행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평생 강도질만 하다가 잡혔을 것이다. 죄의 경중으로 보면 무겁다. 큰 형벌을 받을 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십자가 곁에까지 같다 놓았다.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기 때문이다. 좀도둑이 있다. 큰 도둑이 있다. 大盜라고 한다. 이들은 강도이고 행악자이다. 큰 죄인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곁에 같다 두셨다. 용서받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죄가 너무 중해서 용서받을 가망성이 없다면 예수님 곁에 같다두지 않으셨을 거다.성령을 훼방한 죄 말고는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3. 구원 받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살고 시간과 함께 산다. 시간이 있으면 할수 있고 시간이 없으면 할수 없다.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고 한다.죽을 시간도 없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도 시간이 없어서 못 믿고 시간이 없어서 교회도 못나간다고 한다. 너무 하는 일이 많아서 그렇다. 혼자서 일을 너무 많이 할려고 하니까 그렇다.일이 많으면 다른 사람과 좀 나누어서 하고 일을 좀 적게 하고 나중에 하고 그러면 시간이 있을 수 있을텐데 그놈의 욕심이 가로막아서 혼자 다 하느라고 시간이 없다고 한다.또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영 마땅찮아서 자기 혼자 다 하려니 시간이 없다.

 

우리 집에는 개 두 마리가 있는데 성격이 다르다. 밥을 줄 때 한 놈은 방정을 떤다. 그런데 한 놈은 가만히 있는다. 방정 떤다고 더 주는가, 가만히 있는다고 안 주는가? 그렇지 않다. 주인이 다 알아서 적당하게 준다.기독신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한다. 서툴러서 일을 잘 못해도 세상은 그것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일을 해 온 것이 하나님만큼 완벽했는가?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도 세상이 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서투르고 잘 못해도 하나님이 좋게 하실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그런 여유를 가지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길수 있고 같은 24시간을 효과적으로 여유있게 쓸수 있다.

 

강도 두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 앞에 왔다.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온 것이 아니고 군인들에게 강제로 끌려서 왔다. 촌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남아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하냐? 그렇게 늦게 왔어도 구원 받았다. 구원 받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 이제라도, 지금 여기서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

 

4.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이다.

 

사람이 평상시의 행위에 의해서 구원받는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이 행동한 것을 보시고 구원하신다면 이 강도들이 구원 받을 수 있을까?착하게 살고 선행을 많이 하고 남에게 해를 안 끼치고 그래서 구원하신다면 이 사람들이 구원 받을 자격이 있을까?평생동안 강도질을 하다가 잡힌 사람들에게 무슨 선한 행위가 있어 구원받을 기회를 주시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행위를 보시고 구원하시지 않는다.[딛3: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이다.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싶은 사람을 구원하시고 은혜 주시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출33:19]“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하셨다.

 

하나님이 왜 행위를 따라 구원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하시느냐 [엡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나는 착하니까, 선한 일을 많이 했으니까 구원하셨지-- 그렇게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지 그렇게 말하게 하려함이다.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찬양한다. 그러나 자기가 착해서 구원해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찬양할 것이 없다.=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5.구원은 받을 만한 사람이 받는다.

 

강도들이 살에 온 것을 보면 군인들에 의해 끌려오긴 했지만 예수님 곁에 오게된 것도 은혜이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도 은혜이다.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 곁에 가서 예수님을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예수님 십자가 곁에 가장 가까이 간 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들 중에 한 사람만 구원받았다.예수님은 한 사람에게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약속하셨다. 왜 그런가?둘 중에 한 사람만 모든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강도 두 사람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같이 욕하고 비방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사람은 자기 잘못을 깨달았다. 예수님이 비록 자기처럼 십자가에 못박혔지만 이분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자기처럼 죄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형벌 받고 죽으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른 강도가 십자가에 달려서도 자기 죄를 알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비방하며 욕할 때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눅 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23: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힐 죄가 없다. 강도는 십자가에 못박힐 만한 죄가 있다.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주신 것은 강도에게는 은혜이다.강도가 예수님과 함께 못박힌 것은 은혜이고 예수님이 강도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주신 것도 은혜이다. 그런데 한 강도는 구원받고 한 강도는 구원 받지 못했다.

 

구원은 받을 만한 사람이 받는 것이다. 십자가 곁에 같다 놨어도 못받는 사람은 못받는 것이다. 요즘에 예수님을 몰라서 못믿는 사람이 있는가? 교회가 없어서 교회 못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은혜는 받을 만한 사람이 받는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못 받고, 자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 저 잘난줄 아는 사람은 못받는다. 그 강도는 십자가 곁에까지 데려다 놓았는데 구원을 못받았다.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욕하고 비난했다. 불쌍한 사람이다.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게 된 것은 얼마나 존귀한 일인가? 십자가 곁에 데려다 놓은 것, 모든 정황을 보고 듣고 깨달으라고 그리된 것이다.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깨달을 줄 안다는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은 깨달을 줄 안다. 그러나 사람답지 못한 사람은 깨닫지를 못한다. 그런데 죽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짐승과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는가?

 

십자가 곁에까지 데려다 놓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믿는 것은 자기가 할 일이다. 하나님은 십자가 곁에까지만 데려다 놓는다.믿는 것은 내가 해야 한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은 마음 문 밖에서만 두드리신다. 강제로 열고 들어오시지 않는다. 내가 문을 열어야 한다. 두드리는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은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주님이 내 마음 문 밖에까지 와 계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수많은 사람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주님과 함께 죽는 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인가 그런데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했으니 얼마나 불쌍한가? 죽음의 찰나에 깨닫고 구원받은 사람은 얼마나 복인가? 세상의 삶은 그렇게 마치지만 주님이 낙원에 데리고 갔으니, 주님과 함께 낙원의 삶이 시작되니 얼마나 큰 영광인가?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맹자의 어머니는 세 번을 이사를 했다고 한다. 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을 때 공부를 해서 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교회 근처에 살게 하고, 교회 안에 살게 하고 눈만 뜨면 십자가를 보게 하고--- 은혜이다. 깨닫고 구원받으라는 메시지이다. 구원받으면 존귀를 깨달은 것이요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리면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알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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