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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포리일기 462】어머니와 제비
흥부 놀부 이야기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를 길조(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와 제비와의 싸움은 우리동네에서 유명한 전설입니다.
옛날 우리 집은 봄이면 제비들이 날아와 처마 밑에 집을 짓는 전형적인 시골집이었습니다. 어느 해 인가는 처마 밑에 아주 아파트처럼 제비집이 네 개나 줄줄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많은 제비들이 날마다 싸는 똥이 토방에 수북히 쌓이자 우리 어머니 똥 치우다가 열 받아버렸습니다. 그래서 부지깽이로 제비집을 다 토닥토닥 털어 내 버렸습니다. (어머님 승)
아, 그런데 제비들이 멀리 날아가 버린 줄 알았는데 다음날 열심히 흙을 물어와 새집을 뚝딱 지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알을 까서 제비새끼들이 지지배배지지배배... (제비들이 이겼다)
어느 날 툇마루에서 밥을 먹는데 어머니의 무릎에 뭔가 뚝 떨어지는 것이 있었으니, 박씨가 아니고 자세히 보니 '이(爾)' 으악! 꼬물거리는 이를 보는 순간 우리 어머니 완전히 이성을 잃고 제비 새끼고 뭐고 온 집안의 제비집을 모두 무자비하게 부숴 버리셨습니다. (어머님 승리)
하지만 제비들도 징하더군요. 어머님이 밭에 나가 밭매는 사이에 금새 아직 물기도 안 마른 새집을 지어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빗자루로 새 집을 싹 쓸어버리고 어디에서 듣고 오셨는지 처마 밑 여기저기에 까만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매달아놓으셨습니다. (어머님 2승)
까만 비닐봉지를 걸어 놓으면 큰 새로 착각하고 제비들이 집을 짓지 못할 줄 아신 것이지요. 그러나 제비들은 속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처마 안쪽 석가래 사이에 집을 지었습니다. (제비의 승)
제비와의 전쟁을 선포한 어머니는 이제 긴 막대기를 들고 마루에 앉아서 제비들이 날아오면 어디에 앉기도 전에 막대기를 휘둘러서 아예 집을 짓지 못하도록 원천봉쇄를 하셨습니다. (우리 엄마 승리)
한 동안 제비들이 안 날아왔어요. 제비들도 포기한 것일까요? 그러나 어느 날 우리 어머니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 먼일 났다 단숨에 달려갔더니, 제비들이 두꺼비집(전기계량기) 위에 떡 허니 집을 지어놓은 것이었습니다. 전기가 무서워 두꺼비집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제비들이 안 것이지요. 흐흐 (제비의 승리)
한 동안 제비집을 바라보며 부글부글 속을 끓던 어머니... 뭔가 결심한 듯 저를 불렀습니다.
"용우야 이 집 헐어라"
"예? 제비집이요?"
"아니, 제비집 말고 이 집을 헐어 뿐져라! 집이 없으면 지놈들이 어쯔케 집을 지서?"
"원 세상에... 제비집 못 짓게 사람집 허는 사람이 어디 있다요"
결국 어머니는 살던 집을 헐고 처마가 없는 새 집을 지어버리셨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그렇게 해서 지어진 집입니다. (우리 엄니 정말 무서워) 2008.4.10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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