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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것이 나를 움직인다"(Driven By What's Inside)

에스겔 김영봉 목사............... 조회 수 4806 추천 수 0 2011.03.30 16:58:34
.........
성경본문 : 겔3:1-3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 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06. 1. 22 김영봉 목사

신년 특별 5회 연속 설교: 새해에 받은 말씀(1)

--"내 안에 있는 것이 나를 움직인다"(Driven By What's Inside)

에스겔 3:1-3; 히브리서 4:12-13

 

에스겔은 환상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두루마리를 맛있게, 배가 부르도록 먹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우리의 존재를 꿰뚫고 가르고 치료하고 변화시킨다고 노래합니다.
1. 두루마리를 먹었을 때, 그 맛이 어떠했다고 했습니까?(겔 3:3)

2.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을 말씀을 무엇에 비유합니까?(히 4:12)

3.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히 4:13)

 

토의할 질문

1.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의 경험을 나누어 보십시오.
2.당신의 내면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인생은 무엇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3.말씀에 사로잡힌 인생이 되기 위해 2006년에 할 일을 두 가지만 결심하고 실천해 보십시오.
 

1.

오늘부터 5 주일 동안, 요한복음 연속 설교를 잠시 쉬고, "새해에 받은 말씀"이라는 5회 연속 설교를 시작합니다. 지난 주일 칼럼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새해를 여는 새벽기도회'를 준비하면서, 2006년 한 해 동안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적으로 지향해 가야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새벽기도회에 서는 성경을 차례로 한 장씩 읽어가며 묵상(contemplate)을 하는데, 첫 주간에 읽도록 되어 있던 성경이 에스겔서 3장부터 8장까지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 한 말씀만 들으려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한 장 한 장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각 장에서 울리는 뚜렷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말씀을 사모하라.

2. 이웃과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으라.

3.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라.

4. 현대판 우상을 타파하라.

5. 끝을 생각하라.

 

저는 이 말씀을 통해 2006년도의 제 개인적인 삶과 목회의 방향을 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새해를 여는 새벽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그리고 우리 교회에 주신 선물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말씀을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성도들과는 이미 나누었지만, 저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받은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저희 모두에게 주어진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이번의 5회 연속 설교를 통해, 여러분도 나아갈 방향과 삶의 지침을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

오늘은 그 첫 번째로, "말씀을 사모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에스겔서 3장을 보면, 예언자 에스겔이 경험한 환상(vision)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환상은 1장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glory)과 위엄(majesty)에 질식할 정도로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 경험(experience of God's presence)을 합니다. 그런 다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의 앞에 펼쳐진 두루마리 책을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에스겔은 입을 벌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손이 두루마리를 입으로 넣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너의 배를 불리며, 너의 속을 그것으로 가득히 채워라." 그것을 먹고 난 에스겔은, "그것이 나의 입에 꿀같이 달았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언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내면(inside)을 가득 채운 후,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전한 말씀은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생각을 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뜨거운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의 내면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어서, 입을 열면 하나님의 말씀이요, 몸짓, 손짓, 발짓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어느 고급 차의 선전 문구에 "Driven by what's inside"("안에 있는 것에 의해 움직여진다")라는 말이 있던데, 에스겔이야말로 그 내면에 가득 차 있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의해 움직여집니까? 여러분의 삶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삶의 방향을 결정해주는 원리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움직이도록 맡기고 안심할만한 무엇이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충동(impulse)과 욕망(desire)과 감정(emotion)에 여러분의 삶을 맡기고 있습니까? 어떻든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혹은 더 많은 돈을 벌자는 욕망에 의해, 혹은 더 예뻐지고 더 날씬해지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은, 아무런 내면의 원리(inner principle)도 없이, 방향도, 목적도 없이 움직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부지런히 뛰고 있는 형편은 아닌지요? 산낙지(live octopus)를 먹어 본 분들은 잘려진 낙지 다리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아무런 방향도 없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집요하게 꿈틀대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삶이 그런 것은 아닐까요? 겉으로는 살아있는 것 같은데, 실은 육신의 껍데기만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렇게 보면, 이것은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의 내면에 무엇이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를 움직입니까?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과연 믿을만한 것입니까? 그것에 여러분의 인생을 맡겨도 괜찮겠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내면에 담겨져, 그 말씀에 의해 우리의 인생이 움직여지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따져 보셨습니까? 그렇게 되도록, 진지하게 노력해 보셨습니까?

 

3.

우리 내면에 담을 수 있는 것 중,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안전하고 믿을만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움직이도록 의탁할(trust) 수 있는 것 중,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믿을만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그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참된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끌림을 받을 때, 우리의 인생은 비로소 바른 방향을 찾고, 참된 의미를 가지며, 목적이 바로 세워지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는 우리를 깨뜨리시고, 때로는 치유하시며, 때로는 변화시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떤 사람은 "아니, 죽어있는 문자(dead letters)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다른 책을 읽다가 감동 받는 거나 별로 다르지 않겠지요. 성경이라고 뭐 특별한 게 있을 리가 있습니까?"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것은 말씀의 위력(mighty power)을 몰라도 전혀 모르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사실, 인간의 말(human words)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떤 말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마음에 계속 살아남아 있어 쓴 물(bitterness)을 만들어냅니다. 또 어떤 말은 마음에 살아남아 기쁨과 위로와 용기의 근원이 됩니다. 그 말을 해 준 사람이 이미 죽고 없는데도, 그 말은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나에게 중요한 존재일수록, 그 말의 힘은 더욱 커집니다. 마치, 말이 살아있는 생명체(living thing)와 같이 느껴집니다.

며칠 전, 중고등부 목회자들이 학부형에게 보낸 편지를 보니, 2006년도 우리 교회 청소년 목회의 주제를 '칭찬합시다'라고 정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나 혹은 친구들의 부주의한 말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를 알기에, 반대로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격려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치유와 기쁨을 주는지를 알기에, 이런 주제를 정한 것 같습니다. 참, 잘 한 일이라 싶습니다.

 

정말, 말 조심 해야 합니다. 저도 부지불식간에(unknowingly) 혀가 풀려,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해야 할 말이지만 요령 없이 하고, 정제되지 못한(not refined) 말을 사용하는 저 자신을 목격할 때가 많습니다. 시편 저자가 부르짖었던 기도, "주님, 내 입술 언저리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 앞에는 문지기를 세워 주십시오"(시 141:3)라는 기도가 제게 절실합니다. 아니, 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절실합니다.

 

입에 발린 칭찬이나 사실과 다른 칭찬은 오히려 듣는 사람의 마음을 구겨놓습니다. 마음 속에 분노가 들끓고 있음을 뻔히 아는데, 겉으로 칭찬하는 아버지를 대할 때, 그 자녀는 오히려 좌절감을 느끼게(frustrated) 되어 있습니다. 칭찬 이전에 진실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말로 표현된 것이 '칭찬'입니다. 애정 깊은 눈으로 관찰하여 좋은 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줄 때, 그것이 힘이 됩니다. 그러니까, '칭찬합시다'라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는 실상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대합시다'라는 뜻입니다.

 

4.

인간의 말도 이러한데,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듣거나 묵상하는 중에,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분의 뜻을 발견할 때, 그 말씀은 얼마나 강력한 힘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실체 (God Himself)는 눈으로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 귀로 들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그분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그분을 만납니다. 그럴 때, 죽어있는 문자는 살아있는 능력이 되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이런 체험 때문에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인격체(as a living person)로 자주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인데, 그것은 단순한 문자나 말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적 존재(divine being)로서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그렇게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하나님 자신을 대하듯 했습니다. 그래서 잠언서(The Book of Proverbs)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 즉 '지혜'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나를 간절히 찾는 사람을 만나 준다. 부귀와 영화도 내게 있으며, 든든한 재물과 의도 내게 있다. 내가 맺어주는 열매는 금이나 순금보다 좋고, 내가 거두어 주는 소출은 순은 보다 좋다. 나는 의로운 길을 걸으며, 공의로운 길 한 가운데를 걷는다"(잠 8:17-20).

잠언 8장에 나오는 '지혜의 노래'를 읽어 보면, 히브리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말씀'이 마치 또 다른 신적 존재처럼 스스로 활동하며 사람들을 하나님에게로 이끌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므로 하나님과 별개(separate being)라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동일하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나와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분신(God's other self) 같은 존재입니다.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 대목에서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의 말씀, 즉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말씀]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말씀]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말씀]가 없이는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말씀]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는 말씀을 기억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즉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말씀을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말씀'(God's Word Incarnated)입니다.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지혜'(God's Wisdom Incarnated)입니다.

 

오늘 읽은 히브리서 4장 12-13절도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력에 대해 노래합니다. 그것은 단지 문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칼을 잘 만드는 장인(master) 이 있다 해도, 그가 만든 양날칼보다 더 날카로운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은 스스로 살아있어서, 그 말씀을 받는 사람 속에서 활동합니다. 온 몸을 속속들이 검사하고, 병든 곳을 수술하고 치료합니다.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그 말씀의 변화의 능력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5.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에 담고 살만한 것 중 최고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을 맡길만한 것 중 최고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가 부르도록 먹고 그 말씀이 이끄는대로 살아갔던 에스겔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항상 말씀을 먹자는 겁니다. 우리가 먹는 그것이 우리를 먹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먹을 때, 그 말씀이 우리가 됩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이끌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인생길을 갈 수 있습니다.

 

우리 말(Korean words)에 대한 기발한 해석(unconventional interpretation)으로 유명한 다석 유영모 선생은 '말씀'이라는 말을 '말숨'(breathing of words)에서 왔다고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말 안에 당신의 숨을 불어 넣으신 것이 '말숨' 즉 '말씀'이라는 겁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숨'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이 담긴 말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 말의 숨을 쉽니다. 목(throat)으로 숨(breath)을 쉬는 것이 '목숨'(combined word of 'throat' and 'breath', meaning 'life' in Korean)입니다. 끊임없이 목으로 숨을 쉬는 까닭에 우리 육신은 목숨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영혼도 계속 하나님의 말씀으로 숨을 쉬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말숨'을 쉬는 것입니다. '말숨'을 잘 쉬면, 영적으로 충만한 생명을 얻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말씀을 얕잡아 보지 마십시다. 여러분 중, 혹시나 "성경 말씀이나 다른 고전(the classics)이나 뭐 다를 것이 있습니까? 성경을 읽을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굳이 성경 말씀을 절대화시킬(give absolute authority to the Bible)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생각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런 추측을 하는 이유는 저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꿇고 그 말씀에 저를 맡긴 다음에야, 이 생각이 얼마나 성급하고(hasty) 미숙한(immature)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실상, 오랜 기간 동안, 성경이 쓰여진 역사(history of the Bible) 와 그것이 정경으로 편찬되어 온 과정(history of canonization)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연구한 저같은 사람이야말로, 말씀의 능력을 믿기에 가장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 과정만을 보아서는 성경에 특별할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저는 성경의 역사를 공부하고 나서, 성급하게 성경을 치워버리지 않은 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그런 잘못에 빠져 버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대해 역사적으로 연구를 하면서, 한 때 성경에 대한 믿음이 해이해졌던 적이 있기는 했지만, 무릎꿇고 말씀을 읽고 대하는 과정에서 그 믿음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성경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historical nature)과 인간성(human nature)을 전적으로 인정하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신적 능력이 이 책을 두르고 있음을 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성장 과정을 역사적으로 연구하고 나서, "예수님이라고 해서 별다를 이유가 없군!"하고 단정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김영봉을 알려면 저를 만나 사귀어 보아야 합니다. 제 이력(past history)만을 아는 것으로는 저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알려면 그분의 이력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그분을 직접 만나 보아야 합니다. 위대한 인물일수록, 그의 과거 이력과 그의 인격은 차이가 큽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역사를 아는 것만으로 성경에 대해 다 알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실제로 만나야 합니다. 말씀을 실제로 만나 그 말씀에 의해 사로잡힐 때, 우리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말씀의 신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6년도에는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에스겔의 내면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채워져, 입을 열면 하나님의 진리가 터져 나왔듯, 우리도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먼저, 저를 위해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말씀을 받드는 모든 목회자 그리고 평신도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부지런히 '말숨'을 쉼으로,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이 전해지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민 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를 볼 때, 가장 딱한 것이 말씀이 혼탁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미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교회는 세속화의 영향(influence of secularization) 때문에, 성경 말씀 대신에 재미있는 이야기들(funny stories)이 강단을 점령해 가고 있습니다. 미국 목회자들 대부분이 빈약한 신학 교육 때문에, 성경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적용하여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매 주일, 듣기 좋은 에세이(essay) 한 편씩을 읽고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말씀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천주교처럼 의식(ritual)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천주교처럼 의식이 강한 것도 아니고, 개신교가 가진 말씀의 능력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신앙인 지도자로서 큰 모범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다행히 남들에게 크게 손가락질 받고 욕 듣는 행동은 안한것 같습니다.

반면, 우리 한국 교회는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인양 설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설교자의 능력 부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설교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서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설교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겁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성경 말씀에 엮어 설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는, 그분의 이름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형국입니다. 그로 인해 교회는 날로 타락해 가고, 하나님의 영광은 날로 더렵혀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생각하면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또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모릅니다. 저도 늘, "내가 혹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님의 입에 붙이고 있지 않나?"라는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대언하는 일에만 쓰임을 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여러분께서 더욱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여러 경로를 통해 널리 그리고 깊이 미칩니다. 저는 지금 와싱톤한인교회 교인들만을 향해 설교하지 않습니다. 온 세상을 향해 설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대구에서 목회하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장로교회의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제가 이렇게 뱃심 좋게 설교하다가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순전한 말씀을 전하다가 다친다면, 그것보다 더 큰 영예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다치지 않고 순전한 말씀을 계속 울려내도록 도울 수 있는 분들은 여러분들이십니다. 여러분께서 저를 믿어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지지해 주시면, 저는 이 혼탁해진 교계에서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울려내는 일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제가 와싱톤한인교회를 섬기며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의 중심인 미국에서도 워싱턴, 그곳에 선 우리 교회 강단에서 오염되지도 않고 왜곡되지도 않은 순전한 말씀을 지속적으로 울려낸다면, 다른 모든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제게만 일어나면 안 됩니다. 우리 성도 모두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 모두가 말씀에 사로잡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경 말씀을 읽는 열정에 있어서 한국 교회는 세계 정상일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는 성경을 읽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성경을 쓰는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많이 읽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읽은 그 말씀이 우리를 사로잡느냐에 있습니다. 내가 말씀을 읽되, 내가 그 말씀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나를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말씀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소유하게 해야 합니다.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도록 해야 합니다.

 

7.

이를 위해 저는 올 한 해 동안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는 일에 전념할 것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교회 내부 사정을 파악하느라고 부지런히 뛰었습니다. 이제는 기도하고 연구하고 준비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순전한 말씀을 전하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주일 설교, 금요일 아침 성서강좌, 목요일 저녁 강의, 영적 여행 클래스에 저의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할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우리 각자의 삶의 구석 구석에 미치도록 그리고 우리 교회의 사역 하나 하나를 지배하도록 최선을 다해 섬기겠습니다. 여러분도 기대감과 열심을 가지고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곧 시작될 봄철 성인신앙교육에 더 많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사로 섬기는 분들은 모두 말씀을 섬기는 일에 저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연구하고 준비하신 분들입니다.

 

그것과 함께 강조할 것은 여러분이 매일, 여러분 혼자, 혹은 부부간에 함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입니다. 이 영적 생활 없이 신앙이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가망없는 일입니다. 매 주일 정성을 다해 예배에 참여하여 말씀을 듣고, 주 중에 성경공부반에 참여하여 말씀을 배우고, 속회에 참여하여 말씀을 나누는 것도 필수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영적 생활이 필요합니다. 혹시 아직 이 영적 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번 기회에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시작하려는 분은 하루에 10분만 시간을 내십시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장소로 가서, 10분 동안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길러 보십시오. 성경을 읽을 때는, 창세기부터 차례로 읽어서 요한계시록까지 끝내 보겠다는 야심을 버리십시오. 처음에는, 말씀을 골고루 읽도록 안내하는 도우미(helper)가 필요합니다. 연말에 나누어드린 성경 읽기표를 따라 읽는 것도 좋고, '다락방' (The Upper Room)에 나와 있는 매일 성서일과를 따르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 교우들 가운데 '다락방'을 이용하는 분들이 많은데, 만일 성경은 안 읽고, 거기에 나와있는 이야기만 읽고 만다면, 그것은 신앙에 오히려 악영향(negative influence)을 미칠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 날에 정해진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한 다음, 이야기를 읽어야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혹은 성경 안에 있는 책 하나를 정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단락씩 읽는 것도 좋습니다. 다가오는 사순절(Lent) 새벽기도회에서는 누가복음을 읽을 예정인데, 그렇게 한 책을 택하여 읽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다음과 같이 연습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용한 곳에서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성령의 영감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 다음, 성경을 펼쳐서 정해진 분량 만큼 읽습니다.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오늘의 말씀을 통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나?"를 생각하며,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습니다. 그런 다음, 눈을 감고 읽은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오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때로는 분명한 말씀을 깨달을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깨달음이 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아무런 깨달음도 오지 않으면 실망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8.

이것은 마치 우물을 파는 것(digging the well)과 같습니다. 수도 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오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물을 파는 것은 참 고된 일입니다. 물이 나올 듯한 곳을 찾아서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아무리 파고 들어가도 물이 나오지 않아서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깊이 파고 들어가면 대개 물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처럼, 매일 매일, 생명의 생수를 얻기 위해 말씀을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변화가 생깁니다. 말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 10분으로 시작했던 사람이 20분, 30분 그리고 한 시간, 두 시간으로 그 시간을 늘리게 됩니다. 그 경건의 시간이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됩니다.

 

기독교 역사상 기억할만한 인물들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아씨시의 프랜시스, 히포의 어거스틴,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마더 테레사, 알버트 슈바이처-이 사람들은 모두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 그 말씀을 따라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진정한 생명의 빛깔을 드러내며 참되게 살다 간 보통 사람들도, 모두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욕심과 충동과 야망에 움직여지는 삶을 떠나려면, 말씀에 사로잡히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 이유도 없이, 방향도 없이, 목적도 없이 허둥대는 삶에서 벗어나려면, 말씀에 사로잡히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도 '속에 있는 것에 의해 움직여지는' (driven by what's inside) 존재입니다. 문제는 우리 속에 무엇이 담기느냐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담겨, 그 말씀 안에서 방향을 찾고, 그 말씀에 의해 움직여지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주님,
육신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신 주님,
말씀의 신비를 오늘 깨우쳐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비어 있는 마음을 주님께 엽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 주소서.
에스겔의 배가 말씀으로 가득 채워지듯,
저희의 내면에도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
저희 마음을 사로잡고 저희 인생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모든 것들을 물리쳐 주시고,
주님의 말씀만이 저희 마음을 다스려 주소서.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으로 숨쉬게 하소서.
말씀을 먹게 하소서.
말씀으로 살아
말씀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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