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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포리일기 493】오늘은 내가 이 세상에 소풍 온 날
나의 잠재의식 속에는 어쩌면 어머니의 슬프고도 애틋한 마음이 남아있어 해마다 나의 생일이 다가오면 말 수 없는 감회가운데 빠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철이 조금 났을 때 어머니에게 제가 태어나던 날 이야기를 어렵게 들으면서 울었던 생각이 나네요.
온 세상에 5월의 붉은 장미가 화사하게 피어나던 그 날 어머니가 혼자서 저를 낳으셨습니다. 홀로 아기를 낳고 태를 끊고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는 걸 보다 못한 이웃이 고구마 한 자루 주어 한 솥 삶아 배 채우고, 언제 올 지 기약 없는 남편이 올 때까지 아껴 먹으며 굶어죽지 않으려고 나머지는 땅 속에 묻어놓으셨답니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누군가가 그 고구마를 홀딱 파 가버렸더라고...) 나중에 이모님이 집에 와 보니 산모는 아프고 배가 고파서 윗목에서 끙끙 앓고 있고 아기는 아랫목 이불 속에서 혼자 방긋거리며 놀고 있더라고... 돈 벌러 집을 나가면 한 달 만에도 집에 오고 두 달 만에도 오는 나의 아버지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 보름만에 보리쌀 한 말 어깨에 매고 나타나셨답니다.
저는 그렇게 저를 축하해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 아마도 눈을 떠서 가장 먼저 본 것이 담장에 흐트러지도록 피어난 장미꽃이 환하게 축하해주며 박수를 쳐주며 환영해 주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그 모습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는지 저는 길을 가다가 담장의 붉은 장미꽃만 보면 고마워, 고마와, 고마운 마음이 막 들면서... 막 눈물이 나려고 해요. 2008.5.22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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