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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생명을 잉태하는 교회

요한복음 김송자 자매............... 조회 수 2525 추천 수 0 2011.04.04 18: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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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0:10 
설교자 : 김송자 자매 
참고 : 새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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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풍성한 생명을 잉태하는 교회

(교회의 정체성 회복)

(요한복음 10:10b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하려고 왔다)

2011년 3월 13일 주일예배 말씀증거

김송자 자매

 

 

   21세기는 생명의 위기, 환경의 위기, 교회의 위기 시대라고 합니다. 그것은 생명을 감당해야 할 교회가 쩐의 노예가 되어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는 인간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밀어내는 영적 위기를 맞고 있으며 쩐의 귀신에 사로 잡혀 가치관 혼돈으로 영성을 잃고 무한 경쟁이란 신자유주의 경제 신조 앞에 돈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하도록 내 몰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교회의 존재의의를 잃고 생명을 파괴하는 전쟁이나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이나 생태계 파괴가 심각한 현장이 수없이 들어나도 특히 대형교회들은 침묵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를 떨며 안티 기독교 단체들이 생겨나 날카로운 비수를 던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 세계화는 전 지구상에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빠른 속도로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으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노동이 수반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은 투기 확대로 번져 나갔고, 손끝으로 수고 한대로 거두라는 성서의 말씀을 허공에 메아리치게 합니다. 60~70년대 절대빈곤 속에서 가난을 벗어나겠다는 강한 의지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래서 그 끝은 행복할 줄 알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가치관의 혼돈과 불신이 팽배해져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많은 내 이웃들이 신자유주의 경제 세계화로 인해 자신과 가족이 경제적 도태에서, 사회적 도태로, 사회적 도태에서 생존적 도태로 생존적 도태에서 삶의 포기, 생명의 포기로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근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으며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보다 더 많다고 하니 얼마나 슬프고 우울한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 입니다. 생명(生命)이라는 한자의 의미도 살라는 명령이지 죽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대 멀쩡한 생명들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연사로 인한 생명의 끊어짐은 어쩔 수 없지만, 삶의 궁지에 몰려 피할 수 없었던 죽음이라면 그것은 분명 사회적 타살이며 우리는 이러한 반 생명적 행위에 대하여 완강하게 저항해야 합니다. 요즘 정치권과 교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법에 대하여 한국교회는 그것을 반대하기 전에 비싼 고율의 사채를 눈물을 머금고 쓸 수 밖에 없는 서민들과 등록금 때문에 빚더미에 앉은 대학생들과 함께 고민하며 대책을 찾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할 일이며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전 지구적 생명 위기와 환경파괴의 중심에는 불행하게도 기독교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서구 백인 중심의 잘못된 창조신학이 기독교의 전 영역에 걸쳐 영향을 끼쳐왔고, 한국 교회도 예외 없이 그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과 같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넘치게 하려고 왔다” 했는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생명을 죽이고 환경을 파괴하고 난자, 정자를 판매하고 GMO 즉 유전자조작 식품을 먹도록 강요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것들로 심각하게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구제역으로 인한 동물들의 수난은 산 생명을 그대로 땅속에 묻음으로서 그 비명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고, 지난 11일 발생한 진도 9.0의 일본지역의 대지진은 첨단 내진 설계나 방제 시스템도 그 재앙을 막지 못하고 귀중한 수만명의 생명과 엄청난 재산을 앗아갔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신으로부터 분리하여 주체로 만들어 주었지만 이제 인간은 하나님 앞으로 겸손하게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이제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아픔에 대하여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구체적이며 적극적으로 책임 있는 실천적 응답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생명의 위기시대에 성서에서는 생명이해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찾아보고 그 답을 찾고자 합니다. 사실 성서 신구약의 핵심 메시지는 전부 생명을 주시고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프로그램입니다. 그 중에 몇 개만 찾아 하나님의 생명존중 메시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먼저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하나님의 형상 곧 왕과 같은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존중 생명존중의 신학적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차별이나 살인, 자살, 착취, 미움 등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며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어려서부터 인식시켜주는 교육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신명기19장 동해보복법은 보복을 꼭 하라는 것이 아니라 보복의 한계를 정해서 가령 눈으로 보복 할 정도의 일로 생명을 죽이는 보복으로 까지 가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제정된 것입니다. 여호수아 20장의 도피성 제도도 무리한 생명의 피해가 없도록 생명을 존중하는 안전장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희년제도에는 돈을 주고 산 종들을 해방시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여 사회의 부를 재분배 하여 약한자들의 생명과 권리를 지켜주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하십니다. 가령 곡식을 수확할 때 이삭을 남겨두라, 포도 수확할 때도 외국인들이 따먹게 남겨두라, 품삯을 떼어먹지 마라, 고아와 과부인권을 밟는 자들을 저주하라, 뇌물을 받고 죄 없는 자들의 피를 흘리게 하지 마라, 장애인들 앞에 걸림돌을 놓지 마라,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라 등 인간은 물론 동물의 생명까지도 보호하시려는 메시지가 담긴 율법을 이스라엘민족에게 지킬 것을 명하십니다. 그러나 건강 장수 번영을 누리는 현재적 생명의 삶을 이렇게 중요시 함에도 불구하고 시편 잠언 전도서에 보면 이런 현재적 삶의 허무함을 절감하며, 거기에 궁극적 희망을 두지는 않습니다. 구약 성서의 생명관은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에 기초한 신앙적 생명을 중요시 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생명 이해는 누가 복음 4장 18절에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에서 명백하게 들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개인의 영혼뿐만 아니라 잘못된 사회제도에 의해서 고통 받는 모든 자들에 대한 해방의 복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도 참된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기초할 때 주어지는 신앙적 생명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4:4) 고 하여 시험하는 자를 물리치셨고 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라든가 사두개인들과의 논쟁에서 "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이시라" 하셨으며 마태복음 8장에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고 와서 주를 따르겠다는 제자에게 주님은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 고 하심으로서 육체적 생명을 중요시 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과의 관계성에 기초하지 않은 생명은 죽은 자로 취급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요 6:53)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요 6:35) 그리고 마태복음 24장의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말씀에서도 생명이신 예수를 배척하고 그림자만 붙들고 있는 이스라엘의 살길은 생명이신 예수를 영접하고 주로 고백할 때에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가 나고 잠시 후 열매를 맺게 되면 예수님이 그 열매를 추수하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직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고 있으니 죽은 무화과나무, 죽은 이스라엘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신 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 안에 그분의 생명을 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가는 회복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과 연관되며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이라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남선교회 주최로 상영되는 ‘울지마, 톤즈’ 이야기는 본문 말씀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하려고 왔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현장 이야기 입니다. 요즘같이 이기심과 불신으로 팽배한 시대에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지는 이태석 신부님의 삶은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풍성하게 나누어 줌으로서 보는 이로 하여금 부끄럽기도 하면서 용기를 갖게 해 줍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성서의 생명이해는 구약에서 말하는 생명존중의 하나님의 모습이 신약에 와서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그로 인한 십자기 처형 그리고 부활 사건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생명을 살리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존중 사상의 결정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이 친구가 되셔서 그들의 영육을 치유하고 회복 시키셨으며 예수님의 사역의 장소나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회복, 치유, 자유함, 안식, 평안, 소통 등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내양을 먹이고 치라고 하셨을 때, 그것은 단순히 설교, 교육, 심방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 말씀을 통한 하나님 형상으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형상으로의 회복의 역사는 나 자신의 의지와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초월의 역사,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는 세상에 생명을 주러 오셨고 또 풍성이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지배와 이기심이 아니라 섬김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선한 목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으로 파견된 선교적 존재로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러한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의한 성령충만의 영성 회복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이며 교회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믿음은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는 사대교회와 같이 너무나도 무력하고 죽어있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생명줄인 기도줄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우리가 기도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 때문이라고 에베소서 6장 12절에는 말하고 있습니다. 태중의 태아가 탯줄을 통해 어머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듯이 크리스천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내려오는 신령한 은혜와 능력과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에는 끝없는 생명의 교류가 있습니다. 참된 기도가 있을 때 우리 영혼에는 생명이 넘치고 주님께서 찾으시는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하게 맺힐 것입니다.

 

   저는 새길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이집트를 탈출했으나 가데스바네아 광야에서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가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자꾸 생각납니다. 출애급한 히브리 민족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 공터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고도의 세속문화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찬란한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발전하는 도시 국가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찾아 소풍 가는 그런 낭만적이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출발한 인류역사, 곧 네피림, 니무롯 같이 힘있는 거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며 그곳이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이러한 거인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은 세상나라의 상징이며 바로 이런 나라들의 문화를 정복하고 싸워 이겨서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케 함으로써 그들도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받도록 하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또한 현재 교회의 존재의의입니다. 그래서 출애급은 가나안 문화 정복, 가나안 종교정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기에 출애급은 곧 전투태세이며 민수기도 전투태세입니다. 전투를 위해 규칙을 정하고 병력을 파악하기 위해 계수하고 작전을 짜고 효과적 관리를 위해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한 스토리가 불가피 했던 것입니다.

 

   이제 새길교회가 24년 전 한국교회개혁의 사명을 갖고 기성교회로부터 분리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그 사명을 자각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포기 한다면 또 구원 얻은 자로서 그 구원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그저 늘 이집트에서 먹던 수박, 파, 마늘, 부추나 생각하며 세상문화 정복에는 관심이 없고 나 복 받는 것 내 식구 잘되는 것, 나 위로 받고 나 치유되고 나 사랑 받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교회 공동체라면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된다는 무서운 교훈을 이 광야의 구약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느냐 못사느냐는 그 교회 공동체가 죽느냐 사느냐의 사활이 달린 이슈입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겠노라고 큰 꿈을 안고 이집트를 떠나 고생 고생하면서 광야까지 왔는데 그 광야가 끝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나안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적어도 여호수아 갈렙처럼 이방종교와 섞이지 않고 세상문화를 정복하여 하나님의 문화를 삼겠다는 투철한 사명감과 영적 순수와 성결을 가추어야 합니다. 가나안을 목적지로 향해 가야 하는 이유, 새길교회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지 왜 나를 새길공동체의 일원으로 불러 주셨는지 그 뜻을 깊이 새길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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