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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4: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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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9·04·10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맞이했습니다. 이 부활절 아침에 우리가 확인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뿐만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주님의 부활은 믿지만 부활하신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가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불신앙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다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은 완전히 절망했으며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이렇게 절망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모든 일들에 대해서 이미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마17:22-23)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막8:31)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눅9:22)
만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했더라면, 그리고 믿었더라면 제자들은 그렇게 절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깊은 절망과 슬픔에 빠져버렸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말씀을 굳게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이기고 있습니까?
무덤으로 가는 여인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바로 전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고 다음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서둘러 예수님을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사할 때 몇 사람의 여인들이 그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눅23:50-56)
아마도 그 여인들은 요셉과 니고데모가 시간에 쫓겨 서두르는 바람에 예수님을 장사하는 데 미흡한 점들이 있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향품을 더 준비해서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장사한 날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안식일이 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안식일이 지나고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새벽 일찍 준비해둔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1절)
예수님께서 이미 돌아가셨고, 그녀들은 큰 슬픔과 절망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들은 모든 것을 단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그토록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주님의 몸에 향품이라도 더 발라드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는 못했지만 주님을 향한 이들의 사랑은 특별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가장 먼저 듣게 되었으며,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무덤에서 일어난 일
무덤으로 가는 여인들에게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이었습니다. 그 돌은 여자들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덤에 도착해보니 돌이 이미 무덤에서 옮겨져 있었습니다.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2절) 누가 돌을 옮겨놓았을까요? 아마도 천사들이 옮겨놓았을 것입니다. 천사들은 왜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옮겨놓았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거기서 나오시도록 하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무덤 문이 열려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나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천사들은 돌을 옮겨놓았을까요? 무덤을 찾아온 사람들이 들어와서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여인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서둘러 장사를 지내느라고 소홀히 했던 부분들은 없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준비해간 향품을 예수님의 시신에 정성스럽게 바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3절) 여자들이 얼마나 놀라고 실망했겠습니까? 이들이 얼마나 실망했는지를 요한의 말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가 실망하여 무덤 밖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요20:11)
그때 두 천사가 여자들 곁에 나타났습니다.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4절) 천사들은 실망하며 근심하는 여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5-7절)
말씀을 기억하라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에 갔던 여인들은 뜻밖에도 천사들을 만나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토록 힘없이 모든 수치와 고난을 다 당하시고 죽으셨을 때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으신 예수님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단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만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일 그 소식만 전했더라면 여자들이 천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하면서,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에 친히 하셨던 말씀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6-7절)
천사들의 말을 들은 여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8절) 이 말씀은 여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하는 천사들의 메시지를 믿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9-10절)
믿지 못하는 사도들
여자들이 달려와 전한 소식을 들은 사도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11절)
사도들은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행하신 능력을 보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신 말씀도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무덤에 갔다가 천사들의 말을 듣고 전하는 부활의 메시지를 완전히 무시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도들 중에 베드로의 반응은 조금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여자들의 말을 듣고 즉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12절)
요한은 베드로와 자신이 함께 무덤으로 달려갔다고 기록했습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요20:3-7)
베드로와 요한은 여자들의 말을 듣고 달려가서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었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것 참 이상하다. 무덤 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치웠단 말인가? 무덤 속이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면 바리새인들의 소행은 아닌 것 같은데 …”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확인하고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20:9) 그들이 분명한 증거를 보고도 믿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고 믿었더라면 예수님의 부활을 쉽게 믿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부활을 믿고 그토록 절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는 열쇠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을 기억하고 믿으면 부활을 분명히 믿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며 교제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의 예를 들어봅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어서 절망과 슬픔에 빠져 길을 가고 있던 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부활에 대해 증거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보여주시면서 증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셨을까요? 말씀을 통해서 증거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5-27)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보여주시면서 증거하시지 않으시고 말씀을 통해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셨을까요?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보라고 하시면서 증거하셨더라면 얼마나 쉽고 간단했겠습니까? 그런데 왜 말씀을 풀어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증거하셨을까요?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얼마 안 있으면 승천하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한 번 보았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환상이 아니었을까 하고 의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시 예수님의 몸을 보아야 할 텐데, 그때 예수님의 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직접 보고서 믿는다는 것은 확실한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말씀대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제 그 말씀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확실히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보는 것보다 말씀을 깨닫는 것이 부활을 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천사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8절) 그래서 이 여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었고, 그 부활의 기쁜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여자들의 말을 듣고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20:9)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며,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하신 것은 오늘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부활의 메시지를 듣고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주님의 부활을 믿기에 충분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들을 때, 그리고 깊이 묵상할 때, 특히 주님의 말씀을 지킬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당신은 당신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당신을 위해 모든 멸시와 천대와 수치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당신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분의 말씀을 굳게 믿고 지켜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주님을 만나는 길이며, 그분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동행하는 방법입니다. 신선하고 거룩한 이 부활절 아침에, 말씀을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는 주님을 새롭게 만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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